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문 : 고후 10 : 12~18 제 목 : 자랑하라. 주 안에서! 2014.12.14.am/진관 [성경본문]------------------------------------- 12 『우리가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그 범위의 분수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 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이는 남의 규범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 -할렐루야! 12월의 둘째 주일 예배를 드리러 오신 성도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서로 인사하자.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오늘날은 PR 시대이다. 그래서 광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ex) 고등학교 때부터 광고에 반한 아들이 앞으로 광고를 하겠다고 하더니만 대학에서 철학을 하고 지금은 작은 광고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하고 있다. 보통 밤 2,3시에 퇴근하고 밤을 새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아들은 스스로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면 고시도 패스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평한다. -그럼에도 아들은 광고로 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비전을 품고서 오늘도 새벽에 퇴근했다. 아마 찬양대에 찬양을 해도 비몽사몽으로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PR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광고를 잘하면 소득이 있지만 잘못되면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해 진다.
ex)이솝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마리의 사슴이 목이 말라 호숫가로 물을 마시러 갔다. 이때 사슴은 물속에 비친 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나무 가지모양으로 여러 갈래로 뻗친 제 뿔을 그는 너무 아름다운 것이라고 머리를 흔들며 자랑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고서는‘다리는 왜 이다지도 보기 싫은가?’고 한탄했다. "이런 다리는 없는 것만 못하다" 사슴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서 사슴을 좇았다. 사슴은 가는 다리에 의지하여, 숲속으로 뛰었다. 그러나 그 아름답다고 자랑하던 뿔이 나무 가지에 걸려 가엽게도 사자에게 잡히고 말았다. 불쌍한 사슴은 죽어가면서 이렇게 한탄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욕만 하던 다리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 자랑했던 뿔 때문에 이 모양이 되어 버렸구나!」
-그리스도인은 자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자랑하라는 말씀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랑하지 말고 자랑해야 할 것만 자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가?
-먼저 소극적으로 1. 자기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12절에『우리가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 대공원에서‘코끼리를 칭찬을 하니 코끼리가 발톱을 깍을 수 있도록 발을 내밀어 준다.’한다. -하물며 사람들에 하는 칭찬이겠는가? 칭찬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사람들은 칭찬을 받을 때 고무되어진다. 그렇지만 칭찬은 a.정말 잘해서 칭찬하는 것도 있지만, b.격려차원으로 칭찬하기도 한다. c.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칭찬을 하기도 하고 d.아첨수준의 칭찬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칭찬이 있다면 우리는 그 칭찬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더욱이 그런 칭찬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라면 더욱 분별력이 필요하다. -물론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여 스스로 용기를 가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 평가기준이 되어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ex)우리나라에는 다양한 훈장들이 있다. 무궁화대훈장을 비롯해서 건국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수교훈장, 무공훈장, 산업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교원훈장 등 그 훈장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훈장들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규정에 맞는 사람들만이 받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자랑이나 칭찬은 자기가 그 기준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로 칭찬은 너무 주관적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언제나 주관적인 칭찬이나 자랑은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를 기준하여 자기로 자기를 칭찬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2. 분수이상으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13절에『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분수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분량이 있다. 이런 분수를 뛰어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분수에 넘치도록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과장시켜 크게 불려서 말하거나 또 큰 것을 아주 작은 것이라고 말할 때도 있다. 세상 말로 뻥치는 사람이다. 바울은 그런 자랑이 바로 분량 곧 분수를 넘어서 하는 자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ex) 이솝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그마한 연못에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이 개구리의 소원은 큰 강가에 가서 사는 것이었다. 개구리는 어느 날 연못에 날아온 황새를 향하여 부탁한다.‘네가 사는 넓은 강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했다. 난감해 하는 황새에게‘내가 끈을 입에 물터니 그 끈을 네 발에 묶고서 날으면 된다.’고 했다. 황새는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황새는 발에 끈을 묶었다. 개구리는 그 끈을 입으로 물고 공중을 날아간다. -그때 농부들이 개구리를 보고 말하기를 황새는 참 지혜가 많단 말이야 ! 하고 칭찬을 했다. 그때 그 개구리는 그 소리를 듣고‘아니예요! 내가 가르쳐 준 것이예요!’입을 벌려 자랑하고 말았다. 개구리는 끈을 놓치고 땅으로 곤두박질쳐 지고 말았다.
ex)히스기야도 헌된 자랑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히스기야왕은 병이 나았다고 축하하러 온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기 보물고와 군기고와 성전창고를 다 보여주며 자랑하였다. 그로인해 결국 바벨론에게 왕궁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자기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고 만다.(왕하20:13-18)
-고린도교회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이 세운교회였다. 그럼에도 저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 자기들이 세운교회마냥 주장하는 거짓지도자들에게 미혹되어 그들을 동조하고 있었다. -바울은 고후11:30에서「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하며 분수를 넘지 않도록 교훈한다. / -일찍이 주님께서도 마 5:37에서『오직 너희 말은 옳다옳다. 아니라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하셨다. -성도 여러분은 분수를 넘어서 자랑을 하지 않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남의 수고를 가지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15절에『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 이 더 할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의 수고를 마치 자기의 영향이나 자기의 기도의수고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여 마치 그런 업적들을 자신과 연결시켜 자랑할 수도 있다.
