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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춘수의 ‘내가 만난 이중섭’(박현민)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 김춘수의 ‘내가 만난 이중섭’
저는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시는 줄거리도 없고 감상적인 단어로 운율 짜맞추는 데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서논술지도사 교육과정 중 시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학창시절에 배운 분석적인 공부 방법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를 꺼려하는 저의 취향을 완전 뒤집은 사건은 이어서 일어났습니다. 김춘수 님의 ‘내가 만난 이중섭’이라는 시를 PPT로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고, 강사님께서 시 감상문을 적어오라고 하셨을 때도, 이 시 아닌 다른 시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너무 좋아해서 전시회도 찾아다녔고, 신혼여행 때는 일부러 제주도에 꾸며진 그의 생가와 거리에도 가 보았습니다. 미술관에서의 본 그의 빈곤했던 생애와 일본인 부인과의 슬픈 사랑에 대해서 간략하고 사무적으로 적혀진 설명은 ‘유명한 화가들은 거의 다 가난한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은 제가 좋아하는 화가에 대한 제 무감각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서논술지도사 과정을 공부하기 한 달 전쯤, 아이들에게 명화에 대한 교육을 시켜주려고 빌려 온 그림동화책 “아빠 사랑해요”라는 제목의 이중섭 그림과 그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어주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중섭의 비참한 생활과 가난 때문에 일본에 보낼 수밖에 없던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중섭의 아들 시각에서 단순하고 귀엽게 표현된 이 책은 끝내 저를 두 딸아이 앞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시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 보게 된 ‘내가 만난 이중섭’이라는 시는 이중섭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저에게 너무나 애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에 대한 부연설명을 굳이 듣지 않아도 시 한 줄 한 줄이 너무 잘 이해되었고, 강사님께서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가 창작된 시대와 작가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 제 마음 깊숙하게 들어왔습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입시를 위한 분석적이고 주입식인 교육방법으로 우리 아이들이 저와 같이 문학의 중요한 장르인 시를 외면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찍부터 시를 즐길 수 있도록 이렇게 관련된 동화책과 접목시켜서 이해를 돕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저도 제가 가르칠 미래의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는 생각이 드는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읽고(심지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삼백 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이생진의 ‘45. 고독-외로움-그리움’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생진 시인은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서울의 보성중학교 교직을 끝으로 평생을 바다와 섬으로 떠돌며 인간의 고독과 섬의 고독을 잇는 시를 써왔다. 196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문학상,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尙火) 시인 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섬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정경과 파도와 곤충들과 꽃과 새를 구석구석 알고 있는 유일한 시인으로 섬처럼 고독하고 맑게 늙어서 지금은 우이동 도봉산 산자락에 살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시집과 화첩을 들고 섬으로 돌아다녔다. 안면도 황도 덕적도 용유도 울릉도 완도 신지도 고금도 진도 흑산도 홍도 거제도 제주도 내나라도 외나라도 쑥섬 거문도…‥
이렇게 돌아다니며 때로는 절벽에서 때로는 동백 숲에서 때로는 등대 밑에서 때로는 어부의 무덤 앞에서 때로는 방파제에서 생활이 뭐고 인생이 뭔가 고독은 뭐고 시는 무엇인가 생각하며 물위에 뜬 섬을 보았다. 그 때마다 나는 섬이었다. 물 위에 뜬 섬이었다.
그러나 통통거리며 지나가는 나룻배 벙벙 울며 떠나는 여객선 억센 파도에 휘말리며 만년을 사는 기암절벽 양지바른 햇볕에 묻혀 조용히 바다를 듣는 무덤, 이런 것들은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낙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아서 낙원을 다닌 셈이다. 그 낙원에서 맑고 깨끗한 고독을 마실 때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것을 시로 쓴 것이다.”
