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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2189.2023.4.23)
사55:6-1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비싼것만 좋은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선물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선물입니다. 하나님도 사람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저는 늘상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보셨습니까? 잘 모르시겠습니까? 전3:13절‘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할렐루야! 먹고 마시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 신기합니다. 과일을 보세요. 봄이 오면 딸기가 제철입니다. 비티민이 많이 들어있어서 잘먹고 일하라고 주셨습니다. 여름이면 수박입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보니까 목이 말라서 하나님이 수박을 주셨습니다. 가을이면 포도입니다. 열심히 일하다가보니까 기운이 딸리니가 하나님이 달달한 포도를 주어서 기운내게 했습니다. 겨울이면 사과. 배 등등입니다. 이런 과일은 껍질이 단단합니다. 상하지 않게 단단하게 해서 먹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의 역사이고 사람에게 준 선물입니다.
절기로는 지난 주 목요일에 곡우가 지났습니다. 예전에는 곡우때에 씨 나락을 담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요즘에는 모든 농사도 시설화 과학화되어서 예전과는 상상할수도 없고 비교할수도 없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샌가 본격적인 농번기가 되어서 밭에는 어린 모종을 심고 얇은 비닐 이불이 대지에 덮여지고 있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모든 농가가 그렇지만 상주에 시골마을마다 사람들은 더욱 바쁜 것 갔습니다.
봄이 되면 온갖 생물들이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경칩이 되면 잠자던 개구리가 나온다고 하고, 춘분이 되면 온갖 곤충들과 나비들도 나오는 계절입니다. 전에 나 어렸을 때는 봄이 되어서 하얀 나비를 처음 보면 상제가 되고 노랑나비를 먼저 보면 예쁜 옷을 입게 된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그 시절에는 옷도 제대로 못 입던 때였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있었던 것 갔습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새 봄을 맞이하여 그 동안 나태하고 게을렀던 우리들의 믿음도 이제는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봄이 되면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농사일은 새롭게 시작하면서 어찌하여 신앙은 새로워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믿음도 새로워 져야 합니다. 고후5: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6:2절‘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봄이 되면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나무들은 새순이 돋고 죽은 듯 잠자던 대지에서는 온갖 잡초들이 앞을 다투어 새싹을 돋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 따라 온갖 곤충들도 생겨나고 강남으로 이사를 갔던 제비들도 다시 찾아와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환경오염이 심각해서인지 봄이 되어도 좀처럼 제비를 볼 수가 없어서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에는 언제나 봄이 오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온 우주 삼라만상, 천지 만물들이 모두다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데 유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6-7절‘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찾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이 많지만 성경은 먼저 여호와를 찾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언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까?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언제입니까?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볼 때 고통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가 바로 여호와를 가장 많이 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고통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찾으므로 은혜를 받고 회복을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부르라고 하십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가까이 계실 때가 언제입니까?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고 제자들에게 갈릴리 저편으로 건너가라고 하신 후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이 때 갈릴리를 건너던 제자들에게 큰 어려움이 닥치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다가오셔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내가 가장 괴롭다고 생각될 때 예수를 믿기 어렵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때 인생살이가 괴롭다고 느낄 때에 가까이 와 계시는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면 만나주시고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축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 계획하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무엇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하며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럴 때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버리라’고 할 때의 ‘길’이란 ‘방법’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악인은 그 방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그 ‘생각’ 즉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감사하면서 살 때 성공과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행복을 가로막는 온갖 죄악들입니다.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날려 보내는 가시나무가 자신의 마음에는 없는지? 내 가정의 기쁨과 행복을 앗아가는 가시나무는 없는지?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처럼 교회를 찾아온 성도들에게 가시나무 같아서 형제 자매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것들은 없는지? 더 나아가 이 나라 백성들의 마음과 생활을 아프게 하는 가시나무같은 존재들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상주감리교회에서 가시나무가 자라던 것을 잘라내고 거기에 잣나무가 심겨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1.백성들의 마음과 생활을 아프게 하는 가시나무같은 존재입니다.
