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허구 인물 설정
이제까지 두 시스템을 성격과 능력과 한계를 지닌 채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행위자로 간주했다.
앞으로 두 시스템을 주어로 써서, '시스템 2가 곱셈을 한다'처럼 표현할 것이다.
내가 활동하는 전문 분야에서는 이런 식의 언어 사용을 죄악시한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머릿속에 들어앉은 작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법적으로 보면 시스템 2와 관련된 앞의 문장은 '집사가 돈을 훔친다'와 비슷하다.
심리학 전문가라면, 집사의 행동은 실제로 현금의 행방을 설명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런데 '시스팀2가 곱셈을 한다'는 문장은 어떻게 곱셈을 하는지 설명하느냐는 타당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 의문에 답을 하잠녀, 시스템 2가 곱셈을 한다고 표현한 짧은 능동태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묘사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이미 시스템2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문장은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그 짧은 문장을 풀어 쓰면 이렇다.
'머릿속 계산은 노력이 필요한 자발적 활동이며, 죄회전을 할 때는 작동하지 말아야 하는 활동이고,
동공 확대 그리고 심장박동 증가와 관련 있는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적 상황에서 도로 주행은 시스템1이 맡는다'라는 말은
곡선 구간에서 핸들을 꺾는 행위는 즉흥적이고 머리를 거의 쓰지 않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경험 많은 운전자라면 대화를 하면서 텅 빈 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시스템2는 제임스가 욕설에 어리석게 대응하지 못하게 했다'라는 말은,
(이를테면 술에 취해) 의식적인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할 상황이었다면
제임스는 더 공격적으로 행동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시스템1과 시스템2는 내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이야기의 핵심 중의 핵심이며,
그 둘은 가공의 인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두 시스템은 흔히 생각하는 독립체, 즉 여러 부분이 상호작용하는 개체가 아니다.
그리고 뇌에는 그 시스테이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한 곳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진지한 책에 그런 괴상한 이름을 가진 가공의 인물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 물음에는, 우리 머릿속에는 별난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설정하면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문장을 쓸 때 행위자(시스템2)가 이러저런 일을 한다고 표현하면,
무언가를 정의하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할 때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다시 말하면 '시스템2'가 '머릿속 계산보다 문장 주어로 더 적절하다.
정신은 (특히 시스템1은) 개성과 습관과 능력을 지닌 능동적 행위자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해석하는데
특별한 소질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도둑질하는 집사를 그 자리에서 나쁘게 평가했고,
그가 앞으로도 나쁜 행동을 하리라고 예상하며. 한동안 그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이 역시 내가 시스템이라는 언어를 쓰면서 바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두 시스템을 특징을 강조해 '즉흥적 시스템', '의도적 시스템'이라고 부르지 않고 왜 '시스템1', '시스템2'라고 부를까?
이유는 간단하다. '즉흥적 시스템'은 '시스템1', 보다 말이 복잡해,
작업기억(특정 작업을 위해 정보를 일시적으로 간직하는 기억)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우리의 작업기억에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 우리의 사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하다.
사람 이름도 '조지프'를 '조'로 줄여 부르듯이,
앞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될 등장인물들인 '시스템1', '시스템2'도 애칭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시스템을 허구의 인물로 설정하면, 나는 판단과 선택에 대해 생각하기 쉽고,
독자들은 내말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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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1, 시스템2와 관련한 말들
"그가 받은 인상 중에는 착각도 있다 "
"그것은 순전히 시스템1의 반응이었다. 위협을 인지하기도 전에 대처했으니까"
"지금 자네에게 지시하는 건 시스템1이야, 속도를 늦추고 시스템 2에게 맡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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