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 주일(평신도 주일)
오늘의 제 1 독서와 복음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과부’입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사렙타 마을의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한 끼니의 식량으로 음식을 마련해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 예언자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대접했고, 복음에서도 한 과부가 자신의 하루 생활비를 모두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성경에서 과부는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 역할을 하는 남편을 잃었기에 부모를 잃은 고아(孤兒)와 고향과 친척을 잃고 정처(定處) 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로 제시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자선에 의존하면서 살았는데, 만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은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를 ‘가난한 이들’ 곧, ‘아나뷤’과 ‘πτωχός’’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우리가 노래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여덟 가지의 길’(마태 5,3-12) 가운데 첫 번째 길로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이들의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beati pauperes spiritu quoniam ipsorum est regnum caelorum”: 마태 5,3)
예수님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전세와 십일조를 받아들이기 위한 성전 금고가 마련되어 있고, 이 금고에는 13개의 헌금함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자진(自進)해서 내는 헌금함으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부자는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밖에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는 ‘렙톤(λεπτός) 두 닢’, 곧 ‘콰드란스(κοδράντης) 한 닢’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렙톤은 그리스 화폐들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로, 성인 노동자 하루 일당의 128분의 1에 해당합니다. 하루 노동자의 품삯을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1562원, 6만 원으로 계산하면 약 1000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προσκαλέομαι’: 마르코복음의 그리스도론의 핵심인 ‘메시아 비밀 사상’- ‘제자들의 분리 교육’ 참조)이 여인의 정성을 칭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πτωχός’)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3-44)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헌금함에 넣는 돈의 액수를 보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과부의 마음을 보십니다. 이 과부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인데도 그의 생애 전부를 봉헌함으로써(‘생활비’로 번역된 그리스어 ‘βίος’는 ‘삶’, ‘생애’를 뜻합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강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제 1독서의 사렙타 과부와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제 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칭송한 세상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한 제물로 봉헌하신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왜냐하면 이 가난한 과부들의 삶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사렙타 여인)과 하느님(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은 여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한 까시아누스 성인은 이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인 ‘마음의 순결’(puritas cordis)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그들에게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난’과 ‘마음의 순결’에 대해 묵상해봅시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하느님께)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