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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의보살경 제5권
[조도법을 닦아 모으는 공덕과 지혜가 다함없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조도법을 닦아 모으는 공덕과 지혜도 다함이 없으니,
[닦아 모으는 공덕이 다함없다]
닦아 모으는 공덕이 다함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보시와 지계로써 마음을 닦아 모으고 자비를 일으켜 행하여 자기의 모든 죄를 드러내어 참회하며,
또 중생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드러내어 참회하고,
참회한 다음에는 자기의 일처럼 따라 기뻐하며,
모든 중생을 비롯하여 배움이 있거나 배울 것이 없는 사람, 벽지불과 발심한 보살과, 이미 익혀 행한 자와 견고히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 자와, 일생만 지나면 부처를 이룰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삼세 동안에 닦아 모은 공덕을, 마땅히 한 마음으로 자기 일처럼 따라 기뻐하고
다시 과거ㆍ미래ㆍ현재 부처님들의 모든 선근에도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이 따라 기뻐하는 보살은 모두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며,
따라 기뻐함을 마치고는 또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 권청하되,
처음 도를 이룬 이에게는 법의 바퀴를 굴리기를 청하고
열반을 보이는 분에게는 항상 세상에 머물기를 청하며
모든 보살 성인에게는 늘 세상에 머물러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기를 청하여,
이러한 선근이나 선근의 생각 같은 것을 모두 위없는 보리에 회향 합니다.
이 보살은 발심하지 못한 자에게 권하여 발심하게 하고,
이미 발심한 자를 위해서는 모든 바라밀을 설하며,
가난한 자는 재물로써 구호하고
병이 들었으면 의사와 약품을 베풀어 수시로 치료하며,
세력이 없는 자에게는 인욕을 행하기를 권하고,
금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그 허물을 덮거나 숨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덮거나 숨긴 자에게는 그 허물을 드러내도록 권합니다.
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열반에 드는 분께 모두 발심하여 공양ㆍ공경하고, 스승과 어른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며,
법을 구할 때에는 목숨을 걸어 게을리 하지 않고 이 법보를 가장 값진 보배로 생각하며,
설법하는 자에겐 부처님과 같이 생각합니다.
설법을 듣기 위해서라면 백 유순(由旬)을 지나더라도 마음을 바야흐로 더욱 용맹스럽고 날쌔게 하여 지치거나 괴로운 생각이 없으며 이양을 위해서 강설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알아 그 은혜를 갚되 모든 공양하고 섬기는 일에 마음에 처음부터 후회함이 없으며,
공덕을 지은 것에는 항상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고,
몸과 입과 뜻을 막아 지켜서 아첨하거나 그릇됨이 없게 합니다.
불탑(佛塔)을 세워 공덕을 얻는 것은 범천의 권청하는 복과 같으며, 이 모든 상(相)을 원만히 갖춤은 문호를 열어 크게 보시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좋은 상호를 얻음은 모든 선(善)을 닦기 때문이며,
몸을 장엄함은 교만이 없기 때문이며,
입을 장엄함은 입의 허물을 여의기 때문이며,
뜻을 장엄함은 법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토를 장엄함은 신통으로 교화하기 때문이며,
법을 장엄함은 모든 욕심을 여의기 때문이며,
대중을 장엄함은 이간질하는 말과 나쁜 말로써 다른 사람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며
법을 받는 자에게 사실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설법하는 것을 기뻐하여 거룩하다고 칭찬함은 그 지은 공덕이 황당하지 않기 때문이며,
덮개를 여의는 것은 일부러 가서 법을 듣기 때문이며,
보리수(菩提樹)를 장엄함은 좋은 동산과 숲을 부처님께 바치기 때문이며,
도량을 장엄함은 일체의 모든 선근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청정함을 내는 것은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이며,
보배 손을 얻음은 모든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베풀었기 때문이며,
