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포대학교 교수 선언>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
우리 교육의 근본정신은 민주주의여야 한다. 이는 단지 민주주의가 소중하다고 가르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찾고 최선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갈수록 구호에 그치고 있으니,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우리는 참담한 심경일 따름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정부 당국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려는 일련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미 역사학 전공 교수와 연구자, 일선 교사, 다수의 시도 교육감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근래에는 대학별로 다수의 교수들이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 목포대학교 교수 일동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한다.
1.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성취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침해하는 정치적, 제도적 질곡을 극복하며 이룬 성과다. 교육과정의 구성과 교과서 제도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확대하고 교사와 학생 등 교육 주체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온 것 역시 중요한 교육 민주화의 진전이었다. 국정교과서 제도는 이런 교육에서 민주화의 성취를 역행하는 폭거다.
2. 국정교과서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유신체제 하에서나 시행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특수한 처지에 있는 소수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학생 인구가 적어 여러 종의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나 국가가 극히 강력히 교육을 통제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없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데 국정교과서제도가 가장 부적절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 또한 이런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3. 국정교과서 제도는 역사 교육을 실제 수행하는 교사와, 수업을 받아야할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선택권을 침해한다. 국가기관이 선발한 몇 사람의 집필진, 연구진이 만든 교과서보다, 다양한 관점과 능력을 보유한 여러 사람들이 경쟁하며 만든 교과서들이 여러 가지 점에서 우수할 것은 명백하다. 또 교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여러 교과서의 장, 단점을 비교하여 자신들의 교육적 수요에 적합한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교육을 포함한 모든 사회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독 한국사 교육에서만 그 효용성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정부, 혹은 국정화론자들은 ‘한국사’라는 교과목의 특성을 강조한다. 국가적 정체성 교육을 위해 단일한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그러나 섣부른 국정교과서야말로 한국사 인식에서의 비학문적 논쟁을 심화시키고 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연전에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통해 이를 직접 체험한 바 있다. 학계와 교단의 엄밀한 연구와 검증 없이 발행된 보수적 관점의 교과서는 교육 현장에서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이를 추진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학문적 진리는 학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가 학문의 진리를 확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5. 학문적 진리는 학계에서 건전하고 개방된 논의 과정을 통해 입증되어야 하며 전문 연구자와 교사들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교과서에 반영되어야 한다. 국가(기관)이 학문 분야의 진리를 확정하겠다는 태도는 장차 학문의 독립성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다. 또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크게 축소시켜 단순한 내용전달자로 전락시킬 위험성 또한 매우 높다. 지금은 한국사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지만, 장차 사회과 혹은 국어과 등 교과목 전반으로 국정화를 확산시키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
2015. 10. 5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포대학교 교수 일동
강봉룡(사학과) 고석규(사학과) 김경옥(도서문화연구원) 김관수(한약자원학과) 김병록(행정학과) 김영란(사회복지학과) 김영목(사학과) 김인용(행정학과) 김정권(경영학과) 김창대(물리학과) 김태종(미술학과) 김희봉(교육학과) 박관석(경제학과) 박대석(경영학과) 박찬표(정치언론홍보학과) 박혁순(사학과) 배현(영어영문학과) 안미현(독일언어문화학과) 신상용(사학과) 안영하(법학과) 오장근(독일언어문화학과) 이경엽(국어국문학과) 이광복(독일언어문화학과) 이기갑(국어국문학과) 이기훈(사학과) 이성로(토목공학과) 이영호(컴퓨터공학과) 이훈(국어국문학과) 장시복(경제학과) 정상준(경제학과) 정양준(물리학과) 조선희(간호학과) 조영석(금융보험학과) 조용호(국어국문학과) 조윤경(영어영문학과) 조은정(미술학과) 조혜정(아동학과) 최성환(도서문화연구원) 최운호(국어국문학과) 하상복(정치언론홍보학과) 한철(독일언어문화학과) 허석(일어일문학과) 홍선기(도서문화연구원) 홍남선(경영학과) 홍석준(문화인류학과) 황두현(관광경영학과) 유원적(사학과, 명예교수)
151005_목포대 교과서국정화반대선언.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