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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입능가경 제4권
3. 무상품 ①[4]
[로가야타의 주술과 사론]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한때 로가야타(盧迦耶陁)의 주술(呪術)과 사론(詞論)은 다만 능히 세간의 재물의 이득만 섭취하고, 법의 이득[法利]은 얻지 못하며 법의 이득을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친근하여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로가야타의 사론은 다만 문구를 꾸미고 어리석은 범부를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 세간의 허망한 말에 수순하여 뜻에 맞지 아니하고 이치가 맞지 아니하여 진실한 경계에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고, 일체 모든 법을 깨닫지 못하며, 항상 2변에 떨어져 스스로 정도(正道)를 잃고, 또한 남도 정도를 잃게 하여 모든 무리[趣]에 윤회하여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오직 마음이 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밖의 경계에 집착하여 분별을 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론문구(世論文句:로가야타의 이론)는 인(因)과 유(喩)로 꾸며서 다만 어리석은 범부를 속일 뿐이요, 능히 생ㆍ노ㆍ병ㆍ사ㆍ우ㆍ비 등의 근심에서 해탈하지 못한다고 설하였다.
대혜여,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여러 논을 널리 해석하여 스스로 모든 논을 지었는데,
세상을 논하는 자[世論者]의 한 제자가 용의 몸을 나타내어 제석의 천궁에 나아가 논의 종지[論宗]를 세워서 요점만 지어서 말하기를,
‘교시가(橋尸迦:제석천왕)여, 내가 그대와 함께 논쟁하여 그대가 만약 이기지 못하면 내가 마땅히 그대의 천의 바퀴로 된 수레를 부술 것이요,
내가 만약 이기지 못하면 하나하나의 머리를 끊어 굴복하여 사죄하리라’고 하였다.
이 말을 하고 나서 곧 논법으로 제석을 꺾어 항복받고 천의 바퀴로 된 수레를 부수고 다시 인간에 내려왔다.
대혜여, 세간의 언론은 인(因)과 유(喩)로 꾸미고 나아가 능히 용의 모양을 나타내며, 묘한 글과 말로써 모든 하늘과 아수라를 미혹하여 그 생멸 등의 견해에 집착하게 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대혜여, 마땅히 친근하여 받들어 섬기어 공양하지 말지니 그들은 능히 고(苦)가 생기는 인(因)을 짓기 때문이다.
대혜여, 세론(世論)은 오직 몸의 감각 경계[身覺境界]를 말할 뿐이다.
대혜여, 그 세론은 백천자구(百千字句)가 있는데, 말세에 나쁜 견해로 이치에 어그러지고 떠나게 되며 삿된 무리들이 무너지고 흩어지며 나누어져 많은 부류가 되어 각각 자기의 인연을 고집할 것이다.
대혜여, 다른 의도는 능히 교법(敎法)을 세우지 못하고 오직 로가야(盧迦耶)만이 백천 구로써 널리 한량없는 차별의 인연상[四相]을 말하지만 진실한[如實] 이치가 아니요, 또 스스로도 이것이 세상을 의혹하는 법인지 알지 못한다.”
그때 대혜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로가야타가 지은 논(論)이 갖가지 문자와 인유(因喩)로 꾸며 자기의 종취[宗]에 집착하지만 진실한 법이 아니므로 외도라고 합니다.
세존께서도 또한 세간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갖가지 문구와 말씀으로 널리 시방 일체 국토와 하늘과 사람 등의 무리가 와서 모인 집회에서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지혜로 깨달은 법이 아니므로 세존께서도 또한 외도의 설과 같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나의 말은 세론(로가야타)의 설이 아니요, 또 오고 감이 없다. 나는 모든 법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고 말하였다.
대혜여, 온다는 것은 모여 생기는 것[集生]이요, 간다는 것은 무너져 없어지는 것이다.
오지 않고 가지도 않는 이것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한다.
대혜여, 내가 설한 것은 외도가 분별하는 가운데 떨어진 것과 같지 않다.
왜냐하면 밖의 법[外法]의 유ㆍ무에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오직 자기 마음뿐임을 깨달아 2취(取)를 보지 않고, 모양의 경계[相境]를 행하지 않으며, 분별을 내지 않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문에 들어가 해탈하기 때문이다.
대혜여, 내가 기억하건대 어느 때 한 곳에 머물러 있는데, 어떤 세론(世論:순세외도) 바라문이 나의 처소에 와서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구담(瞿曇)이여, 일체는 만든 것[所作]입니까?’
내가 그때 대답하였다.
‘바라문이여, 일체는 만든 것이란 첫 번째 세론이다.’
또 내게 물었다.
‘일체는 만든 것이 아닙니까?’
