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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1장 인종지학과 초기 수의 조작들 L’ethnographie et ... 7
제2장 이집트 셈칙(셈법), Le calcul égyptien 26
제3장 셈법 과 피타고라스학자들 L’arithmétisme et Pythagoriciens 33-42
제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제4장 플라톤학자들의 수학주의 Le mathématisme des platoniciens 43
단원 A, 플라톤 문제의 지위 Section A. La position du problème platonicien 43
단원 B 플라톤주의 방법 La méthode platonicienne 49
단원 C. 형이상학의 뮈편과 뉘편 Les livres M et N de Metaphysique 61
제5장 형식논리학의 탄생. La naissance de la logique fomelle 71
제6장 유클리드 기하학 La Géométrie euclidienne 84
제7장 분석 기하학 La Géométrie analytique 99
단원 A. 페르마 Fermat 100
단원 B. 데카르트의 보편수학과 물리학 La mathématique universelle de Descartes et la Physique 105
단원 C. 1637년의 기하학 - La Géométrie de 1637 - 113
제8장 데카르트학자들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s cartésiens 124
단원 A. 데카르트주의의 문제들 Les problemes du cartésienisme 124
단원 B. 말브랑쉬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Malebrache 130
단원 C. 스피노자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Spinoza 130
제3권 미분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A. 고대 L’antiquité 153
[1절] 엘레아학파의 제논과 아리스토텔레스 Zénon d’Elée et Aristote 153
[2절] 아르키메데스 Archimède 156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163
La géometrie des indivisibles et l’algorithme leibnizien.
[3절] 비에뜨 와 케플러 Viète et Kepler 160
[4절] 카발리에리 Cavalieri 162
[5절] 파스칼 Pascal. 167.
[6절] 라이프니츠의 발견 La découverte leibnizienne 171
단원 C. 페르마로부터 뉴턴으로. De Fermat à Newton 177
[7절] 접선들의 위한 방법들 Les Methodes pour les tangentes 177
[8절] 무한 급수 Les séries infinies 182
[9절] 뉴턴의 분석, L’analyse Newtonienne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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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미분(무한소)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9장 미분계산의 발견 La découverte du calcul infinitésimal 153
단원 B.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연산법. La géometrie des indivisibles et l’algorithme leibnizien. 163
3절, 비에뜨 와 케플러 Viète et Kepler 160
§99. [아르키메데스를 넘어서, 비에뜨와 케플러. - 원기퉁 또는 술통형의 체적(들어있는 양)을 측정하는 방법의 고안, 입체측적학(입체적분법)의 해명]
비에뜨(Viète, 1540-1603), 케플러(Kepler, 1571-1630), 카발리에리(Cavalieri, 1598-1647)의 작품들의 검토는 어떤 정도들에 의해서 근대인들의 사유가 아르키메데스의 직접적인 사유의 소유를 다시 파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에뜨는 그의 간결함에서 비추어 깊은 암시에 그친다. 그러나 동시대인들에게서는 상실된 체 남아있다. (Polygonoirum circulo ordinate inscriptorum ratio (내접하는 정다각형과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비례 관계)란 제목이 붙어있는 수학적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답변(1593)이란 논문의 제8장에서, 비에트는 원의 사각형화(la quadrature du cercle)의 철학적 어려움들을 흩어버린다고 주장함이 없이, 무한의 고찰[탐구]을 비합리적 질서의 연관들에게로 깔끔하게 넓힌다. 아르키메데스는 포물선의 사각형화에게 비합리적 질서 안에서 무한의 고찰을 적용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일어난 결과만을 여기서 유지 할 것이고, 그 결과는 무한히 생산된 것에 의해 2/π의 표현을 제공할 것이다.
cos 90˚/2 ․ cos 90˚/4 ․cos 90˚/8 …
말하자면
√1/2 √1/2(1+√1/2) √ 1/2(1+√1/2(1+√1/2)… (160)
케플러는 포도주 통의 새로운 입체측정학(1615)에서 실천적 기하학적 문제만을 제시한다. 그 문제는, 즉 톤수(jauge, 정량)라는 동일한 선(線)에서 최대 용량(la capacité maxima)을 갖는 큰술통(les tonneaux)들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둥근 물체들(des corps ronds)의 기하학을 다시 다룬다. 그러나 그는 고대인들의 알려진 고체들에게 일련이 새로운 물체들을 덧붙인다. 이 새로운 물체들은 곡선의 상대적인 어떤 선(線)의 주위에 단일한 절단의 회전에 의해서 생성된다. 그리고 그는 이 새로운 물체들을 사과들, 시트론[레몬]들 등과 같은 친숙한 표현들에 의해 지칭한다. 이 작품이 특징짓는 것은 직접적 방법의 사용이다. 케플러는 숙고하여 아르키메데스의 방법 대신에 이 직접적 방법으로 대체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은 그의 눈에는 불합리로 환원의 방법으로 보였다. 시작에서부터 그는 원에서 무한한 삼각형들을 보았고, 삼각형들의 각각은 밑변으로서 원주의 점을 갖는다: Circuli B G circumferentia partes habet totidem, quot puncta, puta infinitas [원 B G의 원주는, 그것이 점들, 즉 무한 수를 갖듯이 많은 부분들을 갖는다.] 따라서 원의 사각형화는 전체적 삼각형의 표면을 규정하는 데 있을 것인데, 그 표면은 원주의 점들의 무한한 수를 토대로 삼는다. 이로부터 그는 점점 더 복잡한 문제들의 근사치 해법으로, 증명함이 없이 그리고 그 [해법으로] 이행에서 무한소 수학의 가장 풍부한 원리들 중의 몇 원리들을 지적하면서, 직관에 의해 고양될 것이다. 특히 이런 명제는 16세기에 오레슴(Nicole Oresme, 1320년경-1382경)에게는 이미 알려졌는데, 이것들의 최대치(maximum)의 주위에서 크기들의 변화량들은 감각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Circa maximum vero utrinque circumstantes decrementa habent intio insensibilia.[최대값 주위에서는 양쪽의 변화량이 처음에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161)
사람들은, 과학의 고전적 철학과 단절하기 위하여 아르키메데스에 의해 얻어진 결과들을 권위있게 하는 케플러의 과감함은 고대인들의 기하학자들을 당황하게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 앤더슨(Anderson, 1582경–1620경)은 비에뜨의 유고작품의 편집자였는데,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옹호(1616)론을 써서 케플러의 아르키메데스의 보충론(1615)에 응답했다.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르키메데스가 힘든 증명작업의 마무리를 확립하는데 자기의 재능(才能)을 부어넣었다는 것을 케플러가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것을 앤더슨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규정된 길이의 직선과 더불어 원주처럼 곡선의 동등가를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성의 법칙들에 모순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탐구의 시작부터 원과 무한한 삼각형들[다각형]을 동일시할 수 없다. quae mens capiat hujusmodi Matamorphoses? [정신이 이와 같은 변환(변신)에 대해 무엇이라 이해할 수 있는가?] (161)
