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요의론 제8권
[정견]
“이 때 아사세왕은 값어치가 백천이나 되는 최고의 미묘한 털옷을 묘길상보살에게 바쳐 올렸으나 보살은 이것을 반겨 받지 않았다.
그 왕은 곧 이 미묘한 털옷을 묘길상보살의 몸에 걸쳐 주었으나, 옷이 몸에 걸쳐지지 않았다.
보살이 즉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왕은 미처 보살의 몸을 보지 못했다. 다만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왕이시여, 그대가 만약에 능히 묘길상보살의 몸뚱이 모습을 본다면 곧 그대가 지은 악한 일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악한 일을 본다면 이와 같이 저 일체 법도 볼 것이며, 일체 법을 보는 것과 같이 또한 보시한 털옷도 가히 볼 수 있습니다.
설령 그대가 능히 보지 못한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대왕이시여, 그대가 혹시 능히 본다면 몸의 형상을 가진 자마다 이와 같이 털옷을 받들어 보시해야 합니다.’
그 왕은 즉시 각각 일체의 보살과 성문 스님들과 아울러 그 궁인(宮人)들과 시녀들과 친척들에게 거듭 털옷을 두루 보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몸뚱이 모습은 한결같이 보이지 않았다.
왕은 즉시 선정(禪定)에 들어 살펴보았으나 하찮은 물건조차 전혀 눈에 띄는 바가 없었으며, 주위의 모습도 가히 나타남이 없었다.
여기에서 오직 자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공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이와 같이 말했다.
‘만약에 그대가 능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와 같이 자신에게 털옷으로써 받들어 보시하십시오.’
왕은 즉시 스스로 살펴보았지만 역시 자신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이 때 이에 일체의 물질적인 생각을 여의었다.
다시 공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말했다.
‘만약에 그대가 혹시 거칠든 미세하든 이와 같이 하찮은 물건의 모습조차 가히 보는 일이 없다면,
역시 그러한 것과 같이 마땅히 악한 일도 보고 또한 그러한 것과 같이 일체 법을 보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그들을 보지 않는다면 즉시 보는 것을 여읜 것입니다.
저 보는 것을 여읜 와중에 만약에 그대가 가히 볼 수 있다면, 이것은 곧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만약에 보는 것도 아니고 보지 않는 것도 아니라면 이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일체 법을 이와 같이 본다면 역시 곧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이 보는 것이 아닌 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이 때 아사세왕은 일체 법에 대한 의혹을 모두 여의었다.
선정에서 일어나 다시 저 일체의 대중들을 거듭 바라보았지만 역시 일체 보이지 않았다.”
[보살의 법]
『환사인현경(幻士仁賢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네 가지의 법이 있어서 경전의 뜻을 사유(思惟)한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법을 연하여 생기고 일어나는 것에는 지어내는 원인이 없지 않다.
둘째는 법이 가히 생겨남이 없으면 윤회하는 유정의 성품도 없다.
셋째는 만약에 법이 연하여 생겨나면 저 생겨난 것에는 성품이 없다.
넷째는 심히 깊은 법 안에는 차별의 문이 없고 또한 보리(菩提)를 허물지도 않는다.”
『보살십주경(菩薩十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모든 보살에게는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능히 평안함과 호젓함을 얻게 하고 시작하는 경지에 있는 사람들을 청정하게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마음의 대상이 없는 해탈의 지혜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마음의 대상이 없는 해탈의 지혜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둘째, 이 마음의 대상이 없는 해탈의 지혜는 곧 둘이 없다. 둘이 없는 청정함은 법을 대상으로 하여 생겨나지 않는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법을 연하여 생겨나지 않는 해탈의 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셋째, 법을 대상으로 하여 생겨남이 없다는 것은, 즉 모든 연(緣)의 자성(自性)은 일체 법을 낳음도 없고 있는 장소도 없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일체 법이 있는 장소가 없는 해탈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넷째, 저 일체 법이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은, 즉 모든 분위(分位)의 분별은 한결같이 자성이 없으니, 지혜와 관(觀)은 마치 허공과 같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허공과 같은 지혜와 해탈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다섯째, 허공과 같은 이 지혜는 곧 잡되고 혼란함도 없고, 기대어 머무름도 없는,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읜 지혜이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읜 지혜와 해탈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그 가운데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읜 지혜란, 곧 깨달음을 발(發)함이 없이 얻는 바가 있는 지혜이다.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승사유범천소문경(勝思惟梵天所問經)에서 말하였다.
“범천(梵天)이 광망(光網)보살에게 말했다.
‘일체 법은 매우 단단합니까,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까?’
보살이 말했다.
‘그대 범천의 말대로,
≺다시 일체 법은 매우 단단합니까,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범천이 말했다.
‘만약에 사유(思惟)가 아니라면 곧 일체 법은 단단하지만,
만약에 마음이 사유와 더불어 어우러져 합하는 바가 있으면 곧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다.
또한 일체 법이 모양을 여의면 이것은 매우 단단한 것이지만
만약에 다시 여읜 가운데 어우러져 합하는 바가 있으면 이것은 곧 차별이 있다는 것이니,
만약에 차별 안에서 일어나는 바가 있으면 곧 지어낸 모든 것은 한결같이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말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모든 법은 가히 어떻게 생겨납니까?’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시여, 자신의 경계(境界)가 청정한 실제(實際)를 여읜 가운데에 있어야만 모든 법은 생겨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