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의 봄이 곱다 한다. 3월 중순이면 광양의 매화나 구례의 산수유가 지천으로 필 거라고도 한다. 잠깐 고민하다 곡성으로 향했다. 곡성의 봄꽃은 구례나 광양만 못할지 몰라도 곡성의 물길에 깃든 봄볕은 한층 완연하다. 강물이 반짝이며 겨울 비늘을 벗는데 그 빛에 봄기운이 서려 있다. 증기기관차의 힘찬 기적 소리도 섬진강의 봄을 깨운다.
옛날 영화, 기차역의 정취
옛 곡성역에 있는 기차마을로 향했다. 곡성 섬진강 여행의 출발점이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섬진강을 탐하는 여정이다. 읍내로 들어서는데 도로가에 난전이 열렸다. 3일과 8일에 열린다는 곡성장이다. 곡성장은 옛 정취가 짙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다. 기차마을에 앞서 슬며시 발길을 낸다. 이른 봄나물 몇몇이 소쿠리에 담겼다. 몸뻬 입은 아짐과 등 굽은 할매 사이에 흥정이 붙었다. 옥신각신한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정겹다. 봄날의 진짜 시골장이다. 바깥 난전은 그 일부다. 안쪽에는 함석판이나 슬레이트로 지붕을 댄 가건물이 장터를 이룬다. 그 앞으로 다시 좌판이 펼쳐지고 좌판과 좌판 사이로 길이 난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일행이 국밥을 말아 먹던 장터다. 노상에서 후루룩 소리가 나도록 국밥 한 그릇 말아 먹으면 속이 뜨끈하다.
거정역을 출발하는 증기기관차
곡성 기차마을은 장터에서 10분쯤 걷는다. 옛 곡성역의 주변이다. 곡성역은 지난 1998년 전라선이 복선화되면서 폐역사가 될 위기에 처했다. 곡성군은 이를 2005년에 기차마을로 조성했다. 곡성역은 그 건물부터 볼거리다. 1933년에 지어진 고건축이다. 나무로 만든 단층 역사는 낡은 대합실을 지나고 개찰구를 지난다. 곧장 좌우측에 나무의자 여럿이 달라붙었다. 빛깔이 곱게 녹슬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장단역이고 대구역이었다.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의 징집 장면 등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을 촬영했다. 드라마 <토지>에서는 진주역과 하얼빈역이었다.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첫 촬영과 마지막 촬영에서는 경성역으로 등장했다. 기차역과 더불어 증기기관차도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운행했던 증기기관차를 모델로 했다. 실제로 운행도 한다. 출발 전부터 연신 기적을 울리고 증기를 뿜지만 실은 디젤기관차다. 유사 증기기관차다. 기름보일러가 만드는 연기다. 하지만 이만한 운치가 어디랴. 섬진강을 따라 거정역까지 13km의 행로는 곡성 봄나들이의 백미다. 마치 옛날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하다.
기찻길 따라 섬진강 여행
증기기관차는 시속 30km 정도로 달린다. 섬진강의 풍광을 탐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멀리 산 빛을 머금은 강물은 맑고 고요하다. 차내에는 품바 복장을 한 윤재길 씨가 오간다. 그는 삶은 계란도 팔고 사이다도 판다. 오징어도 팔고 그 옛날 쫀득이 과자도 판다. 섬진강 여행의 더없이 좋은 길잡이요, 증기기관차의 특별한 추억이다. 섬진강과 철길 사이에는 17번 국도도 지난다. 17번 국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길이다. 붉은 철쭉이 만개한 철로와 푸른 섬진강이 양옆으로 호위한다. 부러 증기기관차의 운행 시간에 맞춰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거정역까지는 25분이 걸린다. 20분쯤 정차했다 다시 곡성역으로 돌아온다. 열차표는 곡성역에서 왕복으로 끊는데 돌아오는 시간을 미리 정할 수 있다. 2시간쯤 후에 이어지는 다음 열차를 택하는 게 낫다. 거정역과 섬진강의 풍경을 20분 안에 돌아본다는 건 무리다. 두가현수교를 건너 곡성섬진강천문대까지 다녀오기도 바쁘다. 여유를 갖고 섬진강 하이킹이나 산책을 즐겨보길 권한다.
상류 쪽으로는 호곡나루터와 심청이야기마을이 있다. 호곡나루터는 오곡면 침곡리와 고달면 호곡리를 왕래한다. 노를 젓는 대신 강을 가로지르는 줄을 끌어 당겨 배를 움직인다. 곡성은 심청의 고향이기도 하다. 거정역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는 심청마을이 있다. 지금은 정비중이다. 4월 중순에 개방 예정이라는데 5월이 넘으면 왕래가 가능할 듯하다.
