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시청 이전에 얽힌 사연.hwp
내가 다니던 중학교 앞에 고양군청(시승격 이전)이 있었다.
경기도 고양군청은 1961년도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있었다.
그렇다면 왜 경기도 고양군청이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있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양 도성 바깥은 대부분 고양군땅이었기에 서울시내 한가운데에 고양군청이 자리잡고 있는게 당연하였겠지만 1930년대에 군청 소재지를 비롯하여 아주 많은 지역이 서울로 편입되었음에도 계속 그 자리에 군청이 자리 잡고 있는게 무척 신기했다.
참고로 1930년대에 고양군에서 서울로 편입된 지역은 숭인면(현 동대문구, 성북구), 연희면(현 서대문구), 용강면(현 마포구), 한지면(현 용산구, 성동구), 뚝도면(현 광진구) 등의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자그마한 고딕식 건물이 이제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밀레오레 상가가 들어 서 있다.
그런데 고양군청이 정부수립 후 13년간이나 고양땅으로 옮겨 가지 않고 서울시내 중심가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1987년경 벽제읍 내유동이라는 곳에 우리 회사 수련원을 신축하면서 내가 건축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고양 군청의 건축관련 부서와 업무를 수행하면서 당시 고양 군청 공무원으로부터 고양군청이 오래도록 서울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사유 및 이전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었다.
고양군청은 서울시내에 있었지만 고양경찰서는 일산(당시 고양군 중면 일산리)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일산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당연히 고양군청이 일산으로 이전해야 된다고 한데 반해 교통이 편리하고 고양군내에서는 가장 큰 벽제면민들은 고양군청이 벽제로 옮겨와야 된다고 서로 군청 유치를 주장하는 바람에 군청 이전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961년 5.16혁명후 군사정부에서 과감하게 지도상에서 일산면과 벽제면에서 콤파스로 돌려서 일치하는 지점을 군청이전 장소로 결정하기로 했는데 합치되는 지점이 바로 원당면 주교리 현재의 시청이 자리잡고 있는 곳 이었 다.
이때 이 지점의 땅 소유자 故 박용관님께서 군청 부지(임야 3,887평)를 흔쾌히 희사를 해 주셔서 시청이 이 곳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시청 앞 마당에 이 땅을 희사해 주신 故 박용관 님의 공적비가세워져 있다.
1961년도까지 나의 학교 앞에 있던 고양군청 건물은 일제 강점기때 건축된 빨간색 고딕식 이었으며 자그마하고 아담했다.
지금도 그 건축물이 남아 있으면 서울역 역사 건물과 함께 보존 사적 지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당시 작은 시골 고양군이 지금은 100만명이 넘는 인구에 3개 구청이 있는 대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시청은 협소하고 지리적으로 신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산지구와 화정지구 사이의 대장동 일대(곡산역 부근)로 이전한다는 설이 있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서울 편입되기 전의 고양땅에서 사셨기에 나의 고향은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고양시의 무궁한 발전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