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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론 제6권
7. 기위도본편(氣爲道本篇)
옛 것을 상고하는 통인(通人)이 점형(占衡)하는 군자와 더불어 이중경(李仲卿)이 비방한 논을 보고,
보살이 변정(辯正)한 말을 열람하고 자세하게 의론하고서 분한 마음을 발하여 탄식을 일으켰으니,
그것은 삿되고 바른 것으로 하여금 궤철(軌轍)을 달리하고, 참됨과 거짓됨이 흐름을 나누어서 그 옳고 그름을 정하고, 잘잘못을 밝히고자 함이었고, 또한 후진으로 하여금 길이 의심이 없게 하고자 함이었다.
[통인, 천존의 신을 볼 수 없었으며 큰 도의 상이 없었다]
통인이 말하였다.
“내가 보니, 조화(造化)는 음과 양을 근본으로 하였다.
그런데 물류(物類)들이 생겨난 것이 하늘과 땅을 초월하여서 3고(古)의 세상을 지났다.
다섯 성인의 글을 찾아보아도 천존의 신을 볼 수 없었으며 또한 큰 도의 상이 없었다.
조사하여 보니, 『영보구천생신장(靈寶九天生神章)』에
‘기가 맑고 높고 맑아서 양(陽)을 쌓아 하늘을 이루고, 기가 맺혀 찌꺼기를 얽혀서 쌓이고 막힌 것이 땅이 되었으며, 사람이 생긴 것은 다 3원(元)이 양육하고 9기(氣)의 형체를 겪은 뒤에 생겨난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음과 양은 사람의 근본이요, 하늘과 땅은 물건의 뿌리니 뿌리에서 나는 것이 기여서 따로 도의 신(神)은 없었다.”
[군자, 경과 역사를 보지 못한 거짓말이다]
군자가 말하였다.
“도사의 『대소은서(大宵隱書)』와 『무상진서(無上眞書)』 등에서
‘무상대도군(無上大道君)의 다스림은 55겹의 무극대라(無極大羅)의 하늘 가운데와 옥경(玉京)의 위에 있어서 칠보(七寶)의 현대(玄臺)와 금상(金床)과 옥궤(玉机)가 있고 선동과 옥녀가 시위(侍衛)하며 삼심삼천과 삼계의 밖에 있다’ 합니다.
조사하여 보니, 『신선오악도(神仙五岳圖)』에
‘대도 천존은 태현(太玄)의 도(都)와 옥광(玉光)의 주(州)와 금진(金眞)의 군(郡)과 천보(天保)의 현(縣)과 원명(元明)의 향(鄕)과 정지(定志)의 이(里)를 다스려서 재앙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하였으며,
『영서경(靈書經)』에서는
‘대라(大羅)는 5억 5만 5555중의 하늘 위이다’ 하였으며,
『오악도(五岳圖)』에서는
‘도(都)라 함은 본다는 것이니, 태상대도(太上大道)는 도 가운데 상도(上道)로서 신명한 임금이 가장 고요함을 지켜서 태현(太玄)의 도에 산다’고 하였소.
『제천내음(諸天內音)』에
‘하늘이 여러 신선과 더불어 누도(樓都)의 북을 울리면서 아침에 옥경에 연회를 베풀어서 도군(道君)을 즐겁게 한다’ 하였으니,
이 그릇된 말을 미루어 보면 도군은 하늘의 신명으로서 이미 주와 현에 속하였으니, 그렇다면 천존이라 함은 하늘의 민오(民伍)일 것이다.
불가의 경과 논에서는 삼계의 밖을 이름하여 생(生)과 사(死)에서 벗어난다 하였다.
거기에는 분단(分段)의 형체가 없어서 색(色)과 심(心)의 경계를 벗어났거니, 어찌하여 다시 보대와 옥산과 주와 군과 향과 리가 있겠는가? 허망한 것이 심하여 다시 수긍하기 어렵다.
다만 도가에서 거짓을 말한 것의 자취가 볼 만하고 습관과 풍속이 항상함을 낸지 날이 이미 오래 되었기에 여러 삿됨을 다투어 펴서 서로 동일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름을 바로하고자 하면 이치를 자세히 알아야 하겠다.
이제 간략하게 연기(緣起)의 도리를 가지고 따라서 판단하겠다.
조사하여 보니,
『주례(周禮)』에는 요임금의 이전에는 군과 현의 제도가 없었으며, 순임금이 5악(岳)을 순시할 적에 비로소 주의 이름이 보이고,
『상서(尙書)』 「우공(禹貢)」편 이래로 비로소 주의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춘추(春秋)의 때에는 현이 크고 주가 작으며 향은 현에 속하였는데, 한나라 고조(高祖) 이래로 현으로써 군에 소속시켰음은 전고(典誥)가 분명하다.
소위 9주는 우임금의 자취요, 백 군은 진나라가 병합하였다 함이 이것이다.
