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12일 수요일, 맑음.18℃~32℃
좋은 아침이다. 호텔 조식으로 아침을 연다. 야채와 과일이 싱싱하고 다양한 음식들로 풍성한 식사다. 빵 종류가 다양하다. 인도 스타일로 빵에 싸서 음식을 먹는다. 빵 종류도 다양하다. 난(Naan), 로티(Roti)와 차파티(Capati)는 구별이 안 된다. 모두 불에 구워낸 크고 납작한 빵이다.
난은 효모가 들어있는 빵이다. 식사 후반에 세비안(Saviyan)이라는 우유 푸딩을 먹었다. 아주 부드럽고 달콤하다. 버미첼리(vermicelli)푸딩이란다. 버미첼리는 국수 종류다. 베트남 쌀국수 비슷하다. 스파게티보다 가늘다. 푸딩에 이것이 들어있다니 재미있다. 음식 이름을 공부하며 아침 식사를 한다.
음식 이름과 맛을 알아가는 것도 여행이다. 수박과 사과 멜론도 싱싱하고 주수도 진하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하고 제다공항을 다녀오기로 했다. 저녁에는 버스를 타고 리야드로 가는 일정이다. 체크아웃을 한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고가도로를 막 건너니 경찰들이 엄청 나와서 교통통제를 한다. 높은 사람이 왔나보다. 공동묘지를 끼고 있는 도로부터 통제를 하고 있다. 경호원들이 주변에 깔려있다. 공동묘지는 기독교 묘지(Christian cemetery), 또는 비무슬림 묘지라고 불린다.
사우디아라비아 헤자즈 지역의 제다에 위치한 묘지다. 묘지에는 400개가 넘는 무덤이 있다. 1854년도에 프랑스 탐험가들의 서관도 있다. 제다 주재 영국 영사 제임스 조흐랍은 1878년에 묘지에서 13개의 영국인 무덤, 5명의 오스트리아인, 4명의 프랑스인, 2개의 유대인 무덤을 확인했다.
1,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영국, 프랑스 병사들의 무덤도 있다. 묘지는 높은 나무들로 가려져 있다. 표지판도 없다. 묘지는 1541년에 이미 존재하여 오스만-포르투갈 전쟁으로 인한 포르투갈 부상자들을 매장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덴마크 탐험가 카르스텐 니버는 1760년대 덴마크 아라비아 원정 중 그린 1762년 도시 지도에서 처음으로 제다에 '기독교 묘지'를 언급했다.
묘지의 벽은 1810년대 오스만-사우디 전쟁 이후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가 지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 경찰들의 통제보다는 묘지에 눈이 더 간다. 버스 정류장에 또 왔다. 공항으로 가는 L14번을 기다린다. 버스표를 파는 젊은이들과 사진도 함께 찍는다. 사우디 사람들이 고용한 인도계 사람들이다.
버스는 시내를 가로질러 간다. 시티투어다. 주유소도 보이고 사탕수수 주스가게도 지난다. 버스 정류장 부스는 잘 갖추어져 있다. 넓은 공터에서는 햇살과 흙먼지가 가득하다. 도로에는 상가들이 줄지어 있는데 대부분 조용하고 간판만 보인다. 한국타이어 간판이 반갑다.
자동차에 관계된 가게들이 모여 있다. 역사적인 도시 제다, 메카로 향하는 관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메카주의 도시. 메카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해안에 있다. 이슬람 최대의 성지인 메카의 관문으로, 도심 북부의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을 통해 매년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이 성지순례(핫즈)를 위해 거쳐 간다.
제다는 사우디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다. 무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도시가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유구하며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도심 알 발라드는 히자즈 양식의 옛 건축물이 즐비하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북쪽의 제다 경제 도시에는 향후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 될 마천루인 제다 타워가 건설 중인데 높이는 무려 1,007m에 달한다.
사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 중의 하나도 이 도시에 있는데, 압둘라 국왕 광장에 있는 국기게양대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로 높이가 171m에 달한다. 제다는 기원전 6세기경 인류의 흔적이 나타난다. 지명 제다는 아랍어로 할머니란 의미인데 위 그림과 같이 '인류의 할머니' 이브 (하와)가 그곳에 묻혔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지명의 유래인 하와(이브)의 무덤은 12세기 알 이드리시와 이븐 주바이르 등의 지리가들에 의해 이브의 무덤이라고 전승되어 왔다. 그래서 정확히는 '전(傳) 하와 무덤'이다. 1900년경 메카 샤리프가 130m나 되는 무덤 길이를 지적하며 '우리들의 어머니'가 이렇게 키가 컸을 리가 없다며 파괴하려고 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철회하였다.
사우디 령이 된 지 3년이 지난 1928년 무덤에서의 기도를 성인 숭배로 규정해 배격한 와하브파에 의거하여 히자즈 총독 파이살에 의해 파괴되었고 1975년 시멘트로 덮혔다. 다만 현재까지도 '우리들의 어머니' 하와 묘지로 불린다. 제다는 이슬람 이전 시대에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메카의 외항이란 지위도 647년 정통 칼리파 우스만이 메카 주민들의 요구대로 친히 일대를 답사하고 길을 정비한 후 슈아이바 대신 제다를 메카의 외항으로 정하였다. 1517년 제다를 공격하는 포르투갈 함대가 있었다. 당시 성탑은 있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포르투갈 함대가 제다를 포격하였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던 때에 셀만 레이스의 이집트 함대가 나타나 포르투갈 함대를 격퇴하며 제다는 구원되었다. 급하게 철수하느라 미처 수습되지 못하고 남겨진 포르투갈 전사자들의 시신은 수습되어 오늘날 기독교 묘지로 남아있다. 1525년, 오스만 조는 제다에 총독부를 두고 도시의 성벽을 석축으로 보강하였다.
6개의 성문과 6개의 성탑을 갖춘 성벽은 오늘날에도 일부 남아 있다. 18-19세기에 형성된 구도심 알 발라드의 거리가 있다. 구도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세기 중반 이후에 세워졌다. 1900년대 사우디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입성하자 샤리프 후세인과 알리는 각각 요르단과 이라크로 망명하였다.
여담으로 궁의 건설가는 오사마 빈 라덴의 조부인 기업가 모하메드 빈 아와드였다. 1932년 히자즈와 네지드의 왕위가 합쳐지며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출범하였고 제다는 수도 리야드 서쪽 메카 주의 일개 도시로 편입되면서 중요성을 잃었다. 1947년 구도심의 성벽이 허물어졌고 1982년에는 구도심에서 화재가 발생해 중심부의 옛 건물 몇몇이 소실되었다.
다만 1979년 조사 당시 등록된 1천여 고택들 중 대부분은 잔존하였고 1990년 제다 역사지구 보존국이 설립되면서 관리되고 있다. 2020년대 사우디의 관광 장려 정책에 힘입어 제다는 사우디의 주요 관광 도시로 개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