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3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면 연평리에서 3남 4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인 1965년에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로 이사하였다. 특히 대표 시 <안개>는 소하동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한다. 서울시흥초등학교,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 문학 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기형도에게 대학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연세문학회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연세대학교 학보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하였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1981년 휴학하고 방위로 소집되어 안양에서 근무하였다. 이 시기 경기도 안양의 문학동인지 《수리》에 참여하였다. 1983년 복학하여 〈식목제〉로 《연세춘추》가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었다. 졸업 전인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문학사상》, 《현대문학》, 《한국문학》과 같은 문학지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으나 1989년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당시 만 28세로,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입속의 검은 잎》은 데뷔 이후 첫 시집이자 유고작으로 남았다. 2년 뒤 기형도가 사망한 지 2년 뒤에 발간되었다.
시인 선택 이유
기형도는 자신이 겪은 것들과 이를 바탕으로 생성된 자신의 자아에 대하여 직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나타낸다. 기형도가 가지고 있는 리얼리즘은 은유와 비유를 통해 의도를 숨기고 독자들에게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맡기는 여타 시인들과는 달리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돌려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와서 다양한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그의 직설적인 문학세계는 기형도 자신이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그가 그 자리에 실존했다는 것을 시를 통해 깨우쳐준다. 그가 겪은 고통과 불안, 이를 자각하고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나에게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대표 작품
1. 엄마 걱정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 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주제로 하여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 가운데 엄마를 기다리던 '그 어느 하루'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구체적으로 1연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화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두워진 방에 혼자 '찬밥'처럼 남겨진 화자는 잠시나마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엄마를 기다리며 숙제를 해 보지만, 아무리 숙제를 천천히 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창 틈으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오히려 화자의 외로움을 더욱 고조시킨다.
더불어 1연에서는 고된 어머니의 삶도 묘사되어 있는데, 열무를 팔러 간 어머니도 그 열무들이 시들 만큼 해가 저문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삶에 지쳐 '배춧잎 같은 발소리'를 내며 돌아온다. 뒤이어 그 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된 화자에게 아직까지도 생생하며 지금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2연을 구성하고 있다
2. 안개
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욱도 이동하지 않 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聖)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똑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이 시는 산업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다룬 일종의 문명 비판시이다. 농촌에까지 밀어닥친 산업화의 물결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환경 오염, 그리고 점차 각박해지는 사람들의 인심을 객관적인 어조로 고발하고 있다. 서정성이 강한 '안개'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오히려 산업화의 부정적 양상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공장 주변 사람들은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폐수에 무감각해진 채 이웃들의 불행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시인도 이러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 거기에 대해 어떠한 논평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인의 객관적인 태도는 경제적 이익에만 얽매여 매연과 폐수를 함부로 방출하는 기업과 함께, 현실을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공장 주변 사람들의 비정한 인심도 같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마지막 연의 2행은 가혹한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공들이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는 모습과 아이들마저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반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황이 조금도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좌절과 분노가 응축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