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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형 전업농부·작가
새끼 멧돼지의 죽음
이른 아침 논물 보러 나갔다가 농로에 쓰러져 있는 새끼 멧돼지를 봤다. 등에 줄무늬가 선명한 어린 녀석이었다. 목에는 이빨 자국이 나 있고 시멘트 바닥엔 피가 낭자했다.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은 걸로 보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죽은 자리 옆 논흙이 파헤쳐져 있다. 배를 채울 풀뿌리나 지렁이를 찾고 있었던 걸까.
새끼 멧돼지가 벼 포기 아래를 파헤쳐 놓았다. 시멘트 농로에 혈흔이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어린 녀석이 왜 이른 아침 혼자 나왔지? 어미가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새끼를 키우는 어미 멧돼지는 예민하고 공격적이다. 목숨을 걸지 않고서야 어미 있는 새끼를 노릴 리 없다. 죽은 장소가 들판인 것도 이상하다. 멧돼지들은 경계심이 많아 개활지보다 숲을 좋아한다. 한밤중에 산에서 내려와 논둑을 헤집을지언정 사방이 훤히 트인 아침 들판을 돌아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호랑이와 곰이 사라진 땅에 멧돼지의 상위 포식자는 사람 외엔 없다. 새끼를 공격한 짐승은 뭐였을까. 혹시 대형 유기견일까? 한밤중에 차를 몰고 시골 마을에 들어와 키우던 개를 팽개치고 줄행랑치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길을 헤매는 유기견들이 해마다 적지 않은 건 그만큼 개를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만약 유기견이 새끼 멧돼지를 해쳤다면 배가 고파서일 텐데, 멧돼지의 몸엔 이렇다 할 훼손이 없다.
논 지킴이 개.
혹시 산 아래 묶여 있는 논 지킴이 개가 풀렸던 걸까? 고라니나 멧돼지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막으려고 개를 밭 가에 묶어 두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개들을 ‘밭 지킴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 농부는 특이하게도 논 옆에 개들을 묶어두었다. 야산 바로 옆 논이라 멧돼지를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멧돼지는 예민하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라 개가 있으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논밭을 지키는 개들의 처지는 대체로 열악하다. 주인과 함께 살지 못하고 외따로 있다 보니 사료와 식수를 제때 공급받지 못할 때가 많다. 한여름 불볕과 기나긴 장마를 맨몸으로 견디는 일도 다반사다. 열사병과 목마름, 굶주림으로 죽는 일마저 벌어진다. 지난여름 김제에서는 한 살도 안 된 어린 개들이 밭 지킴이로 묶인 채 방치돼 아사한 사건이 있었다.
논 지킴이 개집 앞에 그늘막이 설치되었다.
이 마을의 논 지킴이 개 두 마리는 논의 이쪽과 저쪽에 각각 묶여 있다. 주인 농부는 개들에게 매일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다만 한여름 불볕을 피할 곳이 없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헉헉거리는 개들이 안쓰러워 옆사람이 논 주인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작년엔 그늘막이 있던데 올해는 안 보이네요?” 며칠 후 개집 앞에 그늘막이 들어섰다. 바빠서 잊으셨던가 보다. 참 고마웠다. 여름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는데 개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묶여 있다. 추수가 끝나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혹시 그 개들 중 하나가 새벽에 우연히 풀렸던 걸까?
새끼 멧돼지의 사체를 거둬 논의 위쪽 비탈에 묻어주었다. 몇 개월 짧은 삶이 흙으로 돌아갔다. 그가 커다란 돌을 가져와 무덤 위에 얹으며 말했다. “내년 봄에 감나무를 한 그루 심어야겠어.”
논 비탈에 새끼 멧돼지를 묻고 돌을 얹어 두었다.
