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호산공 경득-묘소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 전하산. 찰방공 함일의 장남. 조선 선조 3년에 태어남. 자는 자하, 호는 호산
임진.정유왜란, 정묘.병자호란의 어려운 시기를 살다 간 선조 중의 한 분. 좌우명은 好論人非陰禍必胎喜揚人惡顯殃必來남의 비행을
말하기 좋아하면 반드시 숨은 화를 불러들이고, 남의 약점을 들춰내기 좋아하면 눈에 보이는 재앙이 올 것이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1569~1630)
임진. 정유재란에 倡義했다. 가족들을 배에 태우고 西海에서 倭敵을 만나자 어머니를 비롯하여 함께 타고 있던 부녀자들은 "살아서
욕보느니 깨끗하게 죽자" 며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투신 자결하였다. 남자들은 왜적과 맞서서 싸우다 전사하거나 被拉되었다. 公은
어머니와 아내,제수,여동생을 바다에서 잃고 자신은 늙은 아버님과 아들 색, 아우와 함께 호인, 호래 등과 함께 피랍 되었다.죽고 싶
었지만 아버님께서 "부녀자들이 졸지에 깨끗이 죽어갔으니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가문을 잇기 위해서는 섣불리 목숨을 버리지 말고
의연하게 행동하라"는 당부에 죽지도 못했다고 萬死錄에 전한다.왜국의 아파주에 억류되어 望闕壇, 望海壇, 望鄕壇을 만들어 초하루
보름이면 再拜하고 임금과 칠산 해역에서 순절한 어머니,처,제수,여동생에 대하여,고향의 조상은 물론 아버님께 禮를 올리는 의식을
눈,비,바람을 맞으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3년만에 귀국하여"환고국일봉소(還故國日封疎)"를 올리어 왜적의 생활 풍물과 邊防
守城方略에 대한 보고를 했다. 鄕試에 나아가 두 번 壯元했으나 왜적에게 피랍된 수모를 죄인으로 자책하고 과거시험은 보지 않았다.
왜국 억류생활의 기록인 만사록을 남겼으며, 함께 피랍되었던 아우 희득은 해상록을, 조카 호인은 정유피란기를 남겼다.부인은 칠산
해역에서 투신 순절 열부로 명정된 순천박씨, 후취 풍산 홍씨이다. 아드님 색과 풍산 홍씨 소생인 온, 청, 릉, 타 등 5형제를 두었다.
묘소는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전하산 명당 蓮花到水에 모시어 있다.
참고로 八烈婦는 찰방공 함일의 부인 함평이씨, 함일의 자 호산공 경득의 부인 순천 박씨, 월봉공 희득의 부인 함평이씨, 딸 진주정씨
승사랑부장 주일의 부인 함평이씨, 주일의 자 월천공 절의 부인 영광김씨, 절의 자 호인의 부인 함평이씨, 동래인 정운길의 부인 함양
오씨와 두 딸, 처제 함양오씨, 처남부인 황주변씨. 팔녀각은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8호,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구 순절비 제 23호.
매년 60년마다 정유년 음력 9월 27일 순절비 앞에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