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3월 28일자 8면(민족NGO섹션)에 게제된 내용입니다.
보시고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교육부에 청원하여 꼭 바루어지도록 해야 할 내용입니다.
<파일>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7〉
기자, 위만은 ‘고조선’ 법통에서 제외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삼국유사』 기이편(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고조선이 단군 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연결된다는 『중학국사』, 2008, 19쪽의 내용.
‘고조선’을 단군왕검이 세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는 인식은 일반인과 교육부의 지침, 초ㆍ중ㆍ고 교과서에서 공통적이다. 그런데 현 교과서에서 기자와 위만을 고조선의 법통 속에 포함시키고 있는 문제는 사실과 다르면서 바로 고조선의 위치 논쟁으로도 연결되므로 동북공정 사학과 식민주의 사학, 나아가 사대주의 사학을 끊기 위해 반드시, 빨리 고쳐져야 할 내용이다.
『삼국유사』의 ‘조선’ ‘고조선’ 구별 살려라!
『삼국유사』 제1편 기이편에 ‘고조선(왕검조선)’이라는 항목’이 나온다. 단군의 건국이야기로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는데 그는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고 했다.”고 하여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고조선’이라는 제목 아래에 작을 글씨로 ‘왕검조선’이라 쓰고 있다. 그 의미는 다음 항목인 ‘위만조선’(魏[衛]滿朝鮮)보다 앞이므로 ‘고대의’ 조선이라는 시대구분을 위해 ‘고조선’이라 표현했을 뿐이며, 위만조선과 구분하는 나라 이름으로는 ‘왕검조선’이라 했다. 즉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같지 않다는 것을 명쾌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현 국정교과서인 『초등학교 사회 5-1』에서는 기자나 위만은 등장하지 않으나, 비상교육 편 『중학교 역사』에서는 “기원전 2세기경 ‘위만이 집권’하여 세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위만 왕조 시기’에는 철기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고조선이 강성해지자….”(41쪽)고 했으며,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위만은 천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와 준왕의 신임을 얻어 서쪽 변경의 수비를 맡았다.…마침내 왕검성을 공격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기원전 194)…위만 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였다.”(20~21쪽)고 기술함으로써, ‘위만이 고조선에 들어와 집권’하였고, 그것을 ‘위만조선’, ‘위만 왕조’로 칭하고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전혀 다른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위만이 몰아낸 ‘준왕’을 고조선의 임금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중국 『삼국지』「예전」에 ‘기자의 40여 세 후손인 조선후 준이 자칭 왕이라 칭했다’는 등 많은 사료에서 준왕을 조선후라고 칭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 조선현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삼국유사』의 “주나라 호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이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기었다가 뒤에 돌아와서…”라는 기술에서 보듯이 단군은 나라를 뺏기지도 않았고 양위도 하지 않았다. 준왕, 위만이 고조선의 법통을 이었다는 기술은 전혀 근거가 없다.
『삼국유사』에도 ‘위만은 요동 진의 옛 터전인 변방에 자리잡고 점차 진번, 조선, 만이를 차지하고 연과 제에서 망명해온 자들을 모아 왕이 되었다’고 했지, 고조선이나 왕검조선을 정복해서 왕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과 ‘고조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집필진의 근거 없이 황당한 답변
이에 대해 2015년 1월 18일 교과서민원바로처리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더니 주)비상교육 집필진에서 “위만 앞 준왕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준왕이 기자의 후손이라고 하므로 기자조선은 부정하지만 준왕의 혈통을 특정하지 않고 언급하고 있는 학계의 일반적 입장을 반영하여 서술하였다.”는 학문적으로 황당한 답변이 왔다.
1월 19일에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부에 “2012년까지 사용되었던 국정 중학교 국사(2008년 7쇄) 19쪽의 ‘문헌에 나타나는 고조선은 단군 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정치적 변화를 거친다’는 도움글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고조선의 법통에 포함시키고, 기자조선 마지막 왕인 기준을 고조선 마지막 왕인 준왕이라고 한 내용을 통과시킨 것은 아니냐?”는 질의를 했더니, “ 후한서 한(韓)조의 ‘朝鮮王 준(準)이 위만에게 격파되어…”라 했고, 삼국지 에서도 ‘조선 후 준(朝鮮侯 準)’으로 등장하며,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정치변화 과정을 ‘고조선-위만조선’으로 분류 서술하였으나, 고조선 조에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삼국유사 내용에 따라 ‘고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계통 분류를 했고, 이것이 우리 학계의 통설“이라는 답이 왔다. “현재 교육부는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법통이 이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답해달라”는 추가 민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답이 없다.
준왕ㆍ위만은 고조선 변방 정변으로 기술하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기자조선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기자의 후손인 준왕의 혈통을 숨기고 전혀 법통 연결이 되지 않는 고조선의 왕으로 기술”했으며, 『삼국유사』에서 고조선과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는 위만조선과 관련 없이 “위만이 고조선의 권력을 잡아 ‘위만 왕조’(중학), ‘위만 조선’(고교)을 형성했다”고 기술하여 기자와 위만이라는 중국 사람을 고조선의 법통에 포함시켜 고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으로 법통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현 학계의 통설이므로 그렇게 서술했다는, 학문적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논리다.
이러한 시각은 중국 사료의 ‘조선’(대부분 기자 때부터 등장하는 조선현)을 고조선으로 오인한 데서 온 것으로 사대-식민사관에 따라 고대 조선을 자기들의 역사로 만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중국의 식민지로 시작한 것으로 왜곡했던 일제의 식민지 사학을 우리 교과서가 인정해주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고조선’은 왕검조선(삼국유사), 단군조선(고교 한국사), 또는 고대조선으로 바꿔 부르면서, 윤내현이 30여 년 전에 주장했듯이 준왕과 위만은 고조선 변방으로서 중국 사료의 滿ㆍ番 등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재정립하여 제대로 기술해야 한다. 이 문제는 아직 공개적인 토의나 검토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자료가 풍부하고, 민족사학계와 대중들에게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으므로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자리를 만들면 어렵잖게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보도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