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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三尺誓天 山河動色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길이가 무려 197.5센티미터로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두 자루 칼이다.
칼자루 속 슴베에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이 새겨져 있어 이 칼을 만든 이와 시기를 알 수 있다.
1594년 4월은 전란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때였다.
이때 명나라와 일본 간에 강화교섭이 진행되고 있어 전쟁은 소강상태에 있었지만 전염병과 기근으로 진중에서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일본군과 큰 전투 없이 지루한 대치 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다시 각성하고자 이 두 자루 칼에 그 뜻을 새긴 것이리라.
칼자루는 길이가 60센티미터에 달하며 두께도 직경이 5센티미터에 가까울 만큼 길고 크다.
나무로 만들었으며 붉은 옻칠[朱漆]을 한 어피로 덮고 그 위에 다시 검은 옻칠[黑漆]을 한 가죽끈을 X자 모양으로 묶었다.
칼자루의 끝, 즉 칼머리에 덧댄 뒷매기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좁아드는 원통형이다.
위쪽에는 빗금무늬를 은입사하였고, 옆면에는 모란을 상감하였다.
칼자루와 코등이가 만나는 앞매기는 칼자루를 보강하고 슴베가 칼자루에 단단히 고정되도록 해주는 부분인데 기하학적 무늬를 상감하였다.
칼자루와 칼날 사이에 끼워서 손을 보호하도록 만든 코등이는 국화 문양이 투각되어 있는데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칼날의 길이는 137.5센티미터이며 전체적으로 휘임각이 큰 편이며 단면은 육각형이다.
칼등 쪽에 칼날 중간까지 하나는 폭이 넓고 다른 하나는 좁은 골[혈조血槽]이 위아래로 나란히 하나씩 파져 있다. 혈조 아래에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구절이 대구로 새겨져 황동으로 입사되어 있다.
칼집은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어피를 씌운 다음 다시 검은 옻칠을 하였다.
칼집끝은 모란을 은상감한 무쇠로 감쌌으며 칼집입에도 기하학 문양을 은입사하였다.
칼집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가운데에 두 개의 가락지를 끼웠다.
두 가락지를 걸쳐 칼집 윗몸에 길게 철을 덧씌우고 아래 위 두 가락지 위에 칼집고리를 달고 칼집끈을 묶었다.
칼집끈은 무거운 장검을 매달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두터운 소가죽 위에 삼베를 대고 다시 사슴가죽을 씌운 것이다.
2미터에 달하는 길이나 4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로 보아서 실제 사용한 칼로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두 자루를 만들어 댓구를 이루는 검명을 새긴 것으로 보아 통제사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의장용이거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방에 걸어두고 보았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날카로운 칼에서 나오는 본래의 엄정함에 더해 이순신의 마음이 아로새겨진 검명이 겹쳐 이 두 자루 장검은 묘한 울림으로 오늘도 그 앞에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들어 두고 있다.
충무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미륵산(준뒤)-동항방파제(우).
한산대첩 장소.
1592년(선조 25) 5월 29일부터 제2차로 출동한 이순신의 수군은 6월 10일까지 사천 선창(泗川船艙)·당포(唐浦)·당항포(唐項浦)·율포해전(栗浦海戰) 등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육지에서는 계속 패전의 소식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되자 적은 해상에서도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여 가덕도(加德島)와 거제도(巨濟島) 부근에서 적선이 10여 척에서 30여 척까지 떼를 지어 출몰하면서 육군과 호응하고 있었다.
이런 보고를 접한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은 우수사(右水使) 이억기(李億祺)와 연락하여 재차 출동을 결정하였다. 이때 일본은 해상에서의 패전을 만회하기 위하여 병력을 증강하였다.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제1진은 70여 척을 거느리고 웅천(熊川) 방면에서 출동하였고,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의 제2진은 40여 척을, 제3진의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도 많은 병선을 이끌고 합세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7월 6일 이억기와 더불어 49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출발, 노량(露梁)에 이르러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의 함선 7척과 합세하였다. 7일 저녁 조선 함대가 고성(固城) 땅 당포에 이르렀을 때 적함 대·중·소 70여 척이 견내량(見乃梁)에 들어갔다는 정보에 접하고 이튿날 전략상 유리한 한산도 앞바다로 적을 유인할 작전을 세웠다.
