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몽고로 날아가다
두 사람은 신라방에서 방을 빼고 짐을 싸 몽고의 울란바토르(몽고의 수도)행 비행기를 탔다.
눈 아래로 펼쳐진 몽고의 광활한 공간을 대하니, 인간의 문명이란 이 공간에 놓인 바둑돌 하나에 불과하다는 느낌!
‘자연’이란 광활한 바둑판 위에 '문명'이란 바둑돌을 놓을 때 제 멋대로 던져 바둑판의 규칙을 어그러뜨리면 파국(破局)을 불러오게 된다. 인간이 자연을 대접하는 대로 자연도 인간을 대접한다. 겸허함과 존중으로 대하면 포용과 침묵으로 답하고, 탐욕과 무지로 대하면 파괴와 재앙으로 답한다. 문명은 자연에 의존하며, 자연은 문명보다 위대하다.
랜드크루즈(Land Cruiser, 일본 토요타산 지프, 한국의 무쏘와 닮았다)를 렌트해서 초원을 달린다. 하늘과 땅이 맞붙은 광활한 공간을 달려가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잡을 수 없는 바람이나 혼령처럼 허허롭게 느껴진다.
야생의 자연이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와 도시에서 묻혀온 문명의 탁기를 정화해준다.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자연 속에 뛰어든 두 사람은 발가벗겨진 존재를 다시 찾은 듯 하늘과 땅에 경배한다. 인간에게 잘 길들여져,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야생의 자연은 인간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아니 인간에게 사사로운 정 따위를 붙이지 아니한다. 인간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무심한 초원, 인간존재에 아예 무관심한 광막한 침묵은 그 자체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이란 배경과 조건을 잊고 사는 문명인들은 인공에 길들여져 가공의 세계에 갇힌 동물이 되었다. 인공의 영역을 벗어나 야생의 자연 속으로 문명인을 내몬다면 어떻게 될까? 먹고 마시고 눕고 자고 싸고 하는 등 모든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감내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자살하고 말 것이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자연임을 잊는다면 자연은 인간을 버릴 것이다. 자연에게서 버림받은 인간은 인공 지옥 밖에는 갈 곳이 없으리라.
가이드로 몽고 청년 에르친과 몽고인 아저씨 울람바야르를 대동하다. 울람바야르는 몽고 창법인 흐미에 능하다.
단전 아래에서 끌어올려지는 남 저음은 지하세계에 갇힌 영혼을 불러내는 듯 사막을 배회하는 귀신을 부르는 듯한 강렬한 목소리의 예술이다.