가시나무의 또 다른 의미를 구약성경 삿8-9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3,160여전, 수십만의 미디안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뽑힌 300명의 용사만으로 이들을 간단히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삿8:23절‘나와 내 아들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겠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리라’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사는 날 동안 왕이 없이 지냈지만 백성들은 태평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드온이 생전에 아내를 많이 두어 자식들이 무려 70명이 되었고, 세겜이라는 곳에 첩을 두어 아비멜렉이라는 아들도 두었습니다. 기드온이 죽자 세겜의 첩에게서 나은 아들 아비멜렉이 왕이 되고 싶어서 어머니의 고향 세겜으로 달려갑니다. 그 곳 고향을 정치기반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에게 70인이 다스리는게 좋으냐아니면 한 사람이 다스리는게 좋으냐고 물으며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고 은근히 협박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같은 고향 사람 골육지친, 한 형제라는 말에 아비멜렉에게 정치 자금으로 은 70개를 후원합니다.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요즈음 말로 하면 소위 정치깡패들을 매수하여 자기 형제 70인을 모두 한 장소에서 한 칼에 죽여 없애버립니다.
오직 막내아들 ‘요담’만 숨어 있다가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그 후 세겜 사람에 의해 아비멜렉이 왕으로 세워졌다는 소문을 듣고 요담은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가 외친 내용이 나무들을 이용한 우화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숲 속의 나무들이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찾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감람나무에게 절하면서 우리를 다스려 달라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감람나무는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직분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요동할 수 없다’며 겸손하게 거절합니다. 이번에는 무화과나무를 찾아가 왕이 될 것을 요청하자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것을 버리고 내가 나무들 위에 요동할 수 없다’며 공손히 거절합니다. 또 포도나무를 찾아가서 요청합니다. 포도나무도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요동할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이번에는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가시나무는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불을 내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불살라 버리리라’고 협박하며 왕이 될 것을 말합니다. 요담은 이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처럼 백해무익한 존재인데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동향이라는 이유로 해서 어리석게도 지도자로 선택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멸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가시나무 같은 자를 왕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나는 너희들의 골육지친 한 형제다’,‘나는 너희들과 고향이 같다’는 말 한 마디에 모든 세겜 사람들이 넘어갔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격이 전혀 없지만 혈연과 지연에 호소함으로 협박 공갈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혈연이나 지연 등으로 권력을 수탈하려는 자들은 가시나무 같은 자들입니다. 또한 아비멜렉은 왕이 되기 위하여 정치깡패를 동원해서 자기 형제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은 가시나무같은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비멜렉에게 이러한 정치자금을 대준 세겜 사람들 역시 결국 멸망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가시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의 말을 보면 그가 왜 가시나무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네가 왕이 되라는 말에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라며 거만하게 말합니다. 그늘은 보호를 말합니다. 가시나무에 그늘이 어디 있습니까? 가시나무는 본래 땅에 낮게 번식하기 때문에 그늘이 생기지 않습니다. 있다고 한들, 쉴만한 그늘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가시나무는 지키지도 못할 공약들을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다’는 막말로 협박 공갈을 퍼붓습니다. 사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거대한 백향목까지 태워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가시나무는 극히 해로운 나무로 저주와 황폐와 고통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는’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행복과 축복이 충만하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2.잣나무는 구원의 기쁨과 축복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잣나무가 ‘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행복과 축복’의 상징이 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노아 홍수 심판 당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6:14) 구원의 방주가 잣나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 쓰인 것이 또한 잣나무였습니다.(왕상6:15,34) 또한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 찬양하는 악기들을 모두 잣나무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삼하6:5) 이처럼 잣나무는 구원의 기쁨과 축복을 상징하는 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잣나무는 4가지 특성이 있는데 첫째,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라는 것입니다. 둘째, 방주를 만들고 성전 건축과 악기에 쓰였던 것처럼 나무질이 단단하고 견고하며 내구력이 뛰어납니다. 셋째, 은은한 향기를 내기 때문에 썩는 냄새를 방지해주어 고대 미이라 관을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넷째, 다른 나무와 달리 위로 곧게 자라는 특징이 있어 뒤틀리거나 휘어짐이 없습니다. 상록수와 견고한 내구성의 특징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난과 핍박 시련이 와도 변함이 없는 굳건한 믿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잣나무의 은은한 향기는 부패를 방지할 만큼 썩어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 곧게 자라는 특성은 정직과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이를 한 마디로 줄여 보면 잣나무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행복과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려면 어떻게 하는 좋을까