한산도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나갈 길도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 해도 굶어죽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이리하여 먼저 판옥선(板屋船) 5, 6척으로 하여금 적의 선봉을 쫓아가서 급습, 이에 적선이 일시에 쫓아나오자 아군 함선은 거짓 후퇴를 하며 적을 유인하였다.
아군은 예정대로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자 미리 약속한 신호에 따라 모든 배가 일시에 북을 울리며 뱃길을 돌리고, 호각을 불면서 학익진(鶴翼陣)을 펴고 일제히 왜군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거북선의 지자총통(地字銃筒)·현자총통(玄字銃筒)·승자총통(勝字銃筒) 등 모든 화력을 한꺼번에 쏘아 적선을 격파하고 불사른 것만도 66척이나 되었다.
적의 목을 잘라 온 것이 86급(級), 기타 물에 빠지거나 찔려죽은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며, 한산도로 도망친 400여 명은 군량이 없이 13일간을 굶주리다가 겨우 탈출하였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때의 3대첩(大捷)의 하나로, 그 결과 일본 수군은 전멸하였고, 이순신은 그 공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 이억기와 원균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서(陞敍)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산도대첩 [閑山島大捷] (두산백과)
뒤돌아 보고
정자.
충무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미륵산(뒤)-동항방파제.
07 : 36. 동항방파제
07 : 56. 동항.멸치수협
동항. 좌측산이 남망산이고 좌측끝에 198계단이 보인다.
동항.
08 : 04. 디피랑 198계단을 올라간다.
남망산 오름길.
뒤 돌아 본 이순신공원과 동항.
계단을 올라 좌측으로.
08 : 24. 전망대. 통영시내와 미륵산. 한산도를 둘러본다.
전장대에서 한산도.
전장대에서 동항과 이순신공원.
전장대에서 미륵산(좌)-봉평동(우)
전망대에서 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중).
전장대에서 고동산-한산도
우측으로 가면
이런 출렁다리도 있고
남망산정자.
08 : 34. 정자를 지나 남망산(70.3m)정상. 여기있는 이순신장군동상은 너무 조잡하다.
남망산(70.3m)정상.
이순신장군동상은 너무 조잡하다.
디피랑길로 올라가면 .
디지털 테마파크 디피랑에서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비밀공방’
디피랑은 바다가 아름다운 통영의 강구안 동쪽 남망산조각공원에 조성된 디지털 테마파크다. 빛의 아름다움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산책로를 따라 걸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통영의 대표 여행지 동피랑과 서피랑은 2년마다 벽화를 바꾼다고 한다. 디피랑은 ‘과연 동피랑과 서피랑의 옛 벽화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지워진 벽화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곳, 디피랑이다.
돌기둥을 세워 조성한 ‘반짝이 숲’
2020년 10월 16일 문을 연 디피랑에는 1.5km 산책로에 15개 테마 공간이 있다. ‘이상한 발자국’부터 ‘잊혀진 문’까지 이어지는 도입부를 지나면 ‘반짝이 숲’ ‘오래된 동백나무’ ‘비밀공방’ 등을 거쳐 ‘디피랑’에 닿는다. 여기서 지워진 옛 벽화를 만나고 ‘숲속 출구’를 통해 아쉬운 작별을 한다. 단순한 야간 경관 관람이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밤이면 빛으로 물드는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산조각공원 입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통영시민문화회관을 만난다. 통영시민문화회관 벽면에 화려한 영상을 입힌 첫 번째 공간 ‘생명의 벽’이다. 통영 자개 문양을 비롯해 다양한 영상이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티켓을 판매하는 ‘디피랑 산장’이다. 이곳에서 라이트 볼도 판매하는데,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테마 공간 곳곳에 있는 구멍에 라이트 볼을 넣으면 새로운 영상이 나온다.