다함없음을 얻음은 한량없는 보배 창고[寶藏]를 보시하였기 때문이며,
보는 이마다 기뻐함은 항상 온화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법성을 체득함은 마음의 지혜 광명이 중생들을 고루 비추기 때문이며,
광명을 장엄함은 배우지 않은 자를 깔보지 않고 잘 지도하기 때문이며,
태어날 때마다 청정함은 지계의 공덕을 모두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태(胎) 중에 있을지라도 청정한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지 않기 때문이며,
인간과 천상에 태어남은 10선(善)을 깨끗이 행하기 때문이며,
지혜의 광명이 홀로 뛰어남은 교화할 대상에게 분별심을 내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 자재한 것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법에 대해 인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간에서 홀로 빼어난 것은 필경에 청정하기 때문이며,
미묘하게 해탈함은 조그마한 행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일체의 공덕을 행함은 모든 슬기로운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일곱 가지 재물을 만족하게 갖춤은 믿음으로 근본을 삼기 때문입니다.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짐은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며,
세간을 속이지 않음은 본래의 서원을 갖추기 때문이며,
일체의 불법을 원만히 갖춤은 모든 선의 근본을 이미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바로 보살의 공덕을 간략하게 말한 것이니
만약 자세히 말한다면 한 겁(劫)을 지나고 또 한 겁을 지나도록 말하여도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가 다함없다]
어떤 것이 보살의 지혜가 다함이 없는 것인가?
낱낱의 인(因)으로 지혜를 말한 것을 듣거나 낱낱의 연(緣)으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인이라 함은 안으로 더욱 정진하려는 의욕이요, 연이라 함은 바깥으로 부지런히 법을 구하는 것이니, 이러한 인과 연으로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고 성문과 연각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하여 마음에 교만함이 없어서 항상 그 사람에 대해 세존처럼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며, 이 모든 지혜로운 이들은 법을 받은 사람을 알아 마음이 이미 부드러워져서 그를 위해 지혜를 말하여 의지하도록 가르치고는 그 바른 그릇에 따라 물듦이 없는 법을 말하며, 설법을 듣는 사람도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닦고 모아 조도법(助道法)을 정진하니,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보살이 조도법을 정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런 바라는 것이 없이 사무(事務)를 간략히 단절하고, 말을 적게 하며, 모든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 마음으로 항상 만족할 줄 알고, 이른 밤이나 늦은 밤에 수면을 줄여서 모든 들은 이치를 잘 생각하여 헤아려 분별하고, 착한 법을 자주 구하되 마음에 애착하거나 흐리멍텅함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쌓임과 덮개를 제거하여 막히거나 가림이 없게 하고, 잘못된 허물은 곧 없애버리며, 바른 행에 굳게 나아가 우러르고, 법다운 행을 존경하여 모두 정진하여 행하며, 법을 구하되 게으르지 않기를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이 하니, 이것은 곧 ‘나’없는 행이요, 느리지 않은 행이요, 근본을 버리지 않는 행이요, 마음을 증상시키는 행입니다.
또 대중의 시끄러움을 꾸짖는 행이요,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행이며,
고요한 곳에 나아가 생각하는 행이요,
성인의 종자로 만족함을 아는 행이요,
흔들림 없는 두타(頭陀)행이며 법을 즐거워하는 행이요,
세간의 말을 생각하지 않는 행이요,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구하는 행이요,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행이요,
모든 법의 이치를 일으키는 행이요,
참되고 바른 도의 행이요,
인연을 아는 다라니의 행이요,
부끄럽게 여김으로 장엄하는 행입니다.
