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성지를 다녀오다가 "탁사정" 안내판을 보았다.
옛날부터 "탁사정"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탁사정"은 백사장과 맑은 물, 老松이 어울린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의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이다.
제천 10경중 제9경인 "탁사정"은 정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한말 정운호(鄭雲湖)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경 "대암"(垈岩)이 바로 이곳이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水事)로 있던 "임응룡"(林應龍)이 고향에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八松)이라 명명하였고, 그 뒤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에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임윤근"(林允根)이 1925년 다시 세웠고,
제천의 선비인 "원규상"(元圭常 1868~?)이 "탁사정"(濯斯亭)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응룡"이 심은 해송은 모두 죽고 한 그루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1999년 팔송 마을과 제방에 20 그루의 해송을 심어 해송을 구경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팔송리와 탁사정은 조금 거리가 있다.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이 갈라져 남서로 달리는 남서쪽 골짜기에 자리 잡은 탁사정 유원지는
서늘한 골바람과 계곡의 짙푸른 물빛, 낮은 폭포가 어우러져 주위의 노송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름철이면 정자 아래 용소 주변의 넓은 모래밭에 야영과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이 몰려드는 곳이다.
탁사정(濯斯亭)의 "濯斯"는 맹자의 "진심장구"(盡心章句)에 나오는 문구에서 빌려 왔다고 하기도 하는데,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중에
"창랑 지수 청혜"(滄浪之水淸兮) "가이 탁아영"(可以濯吾纓)
"창랑 지수 탁혜"(滄浪之水濁兮) "가이 탁아족"(可以濯吾足)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어부사"(漁父辭) 내용.
屈原旣放에 游於江潭하고 行吟澤畔할새 顔色이 憔悴하고 形容이 枯槁라.
굴원이 쫓겨난 뒤 강가에서 서성이고 늪가에서 거닐며 시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말라 있었다.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 何故至于斯오?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오. 어쩌다가 여기에 이르렀소?”
屈原 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
衆人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見放이라.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혼자 맑으며,
뭇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으니, 이로써 추방당했다오."
漁父曰 聖人은 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하나니。
世人이 皆濁이면 何不淈其泥而揚其波하며
衆人이 皆醉이면 何不餔其糟而歠其醨오.
何故로 深思高擧하여 自令放爲오?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聖人)은 상대에게 얽매이지 않고 세속과 더불어 옮겨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리면 어찌하여 그 진흙탕을 휘저어 그 물결을 날리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취했으면 어찌하여 그 술지게미를 먹고 그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시오.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높이 행동하여 자신을 쫓겨나게 하였소?”
屈原 曰 吾聞之하니 新沐者는 必彈冠하고 新浴者는 必振衣라。
安能以身之察察로 受物之汶汶者乎아.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 이언정
安能以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아.
굴원 왈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어 머리에 얹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고 걸친다."라고 하였소.
그러니 어찌 청결한 몸에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배 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깨끗하고 흰 내가 세속의 더러운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漁父莞爾而笑하고 鼓枻而去하여 乃歌曰 滄浪之水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요
滄浪之水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라 하고
遂去不復與言하더라.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저어 떠나면서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빨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수 있다네.”라고 하고는
마침내 떠나서 더 이상 함께 말하지 않았다.
창농(滄儂) 현판.
"창농"은 " 임윤근"의 호라고 한다.
여러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모두 바래서 글씨가 잘 확인이 안돼는데
이 하나가 그런대로 선명하여 사진을 찍고 여러 문헌을 뒤져 내용을 확인하였다.
"謹次濯斯亭重修韻"(근차탁사정중수운)
"奇巖麗水濯斯連" (기암여수탁사련) 기암과 고운 물 탁사정에 닿아있고,
"勝地風光滿檻前" (승지풍광만함전) 명승지 풍광은 정자 난간 가득하네.
"九鶴幽林圍四域" (구학유림위사역) 구학산 깊은 숲은 사방을 에워싸고,
"任公佳積住千年" (임공가적주천년) 임공의 훌륭한 자취 천년에 남으리. #任은 林의 誤記?
"樓作蓮社如離俗" (루작연사여리속) 연꽃가득히 핀 누대는 딴 세상같고,
"境擬商山不羨仙" (경의상산불선선) 상산과 닮은 풍경 신선이 안부럽네.
"曾日登臨蔠未得" (증일등림종미득) 옛날 오려 하였으나 오지 못했는데,
"於今晩上做淸緣" (어금만상주청연) 지금 저물녁에 맑은 인연 만들었네.
"提川警察署長 東洲 金元一 謹稿" (제천경찰서장 동주 김원일 근고)
탁사정은 배론성지 입구에서 원주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있으며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는 무료이고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한다고 한다.
"봉양역"에서 약 5키로정도 올라가면 있다.
탁사정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내용)
이곳은 구학산과 감악산사이 궁골(弓谷)의 뾰족한 바위로 가믐이 들면 비를 기원했던 자리이다.
아래로 용암천(龍岩川)이 굽이져 흘러 깊은 용소(龍沼)를 만들고 주위의 대암(垈岩)과 노송이 어우러져 있으며
무더운 여름 물맞이 할 곳으로 "제천10경" 가운데 "9경"이다.
정자는 옛날 옥호정(玉壺亭)이 있던 자리에 제주 수사(水使)를 지내고 소나무 여덟구루를 옮겨와 심어
팔송리의 유래를 만든 임응룡(林應龍)을 기리어 그 후손인 임윤근(林允根)이 1925년 건립했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 초(楚)나라 때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청사탁영 탁사탁족(淸斯濯纓濁斯濯足 :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물에는 발을 씻는다)
의 글귀를 따서 "탁사정"(濯斯亭)이라 했다.
그호 6.25 전란으로 불탄 것을 1957년 새로 고쳤으며, 2005년 "제천10경" 정비사업의 하나로 보수했다.
주변바위 가운데 "자루바위"에는 지나던 나무꾼이 장마 때에 바위 홈에 갇혀있던 고기가 많아
잠방이를 벗어 자루를 만들어 고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찾아내셨을꼬~~~
여기 저기 뒤져서 찾아내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