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순일하지 못한 것을 깨달으니…”
<8> 증시랑 천유가 질문하는 편지 ①
[본문] 증개(曾開)가 지난날 장사라는 지방에 있으면서 원오노사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편지에 스님을 소개하기를, “만년에 만난 사이지만 불법에 대한 소득이 매우 훌륭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뵙고자 여러 번 생각하였는데 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친히 듣지 못한 것을 늘 한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오직 간절하게 앙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강설] 이 글은 대혜선사에게 보내온 수많은 질문의 편지글 중에서 특별히 하나를 골라서 본보기로 선사의 답장 앞에 실었다. 세속에 살면서 참선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증개라는 사람은 시랑이라는 벼슬을 하는 사람인데 대혜선사의 답장이 여러 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서두에 원오선사와 편지왕래를 통하여 소개를 받았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8년여 동안 찾아뵙고 법문을 듣고 싶었으나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는 사연을 적으면서 앞으로 간절히 법을 청하겠노라는 내용이다.
중국에는 땅이 넓고 교통도 발달하기 이전이라 마음은 있어도 만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덕택에 이와 같은 편지글이 남아서 후인들에게 큰 혜택을 주게 되었다.
세속 살면서 참선공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
[본문] 저는 어려서부터 발심하여 선지식을 참례하고 불법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약관(弱冠)의 나이가 지난 뒤에는 곧바로 혼인도 하고 벼슬길에도 올라 그것에 시달리느라 불법공부가 순일하지 못했습니다. 그럭저럭 세월은 흘러 이제는 늙어 버렸습니다만 아직도 불법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는 것을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뜻을 세우고 서원을 발한 것은 실로 얕고 얕은 지견(知見) 사이에 있지 않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만이지만 깨닫게 되면 반드시 고인(古人)들이 친히 증득한 곳에 바로 이르러서 비로소 크게 쉴 곳을 삼으려고 합니다. 이 마음은 비록 일찍이 한 생각도 물러서지 아니하였으나 공부가 마침내 순일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깨달으니 가히 ‘뜻과 서원은 크나 역량은 작다’라고 하겠습니다.
[강설] 자신의 불교와의 인연과 그 내역을 간단히 들려주는 내용이다.
어려서 발심하였으며 선지식도 더러 친견하였고, 그러다가 결혼도 하고 벼슬살이도 하느라고 불교공부가 순탄치 못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늙었지만 불교에 대한 신심과 원력은 여전하여 꼭 옛 조사 스님들이 깨달으신 그 경지에까지 이르고 싶다는 말이다.
자신의 지금의 심정을 ‘지원대이력량소(志願大而力量小)’라는 명구를 하나 인용하여 표현하였다. “뜻과 서원은 크나 역량은 작다”라는 말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사에 대한 출세를 하는 일이나 아니면 불교적으로 도를 통하고 큰 그릇이 되어 만중생을 제도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 역량이 작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흔히 불교공부가 좋다는 것은 다 안다. 그래서 언젠가 이 일도 마치고 저 일도 끝낸 뒤에 한번 제대로 파고들어봐야지 하는 생각들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럭저럭 세월은 다 가서 늙을대로 늙었으며 세속의 때가 묻을대로 묻고 난 뒤라 공부에 대한 생각마저 시들해지고 만다.
세월은 인생을 기다려 주지 않고 젊을 때의 신심도 그대로 있어 주지 않는다. 어느 새 인생의 가치관도 달라져 버린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증시랑의 고백에는 아직도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이지만 그도 결국에는 기대하던 바를 이루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진정으로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루도 긴 시간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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