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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만추에 들다
김정숙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입니까? 언제부터가 여정인가요? 가령 옐로나이프 행을 계획하는 그 순간인가요 아니면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버킷리스트에 올리는 날부터인가요? 혹은 항공권을 구매하려고 컴퓨터 창을 열고 마치 여행의 리허설인 듯 커서 를 움직이는 순간인가요. 여행용 캐리어를 활짝 열고 짐을 챙기다 들뜬 마 음이 먼저 물건들 사이사이로 들어앉아 몇 번이고 눌러 공기를 빼다 밤이 깊어가던 순간인가요? 밤잠을 설치고 일어난 신새벽, 함께 쪽잠을 잔 가방 이 큰 입을 꾹 다물고 당신을 기다리던 모습에 왈칵 설움이 쏟아지던 바로 그때부터인가요.
‘07시 문화예술회관 주차장입구 버스 출발’ 일주일 전 그 전언을 받는 순간부터 이번 울릉도 여행은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울산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을 살피고 그 길에 새로 생긴 긴 터널들을 생각하고 터널 속에 들때마다 캄캄했던 나의 이십대를 생각하고 터널 끝에 보이던 빛과 조그마한 빛이 빠 르게 달려오던 순간의 전율을 생각했으므로. 그때부터 포항 여객선 터미널을 생각하고, 바다를 건너는 일이 파도에 내 몸의 리듬을 순하게 맡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육지에서 멀어져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망망대해라는 글자들이 쭉쭉 퍼져 나가고 한없이 아득해지던 순간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는데 여정에서 만난 크고 작은 영상들이 마치 병목현상이 생기는 도로처럼 우르르 몰려든다. 버스 탑승과 동시에 받았던 주먹밥,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재료들을 꼭꼭 눌렀을 손길을 생각했다. ‘꾹’ 한번 누를 때 마음도 꾹 눌렀으리라. 마치 어머니의 새벽처럼 주먹 속에 들어간 밥도 들뜨고 설렜을 것이다.
포항 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자기소개 시간도 역시 즐거운 영상으로 남았다. 여행에 임하는 일행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마이크를 통해 오색실처럼 술술 풀려나왔다. 서로의 삶이 한 가닥씩 자연스레 교차하고 얽히며 나란해지는 순간이었다. 배가 도동항에 닿자 팻말을 든 손을 위로 쭉 뻗으며 하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팻말은 서로의 첫 만남을 기대하며 출렁 파도처럼 춤을추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우듬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섬의 규모에 어울리게 입구도 작고 방도 아기자기했다. 오후 일정은 차를 타고 울릉도 일주도로를 달리며 나리분지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운전기사는 가이드를 겸하고 있었다. 길이 굽은 허리를 펴가며 켜켜로 접어둔 새로운 바다를 보여 주는 동안 그는 5다多 3무無의 섬, 울릉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바람, 향나무, 물, 돌, 미인 등이 많아 5다多의 섬이고, 도둑, 공해, 뱀 등이 없어 3무無의 섬이라고 한다. 기사는 덜컹덜컹한 말의 강 약에 울릉도를 실어 섬의 역사부터 지질, 기후, 특산물 등을 여러 일화들과 함께 들려주었다. 신라 지증왕 13년에 당시 하슬라 주의 군주였던 이사부 장군이 지혜를 써서 해전에 능했던 우산국을 이겼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사자바위를 지났다. 울릉도는 화산섬답게 돌이 많다.