이생진 시인의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 이 글을 읽노라면 그는 죽을 때까지 섬으로 떠나서, 죽은 뒤에도 섬으로 남고 싶어 하는 진정 살아있는 섬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섬 시집으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섬에 오는 이유> <바다에 오는 이유> <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 <독도로 가는 길> 등이 있다. 2001년에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서귀포시 성산포를 유독 사랑해 성산포를 소재로 한 시를 지어온 이생진 시인의 성산포에 대한 애정을 인정하여 성산포 앞바다 오정개 해안가에 시비 거리가 조성되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즐겨듣던 라디오 심야방송에서 이 시를 처음 들었던 그 날의 벅찬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유명 여자 연기자의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배경에 깔린 무겁고 우울한 음악은 나를 이 시에 흠뻑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시를 들은 다음날 음반가게로 달려가 시낭송 테이프를 구입했을 정도이니, 그때의 감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고시절에는 그저 막연하게만 좋아했던 이 시가 내게 애절한 감정과 함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 사건이 있었다. 2005년 6월 전화수화기를 통해 듣게 된 갑작스런 친정어머니의 사망소식에 맏딸인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절차를 따라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했다. 그것으로 슬픔은 끝일 거라 믿고 싶었던 나에게 그것이 큰 욕심이었던지 남겨진 가족들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친정어머니의 오일장을 치르고 친정아버지도 그렇게 친정어머니를 따라 가셨다.
그렇게 두 분을 나란히 보내드린 그해 여름 이후 이 시집은 때로는 내게 슬퍼할 수 있는 눈물을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친정 부모님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을 주기도하며, 살아갈 이유를 주기도 하는 고마운 시가 되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3. 이인환의 ‘아버지의 잠바’를 읽고(김민정)
차마 태우지 못하고
십 년을 모셨다
시장통에서
사 드린 그해
겨울
좋아라
함박 머금던
칠순의 아들 자랑
와르르
순식간에
무너진 하늘
꺼이꺼이
보낼 수 없어
이것만은
이것만이라도
차마 태우지 못하고
십 년을 모셨다.
‘나는 시랑 안 친한데…’라는 고민이 머릿속에 꽉 차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시집을 들여다보아도 나에게 와 닿지 않고, 무거운 마음과 빈 손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인환 선생님께서 강의하시는 중에 시 소개를 해주시는데, 가슴 속 깊이 먼지 낀 응어리가 꿀럭이며 올라왔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코 끝이 찡하게 아려왔습니다.
제가 고3때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화장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잘 가시라며 뿌려드리는데, 어린 마음에 조금씩 장갑에 남은 것을 점퍼 주머니에 털어 넣었습니다.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피곤함에 그냥 쓰러져 잠들어 버렸는데, 할머니께서 점퍼를 세탁기로 빨아 버렸고, 뒤 늦게 안 저는 그 점퍼를 붙잡고 한없이 눈물만 흘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일을 이 시를 접하면서 글로 표현해서 누군가에게 알리게 됩니다.
시는 어렵고 형식에 얽매어 있는 것이란 생각에 접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 시에서 나와 같은 경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을 느끼면서 시와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습니다.
4. 정호승의 ‘수선화에게’(이성인)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제 독서량 중에 특히나 취약한 부문이 바로 ‘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를 대할 때면 여러 시어들이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튀며 제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른 중반이 넘어서자 가끔씩은 시가 가슴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세상을, 인생을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시 감상문 과제를 쓰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집안에 있는 시집 몇 권을 들춰 보았습니다. 그 시집들도 사실 꼼꼼이 읽어 본 적이 없는 그냥 소장용 책들입니다. 그러다가 한 편 고를 시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입니다.
이 시를 택한 첫째 이유는 단순하게도 제가 이해하기 쉬워서입니다. 좋은 시일수록 함축적이고, 상징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저는 이해하기 쉬운 시가 좋습니다.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시들을 대할 때면 마치 보물찾기 놀이에서 너무 꽁꽁 숨겨 놓은 보물을 찾다 지쳐 포기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만 모르는 암호를 쓰는 적군들에게 희롱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제가 아직 문학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겠지요.
