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승(女僧)
이 남 천
“나무관세음보살!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너무도 놀랍습니다. 어찌 이곳까지?”
여승은 합장을 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해를 등지고 서 있었다. 파르스름하게 삭발한 머리가 햇빛을 반사한다. 짙푸른 녹음 속에서, 그 녹음과 어울려 발그레하게 물든 여승의 볼이 더욱 이채롭게 곱다.
“응, 정현스님! 아주 우연히 미연을 만났지. 이름을 불러도 괜찮을까?”
“아! 그러셨군요. 당연히 이름을 부르셔야죠. 그런데 여긴 다른 학인(學人)스님들이 있으니 자리를 옮기시지요.”
우리는 절 안쪽을 향하는 돌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동안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땐 여름방학을 앞둔 칠월도 중순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결코 흉이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의 재떨이를 비우고 닦는 일이 주번 학생들의 즐거운 일과 중의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비우고, 교무실에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그런데 언제나 봄 햇살 닮은 표정에 미소를 잃지 않는 도연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 무렵만 해도 대다수 학생들은 교무실 출입을 껄끄럽게 여기던 시절이다. 교무실엔 좋은 일보다 언짢은 일로 불려가는 일이 많았던 때문이었을 게다. 지금은 학생들이 교무실 출입을 내 방 드나들 듯 하고 있으니, 그 또한 대단한 발전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선생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나는 짐짓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도연이가 교무실까지 일부러 찾아와 면담을 요청한다면, 그건 심상치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이제 2학년인 도연은 내 반 아이이다. 그러나 같은 반 아이들보다 세 살이나 위였으니, 스물한 살쯤 되었을까? 이제로는 대학 2학년 쯤 되는 나이이다. 그러기에 다른 아이들은 도연을 ‘언니’로 부르면서 잘 따랐고, 도연은 급우들을 어린 동생 대하듯 잘 보살펴 주었기에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운동장이나 복도에서 담임인 나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면서 다가와 팔짱을 끼곤 했는데, 그것은 다른 여학생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삼십대 중반의 젊은 담임선생님, 그 선생님의 팔짱을 끼는 행위는 다른 친구들에게 질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연이의 그런 행동은 다른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도연은 다른 아이들에게 결코 경쟁의 대상일 수 없었던 까닭에서이다.
그러나 도연은 학교에서 보여 주는 녀석의 행동처럼 그렇게 밝기만 할 수가 결코 없는 아이이다. 녀석은 아주 어린 초등학교 시절에 부모님을 여의였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어느 날,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갔던 부모님이 한꺼번에 변을 당하신 거였다. 도연과 녀석의 여동생 미연이 형제만 남겨 놓은 채, 돌아올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나신 거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 고모님 댁에 의탁되어 지금까지 자라왔다. 도연이의 살붙이는 고모님 한 분 뿐이었다. 미연은 이제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중학교의 3학년이니, 내년에는 고등학생이 될 위치에 와 있다. 그런 도연이가 교무실까지 찾아 왔으니, 어찌 정색을 하면서 맞을 수 있겠는가?
“어어? 도연이가 웬일이냐? 뭐, 선생님에게 사랑 고백이라도 할 셈이냐? 더구나 이 대중 앞에서?”
“야, 그러잖아도 도연이가 담임선생님 사랑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진짜 사랑 고백하러 왔구나!”
도연이의 사정을 알고 있는 다른 선생님이 가세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말해 봐, 도연아! 뭘 그리 망설이냐?”
“선생님, 시간 되시면, 자리 좀 옮겨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으응, 고백은 확실한 고백인 모양이로구나. 그래, 가자. 어디로 갈까?”
나는 도연을 따라 일어섰다. 녀석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로 나를 이끈다. 역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재 잘거리며 웃으며 다른 아이들의 틈새를 걷는다. 운동장 가의 긴 의자에는 이미 한 아이가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바로 미연이이다. 녀석이 나를 맞으면서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나를 맞이하는 녀석의 표정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다. 미연이도 제 언니를 닮아 언제나 명랑한 아이였다. 녀석들은 나를 가운데 앉힌다.
