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 주최 제74회 정기 세미나가 4일 오후 우석기념관 강당에서 ‘시내산과 갈보리 언덕: 루터와 웨슬리의 율법과 복음 이해 비교’를 주제로 개최됐다.
발제한 장기영 박사(서울신대)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마르틴 루터와 성결교의 모태가 되기도 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율법 신학을 조직신학적으로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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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대 우석기념관에서 열린 정기세미나에서 장기영 박사(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연구소 제공 |
장 박사는 먼저 루터와 웨슬리가 정의한 율법 개념을 소개했다. 루터에게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령”으로, 명령을 어긴 죄와 심판을 드러내는 것, 죄에 진노하시는 하나님, 형벌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인에게 영적 고통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 등을 의미했다. 그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돕느냐 방해하느냐를 기준으로 율법과 복음을 나눴고,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은총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율법”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웨슬리는 율법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한 변치 않는 기준, 진리의 완전한 모범” 등 하나님의 명령으로 정의했다. 율법은 그에게 성결의 높은 기준이었고, 경건의 능력을 가질 것에 대한 모든 권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천국문을 향해 전진하라는 모든 권고 또는 인간의 죄를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무책임·무절제·나태와 사소한 유혹까지 즉시 떨쳐버리라고 요구하는 모든 말씀이었다.
장 박사는 “루터와 웨슬리는 동일하게 율법은 거룩하고, 인간 내면으로부터의 순종을 요구하는 영적 성격을 지니며, 생각과 말과 행실에서 완전한 순종이 아니면 형벌을 선포하는 엄격성을 띤 것으로 가르친다”면서도 ‘율법의 본성과 결과’에 대해 둘은 상반된 강조점을 나타낸다고 소개했다.
루터에게는 율법이 울타리이고 죄는 그 울타리를 넘어 금지된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웨슬리는 율법의 본성에 더 초점을 두고 ‘정죄’를 율법 역할의 일부로 봤다. 또 루터는 성경 속 율법보다 하나님의 활동이 율법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더 중시하고 율법을 하나님의 활동 아래 종속시켰지만, 웨슬리는 성경 속 율법에 더 초점을 두고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 뜻 전달에 있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를 가진 규범으로 여겼다.
루터에게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변증법적(Dialectic)’이었다. 율법이 정죄함으로써 죄인을 복음으로 인도하며, 율법의 정죄는 그 자체가 아니라 구원이 목적이므로 율법은 역설적으로 칭의를 돕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웨슬리는 율법이 요구하는 목표가 복음 안에서 성취되고 이뤄지며, 율법과 복음은 먼저 변증법으로 작용한 후 은혜 안에서 연결된다(Dialectic & Correlation)고 했다.
루터의 ‘율법의 두 용법(시민적·신학적)’은 이신칭의와 두 왕국론이라는 루터 신학의 뼈대를 형성한다. 율법의 신학적 용법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인간을 다룬다면, 시민적 용법에서는 자연법이 개인 윤리의 기준이 되고 자연법에 기초한 시민법은 공적인 실정법을 이뤄 사회의 죄를 억제한다. 웨슬리도 루터의 ‘두 왕국론’과 유사한 율법의 세 용법(죄인을 죽이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그와 함께 거하게 함)을 주장한다. ‘선행은총’을 통해 자연법이 역사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역사와, 율법의 세 용법이 신자의 구원을 위해 작용하는 특별한 구속의 역사를 구별한 것.
이후 그는 ‘성부 하나님 이해: 전능하시고 율법에 영향받지 않는 하나님 vs 거룩한 사랑이시고 율법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 ‘기독론: 율법으로서 그리스도 (십자가 신학) vs 율법의 교사로서 그리스도’, ‘성령론: 죄의 현실주의 vs 은총의 낙관주의’, ‘구원론: 칭의는 구원 자체 vs 칭의는 구원의 입문’, ‘인간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이 죄, 의인이자 죄인인 신자 vs 하나님의 본성에서 이탈한 것이 죄, 연약성 속에서도 성화되는 신자’, ‘교회의 실천: 복음으로서 은혜의 방편 vs 율법으로서 은혜의 방편’ 등 루터와 웨슬리의 신학을 조직신학적으로 비교했다.
