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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추산 권기일선생 도만 구국행렬 재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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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뉴스-사회]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길에 오른 항일 도만(渡滿)행렬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28일 100여년 만에 처음 재현되었다. 안동문화원(원장 이재춘)이 주최하고 (사)문화동인(대표 원유록)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28일 오후 4시부터 안동시 정상동 예미정(禮味亭) 별채에서 열렸다. 행사는 ‘신흥무관학교 최후의 1인’으로 기록된 항일순국지사 추산 권기일(權奇鎰 1886~1920) 선생의 가족들이 올해로 만 103년 전인 1912년 3월 2일 대대로 이어오던 종가집을 버리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역사적인 도만에 나선 당시의 처절했던 모습을 그대로 복원, 퍼포먼스 형태로 재현되었다. 이번 행사는 먼저 추산 권기일 선생을 추념하는 시 낭송과 신흥무관학교 교가 제창을 시작으로, 추산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회고와 함께, 2부로 추산이 조부인 권헌봉에게 하직 인사를 한 후 노모와 부인, 동생 가족 등 식솔들을 데리고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싣고 고향마을을 떠나는 장면을 상황극으로 꾸몄다. 이날 행사에는 정상동 마을주민 200여명과 문화동인 회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원 50명 등 모두 250여명이 참가해 한복 차림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도만 이삿짐은 소달구지 2대에 그릇궤, 반닫이, 삼층장 등 가구, 궤짝과 이불, 가마솥, 돗자리 등 당시 사대부집 가재 도구와 함께 만주에서 새 삶터인 황무지를 일굴 곡괭이, 삽, 쟁기, 호미 등 농삿일에 사용할 농기구로 꾸려졌다. 도만 이삿짐을 통해 당시 넉넉한 생활을 해 온 사대부 집안의 종손이 항일투쟁을 위해 망명길에 오르면서, 대대로 지켜 오던 천석지기 종중재산을 처분하고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위해 직접 농사도 불사하겠다는 처절한 마음가짐을 엿 볼수 있었다. 100여년 전 추산선생 가족들은 구미 해평면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며 삼엄한 일경의 감시를 따돌렸으며, 땅거미가 질 무렵 횃불을 밝히고 소달구지로 안동을 떠나 김천지역에서 열차를 갈아 타고 신의주를 거쳐 만주 서간도지역 통화현 추가가 일원에서 미리 도만한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과 천신만고 끝에 합류하게 된다. 경술국치 당시 안동지방에서는 나라 잃은 의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정순국이 8명이나 있었으며, 그 이후 2012년까지 3년 동안 백하 김대락(1845-1915)을 시작으로 일송 김동삼(1878-1932), 동산 류인식(1865-1928) 등 명문거족들은 물론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 까지 항일 투쟁의 도만행렬이 약 60여 차례나 있었다. 당시 서간도 지역에 거주하게 된 안동사람들은 100여 가구에 1천여 명에 이른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추산 선생의 손자 대곡문중 종손 권대용(67)씨는 “100년 전 대대로 살던 종가집을 비우고 이국만리 만주 독립운동에 나선 할아버지의 기막힌 심정이 그대로 와 닿아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다”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자라나는 차세대들이 악독했던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