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은 만11세에 프로에 입단하여 13세에 타이틀을 따고, 16세에 최연소세계챔피언이 되어 기네스북에 올랐고, 현재까지 세계대회 최다우승기록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바둑기사입니다. 아래는 이창호 9단의 명언들을 제가 직접 요약한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천재의 재능을 먼저 발견하지 못한다. 다만 그 행위의 비범한 결과를 보고 비로소 천재라고 부를 뿐이다. 따라서 천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오래 생각할 뿐이다.”
아이에게 성급하게 무엇을 하라거나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부모님. 부모님은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기보다 부모의 욕심과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이의 미래를 좌우할 재능은 어느 곳에 감춰져 있다가 언제 돌발적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가능하면 아이가 스스로 최선의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가족이 나를 늘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다. 재능이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
재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은 노력뿐이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훌륭한 교사가 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스승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까운 사람과 한의원을 찾았다가 대기실에서 집어든 ‘포브스코리아’에 선생님의 인터뷰가 게재돼 있었는데, 거기 스승의 훈육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제 스승이신 세고에 선생님의 정신세계는 일반인과 차원이 달랐어요. 도인에 가까우셨어요. 저에게도 프로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하셨죠. 바둑을 계속 두면서 ‘인간됨’을 강조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보여주셨어요. 선생님께선 ‘제자가 가는 길을 터주는 것이 스승이다’라고 하셨어요. 한국에 와서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였을 때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꼭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느림’은 절대적인 느림이 아니다. 빠르게, 좀더 빠르게 질주하는 현대생활의 모든 사고방식에 대한 상대적 느림이다. 상대적 느림은 ‘감속(減速)’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바둑의 속도는 외형으로 드러나는 행마의 속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감춰진 인식의 속도, 판단의 속도가 중요하다. 몸에 맞는 옷과 같은 것, 바로 적정의 속도가 핵심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균형’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프로라면 누구나 ‘자만이 곧 패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때때로 함정이 된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자만에도 단계가 있다. 스스로 교만한 줄 모르는 것이 자만의 포석이고, 아예 겸손한 척하는 것이 자만의 중반이며, 심지어 자신이 겸손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만의 끝내기다. 그것이 내가 30년 가까이 반상을 마주하며 수없이 많은 실전에 임하면서 비로소 깨닫고,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다.
순류(順流)에 역류(逆流)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국면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바둑만큼 ‘상대적’이라는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게임도 없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중요한 승부에서 패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사람은 이미 프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품과 무관하다. 승부사에게 패배의 아픔은 항상 생생한 날것이어야 한다. 늘 승자가 될 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위험한 곳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곳을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이럴 때 승부의 포인트는 누가 먼저 인내를 깨뜨리느냐에 있다.
재기발랄한 신세대들의 도전이 갖는 열정과 패기의 에너지는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선행자들에 대한 존중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어제가 없었으면 우리의 오늘도 없다.
나도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잔소리를 입에 담을 나이가 된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겸손과 자존심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꺾이지 않는 단단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만이 진심으로 겸손할 수 있다.
바둑교실의 문을 기웃거리는 수많은 보통 어린이들에게 ‘설렘 가득한 너의 그 얼굴이 20여 년 전 나의 얼굴이며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