외로움이란 것이 인생에 있어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 외롭다고 옆에 사람에게 한 번씩 투정부리게 되는 것이 또 인생이기도 하지요.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 하느님도 외롭고, 새도, 수선화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외롭다는 말에 나의 외로움이 조금은 위안 받기도 합니다.
이 시 한 편으로 외로움을 담담히 받아 들이는 연습을 한 번 더 합니다. 유난히 외로움을 타는 오른 이 새벽에….
5. 김소월의 ‘산유화’(박혜자)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먼저 1연을 보면 ‘산에는’이라는 표현으로 다른 곳이 아닌 산이라는 곳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이어 등장하는 ‘꽃’은 ‘꽃이’라는 주격 조사를 사용함으로써 산에는 꽃도 피고 풀도 자라고 나무도 있지만 그 중에서 꽃을 한정해서 강조한 것이다.
이어서 2년의 ‘산에’를 더욱 반복하면서 다음 행에 나오는 ‘꽃’에 더 무게를 실어 주고 있다. 이 무게를 단단히 받고 있는 조사가 다음 나오는 ‘은’이다. 여기서 ‘은’은 대조격 조사보다는 주격 조사로 보인다. 그래서 앞에 나오는 ‘산에’를 받아서 꽃에 더욱 시선을 끌게 한다.
이 시에는 이처럼 조사를 사용하면서도 한 자 한 자의 쓰임에 얼마나 신중했는가 드러난다.
1연에서의 장소는 어디인가? 화자는 아직 꽃에 가까워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다고 산 밖에 있거나 많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화자의 시선은 2연에서 좀 더 가까이 가려 한다. 저만치에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보인 것이다. 이로써 화자는 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꽃이 보이는 산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3연에서는 산에서 우는 작은 새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꽃에 근접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 시의 모든 연에서 사용하는 있는 ‘네’의 쓰임이다. ‘네’라는 말을 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보면 여러 가지의 뜻이 나온다. 감탄사로써의 쓰임 또는 주어를 받는 조사로써의 쓰임, 관형사로써의 쓰임 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가볍게 생각하면 감탄사로써 ‘네’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흥미로운 뜻이 하나 있다. 그건 ‘깨달음’이다. 즉 여기에서 쓰인 ‘네’는 깨달음을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특히 4연에 나오는 ‘네’는 깨달음의 최고의 경지인 해탈의 모습을 그린다. 이는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시’라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함축물이다. 그리고 그 함축을 가능하게 하는 글이다. 우리는 그 함축적 장치를 찾아내고 활용해야 진정한 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그런 길은 없다(남수희)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베드로시안의 ‘그런 길은 없다’
시 감상문 숙제를 하려고 기존에 스쳐지나가며 읽었던 시중에서 고른 것이 이 '그런 길은 없다'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요즘 나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시의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시라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 시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입니다.
내가 부족하여 느끼는 답답함이 많이 부끄럽지만 독서 지도자 과정을 통해서 어두운 시기를 헤쳐나가고 싶습니다.
7.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김소연)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알게 된 시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접시꽃 당신'을 우리는 '사발꽃 당신'이라고 부르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이 시는 내가 한창 사춘기일 때,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좋아 했던 시였다.
