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자존심-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안단테]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1-1 차이콥스키의 초상화

 오늘은 러시아 태생의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I'yich Tchaikovsky, 1840~1893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그런 것처럼,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초상화도 그의 말년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초상화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화가인 ‘니콜라이 쿠즈네쵸프’의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가 사망하던 해인 1893년 1월에 그려진 것입니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 그리고 겨우 오십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수많은 주름이 잡힌 이마가 근엄한 표정과 함께 검은색 배경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베토벤의 초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고뇌와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나 저는 차이콥스키의 초상화가 베토벤의 초상화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의 초상화에서 베토벤의 눈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무언가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초상화에서 차이콥스키의 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유리구슬 같은 그의 눈에는 불안이 가득 서려 있습니다. 마치 전날 밤에 잠을 설쳤거나,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들은 위대한 작곡가라면 자신의 삶과 음악이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차이콥스키의 우아한 음악을 듣고 나서, 그의 삶도 음악처럼 여유 있고 평화로웠을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삶과 음악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차이콥스키도 자신의 삶과 음악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작곡가이며, 삶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음악을 통해 극복한 사람입니다.

니콜라이 쿠즈네쵸프의 차이코프스키 초상화 http://xiuli.tistory.com/84

1-2 어린 시절 그의 심리상태

 차이콥스키는 8살이 될 때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감독관으로 있었던 보트킨스크의 광산촌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보트킨스크 광산은 매우 중요한 광산이었기 때문에 그 광산의 감독관이라는 직위는 부유한 지주의 지위가 부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차이콥스키는 매우 유복한 집안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보트킨스크 시절 그의 프랑스인 가정교사인 파니 뒤르바흐Fanny Durbach의 회상을 살펴보면 차이콥스키의 정서는 매우 불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차이콥스키에 대해 ‘그는 몹시 예민한 아이였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당황하거나 기분이 상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도 그 아이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체벌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꾸짖거나 경고하는 식으로 조금만 심하게 대해도 그는 깜짝 놀랄 만큼 속상해했다. 그는 몸이 유리로 된 아이 같았다. 늘 조심해서 대하는 법을 연습한 다음에 봐야 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천적으로 신경이 예민하고 여린 성격을 타고난 차이콥스키는 마음 편할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으며, 환경변화에도 심한 거부감을 보였으며, 한밤중에 깨어나 발작을 일으키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했지만, 차이콥스키에게 그런 배려는 거의 주워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는 열 살이던 1850년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학교 예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이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숭배하던 어머니와 떨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이별 장면을 지켜봤던 한 목격자는 ‘자제력을 완전히 잃은 차이콥스키는 엄마에게 매달려 한 몸이 되려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는데요, 차이콥스키는 생에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와 떨어졌던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늘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떨어지는 큰 희생을 치르고 입학한 법률학교였지만, 그곳에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 학교는 학교생활이 집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했지만, 차이콥스키가 들어간 1850년에는 니콜라스 1세 황제의 칙령에 따라 제국주의식 학제를 적용하고 엄격한 군사훈련을 받게 했습니다. 스파르타식 공동생활에, 사생활은 전혀 없으며, 괴롭힘은 예사였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 처벌을 내렸기 때문에 차이콥스키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온순하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차이콥스키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다행히 체벌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1-3 그가 음악과 정식으로 마주하기까지

 차이콥스키가 20세가 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그가 전문 음악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나 쇼팽 등의 작곡가들이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곡을 쓰고, 연주 여행을 다녔던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그가 어릴 때부터 평생 작곡가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은 이유가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음악을 싫어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명 작곡가들이 그랬듯이 그도 피아노를 좋아하고 잘 쳤으며, 음악을 써보기로 마음 먹 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 음악가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차이콥스키의 가정교사인 파니 뒤르바흐의 회상에 따르면, 그녀는 어느 날 저녁 탁아실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서 음악 소리가 없어지질 않는다.’고 펑펑 울고 있는 차이콥스키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파니의 회상은 차이콥스키 전기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초창기 기록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요, 어릴 때부터 차이콥스키의 귓가에는 음악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는, 즉 늘 음악과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그가 전문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지 않았던 이유는 전문가보다 아마추어를 더 높게 평가했던 그 당시 러시아의 문화적 풍토 때문입니다. 아직은 음악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는 시절이었고, 본업이 있으면서 예술적으로도 조예가 깊은 사람을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하일 글린카’ Mikhail Ivanovich Glinka, 1804~1857도 아마추어였으며, 미하일 이후에 등장하는 음악가인 밀리 발라키레프(본업은 수학자)Milii Alekseevich Balakirev, 1837~1910,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본업은 장교)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 등도 모두 본업이 있는 아마추어 출신입니다. 때문에 차이콥스키도 부모님에 뜻에 따라 법률학교를 졸업한 뒤, 법률가에 길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법률 관련 일을 하면서 음악에도 계속해서 적을 두고 있었던 그는 1861년 3월 10일 자신의 누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문 작곡가가 되는 것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직업으로 음악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러시아 음악협회에서 여는 강의에 등록하고, 여기서 그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러시아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슈타인Anton Grigorievich Rubinshtein, 1829~ 1894의 격려를 받으며 23세가 되던 1863년 법무부 직위에서 사임하였습니다.