43. 자나두를 찾아서
자나두(Xanadu)는 현재 내몽고 자치구역내에 위치한,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270km 떨어져 있는 대원제국의 유적지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바로 북서쪽으로 28km 떨어진 곳에 덜란(Doulun)이라는 곳이다. 1279년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송나라를 정복한 후 수도를 대도(大都, 베이징)로 천도 한 후 여름 수도로 상도(上都)를 건설하였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상도(上都)의 중국식 발음 샹두(Shangdu)를 잘못 표기한 자나두(Xanadu)로 알려진 후 줄곧 유럽의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환상을 꽃피우게 하여왔다.
쿠빌라이 당대에 인구 백만을 수용하는 영화와 호사를 누린 국제도시 코스모폴리스(Cosmopolis, 국제도시)!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와 종교의 공존과 소통의 메가폴리스(Megapolis, 거대도시)이었으니, 동양의 뉴욕이라 할 만 했다. 1275년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다녀간 후 ‘동방견문록’에 쓰기를 부의 도시, 풍요의 도시라고 낭만적으로 묘사했기에 그 이후 호사가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자나두는 1369년 명나라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불에 타 소실되기 까지 90년간의 한 바탕 꿈이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새무얼 테일러 콜러리지(Samuel Taylor Coleridge)가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쿠빌라이 칸이 거대하고 화사려한 도시 자나두를 건설하는 장관을 목격하고 이, 삼 백 행의 시를 지었는데 잠을 깬 후 곧 바로 글로 옮기려 했는데 아뿔싸! 손님이 찾아와 만나고 나니 시의 말미 부분을 잊어버렸다고 하니 과연 일장춘몽이로고. 그의 시집 <쿠블라이 칸-꿈속의 비전, Kublai Khan-A Vision in a Dream>은 미완성으로 남겨졌으나, 나중에 바이런(Byron)에 의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Then all the charm 그때 주문이 깨어졌다
Is broken--all that phantom-world so fair 그렇게 아름다웠던 유령 같던 세상은 사라졌구나,
Vanishes, and a thousand circlets spread, 천 개의 작은 원이 퍼져나가면서
And each mis-shape the other. Stay awhile, 다른 원을 일그러뜨린다. 잠시 멈추게,
Poor youth! who scarcely dar'st lift up thine eyes--감히 눈으로 올려다 볼 수 없는 가련한 청춘이여!
The stream will soon renew its smoothness, soon 흐름은 이내 새로이 부드럽게 흐르고, 곧 비전이
The visions will return! And lo! he stays, 돌아오겠지! 그리고 아, 그는 머물리라,
And soon the fragments dim of lovely forms 사랑스런 형체의 희미한 단편들이
Come trembling back, unite, and now once more 떨리면서 다시 돌아와, 합쳐져, 이제 다시 한 번 더
The pool becomes a mirror. 연못은 거울이 되리니.

<서양인에 의해 이상화된 자나두>
우리의 탐험대는 내몽고 쪽 중국 국경 가까이 까지 달려 자나두 유적지를 찾았다. 허허벌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그렇게 아름다웠던 도시는 그야말로 유령처럼 사라지고 깨어진 꿈의 단편도 찾을 수 없구나.
성곽의 한 쪽이 220 킬로나 되었다던 도시의 영광은 유리처럼 산산히 깨어져 모래로 돌아갔구나. 환락의 궁전이 지어지고 늘 푸른 정원이 장대하게 펼쳐지며 그 사이 사이를 춤추며 흘렀던 수로(水路), 눈부신 하늘이 담겼던 옥색 연못과 화려한 누각들은 어디로 날아갔으며, 꿈에 취했던 자나두 시민들은 모두 어디에 엎어져 누었나.
이제 기억의 연못에는 아무 것도 비치지 않아, 연못도 정원도 환락궁도 땅 속으로 스며들어 망각이 되어 버렸다. 자연이란 인간이 장난질한 문명을 거짓말처럼 말살해 버린다.
네 사람을 태운 차는 자나두의 터전을 한 바퀴 돌고 바퀴를 멈춘다. 거기서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캐라코름(Karakorum, 和林) 유적지가 나온다. 이 도시는 징키스칸이 코라즘제국을 공략하고 그 자리에 게르(Ger, 몽골인의 이동식 가옥) 촌을 세운 것이 시원이 되어 그의 후계자인 오고타이가 견고한 성을 쌓으면서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자 곧 유라시아를 통치하는 세계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몽케 칸(Mongke Khan)시대에는 도시 중앙에 은으로 만든 나무(Silver Tree)가 세워져 그 호사스러움을 뽐냈는데 실바람이 불어오면 은으로 만들어진 나뭇잎이 사르릉 사르릉 소리를 내며 울리고 근처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꼭지만 틀면 술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술이 나오는 분수대>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이든지 과객이 오면 그 분수대로 데리고 가서 술을 마음껏 마시게 하는 것이 제국의 접대였으니, 흔쾌히 영접하고 술에 취하게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의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유라시아 넓은 영토를 아우르게 한 팍스 몽골리카노(Pax Mongolicano)의 심리적인 요인이 아닐까? 향응접대의 술문화는 역사의 고금을 통털어 일반적이다.

실측된 자나두 유적

캐라코름 복원상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