남녀 공학인 학교이기에 운동장엔 축구하는 남학생들이 복작거린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여학생들도 운동장가의 나무 그늘에서 재깔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시골 학교의 그런 교정에서는 칠월의 찜통더위도 꼬리를 감추게 마련이다.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교정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도연을 바라본다. 녀석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져 있다. 교정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약간의 어두운 그늘이 엿보인다. 나는 녀석이 말문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녀석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문을 연다. 나는 순간적으로 녀석의 손길에 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오른손으로 녀석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미연의 손을 잡아 주었다. 미연은 고개만 숙인 채 말이 없다. 녀석들 사이엔 이미 어떤 논의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겠다.
“선생님, 저요. 이번 학기 마치고 자퇴해야겠어요. 자퇴 처리 좀 부탁드리려고 모셨어요.”
금시초문의 터무니없는 말에 나는 녀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녀석이 말을 잇는다.
“그전에도 선생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들이 고모님께 신세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홀몸이신 고모님께서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도 어려워요. 더구나 내년에는 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데, 스무 살도 넘은 제가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고모님께도 상의 말씀 드리고, 극구 만류하시지만 간신히 허락을 얻었거든요. 제가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만이라도 고등학교는 졸업시켜야 될 것 같아요.”
“그럼, 너는 자퇴하고 무슨 일을 할 셈이냐?”
“저요? 전 스님이 되고 싶어요. 다행히 고모님께서 아는 암자의 주지 스님이 비구니이신데, 상의 말씀 드렸더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하대요.”
스무 살 넘은 처녀(?)답게 도연은 이미 모든 것을 알아보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난 뒤에 나와 면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70년대 후반, 도연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비단 도연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 무렵 도연과 비슷한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아이들은 학교마다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나라의 살림살이가 좋아져서, 기초 수급자는 물론 차 상위 계층까지도 거의 모든 학비가 지원되고 있지만, 그 무렵에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내 것을 챙기겠다고 아우성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에 접하게 되면, 때때로 아린 가슴을 주체하기가 어렵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생활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의 지름길임을 너무도 잘 아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도 먼 곳에서 행복을 찾고자 이전투구(泥田鬪狗)하다가, 결국은 허상만을 잡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일이다.
나는 잠시의 침묵이 흐르는 짧은 시간 동안에 얼크러진 머릿속을 정리했다. 정리된 생각의 결론은 간단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도연을 설득하여 졸업시키는 것이다.
“도연아! 선생님 입장에서는 네 생각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선생님도 5남매의 맏이요, 3남매의 아버지로서 항상 가족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단다. 선생님의 표정도 도연이만큼 밝지 않니? 그러나 선생님에게도 개인적으로는 어려움이 많단다. 그러기에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음속은 울지만, 겉으로는 도연이처럼 웃으면서 더욱 밝은 모습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거고. 그러기에 선생님은 도연이를 누구보다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단다. 선생님도 너의 생각에 공감하고 또 이해하긴 하지만, 지금 네가 학업을 중단한다면, 지금까지 뒷바라지해 오신 고모님의 그 동안 고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완전히 물거품이 되는 거 아니니? 그리고 스님이 되고 싶다는 네 생각에는 결코 반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훌륭한 스님들이 얼마나 많았니? 너에게도 훌륭한 스님의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등학교 중퇴보다는 졸업 후에 스님의 길을 걷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선생님은 생각한다. 고모님께서 중퇴를 허락하신 것은 너의 억지 주장 때문일 수도 있으니, 선생님이 고모님을 한 번 만나 뵈었으면 좋겠다.”
고모님을 만나겠다는 나의 말에 녀석은 펄쩍 뛰다시피 거절한다. 역시 나의 생각이 적중했음에 틀림이 없겠다.
“선생님 말씀, 감사드려요. 하지만 저도 많이 생각하고 한 결정이거든요. 그러니 허락해 주셔요.”
“허락을 하고, 또 퇴학원서를 쓰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그러나 그런 이후에 되돌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 그러나 생각을 되돌리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일은 얼마든지 반복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선생님으로서는 지금 금방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간적인 여유도 있는 일이니 좀 더 두고 논의해 보자. 덕분에 선생님과 만나는 기회도 많아지는 거 아니냐?”