사55:1절‘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마6:33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즉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모든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배가 폭풍을 만나 항로를 이탈하여 높은 파도와 싸우다가 겨우 어떤 무인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배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뒤여서 할 수 없이 승객들은 이 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무인도에서 몇 달 동안 살 수 있는 식량이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땅은 비옥해서 씨앗을 심기만 하면 몇 달 후에는 풍성한 식량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씨앗을 심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땅에 황금 덩어리가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도 황금이 있는가 해서 동분서주했습니다. 몇 달 후에 황금은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 그들의 식량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밭에 나가 땅을 일구어 씨를 뿌렸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파종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을 바라보며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먼저 구해야 할 것, 먼저 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황금에 눈이 어두워 굶어죽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호흡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고 하나님을 부를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2:22절‘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가치가 어디 있느뇨’, 시146:4절‘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그러므로 여러분이 호흡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찾을 때이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입니다. 시150:6절‘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했습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코에 호흡이 있는 지금 하나님을 찾으시고 기도할 수 있는 지금 기도하시고 예배드릴 수 있는 지금 철저하고 온전하게 예배드리고 주일성수, 십일조 할 수 있을 때 온전히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전도 봉사할 수 있는 지금 전도하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할 수 있는 지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 여러분의 예배를 받으시고 여러분의 회개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전도와 봉사를 기뻐하십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주시고 능력 주셔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만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며 가까이 계셔서 부르면 곧 만날 만한 때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를 부르시고 하나님을 만나므로 한 순간에 그의 인생이 행복과 축복으로 반전된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기쁨과 축복의 잣나무가 무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55:13절‘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게 하려면’,사55:7절‘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넓게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교회를 떠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지 않고도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는 드리지만 이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말하고 제멋대로 계획하고 살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하십니다.
사55:7절‘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에서 ‘그 길’(his way)이란,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너희 사는 방법, 생각하는 방법, 행동하는 방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그 생각, 즉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려 하지 않고 남을 속여 손쉽게 일확천금을 노리는 삶의 방식, 일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으려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취하려는 삶의 방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출석하면서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분명히 알고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고 제멋대로 제 방식대로 살아서 성공하고 대박을 터뜨렸다해도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마7:24-27절‘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게 하려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사는 방법이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일치하는가를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에 일치하십니까? 아니면 혹시 여러분이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 때로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낫다고 여기십니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어느 죄수 하나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거물급이라 그의 모든 편지는 교도관의 검열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내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당신이 없으니 밭에 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죄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집 텃밭에는 많은 금괴와 총기가 묻혀 있소. 절대로 파면 안 되오’ 며칠 후 아내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수사관 수십 명이 집에 들이닥쳐 우리 텃밭을 모두 갈아엎었어요’죄수는 다시 답장을 썼습니다. ‘그럼……. 이제 얼른 감자를 심어요’ 교도관의 생각을 뛰어넘는 거물급 죄수다운 발상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내 길과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꿈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성공과 축복을 약속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창37장) 어린 요셉은 아마 그 꿈으로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앞길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뜻밖에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노예 생활 중 언제나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방은커녕 요셉으로 하여금 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하여 감옥에 갇히게 합니다. 요셉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요셉을 감옥에 갇히게 하시므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는 계기를 만들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감옥에서 만난 궁중 관리의 꿈을 해석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 왕을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므로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비롯하여 모든 가족들을 고센 땅에 이주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데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을 맞추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바꾸어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바울은 롬7:5-7절‘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낮고 천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생각,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신앙생활로 여러분의 삶에 생명과 평안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보다 높고 나은 것임을 인정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확실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사55:10-11절‘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늘에서 비나 눈이 내려 그것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없습니다. 땅을 적셔 뿌려진 씨가 움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는 종자가 되며 양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그의 뜻을 이루고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십니다.