설사 도(道)가 하늘 위에 있다 하여도 응당 홀로 무위(無爲)를 일삼을 것이니, 무엇 때문에 호속(戶屬)이 향에 살아서 범부들과 다름이 없게 하겠는가?
이미 주와 현이 있으면 곧 관장(官長)이 있었을 것이니, 주의 목(牧)과 군의 수(守)는 성이 누구고 이름이 무엇이며, 향의 장과 이의 사(司)는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우였는가?
모두 이러한 말들은 관학(官學)의 도사와 무식한 황건(黃巾)들이 옛날과 지금을 다 보지 못하고 경과 역사를 엿보지 못하면서 인간에서 주와 현 두는 것을 보고서 또한 하늘 위에도 세상과 같다고 말한 것이니,
거짓됨을 보전하여 진실로 여기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요, 그 유래와 본말(本末)은 모두 『소도론(笑道論)』 가운데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통인, 따로 도가 없다]
통인이 다시 말하였다.
“장자는
‘그 시초를 살펴보니, 생이 없다’ 하였다.
이는 한갓 생이 없음이 아니라 본래 형체가 없었다.
그리고 한갓 형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가 없던 것이 황홀한 사이에 변하여 기가 생겼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생겼고 형체가 변하여 생이 생겼으니, 사람의 생이라 함은 기가 모인 것이다.
기가 모이면 생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 된다. 그러기에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하는 것이니 만물이 하나이다.
어찌하여 하나가 되는가? 천하에는 기 하나뿐이다.
이를 미루어서 말하면 따로 도가 있어서 높이 대라(大羅)에 있으면서 홀로 높고 귀하다고 할 것이 없다.”
[군자, 따로 도의 신이 있어서 만물을 맡아서 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군자가 말하였다.
“『음양이기황정경(陰陽二氣黃精經)』에
‘흐르는 단(丹)이 아홉 번 굴러서 기를 맺어 정(精)을 이루고, 정이 화하여 신(神)이 되고, 신이 변하여 사람을 이루니, 양의 기운이 붉은 것을 현단(玄丹)이라 이르고, 음의 기운이 누런 것을 황정(黃精)이라 이름한다.
음과 양이 교합(交合)하여 두 기운이 정을 내리고, 정이 화하여 신이 되니, 정과 신이 응결(凝結)하여 위로 9천(天)에 응하고, 9천의 기운이 단전(丹田)에 내려와서 신과 더불어 합하고 응결해서 명문(命門)에 다다른다. 그러기에 요는 아홉 번을 지나야 하니, 이를 9단(丹)이라 한다.
위로 화하고 아래로 얽혀서 그로써 사람을 이루는 것이요, 따로 도의 신이 있어서 능히 만물을 맡아서 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통인, 도는 생과 죽음의 근심을 면하지 못한다]
통인이 말하였다.
“옛부터 이름 있는 선비와 하상공(河上公)이 주석한 『오천문(五千文)』에서는
보아도 보이지 않음을 이(夷)라 이르니 이라 함은 정(精)이요,
들어도 들리지 아니함을 희(希)라고 이르니 희라 함은 신(神)이요,
쳐도 얻지 못함을 미(微)라고 이르니 미라 함은 기(氣)니,
이를 일러 모양이 없는 모양이요, 물건이 없는 모양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의 체가 한없음을 알겠다. 그 때문에 맞이하여도 그의 처음을 볼 수가 없으며 기의 형체가 맑고 비었다. 그러기에 따라가도 그의 나중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는 도의 근본이 기를 좇아 났음을 서술한 것이다.
그 때문에 『상청경(上淸經)』에
‘나는 한없이 넓은 데서 나서 심히 유명(幽冥)하다. 유명한 가운데에서 공동(空同)을 낳았고, 공동의 안에서 태원(太元)을 낳았고, 태원이 변화하여 세 가지의 기가 분명하니, 한 기는 맑고 한 기는 희고 한 기는 누렇다. 그러기에 하나에서 둘이 나고 둘에서 셋이 난다’ 하였다.
『생신장(生神章)』을 조사하여 보니,
‘노자가 원시(元始)의 세 기운을 합하여 하나를 만들었다’ 하였으니,
이는 지극한 사람의 법체(法體)로서 정은 정령(精靈)이고, 신은 변화이고, 기는 기상(氣象)이다.
육간적(陸簡寂)과 장긍(藏矜)과 고환(顧歡)과 맹지주(孟智周) 등의 『노자의(老子義)』에서는
‘이 세 가지의 기를 합쳐서 성인의 체를 이루었다’ 하였으며, 또
‘자연은 통상(通相)의 체가 되고 세 가지 기는 별상(別相)의 체가 된다’ 하였다.
도교의 종(宗)하는 것을 검사하여 보니, 기로써 근본을 삼는데, 상고하여 보니, 세 가지의 기 안에 색(色)이 있고 심(心)이 있다.