내가 그때 대답하였다.
‘일체는 만든 것이 아니라 함은 두 번째 세론이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일체는 항상합니까, 무상합니까? 일체는 생하는 것입니까, 생하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그때 대답하였다.
‘그것은 여섯 번째 세론이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일체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일체는 함께 합니까, 함께 하지 않습니까? 일체는 모두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을 받습니까?’
나는 그때 대답하였다.
‘그것은 열한 번째 세론이다.’
그는 다시 물었다.
‘일체는 유기(有記)입니까, 무기(無記)입니까?
나가 있습니까[有我], 없습니까[無我]?
이 세상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른 세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해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것은 찰나입니까, 아닙니까?
허공과 열반과 비택멸(非擇滅)은 만든 것입니까, 만든 것이 아닙니까? 중유(中有:중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그때 대답하였다.
‘바라문이여, 이와 같은 것은 모두 그대들의 세론이지, 내가 말한 것은 아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시작 없는 예부터 희론의 모든 나쁜 습기로 인하여 삼계가 생긴다고 말하였으며, 오직 자기 마음에 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밖의 법[外法]을 취하나 진실로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외도는 말하기를, 나와 근(根)과 경(境), 셋이 합하여 앎[知:식]이 생긴다고 하나 나는 이와 같지 않다.
나는 인(因)을 말하지 않고 무인(無因)도 말하지 않으며 오직 허망한 마음을 인연하여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와 같이 인연이 일어남[緣起]을 설하나니, 그대와 나에 집착하는 다른 외도는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대혜여, 허공과 열반 및 비택멸은 다만 세 가지 법수(法數)일 뿐 본래 체성(體性)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만들었다거나 만들지 않았다를 설하겠는가?
대혜여, 그때 세론 바라문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무명(無明)ㆍ애업(愛業:탐애의 업인)이 인연이 되는 까닭에 삼계가 있습니까? 인연이 없기 때문에[無因]에 있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이 둘도 또한 세론이다.’
또 나에게 물었다.
‘일체 모든 법은 모두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 들어갑니까?’
나는 그때 대답하였다.
‘이것도 또한 세론이니라.
바라문이여, 나아가 조금이라도 심식(心識)에 유동(流動)이 있어서 밖의 경계를 분별하는 것은 모두 세론이니라.’
대혜여, 그때 그 바라문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혹 세론이 아닌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일체 외도에 있는 논은 갖가지 문구와 인연과 비유로 꾸며져 모두 나의 법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대답하였다.
‘있느니라. 그대가 허용한 바[所許]도 아니요 세간이 허용하지 아니함[不許]도 아니요 말하지 아니함도 아닌 갖가지 문구와 의리(義理)와 상응하며 상응하지 아니함도 아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어찌 세간이 허용하고 세론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내가 대답하였다.
‘있느니라. 다만 그대와 일체 외도만이 능히 알지 못할 뿐이다. 왜냐하면 밖의 법에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집착을 내기 때문이다.
만약 능히 유ㆍ무 등의 법 일체가 모두 자기 마음으로 보는 것임을 깨달아 통달하면 분별이 생기지 아니하고, 밖의 경계를 취하지도 아니하며, 자기의 처소에서 머무느니라.
자기 처소에 머문다는 것은 뜻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일으키지 아니하면 어디에서도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이것이 나의 법이요 그대에게 있지 않다.
바라문이여, 간략히 말한다. 어느 곳을 따라 심식(心識)이 왕래하고 생사(生死)를 사랑하여 구하며, 받고 보고, 감촉하고[觸], 머물며, 여러 가지 모양을 취하여 화합하고 상속하여 애착[愛]과 인(因)에서 계착(計着)을 냄이 다 그대의 세론(世論)이요 이것은 나의 법이 아니다.’
대혜여, 세론 바라문은 이와 같은 것을 묻고 나는 이와 같이 대답하니,
나의 자종(自宗:종취) 진실법을 묻지 않고 묵묵히 가면서 생각하기를,
‘사문 구담(瞿曇)은 존중할 것이 없다.
일체 법은 무생(無生)ㆍ무상(無相)ㆍ무인(無因)ㆍ무연(無緣)이요 오직 자기 마음으로 분별하여 보는 것일 뿐이고 만약 능히 이것을 깨달으면 분별이 생기지 않는다고 설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대혜여, 그대가 지금 또다시 나에게 이 뜻을 묻는구나.
무슨 까닭으로 모든 세론을 가까이하는 자는 오직 재물의 이익을 얻고 법의 이득은 얻지 못하겠는가?”
[재물과 법의 뜻]
대혜가 아뢰었다.
