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6:4-9, 마음에 새겨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말씀, 19.11.20, 박홍섭 목사
한 사람의 신앙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어떤 신으로 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4절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상천하지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 할 때 듣고 보았던 수많은 신, 앞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할 가나안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등 이방신들은 모두 신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를 위해 만들어낸 헛된 우상에 불과합니다. 오직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자기백성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계시는 유일한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신앙생활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무엇이라고 하셨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면서(4: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하지 않았습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알고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른 체 막연한 종교성으로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유일한 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은혜로 구원하여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십계명은 구원받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억지로 지켜야 하는 구속과 억압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의 법으로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지침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백성임을 보이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가나안에 이스라엘만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그들보다 한 발 먼저 들어가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연 초부터 연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십계명과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신 최소한의 규정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정결법이 나오고 음식법이 나오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피부에 얼룩이 생기고 사는 집에 곰팡이가 피면 어떻게 하고 이런 음식은 먹어도 되고 이런 재료는 먹을 수 없고, 이런 옷은 입어도 되고 저런 옷을 입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한 신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보다 귀한 복이 없습니다. 그 복을 주셨기에 최소한의 동거규정으로 주신 법이 십계명과 그에 따른 율법입니다. 부부가 함께 살면 혼자 살던 때처럼 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말하고 행동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들의 최소한의 예의와 동거의 기본이 하나님의 계명들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신 이 법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5절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워가면서 이 자리로 갑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원래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실 때 이렇게 살도록 지었습니다. 인생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이후 아무도 이렇게 사는 인생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며 삽니다. 사랑의 방향과 내용이 하나님과 이웃에서 자기에게로 왜곡되고 비틀어지니 부지런히 자기를 사랑하는데 자기고 힘들고 온 세상이 고통하고 신음합니다. 강한 자가 있는 반면 약한 자가 있고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누리는 자가 있으면 빼앗기는 자가 있습니다. 죄가 만들어놓은 비참한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때가 되어 이들을 구원하시고 시내 산에 불러 모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언약의 맺어주시고 그 언약의 법을 주시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면 이 언약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6:1-3절을 보십시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산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온 세상이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함으로 불행과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종족,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다르게 삽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삽니다. 하나님이 주신 법의 정신과 원리대로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고 시민법과 도덕법을 지키면서 거룩하고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이 땅에 살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라도 그 은혜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아 구원의 은혜를 입고 언약백성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법을 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믿고 그 법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과 율법, 하나님의 법도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지를 가르쳐주며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법입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계명이 아닙니다.
물고기가 물에 있는 것을 보고 아무도 물이 물고기를 구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제대로 삽니다. 물 안에 있어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습니다. 그게 물고기입니다. 물 밖의 고기는 물고기인데 물고기가 아닙니다. 파딱거리면서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우리를 구속하고 억압하고 제한하는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제대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 언약 안에서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비늘을 번쩍이며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햇빛을 받아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제대로 된 인생을 삽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함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으면 다 자신이 없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안 된다고 할까요? 한국인이 하루에 스마트 폰을 얼마나 사용할까요? 하루 평균 세 시간 50분입니다. 하루에 네 시간 가까이 스마트 폰을 쳐다보고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폰부터 봅니다. 저녁에 잘 때 폰을 보면서 잠이 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스마트 폰과 그 속의 내용들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 새겨져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 된 인생은 본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마음에 두고 삽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본성을 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이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5절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뒤 6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말을 마음에 새기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러주십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할까요? 왜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지 못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읽고 듣지 않아서입니다. 4절에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고 했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입을 열어 내 생각을 말하고 내 소원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들음이 하나님 사랑의 시작이고 기독교 신앙의 신앙입니다. 듣지 않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믿습니다. 듣기 싫으니까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입니다.
듣되 언제까지 들어야 합니까? 마음에 새겨질 때까지 들어야 합니다. 새긴다는 말은 둔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과 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어질 때까지 들어야 합니다. 묵상해야 합니다. 하루에 스마트 폰 보는 시간의 3분이 1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해보십시오. 반드시 샘물이 터지듯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두어지고 새겨질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삶을 거의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주일 내내 성경말씀을 던져놓고 자기의 삶에 분주하다가 주일이 되면 먼지를 털고 성경을 들고 교회에 오는 식으로 살면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새길 때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듭니다. BTS를 아십니까? 요즘 세계를 흔들고 있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BTS가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마음에 철판을 깔고 사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은 방탄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고 새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다닐 때나 누워있을 때에도 강론하라고 합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의 원문은 ‘샤난’이라는 말로 예리하게 찌르라는 뜻과 더불어 날카롭고 뽀죡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부모들의 마음에 새겨진 말씀이 자녀들에게 가르쳐 질 때 자녀들의 영혼과 양심이 예리하게 찔림을 받습니다. 부모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자녀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찔림을 받으면 그들의 심령이 예리하게 갈려서 날카롭게 됩니다. 뭉툭한 영혼으로 세상을 뚫고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의 영혼을 날카롭게 갈려야만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부딪쳐 와도 뚫고 지나갈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의 영혼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찔림을 받고 갈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여기 ‘너’는 부모입니다. 먼저 부모가 이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볼 때 우리 부모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 엄마 아빠의 소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며 우리 엄마 아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바가 되는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을 보이고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치고 언제 어디서든 가르치는 것이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자녀들에게 누구를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아버지 어머니라는 대답을 듣는 부모들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