나는 시라면 중학교 1학년 3월, 학기초부터 너무 싫어 했고, 유명한 시일수록 더더욱 싫어 했다. 왜냐하면 시는 시험에 자주 나오고 외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새 학기 첫 국어수업이 시였다. 그것도 딱 4줄인 '엄마야 누나야'. 그 짧은 시를 한 시간 배우고 나니 교과서가 새까맣던 기억이 났다. 4줄짜리 시가 중요한 게 뭐가 그리 많았던지. 나는 시는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렇게 외우고 시험에 얽매어 놓았는지, 그때마다 시험의 벽을 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가 참 어렵다’는 생각의 틀에 나를 가두어 놓기 시작했다. 시는 내재된 함축적인 의미를 알아야 하고, 또 느껴야 하니, 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나는 ‘이과체질’이라 답이 딱딱 나오고, 결론이 생기는 그런 공부가 적성에 맞는데, 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학창시절에 나는 비록 시를 싫어했지만, 한창 감성이 풍부해진 여고생 시절에 ‘접시꽃 당신’을 접하고는 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가 아니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으로 읊었던 시였으니까. 내가 해석하고 내가 평가하면 끝나는 시라 좋았다. 또한 시인의 아내처럼 내가 짝사랑하는 국어 선생님의 아내가 되어 그리 한번 죽어보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도종환 시인도 그 당시 현직교사였고, 나 또한 짝사랑했던 선생님도 국어 교사였기에 이 시는 나를 위해 만든 시라고 혼자 떠벌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고 남편보기 민망하다. 그래도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 한 분을 갖고 친구들끼리 “내 꺼니, 네 꺼니” 하며 싸웠던 때가 그립다. 아마 그 당시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한 것은 대입보다도 나에게는 큰 중요한 사건이었으니까. 정말이지 그때는 국어 선생님의 아내가 되어 나도 그런 사랑을 받아 봤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이 시가 문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시인의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았고 치료를 위해 아기를 포기해야 했지만, 끝까지 뱃속의 새 생명을 지키내고, 아내는 암으로 죽었다. 2년 만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아내의 무덤까지 찾아가며 썼던 시로 그 당시에 꽤 유명해졌던 시다.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며 심금을 울렸던 시였다. 너무 인기가 좋아 이덕화, 이보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관객이 찾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시가 단지 죽은 아내만을 그리워 하며 쓴 시라 인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도종환이라는 한 인물의 인생 스토리가 그 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인의 순탄치 않았던 삶이 이러한 시를 만들었고, 또 그것이 많은 이들에 심금을 울렸던 것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8. 우희윤의 ‘봄 눈’을 읽고(박연옥)
금방 가야할걸
뭐하러 왔니?
우리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글썽한 봄눈입니다.
이 시를 읽으니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어느 새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를 어린 아이로 설정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친정에 왔다 가는 엄마가 외할머니와 눈물 글썽이며 헤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린 아이의 시각을 통하여 절제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더 애틋함을 느끼도록 합니다.
잠깐 내리다 녹아버리는 봄눈처럼, 잠깐 왔다 다시 가야 하는 시집간 딸. 그 딸을 보내는 친정어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 ‘눈물 글썽한 봄눈’이란 시어는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두고 가야 하는 딸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시집간 딸이 언제나 다시 올까 그리는 어머니의 마음도 잘 담겨 있는 둣합니다.
이 시는 ‘시집간 딸과 친정엄마의 눈물 글썽이는 애틋한 상황’을 ‘동시처럼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표현하여 더 애틋한 정서가 느껴지는 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9. 다이아나 루먼스의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박연미)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들 바로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많이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 도종환 엮음(2005),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오늘도 아이들과의 작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성(중2)이가 불만스런 한 마디를 툭 내던졌다. “고기도 없고….” 이때 나는 반사적으로 쏘아붙였다.
“또 고기타령이냐, 맛있는 오이도 있으니까 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되잖아. 반찬투정 좀 그만 해라.”
결국 오늘도 썰렁한 식사시간이 되고 말았다. 아이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오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곤 도끼눈으로 “맛도 없네” 하더니 대충 먹고 말았다.
왜 아이가 입이 까다로운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남편은 아이가 입이 까다로운 게 아니고 예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급적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흥~’ 했을 텐데, 감명 깊게 읽은 이 시(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가 갑자기 떠오르면서 흥분된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그~래 맞는 말이야, 아이를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좋겠다.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해야지.”라고 스스로에게 굳은 다짐을 했다.
이 시의 둘째 연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를 읽을 때면 둘째 아이(6학년)가 생각난다. 나는 화가 많이 나면 가끔씩 손가락으로 아이를 지적하면서 잘못을 야단칠 때가 있었다. 이때 아이의 반응은 무척이나 서러워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시에서처럼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라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힘겹게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말보다는 자존감을 세워주는 말을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워야겠다. 이 시의 한 마디, 한 구절들이 나의 마음을 흔든다. 나의 마음을 때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