이미 색과 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되면 생과 죽음의 근심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찌 항상하다고 일컫는가?”
[군자, 도에서 먼저 하는 것은 기로써 체를 삼는다]
군자가 말하였다.
“원래 도에서 먼저 하는 것은 기로써 체를 삼는다.
어찌하여 그러한 사실을 밝히는가?
조사하여 보니, 『양생복기경(養生服氣經)』에서
‘도라 함은 기(氣)이니 기를 보전하면 도를 얻고, 도를 얻으면 오래 있다.
신(神)이라 함은 정(精)이니 정을 보전하면 신이 밝고 신이 밝으면 오래 산다.
그러므로 정은 혈맥의 샘이 흐름과 같고 골수의 신령한 부(府)와 같아서 정이 사라지면 뼈가 마르고 뼈가 마르면 죽는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장자(莊子)』는
‘취(吹)와 구(呴)와 호(呼)와 흡(吸)은 옛 것을 토하고 새 것을 받아들인다.
팽조(彭祖)는 이를 닦아서 수고(壽考)를 얻었다’고 하였다.
이를 의지하여 말하면 화한 기운을 길러서 오래 삶에 이르는 것을 도를 얻는다고 한다.”
[통인, 도가 자연을 근본으로 한다면 도는 상대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통인이 말하였다.
“설사 도가 있더라도 스스로 생길 수 없어서 자연을 좇아 난다 하였으니 자연으로부터 나서 도가 자연을 근본으로 한다면 도는 상대되는 것이 있을 것이니, 이미 다른 것을 인하여 있으면 이것은 곧 떳떳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노자』는
‘사람은 땅을 모범으로 하고, 땅은 하늘을 모범으로 하고, 하늘은 도를 모범으로 하고, 도는 자연을 모범으로 한다’고 하였다.
왕필(王弼)은
‘하늘과 땅의 도는 모두 서로 어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모범이라 한다.
그런데 자연만은 모범한다고 일컬을 수 없어서 궁극(窮極)을 말한 것이요, 도라 함은 지혜와 영지(靈知)의 호칭이다.
지혜를 쓰는 것이 지혜가 없는 데 미치지 못하고, 형체가 있는 것이 형체가 없는 데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도라 함은 유(有)의 뜻이니 자연의 무(無)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군자, 도사는 말과 행동에 허물이 있다]
군자가 말하였다.
“『역건착도(易乾鑿度)』에
‘옛적에 수인씨(燧人氏)가 북두(北斗)와 북극(北極)을 우러러보아서 방위의 이름을 정하였으며,
포희(庖犧氏)가 이를 인하여 8괘(卦)를 그었고,
황제(皇帝)가 천명을 받고서 대요(大撓)를 시켜 갑자(甲子)를 지었으며,
용성(容成)이 다음으로 역수(曆數)를 지었으니,
오행(五行)과 구궁(九宮)의 말이 이로부터 일어났다.
그러기에 「설괘(說卦)」에
‘양의 수가 구(九)인 것은 하늘의 도를 세운 것으로서 말하자면 음과 양이다.
음은 이(二)이고, 양은 일(一)인즉 하늘은 삼(三)이다.
땅의 도를 세운 것으로서는 말하자면 유(柔)와 강(剛)이 있다.
유는 이(二)이고, 강은 일(一)인즉 땅도 또한 삼(三)인 것이다.
사람의 도를 세운 것으로서는 말하자면 인(仁)과 의(義)이다.
의는 이이고, 인은 일인즉 사람도 또한 삼인 것이니, 삼에 삼을 갑절하면 합하여 구(九)인 것이다’라고 했다.
음과 양이 서로 통해서 온갖 물건을 이루는 것이요, 따로 도의 신이 있어서 태현(太玄)의 도읍에 처하여 높이 앉았음을 듣지 못하였다.
대개 하늘은 위로 삼청(三淸)을 벌리고, 아래로 삼계를 싸며, 칠영(七映)의 방에 살고, 구궁(九宮)의 위에 나와서 신(神)을 행하고 기를 펴서 온갖 물건을 만들어 낸다 하니, 그렇다면 이가 어찌 인간들을 의혹하여 어지럽혀서 빠지게 하고 떨어뜨림이 아니겠습니까?
공(功)을 비교하여 보니, 업이 다르고, 높음을 비교하여 보니, 일이 다르다.
사문은 덕을 정표(旌表)하여 어기지 않고 도사는 말과 행동에 허물이 있다.
간행(刊行)하지 않는 먼 자취를 세워서 헤아릴 수 없는 현묘한 꾀를 세워서 양양(洋洋)하여 무어라 숭상할 수 없는 것은 불교라고 하겠다.
[沙門旌德而靡違, 道士言行而有過. 立不刊之遐迹, 建不測之玄猷. 洋洋乎弗可尚也, 其唯釋教歟!]
그러니 어찌 요당(坳堂)의 작은 물로써 풍이(馮夷)의 큰 파도에 견주겠는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