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인이 대신 해주는 기도
기도는 반드시 은혜를 입을 본인이 하여야 한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기도는 되도록 본인의 성의와 기도 정진이 중심이 됩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를 위한 기도이냐에 따라 남을 위한 기도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다른 수행에 의해 이룩된 공덕도 다른 사람에게 또는 일체 중생에게 회향(廻向)하여, 그들에게 내가 지은 공덕을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로 나와 그가 근본 생명 진리 자리에서는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회향하는 공덕이야말로 참으로 크고 크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타인을 위한 기도는 유효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기도라는 점을 아울러 말씀드립니다.
제5장. 기도하는 마음가짐
1.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하신 위신력이 자신과 온 누리에 넘치고 있는 것을 깊이 믿고 감사하며 일심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매사에 자비한 마음으로 대하고 자비한 행을 할 것이고 결코 분노나 증오를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를 일으키면 마음의 불길을 일으키는 것이라 온갖 닦은 공덕을 모두 불살라 버리게 되고, 증오 대립심을 가지면 마치 검은 구름이 덮인 것처럼 공덕의 햇살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기도 성취가 늦어지게 됩니다.
2. 기도와 믿음
첫째, 진리는 부처님이며 참으로 있는 것은 진리뿐이며 선(善)뿐인 것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중생세계가 있고 미혹이 있고 업보가 있다 하는 것은 중생의 망견(妄見) 때문입니다. 실로는 불성진리 뿐입니다. 이것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둘째, 현상적으로 고통과 장애가 있더라도 현상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눈을 돌려 법성 진리를 보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두운 구름에 매여 있지 말고 항상 푸른 하늘 밝은 태양을 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끊임없이 진리 실상을 보도록 하여야 합니다.
셋째, 마음에서 일체 두려운 생각과 근심 걱정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흔듭니다.
넷째, 자신의 본래면목이 불성으로서 결코 불행할 수 없는 자임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소극적이거나 퇴폐적이거나 어두운 그릇된 사회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씩씩하고 건강하고 끊임없는 창조로서 보람있는 인생을 발전시키는 주체자임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3. 기도와 감사
감사할 줄 모르면 기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대한 감사이며, 대위신력으로 항상 은혜롭게, 조화 있게, 완전하게, 우리를 가호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우리는 아직 은혜를 받지 못했으므로 이제부터 받고자 기도하는 것이다. 감사는 받은 다음에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느냐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받았으니까 감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렇건만 받지 못했다 하는 것은 우리들 측에서 하는 말이고, 부처님께서는 이미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자비하시게 완전한 것을 이미 주신 것을 긍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끊임없이 감사하며 일심 정진할 때 부처님께서 주신 은혜는 더욱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현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돌려보면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노력 없이 받고 있는 수많은 은혜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성취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공덕의 나타남이므로 진리성에 대한 전면적 긍정과 믿음의 순수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모르는 기도는 이루기 어려운 것입니다.
감사 가운데서 수행해 갈 때 감사한 내용은 더욱 가까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실로 감사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만나는 것이며, 감사에서 진리가 자신에게서 꽃핀다 하겠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감사는 기도 성취를 위한 가정적 방편이라 한다면 그것은 큰 착오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끼어 태양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서 찬란한 태양 광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현실감각이 비록 부처님 공덕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자비 공덕은 이미 변함없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고, 우리의 생명과 환경과 생활 위에 은혜는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성취합니다. 감사해야 부처님을 만납니다. 끊임없이 감사하기 바랍니다.
4. 기도와 발원
보리심을 발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보살님과 같은 원을 세우는 것은 자신에게 불보살님의 위신력이 함께 흐를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 차원을 높이는 것이며 그 위에서 비로소 온갖 창조적 소망이 쉽게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성취는 진리의 실현이기 때문에 진리는 남과 대립하는 이기적 욕망 충족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아상(我相)과 교만과 삼독심(탐욕․성냄․어리석음)을 멸하여 그 마음을 청정히 하는 데는 참회가 가장 순수하고 가까운 것입니다. 참회할 때 모든 아집과 번뇌의 때와 장애되는 벽들이 모두 허물어집니다. 하물며 일체 중생의 죄업을 대신 참회하는 보살의 참회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기도할 때 먼저 맹세코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일체 중생과 자신의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죄업을 지성으로 참회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다른 수행에 있어서도 먼저 발원과 참회수행을 하여야 합니다. 제가 엮은 <예참문>을 읽으면서 정진하시면 발원과 참회수행이 원만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 뒤에 <발원문>과 <축원문>을 모아 놓았으니 참조하시고 선택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기도와 자비행
자비를 행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기적 자아의 성을 허물고 진리의 생명을 회복코자 나아가는 것입니다.
대개 무엇이든 얻으려 하면 먼저 주어야 합니다. 문을 열어야 햇빛도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는 거와 같습니다.
기도하려면 먼저 자비한 마음이 되고 무엇인가 주려는 마음이 되고 성실한 자신에 돌아가 모든 사람에게 친절과 따뜻한 심정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온 세계는 적이 아니라 부처님의 공덕세계이며 자비의 손길이 뻗혀 있는 것입니다. 우주 구석구석에 부처님의 자비하신 복덕의 손이 미쳐 있습니다.
