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보살경 제4권
[빈바사라왕이 부처님을 만나다]
이때 무소유 보살마하살이 이 말을 설할 때,
찰나의 순간에 저 마가타(摩伽陀)의 임금인 빈바사라(頻婆娑羅)왕은 수많은 네 가지 병사로 둘러싸여 차츰 가까이 왔다. 여러 여자들이 있는 곳을 물어서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찾아왔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부처님을 위로한 뒤에 자리가 깔린 곳을 따라 그 자리에 앉았다. 대중도 역시 모두 앉았다.
그때 빈바사라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시녀들과 함께 동산의 숲으로 놀러갔는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뒤에 동산에서 찾았지만 찾지 못하다가, 또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향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 무리에서 저는 아직 딸아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만나리니 마땅히 보시오.”
왕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도 아직 보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무소유보살에게 물으시오. 왕에게 마땅히 있는 곳을 가리켜 줄 것이오.”
왕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무소유보살이란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이때 세존께서 무소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무소유여, 그대는 지금 마땅히 반바사라왕이 묻는 여러 여자들이 가고 온 곳을 알려주어 이들이 알도록 하라.”
이때 무소유보살은 몸을 나타내지 않고 빈바사라왕과 대중에게 알려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아시오. 그 여러 여자들은 이 무리 가운데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사(大士:菩薩)여, 나는 다만 소리를 들을 뿐 그대의 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지금 소유(所有)의 모든 여자들은 내 이름을 듣고서, 각각의 부녀들은 나무 밑에 이르러 모두 내 몸을 취하여 뜻에 따라 즐기고, 내 몸을 다 취하고는 모두 여자의 몸을 버리고 장부의 몸을 받았습니다.
그들 여러 여자들은 이미 내 몸을 취하여 장부의 몸을 이루었기에 나는 곧 몸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소유보살은 여러 여자로 장부의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선남자여, 각각 자신의 덕(德)을 나타내어라.”
이때 한때 여자였다가 남자의 몸을 받은 모든 이들이 함께 한 곳에 모여 장부의 상(相) 갖추어 단정히 하고서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은 지금은 여자의 몸을 버리고 이렇게 장부의 몸을 이루었습니다.”
이때 빈바사라왕과 모든 대중이 의혹이 생겨 믿지 않았다.
이때 무소유보살이 또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과 여러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아직 의혹을 품습니까? 지금 왕은 어찌 부처님을 믿지 않습니까?
만약 믿는다면 여래는 지금 앞에 있습니다. 왕은 지금 기꺼이 물으시오. 이 선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 다름이 있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이때 빈바사라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고 이와 같습니다. 허공의 소리가 설한 바와 같습니까, 아니합니까? 그래도 몸을 보지 못합니까?”
이때 부처님께서 빈바사라왕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소. 대왕이여, 모두가 남김없이 이 보살이 설한 바와 같소. 대왕이여, 지금은 기꺼이 이 말을 믿고 의혹을 일으키지 마시오.”
왕은 이 말을 듣고서 곧 일어나 합장하고 ‘훌륭하구나’라고 세 번 칭송한 다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는 누구의 위신력(威神力)입니까? 이는 보살 무소유의 힘이라 할 것입니까? 이는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이라 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시오. 이는 여러 여자들이 예로부터 가졌던 원력(願力)이오. 그는 그 옛날부터 많은 천(千)의 부처님에게서, 이 여러 여자들로 하여금 온갖 선근을 심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성취함을 얻게 하였소. 이런 까닭에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그 바람[願]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이오.
대왕이여, 여러 여인들은 미래의 세계에 있어서도 역시 한량없는 여러 여자들을 교화하여 여자의 몸을 변하게 할 것이오.”
이때 부처님께서 무소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이 무리를 위하여 이 여러 여자들로 하여금 각기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이때 무소유보살이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실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저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부녀(婦女)들로 하여금 여자의 몸을 변하여 장부의 몸을 얻게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진실이기 때문에 이들 중생을 다시 여자의 몸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 말을 하였을 때, 많은 부녀자들이 그 장부 앞에서 이와 같은 모습이 있고, 이와 같은 빛이 있고, 이와 같은 행에 머물러 도리어 전에 찾아오던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 그들은 각각 서로가 함께 말하듯이 전과 같아 다름이 없었다.
그때 모든 여자들과 빈바사라왕 등에게는 희유한 생각[心]이 일었다.
‘어찌하여 여러 여자들이 이미 여자의 몸을 바꿨다가 지금은 다시 여자의 몸으로 돌아왔는가? 이 여러 여인들을 참으로 진정한 몸이라 할 것인가? 마땅히 변화[化]로서 일어난 것이라 할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들 부녀자들은 실다운 것도 아니며 변화[化]도 아니요.
왜냐하면, 대왕이여, 이 선남자는 그 옛적에 이와 같은 바람이 있었소.
‘만약 여러 부인이 나를 보면 그가 내 몸을 보자마자 이 바람을 내어 여자의 몸을 변하기를 구하게 하리라.
그 여러 부인을 소유한 남편은 다시 다른 부인을 취하여 또다시 이와 같고,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아니하여 앞의 부인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단정하여 서로 헤어지지 않게 하리라.’”
이때 빈바사라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들에게는 능히 이와 같은 신통과 선근(善根)이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합니다. 중생의 과보도 불가사의합니다. 선정(禪定)을 얻는 자의 삼매(三昧)의 경계도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고 이와 같도다. 대왕이여, 이와 같고 이와 같소.
대왕이여, 여기에 세 가지 불가사의가 있소.
무엇을 세 가지라 하는가?
업(業)의 환(幻)과 양(量)의 환(幻)이오.[범본(梵本)에는 1구(句)가 적다.]
이 선남자는 이 모든 환을 깨닫고, 이미 밝혔고[證] 이미 접(接:觸)하였소. 이 선남자는 즉 바로 환사(幻師)이오. 이런 까닭으로 이들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오.”
이때 세존께서는 그 대중에게 무소유(無所有)로서 법의 뜻을 화합하게 하고, 교화하고 말씀하시어 환희를 갖게 하였으며, 위신력을 얻게 하여 교화를 늘리고 자라게 하며, 환희하게 하는 것을 마치고 기쁘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자 때를 알아 그곳에 이르러 돌아가라.”
그때 여러 사람들은 각기 제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