형통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맡은 바 직분과 사명에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고 맡은 바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불행과 저주만 있을 뿐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을 다 하여 충성할 때 형통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고 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내 생각 내 뜻보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따라 사는 신앙생활로 성도 여러분의 삶에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는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3절‘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어’했기 때문에 6절‘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성경은 먼저 여호와를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찾을 것을 다 찾고 여호와를 찾지 못하면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차라리 이 세상 것을 갖지 못했어도 예수를 믿는 믿음, 하나님을 찾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로서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런데 언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까?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6절‘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여호와를 부르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여호와여,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가까이 계실 때가 언제입니까? 인생을 살아갈 때나 가정생활이나 믿음생활할 때 정말 괴로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마치 지나가려는 것같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지나가려는 것입니까? 불러 주기를 바라고 붙잡아 주기를 바라고 하시는 행동입니다. 이럴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내가 가장 괴롭다고 생각될 때 예수를 믿기가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때 인생살이가 괴롭다고 느낄 때에 다 아시고 가까이 와 계시는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며 축복의 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7절‘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은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하나님을 떠났던 것은 사실인데 이 사람들은 떠난다고 말하지 않고 떠났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예수님을 떠날 때에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지 않고도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곧잘 나오면서 하나님은 벌써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없이 계획하고, 제멋대로 살면서도 무엇이 잘못되면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하며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버리고 오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약속합니다.
약속하시는 여호와입니다. 긍휼의 약속입니다. 7절‘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우리의 주변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긍휼히 여긴다’하는 말은 우리 말 그대로 ‘불쌍히 여긴다’ 혹은 ‘동정한다’는 뜻이지만 히브리 사람들이 쓰는 긍휼은 ‘나아감’이란 말로 성경에서는 ‘자비’라는 말로 여러번 번역되어 있으며 긍휼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자비라는 말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부드럽게 대하여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용서의 약속입니다. 7절‘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널리 용서하신다는 말은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신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속죄관은 반드시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죄가 다 용서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만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까. 과거의 실수에 절대 좌절 마시고 새 힘을 얻으시며 동시에 과거의 성공이나 충성에 절대 자만하지 마십시오.
보장의 약속입니다. 8-9절‘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한마디로 하나님은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높음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우리가 땅이라면 하나님은 하늘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약속한 것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도 수표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말로 해도 부도 수표가 나고 진짜 어음을 끊어 주었다가도 부도 수표가 나고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됩니까?
사람은 무능해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백퍼센트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전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모르시거나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꼭 지키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믿는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시다는 것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본질로 말씀하시며 보장해 주는 약속을 하시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약속을 여러분의 축복이요 영광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만 하시거나 약속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형통의 역사가 있습니다. 10절‘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이와 같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다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하늘에서 비나 눈이 온 다음에 그것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없습니다. 땅을 적셔 들어가면 뿌려진 씨가 움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종자가 되며 양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그의 뜻을 이루고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형통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가 명하여 보낸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을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받을 일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축복엔 공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여 보내신 일 나에게 주셔서 하라고 하신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단비가 되어서 내가 하는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형통하여 우리에게 성공이 약속됩니다.
인도의 역사가 있습니다. 12절‘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즉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러 나간다는 말입니다. 12절‘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인도하여 주시는데 산천 초목을 보십시오. 12절‘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하려고 나아가는 사람을 인도하여 주는 장면을 보고 산들과 작은 산들이 노래를 발하고 그 산에 있는 숲들이 손바닥으로 박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이 산천 초목이 기뻐하며 환영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이신 줄 믿고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의 역사가 있습니다. 13절에서 잣나무와 가시나무가 비교됩니까? 그런데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난다고 합니다. 화석류와 질려, 즉 찔레나무와 비교가 됩니까? 찔레나무를 뽑아 버리고 화석류가 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부 좋은 것으로 심어 주고 가꾸어 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형통하는 그리고 좋은 것만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지내 놓고 보니까 고난이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에게 고난이 없었으면 믿음과 인생이 바로 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바로 잡아 준 것입니다. 디모데는 위장병이 얼마나 심했던지 물만 마시고 살았습니다. 건강할 때에 기도를 안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중병을 앓다 보니까 기도를 많이 하고 은혜를 많이 받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어떤 것이 온다고 내 계산대로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나쁜 것 대신 좋은 것을 심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나를 찾으라, 나를 부르라,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약속하시고, 보장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믿는대로 받을 수 있는 약속입니다. 그런가하면 형통케 하시고 인도하시고 대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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