ex)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만 우리는 사촌들도 자랑한다. 그러나 그런 사촌이나 주위의 친구들을 자랑하는 데에는 은근히 ‘나를 좀 알아달라는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이다. -저도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우리교회’가 어떠하고,‘우리교회의 누가’어떠하고 하는 자랑을 많이 듣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교회를 자랑하고 그 교회 성도를 자랑하므로 은근히 자신도 그런 레벨에 속한 것처럼 자랑하는 것이다. -마치 이런 식의 자랑들을 통해서 심할 때는 나의 수고가 거기에 있었다는 식이다. 나 때문에 그 사람의 위치나 열매가 있었다는 식이다. -때로는 그 자신이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자랑하여 그 사람에게 암묵적으로 압력을 가하므로 자기편을 만들고, 교회 내에 또 다른 그룹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당신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있었다.’고 ‘당신의 교회가 아니더라도 그 분은 그런 영광을 가질 수 있었다.’고‘그 분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야고보선생은 약4:16에서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했다. -지혜자는 잠 27:2에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니라.』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선생들은 바울 사도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하였다. 성도들의 칭찬거리를 마치 자기들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16절에 『이는 남의 규범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고 했다. -고린도교회 규범이라는 것은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내규 같은 것이었다.
- 바울은 자신의 규범이나 고린도교회의 규범으로 하자면 이제 넘쳐난 분이었다.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도처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고후11:18에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했고 -고후11:30에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자신이나 자신의 규범을 버리고, 고린도교회의 규범도 버렸다.
-어쩌면 개역 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는 사역의 한계를 넘을 정도로 일했으니 이제는 다 이루었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빌3:12에서『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했다.
그래서 본문 16절에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남의 것으로 자랑하지 말라. 여러분은 언제나 진정한 자랑거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가?
-17절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했다. -바울은 앞서 고전 1:31에서도『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했다. ex) 저 같은 경우는 아직 손주가 없어 자녀 자랑을 하게 되는데, 자녀들은‘제발 자랑하지 마시라.’고 아우성이다. 당사자로서 민망하기도 하고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그럴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 자랑이 이만 저만이 아니시다. 막상 자녀를 키울 때는 생활전선에 나가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이제 손자나 손녀를 키워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주의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자랑하여 -이제는‘손주 자랑하려면 돈을 내 놓고 하라.’고들 한다. ex) 저희 장인이나 장모님이 다니시는 교회는 남서울 은혜교회이다. 그런데 언제인가는 어르신들이 원로목사이신 홍정길목사님이 설교 중에 자주 손주 자랑을 하신다고 조금은 퉁명하게 말씀 하셨다. 본인들도 손주를 여럿 둔 분들이 목사님의 손주 자랑을 왜 싫어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너무 자주하셔서 그러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자랑은 별로 듣고 싶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ex)어제 사촌동생의 아들이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동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아이의 아빠가 우리나라 최연소 교수가 된 수재이기에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내 안에 또 다른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인간적으로 자랑하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자랑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1.주님을 자랑하라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말할 때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 사람의 업적을 말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자랑하라는 말은 주님이 어떤 분이시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자랑하라는 말이다.
-참으로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자랑하기에 넉넉한 분이시다. ex)베드로가 고백한데로(마16:16) a.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이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그러므로 주님은 지식과 선함과 의로우심과 지혜와 거룩과 사랑과 진실과 권세와 복되신 하나님이신데 이런 무한하시고 무궁하신 주님이시다. b.나아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속을 이루셨다. 주님은 십자가로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셔서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시는 제사장이 되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선지자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생명바쳐 자랑했으며, 성도들에게도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라고 한다. 여러분은 주님과 십자가만을 자랑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주님 때문에 자랑하라는 말씀이다.
‘주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씀은 ‘주님 때문에 자랑하라.’는 말씀이다.
ex) 오순절 후에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였다. -주님을 만난 바울도 사역하는 가운데 자신을 바라보고‘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였다.(롬7:24) 그런가 하면‘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한다.(딤전1:15) 바울의 이런 고백들은 바로 우리들의 실상이요 우리들의 고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셨다. -누구 때문인가? 주님 때문이다.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로 우리를 구속을 다 이루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백한데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주신 주님을 자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성도들은 주님 때문에 구원받음을 기억하고 늘 주님을 자랑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3. 주님의 칭찬으로 자랑하라는 말씀이다.
-18절에『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했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고해와 같다. 환난이 있다. -바울은 행14:22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했다.
그러하다.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는 환난을 받을 때가 많다. 예수 믿는 것이 고난의 삶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견디는 것은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기 때문이다.
ex) 이라크 성공회목사 캐논 앤드류 화이트 목사에 의하면 아랍국가(IS)에 의하여 네 소년이 개종을거부하다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이 어린 소년들은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왜인가 하늘나라에 들어가 칭찬의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ex)뉴욕에 있는 카네기 홀에서 대 피아노 발표회가 있었다. 어떤 젊은 피아니스트가 열연을 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은 이 피아니스트에게 몰려가서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피아니스트는‘저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저 맨 앞에 앉으신 노인이 저의 선생님이신데 일어나지도 박수도 하시지 않았습니다.’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나가더라는 것이다. 이 피아니스트에게는 진정한 칭찬은 자기 선생님의 칭찬이 진짜 칭찬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성도들의 진정한 자랑은 주님의 칭찬하심이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칭찬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입만 열면 주님을 자랑해야 한다. -주님을 자랑하고, 하늘의 칭찬을 자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