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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랄 나으리 -미셸 투르니에 산문집-
프로방스에 처음 온 사람들은 미스트랄에 대하여 관대하다. 그들은 이 건조하고 써늘한 바람이 정신을 바짝 들게 하고 운동 의욕을 북돋우어 건전하고 상쾌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고, 카마르그의 늪에서 날아온 모기떼 자욱한 악취를 걷어내 주는 동시에 박박 문질러 광을 낸 거대한 구리접시처럼 하늘을 맑게 닦아 햇빛으로 빛나게 해준다고 해서 좋아한다. 미스트랄이 부는 날씨가 고약한 날씨라고? 무슨 말씀! 고약한 날씨에 어떻게 해가 쨍쨍 비친단 말인가? 북부 사람들 생각엔 고약한 날씨란 곧 구름과 비를 뜻한다.
프로방스 사람들의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아를르의 포럼광장에서 마주친 한 조그만 장면을 잘 기억한다. 그곳은 이 도시에서도 가장 친근하고 가장 아늑한 장소 중 하나로 프레데릭 미스트랄의 저 아버지 같은 동상이 굽어보고 있는 곳이다. 공기가 이를 데 없이 부드러웠다. 아침의 첫 햇살이 플라타너스의 어린 이파리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겨울의 축축한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파리를 떠나 밤에 이곳에 도착했었다.
전신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축복받은 이 시간의 기분을 나와 함께 공감할 동지가 없을지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그때 광장으로 나와서 열정적으로 페탕크 놀이에 골몰하곤 하는 그런 프로방스 영감 하나가 내 옆에 와 서는 것이었다. 그는 심사가 뒤틀린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더니 체머리를 흔들면서 투덜거렸다 : 「고약한 날씨가 계속이군!」 그는 근처의 카페로 피신하려는 듯 프로방스의 사나운 기후를 타박하면서 자리를 떴다. 고약한 날씨? 그렇고말고. 그는 이미 플라타너스 잎새들 사이로 북풍이 가볍게 일고 있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미스트랄의 그 같은 기미는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 해도 그의 심사를 뒤틀어놓기에 충분한 것이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약간은 프로방스 사람이 된 모양이다. 더 이상 그런 반응에 어깨를 으쓱하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미스트랄 -라틴어 magister에서 온 말로 나으리라는 뜻의 단어 마에스트로(maestro)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고약한 주인, 지독히 잔혹한 폭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 바람이 일주일 내내 불어대면서 발코니의 화분에 심어놓은 화초들을 말라 죽게 하고 -정원이 드물고 혹시 있다 해도 연약하기만 한 이 고장에서 이런 일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천식 환자에게는 해롭기 짝이 없는 석회질의 가는 먼짓가루를 집 안의 온갖 가구들 위에 뿌려놓는 것을 보았다. 나는 미스트랄이 야외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연극 혹은 음악회를 휩쓸며 망쳐놓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장 콕토의 「시한폭탄(Machine infernale)」공연 중에 가엾은 조카스트가 자기 자신의 옷자락을 머리위에 뒤집어쓰고 자루 속에 든 고양이처럼 벗어나려고 헛되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몰리에르의 극중 인물들이 거센 바람에 날아가려는 가발을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연기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대」의 무대장치가 어찌나 바람에 흔들리는지 무대가 바그너의 오페라라기보다는 케이프 혼을 지나는 범선의 갑판과 더욱 흡사해진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나는 성령이 내 머릿속으로 불어와서 나의 정신이 그의 영감으로 가득 차게 해주십사고 비는 뜻에서 내 저서들 중의 한 권에<성령의 바람[Le vent paraclet)> 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아를르에 있는 내 집 문에다가 다음과 같은 성서의 한 구절을 새겨놓고 싶다. 이것은 호렙 산 위에서 야훼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엘리야의 이야기다.
크고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일어 산을 뒤흔들고 야훼 앞에 있는 바위를 산산 조각내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 다음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목소리를 듣고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나니…….
「열왕기」상. 19장 11~13절 미스트랄이 부는 어느 날, 아를르에서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