결론적으로 장기영 박사는 “루터는 신학 전반에서와 신학 각각의 주제들에서 인간의 어떤 행함과 헌신, 순종도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인간 삶과 구원의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에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신 중심성을 나타내고 있다”며 “웨슬리는 하나님 은혜의 어떤 요소도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약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순종의 동기와 능력과 목표 부여를 강조함으로써 루터가 강조한 ‘하나님의 은총’을 바탕으로 인간의 책임과 거룩한 삶을 강조했다”고 평가했다.
루터가 인간의 죄성이 율법 성취와 높은 영성을 빙자하여 자기 의를 주장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자기 우상화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하고자 했다면, 웨슬리는 인간의 죄성이 복음에 대한 신앙을 빙자하여 태만과 방종, 거룩하지 못한 성품과 삶이라는 실천적 무신론, 즉 율법무용론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장 박사는 “루터와 웨슬리의 신학을 비교하면서 율법과 복음 각각에 대한 바른 이해가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바르게 하고 거룩한 삶을 바르게 세울 신앙의 근본 요소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며 “루터와 웨슬리가 씨름하고 교정하고자 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문제의 중심이 되는 현실로부터, 두 영적 거인을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돕고 안내할 영적 스승이자 지혜의 원천으로 삼아야 할 시대적 필요를 본다”고 덧붙였다.
논찬을 맡은 정병식 교수는 “사실 루터와 웨슬리의 주요 신학을 비교하는 것 자체는 연구의 목적이 될 수 없다”며 “비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정 교수는 “루터가 율법을 불필요하게 여긴 것은 결코 아니고, 따라서 율법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루터냐 웨슬리냐 하는 선택이 아니라, 둘 모두의 신학이 현대인이 직면한 신앙과 신학적 문제에 유익한 이정표와 좌표가 돼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크리스천 투데이 2013년 6월 5일 기사
첫댓글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 인간의 어떤 행함이나 순종도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본 반면, 웨슬리는 하나님 은혜의 어떤 요소도 순종을 약화시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죄인에게 정죄를 통해 복음으로 인도하여 결국 칭의를 돕는 기능을 가진다는 정도로만 이해한 루터와 달리 웨슬리는 율법이 요구하는 목표가 복음 안에서 성취되며, 율법과 복음은 은혜 안에서 연결된다고 본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우리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려고 오셨다는 진리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죄의 지배가 아닌 은혜의지배아래 거하는 삶을 살아갈때 율법도 차차 완성되어가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님가지에 붙어 있을때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듯이요 루터시대에 은혜만 너무 강조하다보니 사람들이 방종하여 져서 율법이 다시 대두됐겠지만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을듯 싶네요
두 사람의 생각이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 두 사람 다 <믿음 + 행위 = 구원>이라는 등식처럼, 우리의 행위 자체도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생각은 아니란 건 명백하다고 봅니다 이 둘의 보완관계,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있을 뿐, 믿음뿐 아니라 행위도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얘긴 결코 아니라 봅니다 오늘날 행위를 강조하게 된 사회적 구조는, 루터 시대에 행위가 아닌 믿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와 똑같은 구조로서,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둘은 상호보완 관계요,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관계란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듯요^^ 저는 우리의 '매일의 믿음' 자체가 곧 행함이라 생각합니다...
구원의 복음과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이 삶의 규범입니다. *^^*
“율법과 복음을 올바로 구분할 줄 아는 지식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모든 교리의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모든 사람은 율법과 복음을 어떻게 그리고 충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인데,
말로만이 아니라 느낌과 체험을 통하여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과 양심에 근거하여 그 두 가지가 잘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말로써는 표현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직접 체험을 통하여 율법과 복음을 올바른 자리에 두는 일은 쉽지 않다.”
- 마틴 루터 -
율법주의와 방종주의에 빠지면 안됩니다. 또한 율법과 복음의 올바른 구분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께어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은 늘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도 없으며, 의롭다 함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거록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라 은혜시대입니다. 율법 아래에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서 사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