또 지혜가 견고한 행이요,
무명의 그물과 번뇌의 묶임을 제거하여 지혜의 눈을 깨끗이 하는 행이며,
잘 깨닫는 행이요, 널리 깨닫는 행이요,
깨달음을 줄이지 않는 행이요, 깨달음을 분석하는 행이요,
현재를 아는 행이요,
남의 공덕을 따르지 않는 행이요,
공덕을 스스로 과시하지 않는 행이요,
다른 사람의 공덕을 찬탄하는 행이요,
업을 잘 닦는 행이요,
인과를 움직이지 않는 행이요,
청정한 업을 아는 행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조도법으로 정진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네 가지의 보시가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종이와 붓과 먹을 법사에게 보시하여 경전을 베껴 쓰게 하는 것이요,
둘째 갖가지로 꾸며서 미묘하게 장엄한 자리를 법사에게 보시하는 것이요,
셋째 모든 필요한 공양거리를 법사에게 바치는 것이요,
넷째 아첨하거나 왜곡된 마음이 없이 법사를 찬탄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보시로써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로 금계(禁戒)를 지녀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계를 지니고 항상 법을 연설하는 것이요,
둘째 계를 지니고 항상 부지런히 법을 구하는 것이요,
셋째 계를 지니고 바르게 법을 분별하는 것이요,
넷째 계를 지니고 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로 계를 지녀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인욕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구할 때 다른 사람의 욕설을 참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구할 때 굶주림과 목마름과 춥고 더움과 비와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법을 구할 때 화상(和上)과 아사리(阿闍梨)의 행에 따르는 것이요,
넷째는 법을 구할 때 ‘공(空)’과 모양 없음과 원(願)이 없음을 참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인욕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정진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많이 들음에 부지런함과,
둘째 다라니에 부지런함과,
셋째 기꺼이 말하는 데 부지런함과,
넷째 바른 행에 부지런함이 그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정진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선정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홀로 있기를 항상 좋아하는 것이요,
둘째는 한결같은 마음을 항상 좋아하는 것이요,
셋째는 신정과 신통을 구하는 것이요,
넷째는 걸림 없는 해탈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선정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의 지혜가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단견(斷見)에 머물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상견(常見)에 들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12인연을 통달하는 것이요,
넷째는 무아행(無我行)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지혜를 수행하여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의 옹호하는 법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법사(法師)를 자기의 임금처럼 옹호하는 것이요,
둘째 모든 선근을 옹호하는 것이요,
셋째 세간을 옹호하는 것이요,
넷째 다른 사람을 옹호하여 이익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옹호하는 법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만족하는 법이 있어서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설법의 만족,
둘째 지혜의 만족,
셋째 이양(利養)의 만족,
넷째 모든 법의 만족이 그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만족하는 법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의 힘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정진의 힘이니 많이 듣기를 구하여 해탈을 얻기 때문이요,
둘째는 생각하는 힘이니 보리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요,
셋째는 선정의 힘이니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지혜의 힘이니 많이 들음을 닦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 힘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방편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세간의 행을 따르는 것이요,
둘째 중생의 행을 따르는 것이요,
셋째 모든 법의 행을 따르는 것이요,
넷째 지혜의 행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 방편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의 도(道)가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모든 바라밀의 도요,
둘째 보리를 돕는 도요,
셋째 여덟 가지 성인의 도를 행하는 것이요,
넷째 모든 지혜를 구하는 도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 도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만족함이 없는 행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많이 들음을 좋아하여 만족함이 없는 것이요,
둘째 설법을 좋아하여 만족함이 없는 것이요,
셋째 혜(慧)를 행하되 만족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 지(智)를 행하되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만족함이 없는 행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고 합니다.
또한 지혜를 돕는 것이 있으니,
모든 중생의 마음을 따르는 행과,
모든 법을 따르는 행과,
보시를 따르는 행과,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따르는 행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림을 따르는 행입니다.
이 행을 얻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니, 왜냐하면 보살이 일으키는 행은 모두 지혜로 근본을 삼고, 지혜를 성취하고 나서는 도로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지혜에 편히 머물러 모든 지혜에 의지해서 어떤 마구니의 권속도 방해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모든 지혜를 갖추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의 지혜를 돕는 행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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