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武 3편..한국의 활(弓)과 화살(失)
아들아, 한국의 武..세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활과 화살 이야기란다.
우리 민족은 어쩌면 활쏘기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는지도 모르겠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 수렵도
아들아, 불쾌한 말이긴 한데..중국인들은 자기네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그들이 사는
땅을 중원(中原)이라 했고, 자기네 나라를 중국이라 했으며, 자신들 주위 동서남북에
사는 민족을 모두 오랑캐라고 했다고 해. 아주 오만불손한 발상이지.
중국인들이 우리를 일러 동쪽의 오랑캐라고..동이(東夷)라 했는데...
그 오랑캐 이(夷)라는 문자를 뜯어보면 대략 세 글자가 합해진 것임을 알 수 있지.
그것은 큰 대(大), 활 궁(弓), 사람 인(人).
옛날부터 우리의 활은 사거리가 길고 위력은 강력하기로 이름 높았고, 활을 잘 쏘는
명궁들이 많은 그런 나라이고 민족이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이런 말도 있단다. 아들아.. 동북아의 3국의 대표 무예(武藝)로 중국은 창(槍),
일본은 도(刀), 한국은 활(弓)을 말하는데 들어본적 있느냐?
그만큼 우리의 활이 위력적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지금도 올림픽에만 나가면 양궁 종목에서 만큼은 정상은 물론 메달을 독식하는 것을
예사로 하고,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로 우리 민족은 활쏘기에 대해선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역사 속에는 전설적인 활의 명인들, 명사수..명궁이 많았고 그들의 전설적
이야기도 넘친단다.
쇠뇌 (弩)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朱蒙), 즉 추모성왕이 바로 활의 명인 중에서도 대표격이며,
당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안시성 전투에서..당 태종 이세민의 눈을 화살 한대로
궤뚫어 그를 애꾸로 만들었다는 안시성 전투의 영웅 양만춘(楊萬春) 장군이 있었고
신라에는 구진천(仇珍川)이란 노(弩)의 명인이 있어 사거리가 천보나 된다고 천보노라
했는데, 당이 그 기술을 탐내었지만 그는 조국을 위해 당에 그 기술을 끝내 넘기지
않았단다. 후일 나당전쟁 때 3만의 군사로 20만 당군을 격파하며 최대의 승리를 거둔
매소성 전투에서도 장창부대와 더불어 신라의 궁노부대가 크게 활약했다고 한다.
평산 신씨의 시조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창성설화에서 보인 활솜씨도 그랬다.
조선을 창업하신 태조 이성계도 명궁으로 이름높은 불패의 무장이었지.
특히..그가 전북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 죽이고,
그가 쏜 화살이 날아가 왜구의 한쪽 눈에만 박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단다.
기사(騎射)무예를 선보이는 무사
또 이옥(李沃, ?~1409)이란 분은 원래 출신이 양반이었지만, 아버지가 신돈의 일파로
몰리면서 집안이 몰락하면서 강원도 강릉의 관노로 보내졌지.
1372년에 강릉이 대대적인 왜구의 침입을 당하여..이분은 활 하나로 왜구를 상대로
싸워 왜구를 격파하는 큰 공을 세웠단다. 이옥은 활시위를 한번 당기면 화살이 빗나감
없이 반드시 왜구를 맞혔다고 해. 이 공로로 그의 집안은 복권하였다고 하는구나.
영화 '최종병기 활'의 실화가 바로 이분의 이야기인 셈이지.
7년 조일전쟁 때는 1592년 10월의 진주대첩에서 활약했던 곤양군수 이광악 장군이
쌍견마를 타고 돌격해 오던 왜장을 사살하고, 화살 한대로 왜군 서너명을 죽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빼어난 활솜씨를 보였었지.
옛날엔 활쏘기 자체가 아주 일반적이어서..남녀노소 모두 즐겼다고 해.
그래서 굳이 군인이 되어 무기를 잡고있지 않을지라도..어릴때부터 쏘아온 활쏘기가
몸에 배여서, 유사시엔 활과 화살만 있으면 그대로 뛰어난 궁수로 변신하고, 의병이
이래서 무서웠다는 것이야.
고구려에서는 인재를 선발할때 매년 3월 3일에 낙랑의 언덕에서 수렵대회를 했었다.
유명한 온달 장군도 이 대회에서 빼어난 말타기와 활쏘기 솜씨를 선보이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장군으로 선발 될 수 있었던 것이란다.
그리고 조선시대 무과에서도 활은 필수과목이었단다.
서서 활쏘기인 보사(步射)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쏘기하는 기사(騎射)가
그 시험과목이었는데..무과로 입신하는데도 활솜씨가 뛰어나야만 했고,
무과 급제 후에도 활쏘기 성적이 우수해야만 진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시되었어.
출세하고 입신하려면 활을 잘 쏘아야 하니 그 얼마나 열심히, 수없이 연습을 했을까..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하는 것도 있겠지만..그정도로 연습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활의 명인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들아, 활 하나 가지고서는 큰 의미가 없단다.