다음을 덧붙이는 것이 알맞을 것 같다: 이런 소송 불수리 사유(la fin de non-recevoir, 거절)는 근사한 값어치들에 의해, 즉 증명작업에서 공백[누락]된 것의 고백들에 의해 확정될 것 같고, 또한 케플러가 포도주 통의 새로운 입체측정학(1615)의 강의에서 두 배로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논문이 연관을 맺는 것은 새로운 입체측정학(1615)에 있다. 그 논문에서 갈릴레이의 정신으로부터 전적으로 영향을 입은 한 과학자[케플러]가 아르키메데스로부터 알려진 결과들에 첨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하학자체를 “개선한다(promouvoir)”고 주장한다: Geometria indiuisibilibus continuorum nova quadam ratione promota (Bologne, 1635).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 나눌 수 없는 양의 연속체 대한, 어떤 방식으로 개선한 새로운 기하학, 1635.] (161)
4절, 카발리에리 Cavalieri 162
§100, [카발리에리의 무한소 계산: 적분법의 시초]
한 저술의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을 따라가는데 하나의 커다란 난점이 있다. 그 작품에서 저자[카발리에리]는 새로운 문제들을 제시했고 그리고 그 문제들을 새로운 방법의 도움으로 연구했는데, 그는 거기에 적당한 상징[기호]들을 결합하지 않고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다. 마리(Maximilien Marie, 1819-1891)가 말하기를, “만일 사람들이 모호성의 상들을 수여한다면, 카발리에리는 이의 없이 일등상을 쓸어가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여기까지 전념해왔던 불가분적인 것들에 대한 기하학의 근본적 사유에 관한 점에서, 이제 곧 따라갈 몇몇 설명들은 이것으로부터 이 판단의 엄격성에 대해 호소해야 할 것이다. (162)
카발리에리의 성찰들은 기하학적 도형들의 생성[창조]에 관한 이론적 반성에서 그[성찰들의] 기원을 갖는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관점에서, 원기둥은 평행사변형에 의해 생겨난다. 원뿔은 삼각형에 의해 생겨난다. 그러나 이때 별종(une anomalie) 형태도 나온다. 삼각형의 표면은, 동일한 밑변과 동일한 높이의 평행사변형의 표면의 절반이다. 원뿔[원추]의 체적은 원기둥 체적의 1/3이다. 그가 발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카발리에리는, 아르키메데스의 무한소 탐구들을 지배했던 정신에 완전히 부합하는 입체들의 생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작업을 제안한다. 원기둥과 원뿔은 동일한 비례를 가질 것이고, 그것들의 생성적 요소들을 마치 축을 따라서 높이로 잘려진 것처럼 생각하는 대신에, 만일 사람들은 이 요소들을 마치 동등거리의 평면들에 의해 밑변에 평행하여 잘려진 것처럼 고려할 것이다. (162)
이론적 원리로부터 새로운 기술이 솟아날 것이다. [원의] 사각형화(quadrature)와[공의] 육면체화(cubature)의 문제들은, 밑변에서 평행하는 단면들에 의해 제공된 특징적인 요소들의 도움으로, 면적들과 입체들을 조성하는데(composer)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알려진 크기[양]들과 알려지지 않은 크기[양]들의 연관을 규정한데 있을 것이다. 제2권 명제 24의 고전적 예를 들어보자. 평행 사변형 AC EG(도형, 7), 우리는 대각선 EC를 긋는다. 우리는 한편으로 삼각형 AEC에서 RT와 같이 AC에 평행하는 직선들을 고려할 것이고, 다른 한편 RV처럼 평행사변형을 가로지르기 직선]들을 고려 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일체로서 파악된 모든 직선들 각각의 사각형들 사이에 연관을 규정하고자 힘쓴다. 중선(la médiane, 중간선) BF를 그리자. 요약하기 위하여, 조이텐(1839–1920)이 행한 것처럼, RT를 x라, TV를 y라, AC를 a 또는 2b라, ST를 z라 지칭하자. 우리는 다음 식을 얻는다.
x = b + z, y = b - z ; x2 + y2 는 2b2 + 2z2 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눌 수 없는 것들(les indivisibles)의 계산에 대한 기초적인 주목(le remarque)이 있다. x(les x)란 삼각형 ACE를 구성한다. 그런데 y (les y)도 삼각형 CEG를 구성하고, z(les z)는 두 삼각형들 BCM 와 EFM을 구성하고, b는(les b)는 평행사변형 ABEF를 구성한다. [한편] 만일 우리가 상징[ACE]에 의해서 x(les x)의 사각형들을, 상징[CEG]에 의해서 y(les y)의 사각형들을, 상징[CEG] + [FEM]에 의해서 z(les z)의 사각형들을, 상징[ABEF]에 의해서 b(les b)의 사각형들을, 지칭한다면, 우리는 x2 + y2 = 2b2 + 2z2로서 아래의 형식[정식]을 얻는다.
[ACE] + [CEG] = 2[ABFE] + 2[BCM] + 2[FEM]
이 정식[형식]은 2[ACE] = 2[ABFE] + 4[BCM]로
또는 [ACE] = [ABFE] + 2[BCM]로 환원 된다.
ABFE가 평행사변형 ACGE의 절반이기 때문에,
[ABFE] = 1/4 [ACGE] 이다; - [아무래도 1/2이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한편, 삼각형 BCM이 두 배의 빗변을 지닌 삼각형 ACE에 닮았다면, [BCM]과 [ACE]의 연관은 2의 3승에 의해 표현된다. 따라서 [ACE] = 8[BCM]이다. [ACE] = 1/4[ACGE] + 1/4[ACE]라는 방정식으로부터 마지막 표현이 나올 것이다.
[ACE] = 1/3 [ACGE]. (163)
이런 표현은, 순수하게 기하학적으로 발언된 공리의 증명작업을 제공한다. 이 표현은 정의된 적분(l’intégrale definie)의 형식을 제공한다.
∫0a x2dx = 1/3 a2 .
그러나 이 형식은 자연적으로 [카발리에리의] 중보된 기하학(1635)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가 전체적 크기[양]을 요소적인 부분들에 연관하여 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카발리에리는 적분법의 문제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여기서 부요소적인 부분들이란 무한소들(infiniment petits), 즉 카발리에리의 표현으로 불가분적인 것들(indivisibles)이다. 반대로 마리(Maximilien Marie, 1819-1891)의 표현에 따르면, “무한히 작은 요소들의 유한한 합[합계]의 평가는, 유한한 요소들의 무하한 두 합의 연관에 의해서, 무제한 수로 대체되었다.” 마리는 덧붙이기를, “이런 선호는 쉽게 설명된다… . 연관 항들의 유한한 요소들은 도형으로 그려질 수 있다, 반면에 합[합산]의 무한히 작은 요소들은 그려질 수 없다.” 이 주목[표현]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주목은 새로운 기하학의 소위 말하는 과학적 가치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철학적 독단론의 비판가들에서 다루어져야만 했던 것을, 경이롭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164)
비교의 방법은, 문제의 항목들을 제시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무한의 고찰을 계산들에서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다. 카발리에리는 이점에 관하여 완전히 깔끔하게 표현했다. “Dum considero omnes lineas, vel omnia plana alicuius figuræ, me non numerum ipsarum comparare, quem ignoramus, sed tantum magnitudinem, quæ adæquatur spatio ab eisdem lineis occupato, cum illi congruat, et quoiam illud spatium terminis comprehenditur, ideo et earum magnitudo est terminis eisdem comprehensa, quapropter illi potest fieri additio, vel substractio, licet numerum earumdem ignoremus; quod sufficere dico, ut illa sint ad invicem comparabilia.”