호곡나루터의 반대편으로는 압록유원지 방향이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지난다. 하지만 차량이 많지 않다. 봄의 강바람 맞으며 달리니 상쾌하다. 강을 따라서는 이제 막 꽃망울을 연 산수유나 매화가 간간히 들고 난다. 대숲에 있는 바람 소리도 좋다. 압록유원지에서는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난다. 예성교는 두 강이 만나 흘러드는 풍경을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거정역에는 나무 테라스를 두른 객차의 행렬도 눈길을 끈다. 카페인가 싶지만 기차 펜션이다. 주방과 화장실까지 갖췄다. 4월 중순에 완공 예정이다. 곡성 기차 여행의 새로운 명물이 되지 싶다.
1969년의 시가지 <아이스케키> 세트장
곡성역에 돌아와서는 건너편에 정차한 또 한대의 증기기관차를 둘러볼 일이다. 전시전용 증기기관차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주로 전시용 증기기관차에서 이뤄졌다. 체험용 증기기관차는 긴 쿠션의자의 옛날식 비둘기호 객실이지만 전시용 기차는 더 옛날식이다. 투박하게 각진 2인용 나무의자가 이채롭다. 외관도 훨씬 낡았다. 곡성역 주변으로는 무궁화호나 비둘기호 기차도 전시하고 철길의 목침을 놓아 산책로도 만들었다. 철로자전거도 인기다. 객차를 이용한 카페나 레스토랑도 있다. 먼발치로는 산수유꽃밭을 조성 중이다. 곡성역사 옆에는 수화물 창고도 있는데 이 또한 오래 된 목조 건물이다. 철도공원을 실감한다.
역사 입구 좌측에는 신애라가 주연한 영화 <아이스케키>의 야외 세트장도 있다. 1969년을 무대로 한 시가지 세트다. 관람료는 따로 없으니 산책삼아 들러볼 만하다. 먹거리로는 장터 뒤편의 참게장이 맛깔스럽다. 남도요리명장대회에서 8번이나 상을 탄 맛집이 있다. 곡성은 대중교통으로는 조금 벅찬 여정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게 수월하다. 고속버스는 광주와 남원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은 남원 쪽이 조금 빠르고, 차편은 광주 쪽이 더 편리하다.
[여행팁]
▶ 가는길 * 대전통영고속도로 함양IC에서 88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남원IC로 나온 후, 17번 국도 이용 곡성 방면 또는 호남고속도로 곡성IC 이용. 곡성읍내에서 10분 거리
섬진강의 봄이 곱다 한다. 3월 중순이면 광양의 매화나 구례의 산수유가 지천으로 필 거라고도 한다. 잠깐 고민하다 곡성으로 향했다. 곡성의 봄꽃은 구례나 광양만 못할지 몰라도 곡성의 물길에 깃든 봄볕은 한층 완연하다. 강물이 반짝이며 겨울 비늘을 벗는데 그 빛에 봄기운이 서려 있다. 증기기관차의 힘찬 기적 소리도 섬진강의 봄을 깨운다.
옛날 영화, 기차역의 정취
옛 곡성역에 있는 기차마을로 향했다. 곡성 섬진강 여행의 출발점이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섬진강을 탐하는 여정이다. 읍내로 들어서는데 도로가에 난전이 열렸다. 3일과 8일에 열린다는 곡성장이다. 곡성장은 옛 정취가 짙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다. 기차마을에 앞서 슬며시 발길을 낸다. 이른 봄나물 몇몇이 소쿠리에 담겼다. 몸뻬 입은 아짐과 등 굽은 할매 사이에 흥정이 붙었다. 옥신각신한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정겹다. 봄날의 진짜 시골장이다. 바깥 난전은 그 일부다. 안쪽에는 함석판이나 슬레이트로 지붕을 댄 가건물이 장터를 이룬다. 그 앞으로 다시 좌판이 펼쳐지고 좌판과 좌판 사이로 길이 난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일행이 국밥을 말아 먹던 장터다. 노상에서 후루룩 소리가 나도록 국밥 한 그릇 말아 먹으면 속이 뜨끈하다.
거정역을 출발하는 증기기관차
곡성 기차마을은 장터에서 10분쯤 걷는다. 옛 곡성역의 주변이다. 곡성역은 지난 1998년 전라선이 복선화되면서 폐역사가 될 위기에 처했다. 곡성군은 이를 2005년에 기차마을로 조성했다. 곡성역은 그 건물부터 볼거리다. 1933년에 지어진 고건축이다. 나무로 만든 단층 역사는 낡은 대합실을 지나고 개찰구를 지난다. 곧장 좌우측에 나무의자 여럿이 달라붙었다. 빛깔이 곱게 녹슬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장단역이고 대구역이었다.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의 징집 장면 등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을 촬영했다. 드라마 <토지>에서는 진주역과 하얼빈역이었다.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첫 촬영과 마지막 촬영에서는 경성역으로 등장했다. 기차역과 더불어 증기기관차도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운행했던 증기기관차를 모델로 했다. 실제로 운행도 한다. 출발 전부터 연신 기적을 울리고 증기를 뿜지만 실은 디젤기관차다. 유사 증기기관차다. 기름보일러가 만드는 연기다. 하지만 이만한 운치가 어디랴. 섬진강을 따라 거정역까지 13km의 행로는 곡성 봄나들이의 백미다. 마치 옛날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하다.