해안에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은 저마다의 이름과 전설을 갖고 있다. 어미 뒤를 아기거북이 따르는 형상의 거북바위. 투구 쓴 모양이라서 투구바위. 소원을 들어준다는 곰바위. 효심 지극한 촛대바위, 코끼리바위, 송곳바위 등 하나하나 바위의 자서전을 펼 친 듯한 이야기를 들으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송곳바위에 해가 살짝 걸렸다 가는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잠시 숨을 멈춘 바다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눈부신 윤슬에 감탄사를 찍던 일행의 감동이 조용조용 내 가슴 으로 전해지는 소리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리분지로 올라가는 길은 각이 날카롭고 힘들었다. 급경사를 견디고 있 는 나무들이 말없이 색색의 손을 내밀어 주었다. 마가목, 산나리, 섬백리향, 부드러운 엉겅퀴, 미역취, 부지깽이, 명이 등의 설명을 들으며 조금씩 여행은 맛이 깊어지고 있었다. 나리분지에 내렸을 때 나는 양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공기를 맞았다. 십년 전 여름, 숲속에서 만난 나리분지는 더덕 향에 싸여 있는 감쪽같은 장소였다. 울창한 숲 속에서 만난 아늑한 평원은 눈앞에 마주하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삼각형 모양의 45 만평,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라고 하는 나리분지는 나리뿌리와 잎을 따 먹던 사람들이 그곳에 살아서 생긴 이름이란다. 나리분지 뒤로 산을 감싸던 산안개부터 말하고싶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어진 들판을 수호신처럼 품고 서서 성인봉은 만추의 서정을 산안개로 조금 씩 풀어 시를 쓰고 있었다. 투막집과 너와집에 대하여 쓰고 돌을 머리위에 두어 개씩 얹어 울릉도의 바람을 보여주고 있던 장독들에 대하여 쓰고, 삼나물이 있던 자리라고 말해 주며 나물의 밑동을 미련처럼 품고 있던, 그 위로 장엄한 아리아 한 곡 흐를 것 같은 빈 밭에 대하여 쓰고, 씨 껍데기 술이 담긴 작은 항아리와 술향에 취해 구름이 성인봉을 목도리처럼 감싸던 저물녘의 아름다움에 대해 썼다. 저녁의 소리를 받아 적고 있던 성인봉의 그윽한 자태 앞에서 일행은 저마다 사색에 잠겼다. 들판은 한순간에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큰 그릇 같았다. ‘방금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여인의 머리칼에서 나오는 김 같은’이라는 감상문을 보낸 일행이 있었다. 그 수식어는 나를 정갈하게 물들였다.
‘나’와 ‘그 여인’, 그리고 성인봉의 안개가 한 몸이 된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섬백리향으로 만든 특산물 가게에 들렀다. 섬백리향에는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등대가 없던 시절 한 어부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어 떤 향기에 이끌려 그 향을 따라 계속 걷다가 당도한 곳이 울릉도였고 향의 주인공이 바로 섬백리향이라고 한다. 나는 그 전설이 좋아서 천연비누를 샀다. 기분이 좋았다. 섬백리향의 이야기를 내가 이어 쓰는 기분이었다. 울릉도의 호박엿! 원래는 후박나무 열매로 엿을 만들었으나 후박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되고 나서부터는 호박으로 만든다고 했다. 울릉도에서는 연간 40톤가량의 호박이 생산되어 울릉도에서 파는 호박엿은 전량 현지원료 로 만든 것 이라고 한다. 호박엿을 파는 곳에 들렀을 때 가게 앞 넓은 마당에 많은 호박들이 쌓여 있었다. 장관이었다. 하나같이 단정하고 넉넉한 앉음 새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한 생을 마무리하는 저 호 박들의 텅 빈 속을 나는 알고 있다. 잘 여문 씨앗 몇 개만 두고는 한때 어지 러운 속도로 채워갔을 속을 조금씩 햇살과 바람에 내주며 스스로 단단해졌 을 호박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데 미동도 않고 가 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절하고 싶다’라는 한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쉬운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진행할 예정이었던 독도행이 파도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저기서 안 타까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독도가 아니어도 울릉도의 매력은 무궁무진 많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도동항으로 갔다. 밤에 보는 도동항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바위산들이 금세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서서 바다를 지키고 있다. 희끗희끗한 색채가 눈이 내린 알프스 같기도 하고, 해일 이 이는 날 큰 파도 하나가 “그대로 멈춰라.”하고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소인국에서 성큼성큼 큰 발걸음으로 걷는 걸리버의 모습 같기도 했다. 산들 이야 어쨌든 아랑곳없이 바다는 그 품에 안겨 쉼 없이 재잘거리고 있다. 베 갯머리 송사를 하는 애첩의 모습으로 예쁘게예쁘게 속삭이며 행복에 겨워 하고 있었다. 도동항의 밤이 조금씩 더 깊어 가고 우리들의 이야기 보따리도 끝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출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새벽잠을 반납한 덕에 해 안산책로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도동 앞바다와 구름 사이로 살짝 보여준 강렬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바다를 건너와 맞는 일출은 또 다른 감회였고 그 일로 나는 종일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바위틈에서 자고 일어난 보랏빛 해국 의 눈이 더욱 동그래진 것도, 바위산 꼭대기에 있던 향나무 가지가 조금 더 바다 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그날 아침의 일출이 강렬했던 탓일 것이다. 독도행 대신 독도전망대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탔다. 나는 케이블카 탑승 보다는 그 장소로 가는 길이 더 좋았다. 군데군데 섬의 생활상이 보였다. 피어있는 보랏빛 해국, 노란 털머위, ‘감사했습니다. 내년 봄에 다시 만나요.’ 라는 메모를 남기고 일찌감치 월동준비에 들어간 ‘다와’ 라는 조명이 걸린 예쁜 호떡집, 꿈초롱 도서관, 제설을 위해 바닷물을 담아둔 커다란 물탱크, 두 번이나 갔으나 사람은 없었고 해국과 애기동백이 활짝 웃고 있었던 절 해도사, 온몸이 가을로 물들어 낙하준비를 마친 커다란 플라터너스 잎, 도둑이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환히 열어둔 기념품 가게들,‘ XX신문 울 릉보람지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수다방, 등 울릉도의 특징을 갖고 있 는 모습들이 좋아서 카메라에 담았다.
