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장 진급과 동시, 1975년 1월 10일자 DMZ작전 철원 땅굴에 부임.
1975년 7월 23일까지 DMZ 땅굴 근무.
철원 DMZ 특수임무부대장 (TF-1. 6사단 작전 부사단장 겸직)
부사단장 직은 행정상 기록이고 실질 근무처는 DMZ 내의 탑차.
1975년 7월 24일~1976년 2월 24일. 제1군단 참모장.
1975년 선봉75육군기동훈련 통제단장
1군단장 양봉직 중장, 진종채 보안사령관 모함에 의해 축출.
그 여파로 1군단 참모장 박경석 한직에 좌천.
1976년 2월 25일~1977년 7월 15일. 3군사령부 기획관리처장.
1977년 7월 15일~1978년 1월 25일. 3군 인사처장.
사단장 진출 대기중 하나회 육사11기 백운택 준장이 인사처장 직위 찬탈.
다시 이유 없는 좌천, 1978년 1월 26일.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기획처장.
철원 땅굴에서 공적이 인정되어 1군단 참모장으로 새 보직을 받았다. 그러나 또다시 광풍은 몰아쳤다. 진종채 보안사령관에 의해 죄 없는 양봉직 군단장이 3선 개헌을 반대한 양순직 국회의원의 동생이라고 축출되면서 그 여파는 나에게도 닥쳤다. 3군사령부 한직에 유배 아닌 유배를 당하다가 새로운 군사령관에 의해 인정되어 중책인 인사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회 후원세의 박희동 군사령관으로 바뀌면서 육사11기 하나회 실세 백운택 준장이 점령군처럼 내 자리로 쳐들어왔다. 박희동 군사령관과 함께 부임한 것이다. 나는 다시 육군본부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후 하나회 백운택 준장은 인사법을 무시하고 특진 특진을 거듭해 중장에 진급, 수도권 방어의 1군단장으로 부임했다. 군단장 근무 중 고향인 대구로 외출, 음주 후 ?..., 호텔에서 주검으로 변했다.
당시, 나는 하나회 정치군인의 병정 놀이 '바둑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3군사령부 인사처장은 전통적으로 사단장으로 진출하는 중책이었다. 정치색이 없는 3군사령관 김종환 대장이 쫓겨만 다니는 나를 딱하게 여기고 사단장 진출 기회를 주기 위해 파격적으로 인사처장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6개월 후에 합참의장으로 떠나면서 후임으로 하나회 후원 자인 박희동 대장이 부임해 왔다. 불과 3일 만에 나를 육본의 한직에 내쫓고 11기 하나회 백운택을 않혔다. 그때의 내 심정은 ?...,
'나는 대한민국의 사관(史官)이 될 것을 결심하고 여생을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며 하늘을 우러렀다'.
상훈
보국훈장 천수장
땅굴 작전 성공 공로
첫댓글 1975년, 육군 계급장이 변경돼 계급장 아래에 무궁화 문양을 덧붙였다.
제가 예전에 읽은 백동림 대령의 회고록 멍청한 군상들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거기에 나오는 내용이 백동림 대령도 윤필용 사건 이후 하나회쪽의 견제를 받고 밀림을 당했는데 강창성 후임 보안사령관인 김종환 장군이 백대령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백대령 왈 사령관님 Y사건은 백동림 개인의 자격으로 수사한게 아닙니다.라는식으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보안사령관 김종환 중장이 응 알고있어 라고 짧게 코멘트만 한후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아 소문대로 무능하게 처신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방을 나왔다고 하는 그런 장면이 기억에 납니다.
맞는 이야기죠
안타까운 사연이 많습니다.
왕따 당한 심정 본인 외에
그 누구도 이해 못 할
것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10.24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