잦은 비에 병드는 이삭
가을비가 장맛비 같다. 며칠째 줄기차게 내린다. 우르르릉 쾅쾅! 천둥 번개까지 내리친다. 출수기(벼꽃 피는 시기)에도 두세 차례 비가 오더니, 등숙기(곡식이 여무는 시기)에도 이렇게 비가 잦다. 올핸 여름 장마도 참 길었다. 한 달 넘도록 내린 비에 강수량도 평년의 두 배나 됐다. 다습한 환경에선 병원균이 창궐하게 마련이다. 밀식(密植), 과다시비(過多施肥), 잠복 세균은 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나친 비로 인한 다습 환경은 병을 일으키는 공통된 배경이다.
출수기에 깨씨무늬병이 시작됐다.
8월 하순, 친환경 인증기관 담당자가 우리 논에 와서 시료 채취를 하며 “깨씨무늬병이 왔네요.” 했다. 그가 보여주는 벼잎을 보니 정말 깨알 같은 병반들이 있었다. 깨씨무늬병은 세균성 질병으로, 조식(일찍 심기)이나 밀식(배게 심기), 토양의 양분 부족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수확기가 다가올수록 병반이 많아져 광합성을 방해하고, 벼알에 쭉정이가 많아진단다. 그 말을 듣고서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병해에 대해 무지했고 유기농 방제법도 몰랐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일부 논에 병해를 입었지만 약 치지 않는 농사의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겼었다.
깨씨무늬병이 심해졌다.
9월 초순이 되니 깨씨무늬병이 심하게 번졌다. 벼잎에 반점이 번지며 누렇게 말라죽은 잎이 많아졌다. 이삭은 속이 차지 않아 쭉정이가 생겼다. 일부 논에선 도열병도 보였다. 도열(稻熱)은 ‘벼가 탄다’는 한자어로, 불에 그을린 듯한 반점이 잎과 줄기, 마디와 이삭으로 번지는 병이다. 밀식과 과다 질소, 다습한 환경이 원인이라는데, 우리 논은 모내기 때 밀식하지 않았고 비료를 과하게 쓰지 않았으니 지속적인 비에 혐의를 두고 있다.
병해를 심하게 입은 논은 적갈색으로 주변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병해를 입은 건 우리 논만이 아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보니 병해를 입지 않은 논이 오히려 드물다. 벼들의 갈변 정도가 매우 심한 논도 많다. 친환경단지 논이나 일반 관행농 논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마찬가지다.
논 안쪽에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흰잎마름병에 걸린 벼들이다.
벼의 일부가 허옇게 변한 논도 있다. “저건 무슨 병인가요?” 마을 어른께 물으니 “백엽고병이야.” 하신다. 백엽고병? 잎이 하얗게 마른다는 뜻인가? 검색해보니 벼잎이 끝에서부터 하얗게 말라가는 ‘흰잎마름병’이다. 잎이 마르니 광합성을 못하고 병원균이 수관과 체관에 번식해 수분과 양분의 이동을 방해한다. 문고병(紋枯病)이라 부르는 ‘잎집무늬마름병’도 많이 보인다. 벼포기 아래쪽 잎집부터 마르기 시작해 이삭까지 올라와 벼 전체를 주저앉히는 병이다. 이 병 역시 고온다습과 밀식, 질소비료 과다가 원인이다.
질병의 종류와 원인이 어떠하든 결과는 동일하다. 이삭이 쭉정이가 되어 수확량이 형편없게 된다는 것. 벼가 여무는 등숙기 한복판에서 여물 수 없는 병든 낟알들을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다.
이삭에 쭉정이가 생겼다.
막걸리 한 사발 해야겠어!
아침 햇살 쏟아지는 논 위로 손바닥 크기의 방사형 그물들이 수없이 반짝인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들이 햇살을 받아 작은 윤슬처럼 빛난다. 우리 논에 이렇게 거미가 많다니! 새삼 감탄한다.
옛말에 “거미줄 많은 논에 멸구 많다”고 했다. 벼멸구 같은 먹잇감 곤충이 많으니 거미도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지금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논에 거미줄이 많다. 같은 맥락이다. 거미줄을 치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늑대거미, 깡충거미도 보인다. 논에 사는 거미들은 벼멸구, 벼잎나방, 이화명나방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다. 우렁이만큼이나 열일하는 일꾼이다. 우리야 거미가 고맙지만, 인간의 일이야 거미가 알 바 아니다.
