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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처럼 사람들을 깨끗하고 순수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계절은 없을 것 같
습니다.
나는 그런 가을을 무척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특히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풍요로운 들판과 오색단풍으로 덮여가는 가을산
도 좋아하지만 나는 낚싯꾼인지라 그것들보다 오동통하게 살도 올라 한층
게걸스럽고 불도져같이 앙탈하는 힘찬 손맛, 몸맛 그리고 춥지도 덮지도 않
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바다의 상황이 더욱 가을을 사랑하게 된 이유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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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은 붉게 물들어가는 만면추색의 추로(秋路)따라 포천에 다녀왔습니다.
궁예는 자신의 부하였던 고려태조 왕건에게 크게 패한 후 이곳에 쫓겨와 몇
달을 통곡하며 울었다는 비애미(悲哀美)의 명성산 억새풀축제는 햇살젖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 가을로 불타는 추남 추녀들의 마음과 망막을 일순간
마비시킵니다.
가을바람에 수런대며 넘실거리는 바다의 은물결 같은 억새풀속으로 단풍옷
입은 추객(秋客)들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이국적인 분위기의 환희찬 가을축
제가 시작됩니다.
바람이 되어 억새풀 위를 훨훨 나비처럼 날아도보고 몽마(夢馬)타고 낭낭공
주 찾아 떠나는 호동왕자님도 되어보면서 가을의 헛헛함을 가슴속 가득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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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을 만나고 오고 차량과 사람들로 북새통입니
다.
3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도회지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아뿔사~ 술시(酒
時)에 걸립니다.
오늘밤엔 인천으로 광어잡이 가야하는데.. 빨리가서 휴식을 좀 취하고 준비
도 하고...
죽자사자 하는 동네 친구들인 이 남녀들에게서 목털미가 잡혀 빠져나올 구
녕(구멍)이 보이질 않습니다.
새벽 2시엔 운전대를 잡아야하는데 낚시 간다는 말은 하지 못합니다.
만약 낚시 간다고 하면 내일밤엔 이 대단한 인간들이 우리집 앞에서 또 진을
치고 기다릴게 뻔하니깐요.
맥주 한잔을 놓고 입만 축여가며 시간을 때우다 10시에 겨우 빠져나왔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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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해두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올리 만무합니다.
3시반이 넘어야 선사에서 문을 여는데 일찍 갈수도 없고 그냥 컴 앞에 앉아
밀린 숙제를 합니다.
2시반이 되어 서서히 출발하려 하는데 이슬비가 옵니다.
아이구!~ 비옷을 다시 준비하고 떠나는 몸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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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던 라면도 먹지않고 선실에 누워서 비몽시몽으로 억지잠을 청해봅니다.
선실에 두 어르신이 주고 받는 조행담은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격포며,
왕등도 이야기로 부터 6시간항해의 먼 가거초 이야기, 안흥 신진도 이야기,
최근 격포 ㅇㅇㅇ호의 홍어골 이야기... 등등
눈은 감겨져 있지만 너무 리얼하게 재미있게 나누시는 조행담에 잠은 커녕,
일어나 은근히 합류 말꼬리를 잡고 싶어집니다... ^*^
옆에서 말씀을 거드는 윤 사무장님 살가운 대화를 통해
' 아, 이 분이 그 유명한 인천권 유선의 백마그룹 회장님이셨던 윤 아무개님
이셨구나... '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사무장님의 친정아버님이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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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비는 이슬비가 오더니 멈춥니다.
바람은 제법 세지만 이 정도면 4물때와 함께 낚시 할만 합니다.
여저저기 낚싯대의 휨새에 환호가 터집니다.
나도 오늘 이미 약속해 놓은터라 서너마리 잡아 가지고 가서 대접할 곳이 있
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잡아야합니다.
시커먼 오짜 우럭이며 오락실 두더지게임의 두더지 튀어오르 듯 정신없이
올라오는 광어들로 윤사무장은 배 앞뒤를 이리 뛰고 저리뛰고..
올라왔다고 신호하는 신선장은 마이크로 마치 꽹가리치듯 연속으로 두드리
고....
난, 난,,,
자연조각설치 예술품의 아름다운 풍광의 섬들만 열심히 구경하고 있습니다.
안개옷입고 뽐내며 서 있는 바위산 선갑도의 암팡지고 수려한 아름다움에..
이름모를 작은 섬들과 문갑도의 기운찬 선경에 취한 듯... 그렇게 사색하며
낚시하고 있죠.
윤사무장의 게시시한 눈길을 피해서..... ㅎㅎㅎ
^^^ 드디어 나도 입질이 왔습니다.
순간의 챔질로 액션이 너무 컷나봅니다.
윤사무장이 큰 소리로 "드디어 주야조사님이 잡으셨어!!!"
달려 오다 말고 초릿대의 휨새를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발길을 멈춰 버립니
다.. 와.... 챙피 한가마니....
맥빠진 모습으로 돌돌돌~~ 올리는 내 모습에 사람들의 눈길 집중입니다..
' 제발 떨어져 가 버려라~~~'
60년대말 사라진 전차표 만한.... 웜이 더 큰 우럭새뀌!~~
배안은 한바탕 웃음꽃이 핍니다.
상황이 좀 틀리긴 하나 사막의 왕이였던 가다피가 마지막 숨었던 곳 하수관
이라고 있었으면.. ㅎㅎ
돌려보내며 간절히 애원했다...
' 너 지금 살려줄테니 가서 거짓말 좀 해서라도 제발 큰 놈으로... 내 입장 좀
살려 달라고.. '
입질이 또 왔습죠...
작은 뽈락새뀌!~~~
지금껏 바다루어인생 2개월만에 첨 낚아 본 볼라꾸 이 시키!~~
망신백화점 개차반장입니다...