그러나 그를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분석적 도구를 소유하지 못하여, 카발리에리는 기하학적 직관의 지평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그는 자신이 고려하여 밝히기를 원했던 문제를 제기했다. 상상작용은, 요소들과 동시에 그것들이 조성하는 천체적 도형을 스스로 재현하기를 애쓰지 않고서는, 또 어떻게 요소들이 그것들이 구성하는 전체에 연관에 의해 허용되는지를 보도록[알도록] 요청함이 없이는, 비교의 요소들 위에 멈출 수 없다. 연속의 조성작업(la composition du continu)의 고전적 질문이, 카발리에게 그 자신에 상관없이, 카발리에리에게 부과되었다. 이로부터 7권의 「서문」이 소개한 특이한 광경이 나온다. 한 번 더 항의한 후에도, 그의 방법은 불가분적인 것의 도움으로 연속을 조성하도록 그를 전혀 강요하지 않았다. 카발리에리는 자신의 언어가 모호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심지어 그는 그 언어에 더 어려운(durior 더 난해한)이라는 부가어를 적용했다. 뉴턴(1642–1727)은 그의 수학의 원리들(1687)에서 이 용어를 재생산함으로서 이 부가어를 유명하게 했다. 이것을 읽는 기술자들의 의식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그는 무한의 고찰 전체로부터 해방시킨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이런 의미에서 분할할 수 없는 것은 집합적으로(collectivement)가 아니라, 오히려 개별분배적으로(distributivement)으로 파악될 것이다. (165)
§101 [카발리에리의 적분법에 공헌]
이런 진술들에서 아주 외적이고 아주 명백한 이중성은, 새로운 기하학이 이제껏 유지했던 균형에 대해 비안정성을 드러냈다. 이리하여 이 이중성은 철학자들의 조심성을 증가시켰다. 역학의 지평위에 아르키메데스의 방법들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던 굴딘(Paul Guldin, 1577-1643)은 카발리에리가 고대인들의 기하학을 넓히는 대신에 그것을 “전복시켰다”고 비난했다고 할 때, 그는 자기로서는 양식(le bon sens)을 가졌다고 확신했다. 그로서는 동질성의 근본적 용어를 어느 정도 간략한 정식들로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동질성의 용어는 많은 선들을 가지고, 아무리 그 선이 크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표면[면적]을 조성하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용어는 마찬가지로 유한에서 무한으로 이행을 금지한다.
카발리에리의 응답은 기술적으로 모든 응답들 중에 최상의 응답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리가 그것을 관찰하였듯이, 굴딘을 멈추게 했던 난점들의 해결책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만일 카발리에리가 굴든의 반대들에 대해 그의 고유한 원리들의 내속적 명석함을 대치하는 것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철학적으로 그 응답은 만족되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통속적 상상작용의 지평위에 스스로 위치시키고자하는 유혹에, 그 자신도 또한, 저항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비교들에서 오는 명백한 조잡함과 부정확성이 분할 불가능한 것들의 계산에 대한 합법성을 의심하게 하는 필연적인 효과로서 갖는다는 것을, 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표면들이 마치 평행하는 실들로 형성된 천들[직물]과 같다거나, 입체들이 마치 평행하는 종이장들로 형성된 책들과 같다고 한다. [한편] 이 실들을 또는 그것을 두께에서 종이장들을 빼면서, 다른 한편 공간의 유한한 할당(une portion) 속에서 그것들의 무한성을 재통합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이 실재성에게 두 번이나 모순되게 말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는가? (165)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들추어낸 난점들은 카발리에리의 진실한 사유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분할 불가능한 것들의 계산에 대한 독단적인 해석을 밀쳐내었기 때문이다. 이 해석에서 평면들의 총체성은, 거리낌 없이, 고체와 동일할 것이다.
분할 불가능한 것들의 무한성에 대한 표상작업은 실천적으로 기하학의 기술을 위해서, 연속의 표상작업과 동등가치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분할 불가능한 것들의 합에서와 다른 것이 연속 속에 있다고 강조한다면, 또한 사람들이 주장한다면, 그것은 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태적(statique) 관점에서 동태적(dynamique) 관점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는 마치 수베(Barthélemy Souvey, 1576-1629)가 자신의 직선과 곡선의 비율론(파두아, 1630)에서 그것을 이제 막 행했던 것과 같다. 사람들이 직선이 그것의 극단들 중의 한 극단 주위를 도는 운동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은 시간의 각 순간 위해서 원주의 한 점에 대한 묘사를, 순간들의 전체성을 위하여 점들의 전체성을, 운동의 전체성을 위하여 선들의 전체성을 얻을 것이다.
게다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이 선적인 또는 표면적인 분할 불가능한 것들 사이에서 직관에 의하여 표출된 연결성(la connexité)을, 또한 2 또는 3차원에서 전체적 도형을, 재현한다는 것인데, 그렇기는 하지만, 분할 불가능한 것들의 계산의 조정[취급]에서 그 수학자가 실증적이고 형이상학적 형식 하에서 무한을 전혀 개입[교차]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 방법의 본질적인 것은, 평면이든 입체이든 각각의 도형을 다루게 해주는 생성적 요소들의 비교에 있다. 즉, “in ratione omnium suorum indivisibilium collective et (si un iisdem reperiatur una quaedam communis ratio) distributive ad invicem comparatorum.”[모든 불가분량의 비(ratio)를 집합적(collective)으로 고려하고, (만약 그들 사이에 공통된 비가 발견된다면) 서로 상호간에 분배적(distributive)으로 비교했을 때이다.] 만일 사람들인 그것들의 무한성을 고찰하라고 더 많이 호소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것들의 수를 고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카발리에리에게서 무한은 부정적 질서의 고찰일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기하학 속에서, 대수학자들이 그들의 방정식들에서 “표현할 수 없는” 제곱근들에게 부여하던 보조적 역할을 한다. 대수학자들은 이 방정식들 위에서 곱셉들(multiplications)과 나눗셈들(divisions)을 실행한다. (166)
카발리에리의 마지막 [말]단어는 기술적 문제들과 철학적 의문들을 구별하는 데 있다. 그의 여러 다른 방법들은 이 문제들의 해결에 기여했고, 이런 의문들에 관하여 토론과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는 약간 우울하게 이렇게 쓴다. “in his enim jurigiis, et disputationibus potius philosophicis quam geometricis mihi fere semper aegrotanti, nequaquam quod superest tempus inaniter terendum esse censeo” [AI: 왜냐하면 이러한 논쟁 속에서, 나로서는 거의 항상 기하학보다 오히려 철학에 찌들어서,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전혀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5절, 파스칼 Pascal. 167.
