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리듬화
곽의 시어들은 후렴구나 반복적인 어휘, 정형적인 자수율을 통해 음악적 리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도 결국 시어의 정서적 기능에 대한 인식에서다. 음악성이야말로 우리의 심리적 충동을 강하게 유도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감탄사와 같은 감성적 언어를 화자 자신이 직접 사용하여 작위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청중으로 하여금 흥취를 유발하도록 형식화 된 음악적인 어법으로 감탄사를 남발하는 방법보다 예술적으로 다듬어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김소월 「못잊어」
대단히 규칙적인 시다. 음독할 경우 노래의 가사처럼 들린다. 음악성이 고려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매 연이 3행이다. 형식 논리로 보면 전통적인 3음보의 정형시의 연장이다. 시어의 배열도 ’못잊어“의 반복, 서술형 어미를‘요’나 ‘려’ 등의 음운을 선택한 시어의 효과를 통해 정서적 환기를 실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러나 규칙적인 리듬은 기계적이다. 정서적 환기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 현대시의 자유로운 리듬이 가능하게 된다.
최근에는 앙리 르페브르가 「리듬 분석」에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사유할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의 통합적 이해이다. 르페브르는 ‘생체적, 심리적, 사회적 리듬 분석 과정을 통해, 일상생활에 내재하는 시간-공간의 상호관계를 드러낸다.’라고 말하고 있어서 ‘언어의 리듬화’는 새로운 활기를 모색하고 있다.
시적 유포니(euphony)
시가 언어의 음성적 효과를 높이고자 과거 문장이 일상어가 아닌 文語體를 고집한 것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어휘 자체를 다소 변형하여 정서적 효과, 시적인 감동을 시도한 경우도 있다. 이는 시의 효과를 언어의 아름다움에서 찾으려는 시적인 언어(poetic diction)에 대한 집념이기도 하다. 앞서 인용한 시에서도 ‘지내시구려/지내십시오. 가라시구려/가라고 하십시오, 잊히오리다/잊을 것입니다’ 등의 서술어들은 일상의 언어를 시적인 언어로 변형하여 정서적 효과를 노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니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 「승무」에서
새악시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詩의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십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1)의 시에 나타난 ‘하이얀(흰, 고이/곱게, 나빌레라/나바이다. 파르라니/파랗게, 감초오고/감추고, 서러워라/서럽다’ 등이나 (2)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새악시/색시. 사르시/살며시, 보드레한/보드라운’등의 일상적인 언어를 변형하여 시적 효과를 노린 언어, 즉 시적인 언어를 만들어 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이들의 시가 보다 성공적으로 표현된 것이 사실이며 독자로 하여금 크게 시적인 감동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우리말의 미적인 품위와 영역을 넓히는 역할도 인정할 수 있다. 이처럼 부드러운 음운을 첨가하여 듣기 좋게 하는 어법을 好調音, 유포니(euphony)라고 한다. 그래서 더러는 시작에 있어 서술형의 변형, 새롭게 만드는 詩的 造語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고요한–고요로움, 푸른–푸르른, 흙냄새-흙내음, 파란–파아란, 아득히-아스라히, 곱게-고웁게, 천천히-시나브로, 조그만–조매로운, 뒷길–뒤안길, 따뜻한-따사로운’ 등도 그런 예들이다.
그런가 하면 일상적인 어휘 중에서도 시어의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 감탄사나 조사의 어미 등을 제외하고도 주로 심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어휘인 ‘사랑, 그리움, 아련함, 슬픔, 회상, 사연, 안타까움, 외로움’ 등이 있는가 하면 시각이나 청각에 호소하는 색채어, 의성어를 들 수 있다. 우리의 시가에서 색채어를 사용하는 빈도를 보면, 청(靑)-백(白)-적(赤)-흑(黑)-황(黃)의 순으로 밝혀지고 있다. 파랑, 하얗,발강, 검정, 노랑의 순으로 색채어를 사용하여 정서적 효과를 노리거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통해서 보다 사실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자연물에서는 특히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거나 익숙해진 나무, 풀, 꽃, 과일, 별, 태양, 물, 공기, 땅, 새 등의 명칭을 통해 시적 환기를 시도하고 있다.
시에서 언어의 선택은 일차적으로 정서적 환기에 목표를 두고 일상적인 언어 속에서 특별히 정서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어휘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품사별로 볼 때, 자기 표출도가 높은 감탄사, 조사, 형용사, 부사 등을 사용하는 경우와 음악적 효과를 통해 정서적 환기를 도모하려고 후렴구, 반복어, 자수율, 운율, 음보율 등의 음절을 사용하는 경우, 서술어의 변형을 통해 시적인 언어를 만들어 보려는 euphony의 경우, 시각이나 청각에 호소하는 색채어, 의성어를 사용하는 경우, 우리 생활과 친숙한 자연물의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 등이 있다.
그러나 시은 정서적 환기 작용이 이러한 언어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감각성이나 음악성으로 하여 시적인 효과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방식이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장치가 되려면 부족하다. “아아, 나는 괴롭다”가 괴로운 심정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지만 그래서 괴로움의 정도가 대단한 것으로 추측도 되지만 어느 정도 어떤 형태의 괴로움인지는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없는 관계다. 시는 막연한 기분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정서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의 언어가 비록 1인칭인 화자 자신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에게 감동하는 정서가 되어야 한다면 화자 스스로 감탄하고 목청으로 높이는 것으로 충분할 수 없다. 따라서 시어의 정서적 기능은 정서적 언어의 선택이나 시적인 언어의 제작보다 더 구체적인 상상적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언어, 즉 상상적인 언어를 통해서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홍문표 <시창작원리>에서 발췌
첫댓글 오늘 꽃비 내리는
아침 벚꽃길을 걷다가
보도블록 사이로 힘차게 고개를 내밀고
꽃을 피워내는 야생화를 본거라
그 위에 꽃비가 내려쌓였어.
오!
그들은 서로 잘 어울려서 살고 있었지
삼라만상이 다 바람이어서
꽃비를 내린거라
시를 쓰는 것이 業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땐 꼭 시 한 수 쓰고 싶었어 정말!
오호ᆢ우병택평론가님
너무 좋은데요 ᆢ
시 계속 써주세요
평론과 또 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습니다
몇번을 시도해도 파일이 열리지 않습니다. 컴맹을 위해서 가능한 복사해서 올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꼭 필요한 분만 보시라구요.
오늘 밤에 메일로 보내 드릴게욤^^*
@우병택(시인.문학평론가) 네 우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 메일 주소 알고 계시는지요?
한글이 설치되었으면 열릴겁니다. 다운로드 받으셔서 여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읽고 또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시로 설명을 해 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런 시 짓고 싶은데 ... 희망만 부풀다가 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