기찻길 따라 섬진강 여행
증기기관차는 시속 30km 정도로 달린다. 섬진강의 풍광을 탐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멀리 산 빛을 머금은 강물은 맑고 고요하다. 차내에는 품바 복장을 한 윤재길 씨가 오간다. 그는 삶은 계란도 팔고 사이다도 판다. 오징어도 팔고 그 옛날 쫀득이 과자도 판다. 섬진강 여행의 더없이 좋은 길잡이요, 증기기관차의 특별한 추억이다. 섬진강과 철길 사이에는 17번 국도도 지난다. 17번 국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 길이다. 붉은 철쭉이 만개한 철로와 푸른 섬진강이 양옆으로 호위한다. 부러 증기기관차의 운행 시간에 맞춰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거정역까지는 25분이 걸린다. 20분쯤 정차했다 다시 곡성역으로 돌아온다. 열차표는 곡성역에서 왕복으로 끊는데 돌아오는 시간을 미리 정할 수 있다. 2시간쯤 후에 이어지는 다음 열차를 택하는 게 낫다. 거정역과 섬진강의 풍경을 20분 안에 돌아본다는 건 무리다. 두가현수교를 건너 곡성섬진강천문대까지 다녀오기도 바쁘다. 여유를 갖고 섬진강 하이킹이나 산책을 즐겨보길 권한다.
상류 쪽으로는 호곡나루터와 심청이야기마을이 있다. 호곡나루터는 오곡면 침곡리와 고달면 호곡리를 왕래한다. 노를 젓는 대신 강을 가로지르는 줄을 끌어 당겨 배를 움직인다. 곡성은 심청의 고향이기도 하다. 거정역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는 심청마을이 있다. 지금은 정비중이다. 4월 중순에 개방 예정이라는데 5월이 넘으면 왕래가 가능할 듯하다.
호곡나루터의 반대편으로는 압록유원지 방향이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지난다. 하지만 차량이 많지 않다. 봄의 강바람 맞으며 달리니 상쾌하다. 강을 따라서는 이제 막 꽃망울을 연 산수유나 매화가 간간히 들고 난다. 대숲에 있는 바람 소리도 좋다. 압록유원지에서는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난다. 예성교는 두 강이 만나 흘러드는 풍경을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거정역에는 나무 테라스를 두른 객차의 행렬도 눈길을 끈다. 카페인가 싶지만 기차 펜션이다. 주방과 화장실까지 갖췄다. 4월 중순에 완공 예정이다. 곡성 기차 여행의 새로운 명물이 되지 싶다.
1969년의 시가지 <아이스케키> 세트장
곡성역에 돌아와서는 건너편에 정차한 또 한대의 증기기관차를 둘러볼 일이다. 전시전용 증기기관차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주로 전시용 증기기관차에서 이뤄졌다. 체험용 증기기관차는 긴 쿠션의자의 옛날식 비둘기호 객실이지만 전시용 기차는 더 옛날식이다. 투박하게 각진 2인용 나무의자가 이채롭다. 외관도 훨씬 낡았다. 곡성역 주변으로는 무궁화호나 비둘기호 기차도 전시하고 철길의 목침을 놓아 산책로도 만들었다. 철로자전거도 인기다. 객차를 이용한 카페나 레스토랑도 있다. 먼발치로는 산수유꽃밭을 조성 중이다. 곡성역사 옆에는 수화물 창고도 있는데 이 또한 오래 된 목조 건물이다. 철도공원을 실감한다.
역사 입구 좌측에는 신애라가 주연한 영화 <아이스케키>의 야외 세트장도 있다. 1969년을 무대로 한 시가지 세트다. 관람료는 따로 없으니 산책삼아 들러볼 만하다. 먹거리로는 장터 뒤편의 참게장이 맛깔스럽다. 남도요리명장대회에서 8번이나 상을 탄 맛집이 있다. 곡성은 대중교통으로는 조금 벅찬 여정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게 수월하다. 고속버스는 광주와 남원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은 남원 쪽이 조금 빠르고, 차편은 광주 쪽이 더 편리하다.
[여행팁]
▶ 가는길 * 대전통영고속도로 함양IC에서 88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남원IC로 나온 후, 17번 국도 이용 곡성 방면 또는 호남고속도로 곡성IC 이용. 곡성읍내에서 10분 거리
첫댓글 야인시대, 태극기휘날리며 등 유명한 작품이 찍힌 장소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