§ 102. [분할분가능성에 대한 카발리에리(1598-1647)와 메레(1607-1684)의 산술학적 규칙들과 공간적 표상의 법칙들 사이의 대립에 대한 파스칼의 경험적 추론. ]
이렇게, 불투명한 형이상학의 자욱한 안개 속에서 무한소의 탐구들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은 전설이다. 반대로 카발리에리의 기하학의 도래는, 이미 실증정신이라 불러야할 것의 승리를 표시한다. 수학자들은 분할불가능한 것들의 계산의 합법성에 관해서도, 이것들의 견론들에 대한 진리에 관해서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물선의 치수/차원」과 「쌍곡선의 날카로운 입체」에 대해 작업하는데, 사람들은 이 작업들에서, 고대인들의 방법의 빈약함과 불모성에서 연민에다가, 새로운 방법에서 열정을 뒤섞어서 보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방법이란 “과학적 증명작업의 진실한 방법이며 자연 자체에 속하는 방법”이다. Verus Verus est demonstrandi modus scientificus, semper directus et ipsi naturae germanus. [과학적 증명의 진실한 방법은 항상 자연자체에 직접적이고 내속한다.] 지적인 추상작업의 풍부성은, 이것으로부터, 솟아나는 기대하지 않은 결론들에 의해 표출되었다. 그의 기하학적 연습들의 마지막 쪽들에서, 카발리에리는 다음의 문제를 해결했었다. 즉, “Solidum infinite longum aequale finito per indivisibilia facile exhibere.” [무한히 긴 입체가 유한한 것과 같음을 불가분량을 통해 쉽게 보여준다.] 다음 차례로 톨리첼리는 카발리에리의 증명을 다시 다룬다. “Non solum ipsum Theorema inexcogitatum et, ut ita dicam, paradoxicum erit, sed etiam demonstrandi ratio inusitata, et penitus nova.” [이 정리 자체는 생각되지 않은 것이고, 또한 말할 수 있다면 역설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증명의 방법은 일상적이지 않는 전혀 새로운 방법일 것이다.] (167)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정이 있으며, 새로운 기하학의 파라독사들이 사상가들의 저항을 일으킬 것이다. 그들도 또한 실증주의의 선구자들이지만, 아마도 그들은 혁신적인 이론을 고려해서 사상가들의 체계적인 불신을 능가하여 앞서갔다는 이런 의미에서 특히 선구자들이다. 가상디(1592-1655)는, 스스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고 있는 추상작업가들을, 즉 카발리에리와 토리첼리를 고려하여, 풍자를 증폭하였다. “Profecto proinde, ut suum illud Regnum in quo tam miranda, jucundaque excogitant, tueantur, id cavent ne aut materiae quidpiam intermisceant… aut admittant continuum ex indivisibilibus quasi ex quibusdam partibus numero finitis componie” [따라서 진실로 그들이 훌륭하고 즐거운 것을 상상하는 그들의 왕국[용역]에서 그들은 어떤 물질 속에서 섞이지 않게 주의 하는데 … 연속적인 양이 불가분의 부분들로, 또는 유한한 수로 조성되기를 허용한다.] 벨(Pierre Bayle, 1647–1706)은 시돈의 제논(Zénon de Sidon, 전155-전75)에 관한 한 꼭지[논문, 항목]의 각주들에서, 가상디의 “천재적인 관찰”을 강조하고, “수학자들의 소위 말하는 증명작업들의 허영을 대한” 예를 부각시켰고, 그 예로서 수학적 회의주의의 지지점들을 만들었다. 그는 거기에서 분할불가한 것들의 기하학에 대해 반대하는 편지의, 즉 기사 메레(Méré, 1607-1684)가 블레즈 파스칼에게 보낸 편지의 긴 발췌문들을 첨가했다. (168)
벨의 한 꼭지[사전의 항목]가 불러온 권위들은, 불가분들의 계산이 17세기의 사상에서 열어놓은 위기의 성격을 규정하며, 그리고 파스칼은 그 위기의 이론가가 되었다. 이법(la raison)에 찬성하거나 또는 반대하는 방편을 취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사람들이 보편 연역법의 스콜라적 이상을 거부했던 이후에야[중세 이후], 또한 사람들이 완전한 방법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인간의 무능을 제시했던 이후에야[1859년 이후], 모든 용어들이 정의되고, 또한 모든 원리들이 증명된다[증명을 시작해보았으나 다 된 것은 아니다]. 이런[용어들과 원리들] 것들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지평 자체 위에서, “강한 정신”의 오해로 그리고 아이러니[파라독사]로 부딪혔던 것이다. 여기에 메레가 작은 것의 무한(l’infini de petitesse, 무한소)에 관한 파스칼의 관념들을 받아들인 환영(歡迎)[수용]이 있다. “당신에 이것에 대해 나에게 쓴 것이, 당신이 우리들의 토론에서 이것에 대해 나에게 말한 모든 것보다 나를 양식으로부터 훨씬 더 멀어지게 한 것 같다. … 나는 그것[무한소]이 의문 속에서 약간의 무한을 들어가게 하자마자 그 의문은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당신에게 배운다. 왜냐하면 정신은 스스로 혼란되고, 혼동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당신의 증명들보다 더 잘 자연적 감정에 의해 진리를 발견한다.” 그런데 가상디 자신보다 더 원자론자인 메레에 따르면, 자연적 감정은 물리적 실재성으로부터 구별된 수학적 추상작업과 어떠한 자리[위치]도 일치하지 않는다. 파스칼은, “공간이 어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또한 그것의 최소한을 고려할 수 있고 또한 어떠한 너비도 더 이상 갖지 않는 불가분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지라도, 항상 무한히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시작하지 않는가? 이때부터 만일 기하학자가 불가분(un indivisible)을 마치 그의 계산의 요소처럼 제시한다면, 기하학자는 그것을 마치 최소치(un minimum)처럼 다룰 권리가 없으며, 하물며 마치 현존 없음(un néant d’existence, 비존재)처럼 다룰 권리가 없다. 따라서 메레의 양식은 대립되어 있는 것 전체를 거부할 것인데, 불가분들의 계산에서 산술학의 일상적 규칙들과 더불어 이든지, 예를 들자면 이런 명제, “사람들이 원하려는 한에서 곱해진 하나의 불가분적인 것은 그것[불가분적인 것]이 단지 하나의 유일한 분가분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너비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멀리 있다.” - 공간적 재현작업의 법칙들과 더불어 이든지. 예를 들자면 [이런 명제], “불가분적인 것들의 언어, 즉 선들의 합 또는 면들의 합 … 이것은 불가분들을 학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기하학인 것 같지 않다. 이들은 선들의 무한정한 수에 의해서 평면을 표현하는 것이 기하학에 반대하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169)
이것에 대해 파스칼은 일종의 경험적 추론에 의해 응답한다. “만일 공간이 어떤 유한한 수로 불가분적인 것들을 조성한다는 것이 진실이었다면, 이런 귀결에 이를 것이다: 두 공간들은, 그 각각이 모든 변들에서 동등하고 같을 것인 직사각형일 것이고, 하나는 다른 것의 두 배이라면, 두 공간들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의 불가분들의 수의 두 배인 불가분들의 수를 포함할 것이다. 파스칼이 그의 반대자들에게 말하기를, 이 공간들이 이런 귀결을 잘 유지한다면, 즉 이어서 이 공간들이 점들을 사각형들로 배열하는데 이것들이 이들 중의 두 곳에서 – 두 곳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의 점들의 두 배를 갖는 - 만나게 되는 데까지 배열하기로 실행된다면, 그러면 세계의 기하학자들에 속하는 모든 것을 그것[공간들]들에게 양보할 것이다.” (169)
§ 103. [파스칼의 적분 해결법은 지성의 추론이 아니라 심정의 직관인데, 그는 이런 해법을 직접적이고 경험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법(la raison)은 기하학적 원자론에 내속하는 모순을 정립하기 위하여 여기에 개입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런 부정적 기능(cette fonction)은 이것의 재원들을 소진한다. 그에게는 동등하게 접근할 수 없는 이 두 용어[이법, 기능]들 중에, 하나는 모순이고 그 귀결로서 거짓인 것에 관한 것이다. 그 하나는,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진리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물리학자의 실험적 작업에 비교할 수 있는 또는 은총의 작용아래서 크리스트교인의 감정에 비교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이법의 영역보다 더 상위인 위상[공간]에서 과학의 진실한 원리들을 재정립하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파스칼의 수학적 철학에서 어떤 실증주의와 어떤 신비주의의 동맹이 나오고, 이 신비주의는 우리의 동시대인들의 신비주의 보다 더 많은 것을 유혹했다. 무한 분할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직접적인 표상작용을 회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처럼 말하는 것은 진실이다. “무한히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믿지 않는 기하학자는 없다. 사람들이 기하학자일 수 없듯이, 영혼 없는 인간이라는 원리도 없다.” (169)
