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언어 이전의 그 무언인가를 느끼게 하는 진관스님
지난 28일은 범불교도대회가 우리나라의 심장부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다.
한사람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수많은 대중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해야 했다. 종파를 초월한 모든 스님들과 불자들이 다 함께 모였으니 그야 말로 범(凡)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조금도 주저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불자들이 모여 국가의 앞날을 염려하고 편협하고 잘못된 의식이 나을 엄청난 재앙을 미리 막고자 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먼 길을 올라와 함께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듣고 있는 위정자들이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언제나 불교계의 크고 작은 모든 행사에 꼭 참가하는 실천하는 불제자가 계신다.
신계사 낙성법회 때 금강산에 갔었다. 꿈에서도 그리던 금강산 비룡폭포를 오르면서 일행 중에 참으로 기이한 스님, 진관스님을 만났었다. 참배객들은 겁을 먹고 삼삼오오 짝을 맞추어 산행을 하였다. 비룡폭포에 가까워지자 그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온 목탁 소리의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진관스님이셨다.
사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세워진 안내 표지판에는 일체의 종교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산행 내내 목탁을 치며 염불하시면서 오르셨던 것이다. 사실 그토록 두툼한 배짱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래전의 일이었다. 검정 옷에 주황색 가사를 꼭 걸치고 다니는 스님을 각종 불교 행사에서 찾고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표정으로 다니신다는 것이다. 늘 당당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말이다.
비룡폭포 전망대에 도착 할 무렵 북측 안내원들은 한청 까다롭게 우리들을 감시했다. 하지만 스님께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목탁 치면서 비룡폭포 옆에 쓰인 해강 김규진의 佛자 음각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참배객들의 이목도 이목이지만 그사이에 날카로운 눈길을 던지던 북측 경비원들조차 너무나 진지한 스님의 종교의식(?)을 보면서 자신들의 마음도 자신들도 모르게 정화되어 버렸는지 목탁 치는 문제를 아예 거론하지 않았다.
스님 덕분에 목탁소리 계곡 가득하게 울러 퍼지는 가운데 그리운 금강산 참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북녘 경비들이 어째서 규정을 통체로 어긴 진관스님 앞에서 단 한마디도 건너지 못하고 스님의 자유로운 활동을 바라만 보고 있었는지 아직도 내 맘속에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나는 스님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논하고 싶지도 않고 논할 만한 지식도 없다. 하지만 스님의 변함없이 한결 같은 모습은 처음에는 매우 기괴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십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는 스님의 복장 앞에서면 존경심마저 우러난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는 우리는 많은 대화로 그를 알고, 인식하고 상대의 말 속에서 상대의 생각을 보고 점차로 오래토록 만날 터전을 닦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진관스님은 정말 언어 이전의 그 무언인가를 느끼게 하며 그립도록 만들어 가곤 했다. 어쩌면 그날 비룡폭포 앞 그 병사들도 우리와 똑같은 느낌을 받아서 목탁 치는 스님의 불법(?)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 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어째서 스님께서는 검정 옷만을 입으시는지, 무슨 사연으로 주황색의 가사만 고집스레 수하고 다니시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다만 제법 긴 세월 스님께서 변함없이 보여주시는 일괄성이 매우 아쉬운 시절이라서 스님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같이 느껴진다. ---- <끝>
본 글은 2008년 법보신문에 [성원스님의 기억에 남는스님] 코너로 1년 동안 연재 한 글입니다.
2018년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성원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