전망대에 오르니 울릉도가 한눈에 보였다. 멀리서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정말 다 닮은꼴이다. 무리지어 있는 건물들이 장난감같이 작아 보이는 현상 이나 그 위로 흐르는 바람이 크나큰 위안으로 다가오는 일이나. 훨씬 넒은 산과 들, 더 넓은 바다에 비하면 내 삶의 좌충우돌이 참 작고 작은 것이라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내려오는 길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점심으로 따개비밥을 먹었다. 누군가 더덕을 한 봉지 사서 밥상마다 나누 어 주어서 함께 먹었다. 정을 나누는 손길에 가슴이 뭉클했다. 오징어 다리 를 쭉 찢어 건네던 손길. 해안 산책로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멍게 상을 차려 주던 여흥과 배려, 아침에 방으로 배달 온 무화과 하나, 항해 중에 만난 꿀 맛 같은 고구마 반 개, 멀미하지 말라고 나눠준 편강 두 쪽,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맛있었던 노란 배추 속 잎, 손수 만든 예쁜 책갈피, 등 뒤에서 오던 커피 한잔이 담긴 종이컵 등,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 이리 많은 이야기를 품 을 줄 몰랐다. 울릉도의 매력이 자연의 보존성에 있듯이 이번 여행의 맛은 사람의 마음 을 나누는 뿌리 깊은 애정에 있었다. 돌아오는 배는 좀 더 출렁거렸다. 배 멀미로 괴로워하는 일행을 서로 격려하며 포항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항구는 멀리 불빛의 아우성과 가까이 승객들의 오고가는 소리로 분주했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애교만점 상’과 ‘무념무상 상’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끝까지 재미있는 기획을 한 추최 측의 노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재치 있는 상장의 문구로 우리는 피로도 다 잊고 많이 웃었다. 문화예술회 관에 차가 정차했을 때 하늘에는 만월이 둥실떠서 온세상이 환했다. 만추에 찾아간 울릉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소감에서 누군가 말했다.
다음에 다시 갈 여행을 위해 독도를 남겨두어 더 좋다고. 나도 그랬다.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이 첫 번째 방문이었고 해국이 눈부신 만추의 바위산이 두 번 째다. 세 번째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 설경의 울릉도를 보고 싶다. 안녕, 고요히 만추에 들었던 나리분지도 잠시 안녕. 보랏빛 해국들아 잠시 안녕. 지금 한창인 꽃, 조금 시든 꽃, 많이 시든 꽃, 키 작은 해국들, 누군가 먼저 다녀간 영혼이 있어 그들과 교신한 흔적이 동그란 표정에 그대로 살아 있던, 그래서 더 정다웠던 꽃. 해국들의 향연이었던 11월의 도동항이여 잠시 안녕. 선생님,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선생님께 여행은 무엇인가요? 독도전망대 에서 내려다볼 때 아득히 작아지던 집들의 모습과 현실의 속도전이 갑자기 사소해지는 것인지요? 해국의 휘둥그레진 눈망울에서 파도의 세기를 가늠하던 도동항의 저녁인지요? 하늘로 돌아가는 날 소풍이 즐거웠다고 말하려 는 한 시인의 시처럼 삶이란 지구촌을 잠시 여행하는 일은 아닐는지요. 선생님, 함께 여행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