불가분이라는 수학적 용어는 소위 말하는 관념이 아니다. 분가분 없이는 이 용어는, 만일 과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심장의 사유(une pensée du coeur, 심정의 사유)이다. “우리는, 이법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심정에 의해서도 진리를 인식한다. 이 후자의 종류로부터 우리는 첫째 원리들을 인식한다. 그리고 출반점이 아닌 추론이 이 원리들을 무너뜨리기를 시도하는 것은 헛되다.… 그리고 심정과 본능의 이런 인식들 위에서 이법이 지지를 받아야만 하고, 그리고 이법은 거기서 자기의 모든 담론의 토대를 놓아야만 한다. (심정은 공간에서 세 차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수들은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어서 이법은 증명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두 배가 되는 직사각형의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불가분적인 것의 용어를 적분 문제에 적용함에 있어서, 심정(le coeur)이 또한 개입한다. - 또는 사람들이 오늘날 직관(l’intuition)이라 부르는 것이 개입한다. 이때는, 사람들이 경험 속에서 주어진 대상에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소위 말하는 직관적 표상의 대립에 의해서, 암묵적이고 종합적 관점을 지칭한다고 이해할 때이다. 반면에 증명적 진술에서 그들의 무한소 발견에서 고대인들이 실행했던, 소진의 방법은 도형들 그 자체들에 근거한다. 이러한 것들은 마치 도형들이 시선에 제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분적인 것들의 방법이 주어진 도형 대신에 보다 낮은 차원을 갖는 무한한 요소들의 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대체는 기하학적 소재에서 세속적이고 유전적인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런] 추문인데, 기하학의 지성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단순하고 자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고대인들의 방법과 카발리에리(또는 로베르발)의 방법 사이에서 단지 말하는 방식과는 다른 차이를 갖는다. 전자의 방법은 사물을 재현하고 완전히 표현한다. 둘째의 방법은 암묵적으로 이용된다: “사람들이 선들의 무한정한 다수의 합(la somme d’une multitude indéfinie de lignes)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동등하고 무한정한[비결정적인] 몫(할당)들에 의해서 항상 어떤 직선을 참작하는데, 이 할당들은 이 직선으로부터 배가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인 이런 직선을 표현하지 않을 때(동등한 할당들에 의해서, 사람들은 그 직선으로부터 할당들이 배가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것은 분할들로부터 나온 선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이해해야하며, 그 선들로부터 분할들이 생겨난다. 마치 예에서처럼… 여기서 반원의 배열들인 ZM은 직경[지름]의 동등한 분할들로부터 태어나며, 이때 할당[몫]에 의한 직선이 어떤 선인지를 표현함이 없이도, - 사람들은 이 선으로부터 몫들이 배가 되기를 원하는 데도 - 사람들은 단순하게 선들의 합(la somme des lignes)을 ZM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이것인 직경 자체이라고 이해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자연적인 것(le naturel)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다른 선의 몫들에 의해 그 몫들을 배가하기를 원한다면, 그때는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추론적 인물들에게 경고했을 때,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이런 암묵[암시]는 기하학적 실천을 당혹함으로부터 구별해내기기에 충분하다. 이런 당혹[황당함]에서 고대인들의 “소심함”이 직접적이고 풍부한 발견의 방법을 구성하기 위하여 암시를 내던졌다. 암시는 근대 과학자에게서 이중 적분들(intégrales doubles)의 용법을 가정했을 문제들을 파스칼에게 해결하도록 허락한다. (171)
결국, 파스칼의 「설득술」(1658?)에서 주목할 만한 표현에 따르면, 만일 사람들이 기하학의 가설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상상작용을 충분히 갖는다면, 증명작업은 뒤따라 나오고, 이 증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귀결들은, 소위 말하는 우리의 양식이 또한 소위 말하는 우리의 자연[본연]이 겪는 어떤 혐오를 받아들여져야 했다. 평행론은 새로운 기하학의 역설들과 크리스트교의 겉보기 불합리성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매개적으로 스스로 무릎을 꿇은 후에, 그에게 자유시인의 정신과 심정을 종속하도록 신에게 기도한 후에, 파스칼이 쓰기를, “무한에 결합한 통일성[단위]은 그것[무한]에 아무것도 증가시키지 못하고, 게다가 일 피트[한 자]도 무한한 척도[양]에 더 첨가되지 못한다. 유한은 무한 앞에서 무화되고, 순수 무(un pur néant)가 된다. 이리하여 가 된다. 이리하여 우리의 정신은 신 앞에 있다. 이리하여 우리의 정신은 신의 정의 앞에 있다. 우리의 정의와 신의 정의 사이에 큰 불비례가 없는 만큼이나, 통일성(l’unité)과 무한(l’inini) 사이에도 불비례가 없다.” 포르-르와얄에서 행한 「강연」을 위해 던져진 그의 각주들에서, 사람들은 이런 연속적 관념들을 발견한다: “이해할 수 없어요. -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존재로 남아있지 않아요. 무한 수. 무한 공간은 유한에 동등해요. - 신이 우리 안에서 통합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요.” (171)
6절, 라이프니츠의 발견 La découverte leibnizienne 171 §104. §105.
§104 [파스칼의 적분 계산의 직관적인 불가분의 양에 대한 계산에서, 라이프니츠는 무한소의 합을 계산하는 방법으로 이행: 즉 닮음은 합리적인 것에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이행에서 존속하는 것처럼, 유한에서 무한소로 이행에도 존속. ]
불가분적인 것들에 대한 기하학의 예, 그것은 기하학의 태어나는 시기에는 무한소 계산이었다. 그 예는 파스칼 같은 천재에게, 현실 철학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한 주제를 구별하도록 한다. 사유의 내부에서 충돌은 이법에도 똑같이 낯선 역량들(des facultés)로부터 온다. 한편으로 감관들의, 상상작용의, 관례의 “속기 쉬운 권능들(잠재력)”이 있다. 다른 한편 본능의, 감정의, 신앙의 상위 권능들이 있다. 따라서 파스칼의 수학적 철학이 속하는 역사적 찰나의 연구는 오늘날 토론되어 있는 문제들의 밝힘 작업에서 중요하다. 시간 거리상 20세기 이상을 지나서 엘레아학파의 제논의 논증을 다시 다루는 르누비에(Renouvier, 1815-1903)의 유한주의(le finitisme)는, 경계들의 고정성을 또한 허약성을 제시함에서 자연적인가? 양식(le bon sens)이 그리고 표상적 자료의 요청이 이 경계들을 과학적 약진에 부과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직관(l’Intuition)은 명시적 담론의 틀들 속에 갇히게 내버려 두기를 거부하고, 분석학과 논리학에 예상참여 한다. 단지 이 직관이 과학의 균형을 보장하는 능력 갖지 않는가? 왜냐하면 직관만이 사유의 진보와 사물의 자연 사이에 접촉을 유지할 특권을 갖기 때문이다. (172)
기술적으로 질문이 다음 방식으로 제기된다. 점치기(la divination, 예측)는 표면적 요소 대신에 선형의 요소를 대체하게 허락하고, 또 직선의 합(合)처럼 면적을 다루기를 허락하는데, 그 점치기는 무한소 계산의 원리들 안에 소위 말해 밝히고 작동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가? 그리고 파스칼에 의해 카발리에리에게 빌린 불가분적인 것들의 기하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요약된 형식들은, 완성된 과학의 담론에서 근본적 용어들의 표현이 될 것인 무엇으로부터, 단지 언어의 협약적인 약어들에 의해서만 다를 뿐인가?
