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8일 약속대로 성채와 무등도서관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서 39번 시내버스에 승차하여 금남로 4가역에서 하차한 후 남선빌딩 지하다방으로 이동하였다. 얼마 후에 성채의 전화를 받고 영채 형님께서 나오셨다. 나는 사실 오늘 3자모임이 궁금하였다. 우리는 홀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작은 홀로 이동하였다. 거기에는 커다란 원탁이 놓여 있고 의자도 8개정도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주문하였다. 실내 다방인데 식사까지 취급하는지는 미처 몰랐다.
마침내 영채형님이 무슨 서류봉투를 내놓고는 문중에 대한 얘기와 함께 뜬금없이 나의 호에 대한 얘기를 꺼내시면서 설명을 시작하신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숙연하게 경청하였다. 참 고마웠다.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관심을 가지시고 나를 생각해서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해주신 점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그래서 점심을 든 후 밥값은 얼마 안되지만 내가 지불하였다.
號記 = 華 谷
금성나씨 남강공종회
구화공 15세손 나인채
풀이 : 華谷은 無言의 實踐家이자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라는 俗談처럼 愼重하게 處身하는 敎育者로 定評이 나 있다.
평생 제2세 國民敎育에 심혈을 쏟아오다가 후배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名譽롭게 퇴임하면서올바른 스승상을 남겨 주위로부터 큰 감동을 안겨준 바가 있다.
靑史에 빛난 九華公은 광해조때 간신들이 仁穆大妃 廢母之義를 선동함에 분연히 일어나 天無二日이요 國無二母라 외치면서 극력반대 上疏하시다가 削官廢黜된 光海五賢이시다.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후진교육에 전념하신 學者이자 忠臣이다.
雅號를 華谷이라 함은 金城山 아래 골짜기에서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뜻인데 즉 九華先生의 日月과 같은 忠義思想을 말함이요 이를 이어가라는 풀이다.
2015년 8월 15일 光復節에
湖南名鑑發行人 · 會長
淸白吏公宗會常任顧問 華雲 羅永埰 선
錦城羅氏埰字會 會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