윤마줌마는 내 옆을 피해 회타임을 위한 수금하러 다닙니다..
견눈질로 그 아줌씨 얼굴을 살짝 훔쳐보니... ㅋㅋㅋㅋㅋ 입니다... ㅎㅎㅎ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오늘 회는 먹지 않으렵니다... ㅎㅎㅎ
윤여인은 열심히 칼춤추고 있는데...
배 안은 온통 광어들의 난리 부르스가 시작됩니다.
잘 되었다...
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
얼른 한손엔 뜰채를 들고 한손엔 윤아줌마 카메라를 뺏어 찍으면서 열심히
이리저리 뜁니다.
<혹시라도 모르지... 나중에 뜰채 잘 떴다고 마음씨 고운 조사님께서 한마리
라도 줄지.. 한마리도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랜딩시켜 드렸쥬~.>
그러나 바램은 끝내 한낱 기우였습니다...ㅋㅋㅋ
드디어 기다리던 즐거운 회 파티 시간입니다..
파란 자킷 입으신 어르신이 갑자기 수고했다며 술잔을 건네 주십니다.
카메라 들고 뜰채 들고 이리뛰고 저리 뛴 나를 유심히 보신 모양입니다.
달콤하고 솔잎향에 입에 짝 달라붙는 묘한 술...
" 술도 경치처럼 나눠 먹어야 맛있는 법이여.. 어여 한잔해여 수고 많이 하시
더만.." 인천권 낚시계의 전설 - 윤회장님이십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노래...
너의~ ♪ 침묵에~~ ♩ 메마른 나의 입술.. ♬~~ 차거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가랑비야 내려라~ (중략) 부서지는 ~ 파도에 ~♬~~ 삼켜버린 그 자존심...
오늘은 완죤!~~ 갈매기새가 되어 훨훨~ 인천 앞바다를 날고 있습니다...
신선장님의 초릿대가 바닥에 걸린양 가락이 낚시바늘처럼 훠어지면서 털털
거립니다..
부럽다.. 52cm의 큰 개우럭입니다. 큰 소리로 "추카해~~~요!!~~ 추~콰~! "
바람이 너무 드세어집니다.
2시경에 대충 찾아올 바람이라는 예보가 11시에 터집니다.
배의 꼴랑거림이 심해지니 바람과 함께 낚싯줄이 심하게 뻗칩니다.
무의도 쪽으로 바람을 피해야 한다고 각 선단들이 무선으로 연락을 취합니
다.
배는 속도를 내며 달리고 비풍는 배를 삼킬 듯 덮고 지나가는데 좀 무섭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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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장님은 벌써 나의 몰황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주야조사님, 제가 잡은 저 우럭 가져 가세요.."
참 반가운 말씀.. 솔직히 내게 가져가리고 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 적중..ㅋㅋ
그래도 넙죽 받아간다면 이 놈의 자존심이 있지....
" 아녀요, 내일 쉬시니 부부가 회떠서 한잔 하시고 푹 쉬시지요..."
"아이구!~~ 우린 생선만 봐도 이젠 멀미해요.. 내일은 삼겹살에 쐬주나 한잔
할래요..
삼겹살이 최고 아입니꺼!~... "
......혹시 "그렇게하겠십니더!~" 이렇게 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ㅋㅋㅋ
신선장님 말씀 끝나기가 무섭게 난,
" 이 은혜를 언제 갚나요..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만나는 손님들.. 선장님 덕
분에 잘 대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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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쪽으로 배는 다 몰려 있습니다.
더욱 거세지는 바람에 배는 못이겨 옆으로 질주합니다.
낚시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분들이 스스로 낚싯대를 접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철수를 결정합니다.
2시에 팔미도 부근에서 철수하고 배에서 내리니 2시반입니다.
피를 뺀 52cm 이 염야(艶冶) 우럭선물 잘 모시고 완꽝조사는 그래도 기분 좋
게 모임의 장소로 갑니다.
가는 도중 집에 들려 냉장고에 보관했던 갈치도 가져갑니다.
양이 적어 갈치조림까지 곁들이면 어느 정도 먹거리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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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이 오셨습니다.
잘 아는 동네식당에서 준비한 칼로 뼈에 한점없이 살을 발랐더니 커서 그런
지 제법 나옵니다.
고백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개우럭을 실제 보여주며 내가 직접 잡았다고 했습니다.
다른때보다 더 직접 잡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손맛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것
도 물어보기 전에 먼저 부풀려 톤을 높입니다..ㅎㅎㅎ
아 ~~ 불쌍한 꽝조사의 쑈맨쉽에 사람들이 넋을 잃고 맛장구칩니다...ㅎㅎ
무우를 채칼에 밀어 두 쟁반에 수북히 쌓아 그 위에 얇게 썰어 올려놓으니
완벽한 두 쟁반의 푸짐한 회를 보고 자연산 우럭이라며 칭찬남산 입니다.
오늘은 낮엔 새가되고 밤엔 왕자가 되는 듯한 하루로서 기분이 어째 묘합니
다. ㅎㅎ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발걸음 가볍습니다.
오늘은 광어의 침묵이 웬일인지 다행히 나에게만 있어 나의 입술이 메말랐
지만 난 광어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련을 버리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암으로 타계한 대표적 가을남자.. 장현님의 미련을 부르며 구르는
낙엽 밟으며 가볍게 집으로 향합니다.
♪ 장현 - 미련 ♪
내마음이 가는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사람
갈수없는 먼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사람
코스모스 길을따라서 끝이없이 생각할때에
가고싶어 보고싶어서 슬퍼지는 내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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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과 오래된 구면과도 같은 살가운 첫인사를 나눳습니다.
모두 비바람에 수고하셨구요.
잘 들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주야조사>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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