1-4 까다로운 작곡가, 차이콥스키

 법무부 직위에서 사임한 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최초의 콘서바토리(음악이나 기타 예술을 가르치는 전문 교육기관)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의 정규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견이 강했던 차이콥스키는 특정 음악 장르에 대한 건전하지 못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인 헤르만 라로헤Herman Laroche에 따르면, 차이콥스키는 ‘피아노와 관현악단이 함께 내는 소리, 현악사중주나 오중주가 내는 소리를 싫어했으며, 현악기가 한 대 이상의 피아노와 섞이는 소리를 가장 싫어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헤르만 라로헤는 차이콥스키가 백 번도 더 ‘피아노곡은 쓰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에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곡들은 보면 ‘특정 장르에 대한 혐오감’은 극복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가장 인기 있는 협주곡이 되었고, 그가 쓴 현악사중주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의 피아노 삼중주는 아직까지 많은 연주자들의 주요 레퍼토리로 쓰이고 있으니까요.

차이콥스키는 음악 장르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에 대해서도 편견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이콥스키가 다른 유명 작곡가들을 평해놓은 글은 매우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그중에서 재미있는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년기부터 줄곧 가장 높은 판단 기준이었던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나는 모차르트를 음악의 예수라고 할 만큼 매우 좋아한다. 그의 음악에는 도달할 수 없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맺혀 있어서 예수처럼 숨 쉬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 이외에 작곡가들에게는 혹독하리만큼 냉정하고, 솔직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브람스를 ‘악당’으로 몰아붙이며, 바그너의 <라인골트>를 듣고 나서는 ‘음악은 정말로 거대한 쓰레기였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에 대해서는 ‘그의 훌륭한 푸가를 연주하는 것은 늘 흥미로우나,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위대한 천재라고는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음악의 어머니인 헨델에게는 ‘완전히 삼류라서 흥미조차 안 생긴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라는 평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에게는 ‘중기 작품은 괜찮은 편이고 초기 작품 중 몇 개는 괜찮지만 후기 작품은, 특히 후기 현악사중주는 분명히 혐오스럽다.’라는 폭언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19세기를 통틀어 당대까지도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며, 브람스와 바그너도 최고는 아닐지언정 놀라운 재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가들입니다.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이런 평가는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많으며, 그저 놀라운 따름입니다.

1-5 차이콥스키와 발레 음악

 차이콥스키는 히트곡이 상당히 많은 작곡가인데요, 그 중에서도 차이콥스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음악이라 불리는 <백조의 호수>(1876), <잠자는 숲 속의 미녀>(1889), <호두까기 인형>(1892)이 그것입니다.

 '춤은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의 급소일 뿐만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예술적 혈류에도 본질적인 영양분'(제러미 시프먼Jeremy Siepmann,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가 특히 발레에 이끌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차이콥스키는 어릴 때부터 극(劇)이라는 것에 매우 흥미를 보였다고 하며, 아홉 살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춤을 출 때 피아노 반주하기를 즐겼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움직임, 특히 여성의 움직임이 주는 표현력에서 매력과 감동을 느꼈고, 그래서 여성 무용수들을 흉내 내는 데 집착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러시아의 발레 음악은 무대에서 춤출 때 쓰기 위한 '오락용 부수음악'에 불과했고, 관객들이 주목했던 것은 음악이 아니라 춤이었습니다. 발레 음악의 역할은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조성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들려야 하는 것'이었기에, 당시의 발레 음악을 썼던 작곡가들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던 민쿠스, 게르버, 푸그니, 아담 등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음악이 단순히 '반주용'으로 쓰이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서 언급했던 <백조의 호수>를 매우 오페라적인 작품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완성된 뒤 얼마동안은 반응이 별로였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는 어릴 때부터 감정에 매우 민감한 아이였고, 그래서 그의 음악 또한 감정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형식적인 면을 간과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의 음악은 항상 풍부한 선율과 아름다운 전개를 보여주며, 듣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박관식]

차이코프스키의 전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좋은 얘기들 잘 읽었습니다

[박관식]

차이코프스키가 다른 작곡가들을 평가한 내용이 재미있군요

그 정도의 대가이면 그런 평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독일 작곡가들에게는 내용 없는

설탕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