또는 반대로 정신의 종합적 관점에 함축되어 있는 모든 것을 분간해내는 방편이 [한편] 매우 직접적이고 또 풍부하여, 그 관점은 그 방편에 지지받는 자에게 나타나며, 그리고 [다른 한편] 각 요소를 명시적이게 하고 또 그 자에게 적합한 표현을 발견하게 하는 방편이 과학의 한계들을 뒤로 물리는 것을 귀결로서 삼지는 않을 것인가? 그리고 그 방편은 사유의 내적 동력학을[역동주의를] - 그 동력학 위에 직관적 예상참여의 암시들이 너울을 남겼었는데 -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지성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또 진보라는 자기 재능을 회복하는 것이 지성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정립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가? (172)
수학의 역사가 제기한 이런 질문에, 응답은 특이한 정확성으로 되어 있다. (172)
파스칼이 세상을 뜬 후(1662년) 10여년이 지나서, 호이겐스(Huyghens, 1629–1695)가 파리에 막 도착했던 젊은 독일인에게, 즉 라이프니츠에게 데똥빌[파스칼 필명]의 쓴 글들을 빌려주었다. 「4분원의 싸인론(Traité des sinus du quart de cercle, 1658)」을 읽고서, 라이프니츠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나는 거기서 저자가 보지 못했던 빛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계시(l’illumination, 빛의 발현)의 기회였던 이행(le passage)이 있고, 이 이행에는 차이(differentiel, 차등) 계산의 기원이 있다. 파스칼은 다음 명제를 발언 한다: “4분원 ABC가 있다고 하자(도형 9). 이것의 반지름 AB는 축이라고 하고, 이것에 수직(직각)으로 된 반지름 AC는 밑변이라고 하자. 호(弧) 안에 있는 어떤 점을 D라 하자. 이 호로부터 반지름 AC 위에 사인(sinus) DI가 그어진다. 그런데 접선(la touchante) DE 안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파악된 점들[점들로 된 선분 E]이 있으며, [접선 E와 관련하여] 반지름 AC 위에 직각으로 그려진 선들 ER이 그려진다. 나는 말하건 데, 사인 DI와 접선 EE가 포함된 직각은 밑변의 할당(평행선들 사이에 닫혀있는)과 반지름 AB가 포함된 직각과 동등하다.” 증명은 무매개적인데, 만일 사람들이 “DIA와 EKE가 닮은 삼각형을 고려한다면, EEK 또는 EDI의 각이 DAI의 각과 동등하다” 오직 파스칼의 눈에는 이렇게 증명된 명제가 밑변위에 세워진 수직들의 “합(la somme)”[과 같은] 공리를 확립할 운명에 처한 보조정리(un lemme)일 뿐이다. 또는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사분원에서 어떤 호(弧)의 사인들은 반지름에 의해 배가되는 사인들(les sinus)의 극단들 사이에 포함된 밑변의 몫에 동등하다.” 따라서 삼각형 EKE의 고려는, 일상적 기하학에게 불가분들의 기하학의 차용일 뿐이며, 증명의 완성에 따라가지 못한 증거의 찰나일 뿐이다. (173)
반대로 라이프니츠는 삼각형 EKE를 삼각형 그자체로서 고려한다. E의 점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서” 파악되기 때문에, 삼각형의 변들은 또한 사람들이 원할 때만큼이나 작은 변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변들이 할당할 수 없는(inassignables) 것들이 될 때라도, 이 변들은 할당할 수 있는(assignable) 삼각형 DAI에게 할당할 수 없는(inassignable) 삼각형 EKE의 닮음[상사형]에 의해서 완전하게 규정되어 남아있다. 그런데 이런 규정작업은 특히 단순한 경우의 바깥에서 존속할 것이며, 이 경우에서 접촉점에 정상적인 것은 원의 반지름이다. 파스칼에게 감춰진 채로 남아있었던 것을, 즉 “일종의 운수에 의해 눈을 감은 것을” 깨닫기 위하여, 할당할 수 있고 또 할당할 수 없는 두 삼각형들의 요소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삼각형의 무한히 작은 부분에 의해 구성된 삼각형을 마치 곡선의 특성적(caratéristique) 요소처럼 취급하는 가능성을, 그리고 가로축(l’abscisse, 수평)과 세로축(l’ordonnée, 세로/수직)에 평행선들의 무한히 작은 몫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성적 삼각형”의 고려는 불가분들의 통속적 방법 밖에서 라이프니츠에 의해 행해진 첫발자국이다. 이론적 관점에서 이런 고려는, 합들의 요소들과 합들 자체 사이에 겉보기에는 카발리에리의 암시로부터 단절된 동질성을 재정립하게 해준다. 표면은 작은 표면들로 조성[구성]될 것이며, 이는 마치 선이 “작은 선들”로 조성되고, 물체가 소립자들(corpuscules)로 조성되는 것과 같다. 동시에 무한히 작은 것의 영역에서 연관(le rapport)의 개념이 도입된다. 그런데 불가분적인 것의 이미지는 정확하게 될 수 없는 반면에, 닮음의 형식은, 주어진 이런 저런 크기[양]에 전혀 연결되지 않아서, 마치 그 형식이 합리적인 것에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이행에서 존속하는 것처럼, 유한에서 무한소로 이행 속에서 보존된다. 이로부터 방법의 기술적 풍부성이 결과로 나온다. 그런데 단지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그 당시 라이프니츠에 의해 얻어진 결과들은 이미 호이겐스로부터 알려졌고, 그리고 사람들은 한 친구의 – 그 친구가 뉴턴과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 청원들(les instances)에 관한 바로우(Barrow, 1630-1677)가 1670년 출판되었던 접선들의 방법(la méthode des tangentes)의 설명에서 결과들을 대부분 발견했다. (174)
이 첫째 진보에 둘째 진보가 자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행(le passage)은 미분요소들로부터 천체적 합에로 열려져 있기 때문이기에, 하나의 감관(un sens, 의미)에서 또는 다른 감관[의미]에서 실행되는 것이 무차별적일 수 있다. 이리하여 라이프니츠는 문제를 만난다. 이 문제의 지표는 데카르트의 편지들의 제3권에서 주어진다. 즉 본(1601-1652)의 문제이며, 접선들의 역방향문제이다. 그는 이 문제와 [원의] 사각형화(quadrature) 또는 곡선의 직선화(rectification)의 문제들과 유비적임을 단번에 인정했다. 그런데 이 문제들에게 지금까지 적분법의 방법들이 응용되고 있었다. (174)
§ 105.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방정식의 방법: 적분법과 동역학.]
