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鷄龍山)
전 민
계룡산.1
-역사의 발원
영산 백두에서 기지개를 켜자
발끝은 소백산으로 쭉쭉 뻗다
무릅 속리산을 뛰어 넘어, 한라
뒤돌아 보니 이웃 사촌 대둔산
계룡산에 멈춰 산태극을 그리며
수태극과 만나 천지음양의 이치
하늘과 땅 화합해 산천을 빚고
신비한 그대, 영산 계룡산이네
숫용추 물줄기 암용추에 꽃히여
두계천을 잉태하며 갑천을 낳고
충북, 영동, 옥천에서 섞여진 물
신탄진에서 가족 만나 비단강에
계룡산 북쪽을 삥 휘돌아 나와서
웅진 ,사비. 갱개미 어깨동무하고
서해 바다로, 인도양, 태평양으로
산, 강의 덕이 합해 역사의 발원
계룡산.2
-매운 서울, 신도(辛都)
백두대간에서 분가한 자자손들은
금남정맥의 북쪽 끝에 터를 잡고
할아버지격인 덕유산을 굽어보네
계룡의 닭계 자는 양(陽)이며, 산
룡은 음(陰)이며 물을 뜻한다지
용이 닭 벼슬을 쓴 듯한 계룡산
몸을 돌려 조상을 돌아보고 있는
효심의 땅, 회룡고조의 자세로
덕유산 ,운장산, 물살 끌어안고
충청의 젖줄 비단강 맘쩟 펼쳐
춘하추동으로 쭉 깔아 놓았으니
임금 제(帝)자의 주봉은 천황봉
금계산은 청룡이 되어 비상하고
일용산은 백호로 변신해 달리지
일찍이 황제의 수도라 이름붙여
제도(帝都)라 부르기도 했지만
삼국통일 때 우리 땅을 찾았던
당나라 장수 설인귀라는 장수는
이곳이 부러워 배가 아팠던지
이 작은 나라에 무슨 황제냐고
산의 양쪽에서 획 하나씩을 떼내
매운 서울, 신도(辛都)라 했다지
계룡산.3
-이끼 속에 숨겨진 참언
연천봉에 현존하는 등운암을
정씨를 누룬다는 의미에 맞춰
민비는 압정사라 고쳐 놓았지
계룡의 9봉 중 연천봉의 바위
이끼 속을 헤쳐보니 참언에는
희미한 方百馬角 口或禾生
방백마각 구혹화생이라 읽고
방(方)은 네모이니 4이란 뜻
마(馬)는 우(牛)자로 보면 80
각(角)은 뿔이니 둘로 풀리며
구혹(口或)은 국(國)자가 되고
화생(禾生)은 이(移)자의 고어
사백팔십이국이(四百八十二國移)
이끼속의 참언을 쉽게 풀어보니
조선이 탄생하여 일제에 빼앗긴
순종 임금이 태어난 해 1874년
조선 창건 후 482년이 되는 해에
망한다 예언 했는데 518년 만에
일제에 수탈당하니 36년의 차이
연천봉의 참언에 숨겨진 수치지.
계룡산.4
-조선조 500년 설
계룡산의 돌이 하햫게 물들고
논산 상월면에 배가 드나들 때
도읍이 여기에 들어선다고 해서
임진란 이후 인심은 흉륭해지고
유성룡은 징비록을 써 배포하여
민심을 수습하며, 정감록을 공개
신도안은 8백년 도읍지이고
정도령이 나와 도읍을 삼는다
정감록에 숨겨온 신비한 예언도
실제로 넘겨준 수도는 한양이고
조선 건국 후 이씨는 망하고
정씨가 흥해 도읍지가 된다는
알듯 모를 듯 신비한 정감록은
울림으로만. 마음속에 머물고
참언과 사건은 계속 꼬리를 물지
조선 선조 때 정여립의 모반사건
이용신의 계룡 천도 상소 사건
인조 때 유효립의 계룡 천도설
성조 시 홍복영의 정감록 옥사
줄줄이 이어진 매운 사탕처럼.
계룡산.5
-십대사찰 동학사
사찰 경내로 정숙하게 들어서면
신라, 고려, 조선의 충신들이 모두
동계사, 숙모전, 삼은각에 모였네
인질인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고 일본에서 순절한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던 동계사
세조에 의해 희생된 사육신과 단종
280여 명의 초혼제를 지내던 곳
지금까지 이어 오는 숙모전
고려말의 길재가 공민왕과
정몽주를 제사 지낸 삼은각
갑사와 등짝만 맞대며 살아온
상원조사의 전설이 얽힌 남매탑
절의 동쪽 학 모양 바위에서
이름 붙여진 동학사는 청량사
신라 성덕왕 23년에 건립한
화엄종 십대사찰 중 하나였지
재난과 한국전쟁을 버티면서
가장 오래된 비구니의 강원으로
어찌된 사연인지 일주문 대신에
충의와 절개를 기리려해서인지
홍살문만 우뚝 솟아 있더니.
계룡산.6
-가을 갑사
느티나무 숲길 깊숙한
계룡산 서북쪽 기슭에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사찰, 갑사
의병장인 서산, 사명
영규대사를 모신 표충원
선조 때 주조된 천근의 동
28 마디의 원통 철 당간지주
31개의 월인석보 판목
용문폭포를 따라 오르자
갑사의 부속 암자 신흥암에는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신
천진보탑만 눈에 들어오고
가끔은 영롱한 빛만을
영산의 정기로 내뿜는다
이태조와 무학대사의 꿈이
곱게 잠들어 있는 신원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오악에 제사지내다
조선조에 와서도 한해에 두 차례
상악단은 묘향산, 하악단은 지리산에
이태조가 계룡산 산신제를 올린
중악단이 자리하고 있는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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