“말씀하신 재물과 법이란 어떤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도다. 그대가 능히 미래 중생을 위하여 이 뜻을 사유하였구나.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한다.
대혜여, 말한 재물이란 감촉[觸]할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맛볼 수 있어서 밖의 경계에 집착하게 하여 2변(邊)에 떨어지게 하며, 탐애와 생ㆍ노ㆍ병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를 더 자라게 한다.
나와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는 재물의 이로움은 세론을 친근하여 얻는 것이다.
무엇을 법의 이로움이라 하는가?
이른바 법은 곧 이 마음을 깨닫고 2무아(無我)를 보며, 모양[相]을 취하지 아니하고 분별함이 없으며, 모든 지(地)를 잘 알며 마음ㆍ뜻ㆍ식을 떠나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정수리에 물을 뿌릴 것이며, 10무진원(無盡願)을 구족히 받아 행하며, 일체법에서 모두 자재하게 되는 것을 법의 이로움이라 한다.
이로써 일체 모든 견해와 희론과 분별과 상(常)ㆍ단(斷)에 떨어지지 않는다.
[항상함과 단멸함]
대혜여, 외도 세론은 모든 어리석은 사람을 2변에 떨어져 있게 하니,
이른바 항상함과 단멸함이다.
무인론(無因論)을 받아들이면 곧 항상하다는 견해[常見]를 일으키고,
인(因)이 괴멸한다고 함은 곧 단견(斷見)이 생기는 것이다.
생기고 머물며, 멸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을 법의 이로움을 얻었다고 말하며,
이것을 재물과 법, 둘의 차별상이라 이름하나니,
그대와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부지런히 관찰하여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조복하여 중생 거두어
계로써 모든 악 항복받고
지혜로 모든 견해 없애면
해탈을 증장되게 함이니라.
외도의 허망한 말은
모두 세속의 논이며
거슬러 작(作)과 소작(所作) 헤아려
능히 스스로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라.
오직 나 하나의 자종(自宗:종취)만이
능ㆍ소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제자 위해 설하여
세론을 떠나게 하느니라.
능취ㆍ소취의 법은
오직 마음뿐 있는 바 없고
두 가지 모두 마음이 나타난 것이라
단(斷)과 상(常)을 얻을 수 없느니라.
나아가 마음이 유동(流動)하면
이것은 곧 세론이 되니
분별 일으키지 아니하면
이 사람 자기 마음 보리라.
오는 것[來者]은 일이 남을 보이고
간다는 것[去者]은 일이 나타나지 않음이니
밝게 오고 가는 것 알면
분별이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항상하고 무상(無常)함
짓는 것과 짓는 것 없음과
이 세상과 다른 세상 등
모두 세론의 법이니라.
[열반]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을 설하셨는데 어떤 법을 설하여 열반이라 하시며, 모든 외도가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모든 외도가 분별하는 열반 같은 것은 모두 열반의 모습을 순하게 따르지 아니하나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대혜여, 혹 어떤 외도가 말하기를,
‘법의 무상함을 보고 경계를 탐하지 않고, 5온ㆍ18계ㆍ12처가 멸하고,
마음과 마음의 법[心所法]이 현재 앞에 나타나지 아니하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아 등불이 꺼지는 것 같고, 종자가 썩은 것 같고, 불이 꺼진 것 같아,
모든 집착[取]이 일어나지 않고 분별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열반의 생각을 일으킨다.
대혜여, 견해가 무너지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혹은 말하기를, 방위[方:한곳]에 이르는 것을 열반을 얻었다고 하고, 경계의 생각을 떠남이 마치 바람이 멈춤과 같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능각(能覺)과 소각(所覺)을 보지 못함을 열반이라 한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분별하여 항상하고 무상하다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은 것을 열반을 얻었다고 한다.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모든 모양을 분별하여 고통[苦]이 발생하여도 자기 마음이 나타난 것임을 능히 알지 못하며, 알지 못하는 까닭에 모양을 두려워하고 무상(無相)을 구하여 깊이 사랑하여 즐거움을 내어 집착함을 열반이라 한다.
혹은 말하기를, 안과 밖의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과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성품이 있어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깨달아 아는 것으로 열반상을 낸다.
혹은 나와 남, 중생, 수명과 일체법은 괴멸함이 없다고 헤아리는 것으로 열반상을 낸다.