5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린다. 나는 두 녀석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미연의 눈가에 한두 방울의 이슬이 맺혀 있다. 도연은 인사를 하고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팔짝거리며 뛰어간다. 그 모습이야말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아픈 마음을 숨기고,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인 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이후 자퇴 허락을 요구하는 도연과 졸업을 권유하는 나의 줄다리기는 오랜 시간동안 이어졌다. 그런 이후 도연은 나의 생각을 좇아 졸업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녀석이 3학년에 진급하던 해에, 나는 그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날 때, 녀석은 동생과 함께 찾아와 몇 마디의 인사말과 함께 몇 방울의 눈물을 나에게 이별 선물로 주었다.
십년보다 훨씬 긴 세월이 흘렀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다시 시골의 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도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학사 자격을 가지지 못했던 나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명(知命)을 바라보는 나이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만학(晩學)의 열기를 불태우고 있는 나에게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과거에도 해마다 한 번씩 받아온 초대장이다. 방송통신대학에서는 학생들 주최로 방통인들의 결속과 정보교환을 위하여 해마다 모임을 갖는다. 일컬어 ‘방통인의 밤.’
호텔의 드넓은 컨벤션홀에는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빼곡하다. 의례적인 행사가 끝난 후, 모두가 함께 하는 여흥 시간이 이어진다. 술잔이 오가고, 깔깔거림이 이어지고, 전면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음악이 연주되고, 그 연주와 함께 콩쿠르대회를 방불케 하는 노래도 이어진다. 옛날의 학우들과 함께 술잔을 주고받는 중인데, 방송에서 내 이름을 호명한다. 주변에서는 빨리 나가 한 곡 뽑으라고 채근이다.
나는 떠밀리다시피 무대에 올라섰다. 그리곤 나의 애창곡을 불렀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요구할 때마다 불러주는 대중가요이다. 그러기에 나와 함께 공부한 제자들은 나의 그 노래를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이다.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 요청이 있기에 나는 그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니, 역시 변함없는 노래라면서 학우들이 술잔을 권하느라 난리판을 친다. 바로 그때,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선생님! 약주 한 잔 드셔요.”
나는 뒤돌아보았다. 키가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가 웃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서 있는 게 아닌가? 한 손엔 술잔을 또 한 손엔 맥주병을 들고 있다. 나는 약간은 놀라면서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아이구. 학우님! 감사합니다. 이런 미인의 술잔을 받다니......”
“선생님! 학우님이 뭐여요. 저 미연이여요.”
갑작스러운 아가씨의 출현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미연이란 이름도 얼핏 떠오르지 않았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으로만 여겨졌다. 나의 엉거주춤한 모습과 표정에 여인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다시피 말한다.
“선생님, 저 도연 언니 동생, 미연이여요!”
“뭐? 도연 동생 미연이?”
“네, 선생님 노래 부르시는 모습 보고는 너무도 놀랍고 반가워서,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한 걸음에 달려왔어요.”
반가웠다. 참으로 반가웠다. 너무도 큰 반가움에 마신 술이 모두 깨어 버릴 정도였다. 미연은 직장에 다니면서 방송통신대학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학구열의 소유자이다. 미연을 통해 도연이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도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모님이 소개한 암자에서 스님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가까운 동학사의 승가대학에서 수행중이란다. 동학사에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비구니교육 도량’이 있다. 법명은 정현스님! 찾아가면 언제라도 만날 수가 있단다. 종종 시내에 나와 미연과 함께 만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고집스럽게 고등학교 졸업을 강요하다시피 한 선생님 얘기를 가끔 한단다.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시골 고등학교에서의 옛일들이 차창을 스치는 풍경들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간간히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면서 우리들의 대화 틈새로 비집고 끼어든다. 이미 삼십 고개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도연! 정현스님은 여염집 아낙이 아니었다. 삭발한 머리에 장삼을 걸쳤을 뿐, 미소는 옛날 그대로이다. 눈빛은 별빛을 닮아 있었고, 표정은 어린 아이의 그것을 닮아 있다. 조용조용한 말소리는 나의 팔짱을 끼고 재깔거리던 옛날의 도연이가 아니다. 오히려 나로 하여금 범접하기 어려운, 신성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제 4학년 졸업반이란다. 학인스님들의 대표직까지 맡아 동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단다. 학인스님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던 까닭을 그제야 알만했다.
