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읽기16/사자왕 형제의 모험/아스트리드 린드그렌/창비/1983
이 도시에 사는 사람치고 요나탄 형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형 대신 내가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도 없겠지요.(28)
집에 불이 나던 날 창문에서 뛰어내린 형과 나는 땅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형은 떨어져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바로 눕혔습니다. 형의 입가에서 피가 약간 흘렀고 형은 거의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웃음 지으려고 애쓰며 간신히 몇 마디 중얼거렸습니다.
“울지마, 스코르판, 우린 낭기열라에서 다시 만날 거야.”(29)
텡일은 카르마니아카라는 곳에 산다고 했습니다. 카르마니아카는 ‘과거의 산’꼭대기에 있는 나라인데 그 아래로는 ‘과거의 강’이 흐른답니다. 그곳을 다스리는 텡일은 마치 독사처럼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점점 무서워졌지만 그런 마음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75)
“저 뒤에 굉장한 게 있단다. 지금 바로 보여줄게.”
그러고는 찬장을 어깨로 떠밀어 옆으로 옮겼습니다. 그 뒤쪽 벽에 달린 덧문을 열자 방이 보였습니다. 그 조그만 방안에는 누군가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탄 형이었습니다!(146)
“형, 비겁한 페르크를 왜 살려줬어? 그게 잘한 일이었을까?”
“그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나도 몰라, 어쨌든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인데, 만일 그걸 하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하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내가 전에도 말했지?”
“그렇지만 형이 사자왕이란 걸 페르크가 알아차렸더라면 어쩔 뻔했어? 그가 형을 붙잡아 갔을 게 뻔하잖아.”(230)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내 발아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곧장 어둠 속으로 떨어질 테고 그러면 모든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눈깜짝 할 사이에 모두 지나가 버리겠지요.
“사자왕 스코르판, 무섭지 않니?”
“아니……형, 사실은 무서워, 하지만 해낼 수 있어. 지금 바로 지금 할 테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겁나지 않겠지. 다시는 겁나지…….”
“아아, 낭길리마! 형, 보여! 낭길리마의 햇살이 보여!”(327)
---이 모험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고전중의 명작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화자는 병악한 스코르판이다. 요나탄 형을 좋아하는 스코르판은 기침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절름발이이다. 형은 밤마다 낭기열라에 대해 들려준다. 형은 스코르판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날, 엄마가 없는 사이 집에 불이 나고 형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형이 먼저 낭기열라에 간 것이다.
낭기열라, 벚나무 골짜기, 기사의 농장,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펼쳐진다. 요나탄과 스코르판의 모험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이 책은 옮기고 싶은 문장이 많다.
죽음의 순간에 맞닿아 있는 용기와 두려움을 어떻게 이렇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전율이 인다. 오르바르 또한 권력을 잡으면 어떤 사람이 될까? 죽음으로 시작해 또 다시 죽음으로 끝나는 이 동화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낭기열라에서 낭길열마로 가는 여정에 스코르판은 당당한 사자왕이 된다. 판타지 공간에서도,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도 독재자는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 자유를 위한 정당성으로 폭력과 전쟁은 용인되는 것일까?
요나탄은 칼을 들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다.’는 권정생의 전쟁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예전에 <몽실언니>를 읽으며 남았던 이 문장이 생각난다.
무서움과 두려움의 순간, 두 형제는 서로를 보듬으며 긴 시간을 보냈다. 어둠이 깊게 깔리고 깜깜한 시간에 이제 스코르판이 요나탄을 일으켜 세우고 뛰어내린다. 그리고 낭길리마의 햇살을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 선명하다.
미혼모로 아이를 키웠던 린드그렌은 정치적인 것에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보며 전쟁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가졌다한다. 린드그렌의 삶에 대한 통찰, 전쟁의 비극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과 죽음을 풀어내는 능력에 놀라며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린드그렌 이야기를 같이 읽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린드그렌 이야기는 《영원한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마렌 고트샬크 글, 이명아 옮김/ 여유당》,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옌스 안데르센 글, 김경희 옮김/창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