활의 시위에 걸어 날려 보내야할 화살이 있어야 위력적인 무기가 되는 것이지.
우리의 활이 위력적인 것은 칼이나 창과는 달리..장거리 사격무기이므로
활을 쏘는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적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지.
역사기록에서 우리 민족의 뛰어난 활로는 단궁(檀弓)과 맥궁(貊弓)이 언급되고 있는데
단궁은 박달나무로 만든 목궁이고, 맥궁은 동물의 뿔 같은 재료로 만든 각궁이지.
둘다 뛰어나지만 굳이 말한다면 맥궁(貊弓)이 더 위력적인 활이고, 맥궁이 현재 우리가
아는 우리의 전통활, 국궁의 기본 모태가 되는 활이다.
우리의 전통 각궁
우리의 활, 각궁은 나무와 물소의 뿔, 힘줄같은 이질적인 재료를 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붙여 제작한단다. 우리 활은 나무도 부위별로 다른 나무를 이용해서 만들거든..
우리 활은 뿔을 이용한다고 해서 각궁이고, 여러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다고 해서
합성궁이며, 활시위를 풀었을때 뒤로 크게 휘어진다고 해서 만궁(彎弓)이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쏘기 때문에 활의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해서 단궁(短弓)이기도 하지.
우리의 활은 우리만의 것은 아니고, 대개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활이란다. 다만, 그중에서도 우리의 활이 좀더 발달된 형태인 것 같아.
확실한 것은 이런 복잡하고 세심한 제작과정을 거쳐 어렵게 만드는 활이기 때문에
그만큼 귀하기도 했는데..특히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이 바로 물소뿔이었단다.
물소가 우리나라에 없기 때문에 동남아에서 구해야 했거든.
중국이 그래서 우리의 활을 경계해서 물소뿔을 구하는 것을 막기도 하고 견제를 많이
했었지. 우리는 우리대로 중국 눈치도 봐가며 악착같이 물소뿔을 구했고.
물소뿔 대체용으로 우리의 소뿔을 이용해보기도 했는데, 역시 물소뿔을 이용했을때
활 자체의 탄력이 좋기 때문에 사거리도 길고, 위력이 가장 컸다고 한다.
일본의 활쏘기
일본의 활은 큰 장궁이긴 하지만..활 자체의 탄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거리는 물론
그 위력에서도 우리의 활에 비할바 아니었고, 중국의 목궁도 마찬가지란다.
이것은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과 차별되는 굉장한 강점이었던 것이지.
크기도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고, 긴 사거리와 차원이 다른 위력을 가진 활을 보유하고,
그 활을 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명사수라면..그것 자체가 적들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었겠느냐.
우리의 각궁의 위력을 제대로 알고 활용만 잘해도 조총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단다. 조총보다 사거리도 길고, 조총 한발 쏠때 활은 서너발 이상 쏠 수 있거든..
그런데 그렇게 강력한 우리의 활보다 더 강력한 비밀무기가 있었단다.
그것은 바로..편전(片箭), 우리 말로 애기살이라 불리는 화살이지.
편전, 애기살 쏘는 장면 (영화 최종병기 활)
애기살, 편전은 영화 '최종병기 활'이나 드라마 '추노'에서도 등장하는데 각궁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바로 이것이었지.
그 비밀은 바로 통아라고 부르는 반으로 쪼갠 대나무통이란다.
우리의 각궁에 통아를 걸고..그 안에 애기살을 넣어 쏘는 기술은 우리의 전매특허이자
일급 기밀이었단다. 배가 넘는 사거리, 그리고 더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위력.
그 비밀은 바로 통아에 있단다. 애기살이란 작은 화살이 통아를 통해 발사되면서..
애기살의 회전력이 높아지고 그 영향으로 사거리와 관통력이 배가되는 것이지.
현재 군인의 기본 무기인 소총의 총열에는 강선이 있어 총탄이 그 강선에 의해 회전이
되면서 위력이 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란다.
그렇게 발사된 애기살은 더 먼거리를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때문에 관통력도 무섭지만
너무 빨라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일반 화살은 재사용 할 수 있지만..
애기살은 작아서 적의 활에 걸어 우리에게 되쏠 수 없다는 장점도 있단다.
7년 조일전쟁 때 우리 각궁과 편전의 위력을 제대로 알고 잘 썼더라면 조총 이상의
강력한 무기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거야.
그래서 화포가 개발되고 7년 조일전쟁 후에 조총이 도입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조선의
주력무기로 그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거란다.
아들아, 어떠냐.
천하제일의 활과 명궁을 배출한 민족의 후예로서..이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중국이 자기네 창을 자랑하고, 일본이 일본도를 자랑하면 우리는 우리 활 얘기로
그들의 기를 눌러두자. 활과 화살은 곧 우리의 자존심에 속하는 문제이니까 말이다.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