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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등록 | 중요민속문화재 제105호 | 1979-12-31 | ||
명칭 | 한글 | 구미쌍암고택 | ||
한문 | 龜尾雙巖古宅 | |||
관련 | 인물 | 농수공(聾睡公) 휘 광익(光翊) | 1731~1795 | |
가문 | 문성공계 | 문성공 17세손(안렴사공파, 선산종회) | ||
요약 | 농수공께서 지으신 살림집. | |||
소재지 | 경북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239번지. |
1755년(영조 31)에 농수공께서 지으신 살림집으로, 장남 화은공(花隱公) 휘 성우(成羽)께서 상속을 받으셨으나, 1788년(정조 12) 동생 진사공(進士公) 휘 승우(昇羽)께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1호 해평동북애고택(80쪽)을 새로 지으셨는데, 형수가 새집에서 살고 싶다하여 서로 집을 바꾸었다고 전해 온다.
농수공에 관한 추가 정보는 120쪽 청사공육형제초상화일괄을 참고하기 바란다.
구미쌍암고택은 안채·안대문채·사랑채로 이루어졌고, 대문채는 소실되어 근래에 새로 지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동쪽을 향하고, 一자형 대문채는 안채와 마주하여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이다. 안채의 중심은 6칸 크기 대청이다. 안방은 안마당 트인 곳과 접하여 자연채광을 직접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안방 맞은편 쪽 건넌방을 이 집에서는 웃방이라 부르는데, 비교적 큰 규모이다. 안방 문 앞과 건넌방 문 앞에는 긴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대청 왼쪽 윗벽에 설치된 긴 시렁과 앞 기둥에 부착된 5단 탁자형 시렁은 세면도구와 간편한 소도구를 얹어두는 고정 탁자 구실을 하는 매우 보기 드문 설비이다.
사랑채는 대문채 바깥마당 한단 낮은 터에 따로 두었다.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지닌 것으로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첫댓글 휘 光翊 선조의 호는 聾睡齋이며 차남 昇羽 선조는 시강원 文學 벼슬 하신 분이시기에 해평문중에선 '문학공'이라고 호칭합니다. 형제분이 집을 바꾼 연유는 해평문중에서 전해오는 위계 즉 '큰댁이 작은댁보다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이유로 형님인 화은공께서 새집인 북애고택으로 들어가셨다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쌍암고택에 비해 33년 후에 지으진 북애고택의 안채구조가 훨씬 더 나은 걸로 되어 여자들이 좋아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