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그리고 기록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감히, ‘아동학대 교사’를 주제로 글을 썼다. 3월 7일 방영되었던 MBC 피디수첩이 도화선이 된 것은 아니었다. 격월간 교육 잡지인 ‘민들레’에서 2월 중순 경 연락이 왔다. 요즘 학교에 담임을 기피하고, 병가를 내거나 휴직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하는데 관련 글을 써줄 수 있냐는 원고 청탁이었다.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담임 기피 현상은 초등이 아니라 중등의 문제이고, 중등에서 기간제 교사가 담임을 맡게 되는 것은 또 매우 복잡한 맥락과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 밖에서 학교를 보는 것처럼 학교의 권력 구조와 의사결정 맥락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교사들의 병가 사용, 의원면직(사직), 휴직 비율이 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여러 요인도 있지만 아동학대 혹은 교권침해로 인한 부분들이 상당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병가 사용을 권유해서 직무배제를 시키는 불합리한 제도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두 가지 주제를 모두 다룰 예정이라면 담임 기피 현상은 기간제 경험이 많은 중등 선생님을, 병가, 의원면직, 휴직과 아동학대 피소 관련 내용은 관련 전문가인 다른 노동조합 담당자를 추천할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객관적 통계 자료들이 필요한데 그런 내용을 그 분들은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대화를 주고받은 후 ‘민들레’ 편집자는 나에게 원고를 의뢰했고, 너무나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 수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월 18일 교육부가 마련한 ‘아동학대 예방 가이드북 개정’ 관련 회의 자리에 내가 ‘실천교육교사모임’ 대표로 참석했던 것이 가장 큰 책무감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시도교육청 업무담당자, 교원단체, 학부모, 집필진,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한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나와 친분이 있는 교사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와는 딴 세상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단 객관적인(?) 데이터를 찾아야했다. 관련 논문, 국가통계포털, 교육통계 등등을 돌며 자료를 모았다. 그러다가 피디수첩에서 이 문제를 다룰 예정임을 알게 되었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답답했던 것은 ‘교권 침해’ 관련 연구들은 다수 보이지만, ‘아동학대 교사’ 혹은 ‘아동학대 피소’ 관련 연구물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아동학대 주요 통계는 매년 발표되지만 근래의 ‘학교폭력, 성폭력’처럼 ‘아동학대’가 2023년 대한민국의 ‘지배 담론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동학대 교사’라는 낙인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교권 침해라고 다를까?
‘아동학대 피소’는 아동학대 행위자로 고소 혹은 고발을 당했다는 의미다. ‘교권침해’는 법적으로 보장된 교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라는 의미다.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사안은 또 다시 ‘학교폭력’과 그물처럼 얽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아주 구체적인 지인들의 사례를 보면 이렇다.
① 학교폭력 가해자로 처분을 받을 상황에 처한다. ⇒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② 자녀의 말만 듣고 교사를 아동학대, 성폭력 교사로 신고하고 SNS에 확정된 것처럼 퍼트린다. ⇒ 긴 고통의 시간 끝에 교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 교사는 교권침해, 무고 등으로 고소하지 않는다.
③ 교사가 학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 학부모도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④ 특정 학생과 보호자에 의해 교권침해를 받고 있음에도 교사는 교권침해 신고를 하지 않는다. ⇒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⑤ 관리자를 교권침해(갑질)로 신고한다. ⇒ 사안 조사를 하러 내려오지만 조사자는 곧 교장이 될 지역청 장학사이고, 관리자 징계가 아닌 피해교사에게 특별연수나 전출을 권고한다. ⇒ 교육청에 감사 청구를 한다. ⇒ 교육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 모든 사안이 교권침해와 관련되어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이면의 개인화된 고통으로 여기저기 떠다니고 있다. 교권침해란 “교육행정기관, 상급자, 동료 교원, 학부모, 지역주민, 학생 등이 학교교육활동과 관련하여 교원의 법적인 교육할 권리와 사회ㆍ윤리적 권위 또는 교원의 전문적 권위를 침해 또는 무시하는 행위”(김수홍. ‘교육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법적 고찰: 교권보호를 중심으로’. 2016)라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안을 겪었던 개인들은 강박증, 우울, 불안, 편집증, 적대감, 분노, 수치심, 불면증과 악몽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한다. 심리적 어려움 뿐 아니라 여러 제도적 단계(사안 보고, 교권보호위원회, 경찰 조사, 검찰 조사, 재판 과정 등)를 겪으며 소진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 앞길을 막는 거 같아서.
6학년 여학생 세 명에 의해 성폭력 교사에 아동학대 교사로 신고당한 교사는 바로 다음 날 아침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다.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거쳐 모든 것이 세 명의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교권보호위원회가 내린 처분은 서면 사과였다. SNS에 허위 소문을 퍼트리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한 학생의 보호자는 끝까지 서면 사과를 거부했다.
당시 나는 ‘무고’로 고소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그래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사법 당국도 이런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돌아온 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고 그 과정에서 소진되는 것이 더 힘들 거 같다, 곧 졸업하고 중학교 간 아이들 앞길을 막는 거 같아서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 수많은 교권침해 사안들이 대부분 그렇게 종결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가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논문으로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 아동학대로 피소 당했던 교사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며 비판적 자문화기술지로 기록한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 두 교사의 논문을 읽으며 나 역시도, 관리자에 의한 교권침해를 겪었는데 왜 이걸 ‘역사적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하지 못했나, 하는 반성을 먼저 하게 되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2023년 4월 22일, 한국질적탐구학회 춘계학술대회(이화여자대학교 교육관 B동), 세션 6에 오시라. 시간은 오후 14시 50분부터, 오전 9시부터 와서 다른 세션에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거라 본다. 세션 1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앞으로 초등학령기 학생이 될 아이들의 오늘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아직도 3월이야’, 하면서 버텼던 이들도, 아이들의 생동감에 웃고 감사하며 ‘다음’을 생각하고 준비했을 것이다. 그 다음이 아무리 막막하고 힘들어도 ‘교사니까’ 하면서 버텨왔던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교사니까 해야지’가 아니라 ‘교사니까 안되지’가 먼저 생각나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언제나 확인하게 되는 진리는 혼자 고립되지 말고 수다를 떨자는 것. 그 수다의 양상은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개인화’를 넘어서야 진짜 치유될 수 있더라는 것이다.
4월 22일 ‘수다’로 만나봅시다.
참가신청 링크 https://naver.me/xfRV16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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