우리는 애착하고 집착함으로써 복덕의 창구를 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비하고 보시함으로써 우리가 얻고자 하는 소망의 문이 열려지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이 기초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6. 기도할 때 버려야 할 마음
기도하는데 있어 버려야 할 마음은
첫째,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것은 부처님의 힘이며 진리의 힘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무한하신 자비이시고 무한 공덕인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 신념이 기도를 성취시키며 이 신념이 미약할 때 성취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자신은 업보 중생이고 죄 많은 중생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겸허하고 부처님 앞에 진실한 자세인 듯 보이지만 그런 생각으로는 기도 성취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죄인이다 업보 중생이다 하는 생각은 망념의 집착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 죄가 본래로 없음을 깨닫고 참회하여 맑히고 끝없이 은혜로운 자기 본성을 활발히 살려내야 합니다. 무거운 죄의식은 하늘의 먹구름과 같아서 우리의 환경을 어둡게 만듭니다. 밝은 햇빛을 가리는 것입니다.
셋째, 이기적 생각입니다. 자기 홀로만이 은덕을 받고 자신만의 성취를 구하는 것은 보살이 아닙니다. 진리는 원래 둘이 없고 대립이 없으며 모두와 함께 하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어긋나는 이기적 배타적 소망은 설 곳이 없는 것입니다.
넷째, 변화 진보 발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변화에서 새로운 발전의 문이 열립니다. 진보를 사양하고 현상유지를 갈망하는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섯째, 자신이 비소(卑小)한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 공덕에서 왔으며 우리의 생명은 불성입니다. 우리는 진리 공덕을 끝없이 내어 써서 무한 창조를 열어갈 주인공입니다. 이런 권위 있고 원만하고 축복된 자신을 몰각하고, 천박하고 못난 중생이라는 비소 관념은 기도 성취를 전적으로 방해합니다.
여섯째, 과학적 합리적 판단으로는 기도 성취가 어렵습니다. 만사를 과학이나 합리가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가 이룹니다. 합리와 과학에는 길도 있고 모순도 있고 막힘도 있지만 진리의 세계는 그 모두를 초월하였습니다. 이 걸림 없는 초월의 위력을 합리라는 그물로 얽어 맬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눈을 어둡게 하고 부처님 공덕을 가리게 됩니다. 과학은 변화 발전하고 있는 불완전한 학문인 것이며, 합리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해 가는, 옛날의 합리가 오늘의 합리가 아니며 또한 현재의 합리가 미래의 합리일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7. 기도와 욕망
우리들의 욕망은 좋은 욕망도 있고 자기를 해치는 나쁜 욕망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욕망 자체는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닙니다. 일체를 이루게 하는 동력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욕망을 긍정하고 키워가야 합니다.
기도는 욕망을 정화하여 진리의 싹으로 뿌리 내리게 하며 진리의 행복을 우리 생활 위에 나타나게 합니다.
대개 우리의 욕망을 정리해 보면
첫째, 자기 생명의 안정과 성숙의 욕망이며,
둘째, 이웃과 함께 하는 자기 확대 자기 동일화의 욕망이며,
셋째, 보다 향상하고 발전하여 진리를 얻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진리로 향한 욕망으로 키워 마침내 진리를 회복하게 합니다.
참된 욕망은 클수록 개인과 사회에 이익을 줍니다.
참된 욕망, 참된 소망은 그것이 우리 생명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대진리에서 나온 싹이라 할 것입니다.
흔들리고 어두운 마음속에 비춰 온 한줄기 빛입니다. 이 빛은 어두운데서 온 것이 아니라 진리에서 온 것이므로 반드시 실현됩니다. 나의 힘으로 실현된다기 보다는 진리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성장을 장애하는 요인들을 제거하여야 하며 희망이 실현되도록 활동하여야 합니다.
씨앗을 땅에 뿌렸을 때 싹이 성장하도록 땅을 고르고 북돋는 거와 같습니다.
8. 기도와 불만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대립한 자가 아닙니다. 저들을 해를 주거나 미워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우리 모두에게 현재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무거운 짐을 분담하여 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각기 손을 나누어 땀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결코 대립자가 아니며 존중하고 감사할 사람들입니다. 각자가 각기 처한 자리에서 가족과 집안과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일하는 보살입니다. 그와 같이 하여 스스로도 빛나고 스스로의 국토인 가정과 사회가 빛나는 것입니다. 이로써 부처님 은혜에 보답도 합니다.
9. 기도하기 떳떳하지 못한 마음
잘못을 저지르고 악한 짓을 한 것은 그것이 무지의 탓이며 어둠 속을 헤매는 증상입니다. 어둠은 밝은 빛 앞에 소멸되듯이 대자대비 부처님 앞에 나의 마음을 열고 허물된 사실을 드러내어 참회할 때 소멸됩니다. 다시 범하지 않을 때 그 마음은 본래대로 깨끗할 뿐입니다.
또 자기가 밉도록 범한 죄에 대하여 앙심의 가책과 자기 비판으로 자신을 증오하거나 고생해도 싸다 하며 저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빛을 떠난 어둠은 사라지듯 부처님 앞에 진정으로 참회할 때 죄는 소멸됩니다. 나의 참회의 힘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대자대비 부처님의 진리 광명의 힘으로 소멸됩니다.
우리는 다만 잘못된 어두운 구석을 덮어두지 말고 빛을 받게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참회하였거든 다시는 죄를 생각하지 말고 감사와 희망으로 그 가슴을 채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