통영 문화동 벅수가 지키고 선 ‘잊혀진 문’
‘이상한 발자국’ ‘캠프파이어’ ‘잊혀진 문’은 디피랑의 도입부로,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길을 따라 야광 페인트로 형형색색 흔적을 남긴 ‘이상한 발자국’, 디피랑으로 가는 마지막 준비 공간인 ‘캠프파이어’를 지나 본격적으로 탐험을 떠나는 ‘잊혀진 문’에 다다른다. 어두컴컴한 숲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만난 디피랑의 수호신 피랑이가 문을 열어준다. 통영 문화동 벅수(국가민속문화재 7호)가 그 앞을 지키고 있다.
‘오래된 동백나무’ 구멍에 라이트 볼을 넣는 모습
디피랑에서 인기 있는 곳은 ‘반짝이 숲’ ‘오래된 동백나무’ ‘비밀공방’ 등이다. ‘반짝이 숲’은 광섬유와 레이저, 프리즘 볼라드를 이용해 환상적인 길을 연출한다. ‘오래된 동백나무’는 나무 위를 지나는 숲하늘길 길목에 있다. 거대한 동백나무 모형에 매핑 쇼가 펼쳐지고, 갈라진 나무 틈새로 라이트 볼을 넣으면 특별한 영상이 보인다. 거대한 동백나무가 화려하게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비밀공방’의 실감 미디어 쇼
시원한 ‘신비폭포’를 지나면 디피랑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비밀공방’에 이른다. 배드민턴장으로 쓰이던 곳인데, 프로젝터 18대를 이용해 5면 매핑으로 에워싸인 듯한 실감 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통영 나전칠기와 통영 출신 유명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한 영상이 이어진다. 영상이 바뀔 때마다 감탄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이다.
관람객의 목소리가 산울림처럼 들리는 ‘메아리마을’
마이크 시스템을 통해 관람객의 목소리가 산울림처럼 들리게 한 ‘메아리마을’, 무빙 라이트 LED 바와 포그 머신을 이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빛의 오케스트라’를 지나면 드디어 ‘디피랑’에 이른다. 절벽을 연상케 하는 벽체 구조물에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디피랑’ 벽체 구조물에 펼쳐지는 미디어 쇼
라이트 볼을 구멍에 넣으면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지워진 벽화가 드러나, 움직이는 벽화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30분에 한 번씩 특별 영상이 이벤트처럼 나온다. 디피랑의 여운도 잠시, ‘숲속 출구’를 지나면 긴 여정이 끝난다. 헤어지는 공간 끝자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 보고 싶을 거야.” 지금까지 여정이 떠오르며 짙은 아쉬움이 느껴지고, 디피랑 탐험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여행의 목적지, ‘디피랑’
디피랑 운영 시간은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공휴일 다음 날 휴장), 입장료는 어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2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통영케이블카, 통영욕지섬모노레일, 통영어드벤처타워 당일 입장권을 소지하면 50% 할인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랑이와 함께 아름다운 밤을 여행하다, 통영 디피랑 - 추천! 가볼 만한 곳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08 : 47. 남망산조각공원.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
08 ; 54.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산조각공원과 미륵산.
바다의 빛을 곱게 담고 있는 아름다운 통영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자 국내 작가들을 비롯하여 세계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 15점을 전시하고 있는 조각공원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일본작가인 이토 다카미치의 ‘4개의 움직이는 풍경’을 비롯하여, 스웨덴 조각가인 에릭 디트망의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진 기계’와 우리나라 작가인 심문섭의 ‘은유-출항지’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산책 중 생각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여러 작품 중 프랑스 작가인 장 피에르 레이노의 ‘분재’는 직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라 한눈에 주제를 알아볼 수 있으며, 또 동양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 모두 한 번씩 바라보는 작품이다. 공원 중간 소나무 한 그루 뒤로 통영의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에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좌측끝 멀리 충무교-서항 통영여객터미널(좌)-통영항(우). 서포루.
통영항(중)과 뒤로 서포루.
건설중인 홍남동-남망산을 잇는 다리.
09 : 01. 통영항. 남파랑 29시점 안내판. 통영명물 수타꿀빵을 맛보고
사진 중앙 앞쪽에 남파랑길 안내판.
남파랑 29시점 안내판.
1개 \1000.
2편으로 이어갑니다.
출처: https://yul6629a.tistory.com/1391 [산경표를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