이런 일반적 관점들은 아직은 결정적 단계에 이르는 준비 작업들일 뿐이다. 접선들을 위하여 바로우의 방법이 제한했던 공간적 재현은, 라이프니츠의 천재성에 불쾌감을 일으켰다. 라이프니츠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명석한 것을 향하여 옮겨가고 있었다. 수학에서 도입되었던 새로운 요소들은, 보편기호법(Caracteristique universelle, 보편기하학)의 계획에 따르면, 논리적 번역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보편기호법은 라이프니츠 철학적 경력을 인도하는 동인이었다. 그런데 번역의 도구는 여기서 아주 잘 단련되었다. 로베르발류들과 파스칼류들이 매우 특이하게 데카르트의 기하학의 범위를 잘못 이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꽁트가 쓰기를 “파스칼과 같은 몇몇 인간들이 데카르트의 근본적 개념작업에 거의 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근본적 개념작업이 수학 과학의 전 체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생산해야할 운명에 처했던 일반적 혁명을 전혀 예감함이 없이도, 역시나 주목할 만 것이다. 그러한 것은, 초월적 분석의 도움 없이, 이 찬탄할 만한 방법이 본질적 결과들에게 실재적으로 또한 인도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온다. 즉 고대인들의 기하학적 방법에 의해서도 거의 마찬가지로 얻을 수 있었던 결과들이기도 하다.” 라이프니츠의 예는, 콩뜨의 논평을 보충하기를, 그리고 어떤 점에 까지 되돌려놓기를 허락한다. 초월적 분석이 구성될 수 있기 위하여, 데카르트 학파에 처음부터 자리 잡고서 시작해야 했다. 이것이 라이프니츠가 호이겐스의 충고를 받아서 행한 것이라고 명백하게 선언한 것이다. 대수학과 기본 기하학 사이의 연접(la connexion)은 라이프니츠에게 무한소 기하학의 지성화(l’intellectualisation)를 위한 모델로 쓰인다. 라이프니츠가 호이겐스에게 쓰기를, “내가 계산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그것은 아르키메데스의 기하학에서 고대인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동일한 이점을 주는 것인데, 이는 또한 비에뜨와 데카르트도 우리에게 에우클레이데스와 아폴로니오스의 기하학에서 이점을 주었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상상작용과 더불어 작업하는 것을 면제시켜준다.” (175)
사실상 극대와 극소를 위한 새로운 방법(1684)에서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기하학(1637)의 제3권에서 방정식의 일반이론을 제시한 쪽[페이지]들에서 단순성과 일반성을 모방하고자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방법의 판명한 방법은, 유한한 양들의 DX/DY 연관과 무한소 양들의 dx/dy 연관 사이 상응하게 하는 방식으로, 또한 일상적 방정식을 차이 방정식(l’équation différentielle: 미분소 방정식)으로, 지성적 이행을 이렇게 얻는 방식으로, 문제의 모든 요소들을 분석적 형식 하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Editae vero hactenus methodi talem transitum non habent, adhibent enim plerumque rectam ut dx vel aliam hujusmodi, non vero rectam dy, quae ipsis DX, DY, dx est quarta proportionalis, quod omnia turbat…” [현재까지 출판된 방법들은 그러한 변천과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방법들은, 선분들 DX, DY, dx에 비례적인 넷째인 직선 dy가 아니라, 이러한 것이 모든 것을 혼란하게 하기에…, 일반적으로 dx과 같은 한 직선을 또는 이런 종류의 다른 직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요소들을 명시하는 작업(l’explicitation)은 계산(un calcul de differences et de sommes)을 확립하게 한다. 사람들이 대수학의 규칙들을 진술하는 질서 자체 안에서, 이런[차이들과 합의] 계산의 규칙들을 라이프니츠가 진술하였다. 그의 규칙들이란, 산술학, 기(des signes)호들의 해석, 거듭제곱들의(des puissances) 차이[미분]작업, 제곱근들(des racines)의 차이[미분]작업 등의 네 가지 조작 작업들을 위한 규칙들이다. 이 결론이 일반과학의 도래이다. “ Ex cognito hoc velut Algorithmo, ut ita dicam, calculi hujus, quem voco differentialem, omnes aliae aequationes differentiales inveniri possunt per calculum communem, maximae que & minimae, item que tangentes haberi, ita ut opus non sit tolli fractas aut irrationales, aut alia vincula, quod tamen faciendum fuit secundum Methodos hactenus editas.” [알고리듬으로 알려진 것으로부터, 내가 ‘미분(differential, 차이)’이라 부르는 이 계산법의, 말하자면, 알고리즘을 알게 되면, 다른 모든 미분 방정식들도 공통의 계산법을 통해 찾아낼 수 있으며, 최대/최소와 접선 또한 구할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분수들도 비합리수들도, 다른 합계들도 제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현재까지 출판된 방법과 일치에서 이루어졌다.] (176)
불가분들의 기하학에 의해서 17세기의 사상에서 열려진 위기는 해결되었으나, 오히려 파스칼이 지적했던 자에게 반대된 방향[의미]에서 해결되었다. 위기 그 자체로 일종의 만성 상태를 만드는 대신에, 그리고 과감한 발명이 신비적이고 초월적 질서의 역량들에게 소환에 의해서 과학의 구조 안에서 도입했던 균형상실을 정당화하기를 주장하는 대신에, 자기 작품을 보충하기 위하여, 그리고 천재의 급하고 일시적인 계시들이 우선 어둠 속에서 남겼던 점들을 구별해내고 완전히 밝히기 위하여, 결국에는 사유의 연속적이고 적분적인 흐름 안에서 체계의 모든 접속들을 재통합하기 위하여, 라이프니츠는 지성 자체를 고려한다. 이런 철학적 개념 작업에게, 라이프니츠는 새로운 알고리듬(algorithme, 함수계산)의 문제를 제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기술적 난점들이 일단 해결되었다면, [라이프니츠는] 해법을 표현하기 위해 뉴턴의 것(표기법)보다 더 완전하고 탁월한 표기법(une notation)을 창조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에는 그 형이상학의 환원할 수 없는 실재론에게 그의 언어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 근심스럽지 않는 한, 비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발명의 범위를 분명하게 분간해내야만 했던 것이다. “무한소의 크기들[양]을 0[제로]로서 취급하는 대신에, 마치 페르마와 데카르트처럼 심지어는 뉴턴과 모든 다른 이들이 행했던 것처럼, 나의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의 알고리듬(mon Algorithme des incomparables)이 라이프찌히 논집(Actes de Leipzig) 속에 나타나기에 앞서, 크기[양]들이 어떤 것(quelque chose)이라고, 또 크기들은 그 자체로[크기들 각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또 크기들은 새로운 분석에서 다른 방식들로 표시되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 크기들이 0(제로)으로서 취급된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은 혼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것들을 마치 아무것들도 아닌 것을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엄격하게 무한히 작은 것들로 취급하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또는 정의되지 못하는 작은 양들로서 취급한다. 그리고 더하여 주어진 크기 또는 할당할 수 있는 크기, 차이들을 만들게 하는 다른 양들보다 열등한 양들로서 취급한다. 이러한 것은 할당할 수 있는 또는 주어진 어떠한 오류보다 더 적게 오류를 최소화한다. 그리고 그 귀결로서 오류가 전혀 없게 된다.” (177)
그러나 어떻게 [역학] 기술적 난점들이 효과적으로 극복되었는지를 라이프니츠는 얼마나 빠르게 그의 이론적 초기 반성들에서 1675년의 승리하는 발견으로 이행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철학을 철학에 대립시키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라이프니츠가 그 수혜자인 과학적 이중 진보에 관하여 강조해야 한다. 하나는 바로우의 접선들의 방법(la methode des tangantes)을 말하면서 우리가 암시를 행할 기회를 갖는 것인데, 이 진보는 파스칼이 성장했던 세대의 프랑스 수학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다른 하나는 특히 영국에서 작업했던 수학자들에 힘입었다. 이 진보는 파스칼이 1665년에 출판했던 글의 한 쪽에서 불가분들의 계산과 더불어 연접을 표시했던 수학적 작업들의 확장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중연구를 기획해야만 한다. 하나는 접선들의 방법(la methode des tangantes)의 발명에 관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한 계열들(les séries infinies)에 관계하는 조작작업[계산작업]에 관해서이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역사적으로 이런 연구가 또한 유율들의 방법(la methodes des fluxions)을 미분계산(le calcul différentiel)에까지 잘 인도된다고 알려진 것처럼, 이 연구는, 우리가 이제 이런 사유의 단계들을 따라가려 원하는, 사유의 집단적 성격을 명증하게 밝히는 장점을 가질 것이다. 무한소 계산의 발생[창안]을 우리가 두 번이나 묘사하게 강요한 필연은, 마치 분석기하학의 필연처럼, 이런 지성 심리학의 객관성을 위하여 특이한 지지점(un singulier, 특이점)으로부터 나온다. - 이에[지성 심리학의 객관성에] 대한 과학적 발전의 연구는 구성을 준비해야한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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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에우클리데스(Euclide,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300년경 활동),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원론(Éléments, Στοιχεία)(전300년경, 13권). - p.37 주1) Elém., IX, 36, éd. Heiberg, t. II, Leipzig, 1884, p. 408.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에서 활동한 라틴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에서 활동한 라틴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Sur la sphère et le cylindre, Des conoïdes et des sphéroïdes, Des Spirales, La quadrature de la parabole.
240k 아폴로니오스(Apollonios de Perga ou de Perge, Ἀπολλώνιος ὁ Περγαῖος, 전240경-180?) 그리스 기하학자, 천문학자.