“그래, 이곳에선 어떤 공부를 하고 있지?”
도연은 환한 표정으로 눈빛을 마주치며 말한다. 이야기에 막힘이 없다. 동학사 앞의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바로 도연의 말소리를 닮아 있었다.
“네에, 선생님! 여러 가지 공부를 합니다. 핵심은 ‘한문불전 원전강독’이구요. 능엄경, 화엄경, 금강경 등의 모든 불전은 물론이구요. 사진촬영, 꽃꽂이, 일어, 영어, 인도와 중국의 불교사 등등 많은 공부를 합니다. 그 어린 시절에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참 잘 했어요. 그 모두가 부처님의 뜻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서 공부를 마치면 다음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지?”
“네, 다른 절로 옮겨서 수행을 계속합니다. 이미 정해져 있어요.”
“으음, 자리를 옮기게 되면 연락이 어렵겠구만.”
“그 모든 것이 속세의 인연인 걸요.”
정현스님과 긴 시간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져, 산길을 걷는 동안 참으로 많은 상념들이 나의 머릿속을 스친다. 도연의 정신적 경지는 이미 나를 초월하여, 계룡산 상봉만큼이나 높아져 있다는 생각이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오늘도 우리의 교육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논쟁과 시행착오(試行錯誤)가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은 결국 어느 선각자의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얼음은 물에서 생기지만 물보다 차고(빙생어수이한어수:氷生於水而寒於水),
푸른색은 쪽풀로 만들지만 쪽풀보다 푸르다(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
우리의 아이들로 하여금 물보다 찬 얼음으로 성장하게 하고, 우리의 아이들로 하여금 쪽풀보다 푸른 물감이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오늘을 살고 있는 이 땅의 기성인들에게 주어진 지상과제이다. 때문에 교육은 그 어떤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교육이 교육 그 자체로서 목적이어야 하는 당위(當爲)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현스님! 그 여승(女僧)은 지금쯤 어느 도량(道場)에서 어떤 수행의 길을 걷고 있을까?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칠월의 태양빛처럼 강렬한 깨달음의 순간을 맞고, 그리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경지에 오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하안거(夏安居) 기간이기도 한 바로 이 칠월(七月)에!
첫댓글 이남천 선생님의 수필 <여승>은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해도 좋을 만큼 생생한 현장감을 담은 사제간의 스토리입니다. 모처럼 진지하게 이 선생님 수필 옥고를 읽었습니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수필이 영화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제간의 갈등 구조를 좀 더 극적으로 복잡하게 각색해서 제자가 스님이 된 이후 불가에서 높은 덕과 학식을 쌓는 공부하는 승려 생활까지 더해지면 성공 예감 명작 영화가 될 듯싶습니다. 속세의 인연과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문학작품의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제목은 좀 더 고민해 봐야할 숙제(?)입니다.
윤선생님!
이렇게 찾아주시고 또 고운 흔적을 남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지난날도 돌아볼 시점,
제 글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수필일 따름입니다.
시나리오나 희곡 그리고 소설 등은 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그저 펜끝 가는 대로 기억의 강가를 산책해 보는 거지요.
아침 저녁 기온이 변덕을 부리고 있습니다.
건강에 더욱 유념하소서.
이선생님!
정말, 영화같은 아름다운 글입니다.
멋진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국장님!
감사합니다.
큰 살림 꾸려나가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셔요.
그러나 국장님의 그 고생 덕분에 문학활동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졸작에 대한 칭찬의 말씀,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창가에 비친 저 하늘처럼 언제나 푸르른 날들 누리소서.
정말 영화와 같은 한 편의 수필을 읽었습니다. 윤승원 선생님 말씀처럼 영상으로 올려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과 교육자의 사명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박영진 선생님!
반갑습니다.
이젠 지난날을 한번쯤 되새겨 볼 즈음이 아닌가 싶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도 그 중에 하나랍니다. 졸작을 곱게 보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현대교육도 70년 역사를 훌쩍 뛰어 넘었는데, 이젠 무언가 달라져야 싶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물론 덜 여문 생각인 줄도 감안하면서요.
늦은 시각입니다.
이 밤도 편안한 휴식 누리소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송창용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