이슬 맺힌 거미줄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지난여름 힘써 김매기를 했음에도 풀은 여전히 왕성하다. 일찌감치 논다매(논 예초기)로 밀었던 논에 올챙이고랭이가 이삭 사이로 삐죽삐죽 되살아났다. 수면에는 물달개비가 빽빽하다. 벼의 통풍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삭으로 가야 할 거름을 물달개비한테 빼앗기고 있다. 미처 뽑지 못한 여뀌와 피는 벼보다 높이 자랐다. 몇 포기 되지 않으니 대세엔 지장 없다.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다.
이삭 틈에서 자란 올챙이고랭이 풀.
우리 논 아홉 배미를 돌다 보면 남의 논 구경을 안 할 수 없다. 논 상태를 보면 논 주인이 보인다. 어떤 논은 검은 피가 까마귀처럼 논을 덮었다. 제초에 무신경한 농부다. 어떤 논은 태풍도 안 왔는데 벌써 벼들이 쓰러졌다. 비료를 과하게 쓰는 농부다. 어떤 논은… 벼가 안 보인다! 풀이 벼를 완전히 삼켰다. 풀 틈으로 고개 내민 이삭 몇 줄기가 아니라면 이곳이 논인 줄도 몰랐겠다. 관리를 안 하면 관행농도 순식간에 풀밭이 된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을까. 논 상태를 보건대 추수를 포기한 것 같다. 논 주인은 이 마을에 살지 않는다고 들었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풀이 벼를 삼킨 논. 앞쪽에 벼이삭이 조금 보인다.
남 흉볼 처지는 아니다. 논을 장악한 풀더미 속에서 애면글면 고생할 때 이웃들이 혀를 끌끌 차던 게 엊그제 같다. 유기농이든 관행농이든 풀은 무섭다. 풀로 시작해 풀로 끝나는 게 농사 아닌가. 제때 풀을 잡지 못하면 작물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동네 초입의 빈 밭에 도시 사람들이 비닐을 씌우고 옥수수 모종을 심었던 게 지난 봄이다. 한여름을 지나면서 옥수수는 사라지고 옥수수 키만 한 풀들이 밭을 장악했다. 오며 가며 그 밭을 볼 때마다 옆사람 걱정이 늘어졌다. 풀 무서운 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의 헛수고야 그렇다 치고, 저 밭의 비닐을 대체 어찌 걷느냐는 것이다. 풀은 예초기로 자르겠지만, 검은 비닐을 움켜쥐고 촘촘히 박힌 풀뿌리들을 무슨 수로 제거하나. 애초에 비닐을 쓰지 않느니만 못하게 됐다. 비닐 걷어낼 시기는 이미 지났고, 일일이 찢어서 벗겨내자면 몇 날 며칠이 걸릴 텐데, 옥수수도 못 돌보는 사람들이 비닐 수습을 할 수 있을지…. 바라건대, 봄에 비닐째 관리기로 갈아버리는 짓만은 제발 하지 않기를 빌 뿐이다.
풀밭으로 변한 옥수수밭.
수확 전 마지막으로 논둑을 베고 온 그가 어쩐지 싱글벙글이다. “내 논둑 다 베고 옆엣논 경계랑 감나무 있는 논 비탈까지 다 베어버렸지!” 하루 종일 예초기를 휘두른 사람치곤 힘이 넘친다. “근데, 예전에 절반만 벴던 그 논둑 말야. 거긴 얼마 전에 내가 다 베서 풀이 별로 안 자랐거든. 굳이 안 베도 되는데 글쎄, 오늘 가보니 새파랗게 다 깎아놨더라!” 희색만면인 이유가 그거였구나. “그때 많이 민망했었나 보네.” 그랬더니 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그놈 참 누군지, 만나서 막걸리 한 사발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