155 시돈의 제논(Zénon de Sidon, 전155-전75), 레바논 지역 태생으로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 키케로와 동시대인. 그는 소크라테스를 아테네의 광대(bouffon attique)라 경멸했다고 한다. 그는 에피쿠로스학파이지만, 유클리드기하학을 연구하면서 기하학에서 연역적 원리들(ἀρχαί)이 증명될 수 없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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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 오레슴(Nicole Oresme, ou Nicolas Oresme, 1320년경-1382경) 카톨릭 주교, 박식자.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경제학자, 음악학자, 신학자. 번역자.
1540 비에뜨(François Viète ou Viette, en lat. Franciscus Vieta, 1540-1603), 프랑스 수학자, 프로테스탄트 법률가 집안 출신. - 1593 (Huitième Livre des réponses sur diverses questions mathématiques)
[1540? 메테이에(Jamet Mettayer [ou Jean Jamet], it. « Giametto Metaieri », s.d.), 프랑스 서적상 및 편집인. 1573년부터 인쇄 활동하다가(à Tours de 1589 à 1594), 파리에서 (1594 et 1605) 활동하였다.)]
1571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독일 수학자, 천문학자.
1576 소베로/수베(Bartolomeo Sovero, fr. Barthélemy Souvey, 1576-1629) 스위스 수학자, 기하학자, 물리학자. 직선과 곡선의 비율을 증진함(De recti et curvi proportione, Curvi ac recti proportio promota, 1630).
1577 굴딘/귈댕(Paul Guldin, 1577-1643), 스위스 제수이트 신부, 수학자, 천문학자. Centrobaryca, seu de centro gravitatis trium specierum quantitatis continuæ libr. IV, Vienne, 1633-1642, 2 vol.
1582 앤더슨(Alexander Anderson, 1582경–1620경), 스코틀랜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옹호(Vindiciae Archimedis 1616)(원제: 아르키메데스의 옹호, 또는 새로운 원 측정법에 대한 논박/반박(Vindiciae Archimedis, sive elenchus cyclometriae novae)
1592 가상디(Pierre Gassendi, 1592-1655),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신학자, 천문학자.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598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lat. Cavalerius, 1598-1647)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피사와 볼로냐 대학 교수. 갈릴레이의 제자이자 서신교환으로 학문적 동료. 제수아트파(Les Jésuates, ou Pauvres Jésuates) 수도사였다.
1601 본(Florimond de Beaune, 1601-1652), 프랑스 법률가, 수학애호가. 데카르트 기하학 도입자. Descartes à M. de Beaune. 20 février 1639. Texte de Clerselier, tome III, lettre 71, p. 409-416.
1602 로베르발(Gilles Personne de Roberval, 1602–1675),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1607 메레 기사/ 곰보(Antoine Gombaud, dit le « chevalier de Méré », 1607-1684), 프랑스 작가, 파스칼과 확률(개연성) 계산에 관한 서신교환.
1608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 이탈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De dimensione parabolae[포물선의 측정/차원에 관하여] in Opera geometrica / "solido iperbolico acutissimo".
1614 끌레르슬리에(Claude Clerselier, 1614–1684), 프랑스 편집자, 번역자.
1616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영국의 수학자. 영국 목사, 미분계산에 기여하였다.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파스칼의 가명: Louis de Montalte, Amos Dettonville, Salomon de Tultie.]
1629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Huyghens, 1629–1695), 네덜란드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발명가. 그는 1644년(열다섯)경에 네델란드 수학자인 슈담피오엔(Jan Jansz de Jonge Stampioen, 1610-1653)을 통해서 데카르트와 페르마의 수학을 알았다고 하고, 이 수학을 실제로 배우기는 네덜란드 수학자인 슈튼(Frans van Schooten Jr. 1615–1660)에게서 인데, 1645년에서 1647년 사이에 슈튼은 호이겐스의 개인강의자(private tutor)였다고 한다.
1630 바로우(Isaac Barrow, 1630-1677), 영국 문헌학자, 수학자, 신학자. 무한소 계산 선구적 역할, 뉴턴의 스승이었다.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 1697)
1651 치른하우스(Ehrenfried Walther von Tschirnhaus (or Tschirnhauß, 1651–1708), 독일 수학자, 물리학자, 의사, 철학자. 여행 중 스피노자를 만났다(1672-3?), 라이프니츠와 편지교환.
1654 바리뇽(Pierre Varignon, 1654-1722),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수학자. 정력학 및 힘들의 삼각정식화와 삼차원의 평형조건의 정식화에 기여했다. Nouvelles conjectures sur la pesanteur 1690, Nouvelle Mécanique ou Statique, dont le projet fut donné en 1687.
1654 쟈끄 베르누이(Jacques ou Jakob Bernoulli, 1654-1705),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 쟝(Jean Bernoulli, 1667-1748)의 형이고, 다니엘(Daniel II Bernoulli, 1700-1782)과 니꼴라(Nicolas Bernoulli. 1695-1726)의 삼촌이다.
1661 로피탈(Guillaume François Antoine de L'Hôpital ou L'Hospital, 1661-1704), 프랑스 수학자. Méthode facile pour déterminer les points des caustiques par réfraction, avec une méthode nouvelle de trouver les développements, 아카데미에 발표한 첫 논문.
1661 투른민(René-Joseph Tournemine, 1661-1739), 제수이트 신부, 프랑스 비평가, 트레부 회상록(Mémoires de Trévoux) 편집자. fr.wiki에 투른미르가 아니라 투른민이라 하고,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en.Wiki에는 투르민이 라이프니츠와 ‘심신문제’의 논쟁이 있는데 탁월하다고 한다
1730 보쉬(Charles Bossut, 1730-1814) 신부, 프랑스 기하학자.
1730 뒤땡(Louis Dutens, 1730-1812) 프랑스 작가, 문헌학자, 메달 전문가. 영국 왕의 역사편찬가이도 하다.라이프니츠 전집(Gothofridi Guillemi Leibnitii opera omnia, 1768)(6 vol).
1807 프리쉬(Christian Frisch, 1807-1881), 독일 교육자, 과학자(Gelehrter) 정치가. 케플러 전집 편집자. [Christian Frisch (Ed.), 1868: Joannis Kepleri astronomi opera omnia,. Erlangen, Frankfurt.) Rigby, M., 1973: Ephemerides of the Meteorological Society.]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의 작품이 있다.
1816 게르하르트(Carl Immanuel Gerhardt, 1816-1899),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 저술 편집자. Die Philosophischen Schriften von G. W. Leibniz, éd. C. I. Gerhardt, Berlin, 1875-1890.
1819 마리(Maximilien Marie, 1819-1891), 폴리테크니 출신, 프랑스 수학자. Histoire des sciences mathématiques et physiques(12권, 1883-) 이 책에서 대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브룅슈비끄 이전에 수학사가 있었다.]
1829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만하임 출생 하이델베르크에서 별세, 독일에서 첫 수학사 교수.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Mathematik. 4 Bände. Leipzig: B. G. Teubner, 1880–1908: t. I, 3e édit, 1907, Leibzig (que nous désigneraons par Cantor I3), p. 11. (chap. 1, die Babylonier, p. 19 et suiv.) /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셍페테스부르그 태생 할레에서 별세. 독일 수학자, 집합론 탄생에 큰 역할. “실수들(les nombres réels)은 자연수 전체보다 더 많다.” 기수와 서수를 정의하였다. /
1839 조이텐(Hieronymus Georg Zeuthen, 1839–1920), 덴마크 수학자. 코펜하겐 대학 교수. 열거 기하학(the enumerative geometry of conic sections, algebraic surfaces, and history of mathematics.)
1859 비반티(Giulio Vivanti, 1859-1949), 이탈리아 수학자. Il concetto d'infinitesimo e la sua applicazione alla matematica, 1894.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1880 부뜨루(Pierre Boutroux, 1880-1922), 프랑스 수학자, 과학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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