또 어떤 외도는 지혜가 없어 자성이 있고 또 사부(士夫:장부)와 구나(求那:原質, 作者)가 바뀌고 변하여 일체 만물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 하고,
혹 어떤 외도는 복과 복 아닌 것이 다함을 헤아려 열반이라 하고,
혹은 지혜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모든 번뇌가 다한다고 보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
혹은 자재천[自在]이 진실로 작자(作者:창조주)라고 헤아림을 열반이라 하고,
혹은 중생이 옮기고 바뀌어 서로 생기어[相生] 이것이 인(因)이 되고 다시 다른 인은 없다 하니,
그는 지혜가 없으므로 능히 깨달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므로 집착하여 열반이라 하고,
혹은 진리의 도[諦道]를 깨달았다고 허망하게 분별하여 헤아려서 열반이라 한다.
혹은 구나(求那)와 구나자(求那者)가 함께 화합하여 같은 성품과 다른 성품, 함께함과 함께하지 못함을 헤아려 열반이라 하고,
혹은 모든 사물을 자연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여 공작의 무늬[文彩]ㆍ가시의 침이 예리함과 보배가 생기는 곳에서 갖가지 보배가 나는 것 등 이와 같은 일은 누가 능히 만드는가 하고는 곧 자연이라고 집착하여 이를 열반이라 한다.
혹은 말하기를, 25제(諦:수론 외도의 이론)를 알면 곧 열반을 얻었다 하고,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6분(分:六德論)을 능히 받아 중생을 수호하면 이것을 열반을 얻었다 하고,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시간[時:시절]이 세간을 생(生)하니 시간이 곧 열반이라 하고,
혹은 물질이 있음을 집착하여 열반이라 하고,
혹은 물질이 없음을 헤아려서 열반이라 하며,
혹은 물질이 있고 물질이 없음을 헤아려 집착하여 열반이 되는 것이라 하고,
혹은 모든 물질이 열반과 다름없다고 헤아려 열반상(涅槃想)을 낸다.
대혜여, 또한 저 외도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 있으니 일체지로써 대사자후로 설한다.
능히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임을 깨달아 통달하여 밖의 경계를 취하지 않고, 4구(句)를 멀리 떠나 진실과 같은 견해에 머물며, 2변(邊)에 떨어지지 않는다.
능취ㆍ소취를 떠나며, 모든 헤아림에 들어가지 않고, 진실에 집착하지 않으며, 바른 지혜를 나타내는 깨닫는 법에 머물러 2무아(無我)를 깨닫고, 두 가지 번뇌를 떠나 두 가지 장애를 청정히 한다.
모든 지(地)를 닦아 불지(佛地)에 들어가서 여환(如幻:삼매) 등의 모든 큰 삼매를 얻어 영원히 마음ㆍ뜻ㆍ의식을 초월하면 열반을 얻었다고 한다.
대혜여, 저 모든 외도들이 허망하게 계탁(計度:헤아림)함은 이치에 맞지 아니하니 지혜로운 이가 버리는 것이다.
외도는 모두 2변에 떨어져서 열반이라는 생각을 짓나니 여기에는 머문다거나 벗어남이 없다.
저 모든 외도는 모두 자기들의 종취[自宗]에 의하여 허망한 생각을 내니, 이치에 위배되어 성취할 것이 없고, 오직 마음과 뜻이 달리고[馳] 흩어지며 왕래하게 하여 일체에 열반을 얻는 이는 없나니 그대와 모든 보살은 반드시 멀리 떠나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외도의 열반에 대한 견해는
각각 분별함이 다르니
그것은 오직 망상으로
해탈할 방편에 없느니라.
모든 방편을 멀리 떠나
속박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고
허망하게 해탈의 생각 내나
진실로 해탈이 아니니라.
외도가 세운 법은
온갖 지혜 각각 다르게 취하나
거기에는 모두 해탈 없건만
어리석어 허망하게 분별하느니라.
일체의 어리석은 외도
허망하게 작(作)과 소작(所作)을 보나
모두 유ㆍ무론에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해탈은 없느니라.
어리석은 범부는 분별을 즐겨
진실한 지혜 생기지 않느니라.
말은 삼계의 근본이니
진실로 괴로움의 원인 없애리라.
비유하면 거울 속 영상은
나타나지만 진실이 아니듯
습기의 마음 거울[心鏡] 속에서
어리석은 범부 둘이 있다고 보느니라.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 깨닫지 못하니
그래서 둘이라고 분별 일으키느니라.
만약 오직 마음뿐임을 알면
분별은 곧 생기지 않으리라.
마음은 곧 갖가지이나
상(相)과 소상(所相)을 멀리 떠나면
어리석은 이 분별함같이
보지만 본 것이 없느니라.
삼계는 오직 분별일 뿐
밖의 경계는 모두 없는 것
망상으로 갖가지 나타난 것을
어리석은 범부 깨닫지 못하느니라.
경마다 분별하여 설하였으나
다만 이것은 이름만 다를 뿐이니
만약 언어를 떠나면
그 뜻 얻을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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