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壁(제벽) 猿亭 崔壽峸(원정 최수성) 水澤魚龍國 山林鳥獸家 孤舟明月在 何處是生涯 수택어룡국 산림조수가 고주명월재 하처시생애
못은 어룡의 나라 숲은 새 짐승의 집. 외로운 배에 달 밝은데 어느 곳에서 한평생을.
直譯 물(水) 못은(澤) 고기와(魚) 용의(龍) 나라요(國) 산(山) 숲은(林) 새와(鳥) 짐승의(獸) 집이라(家). 외로운(孤) 배엔(舟) 밝은(明) 달이(月) 있는데(在) 어느(何) 곳에서(處) 한 평생(生) 끝까지(涯) 다스릴꼬(是).
낱말풀이 / 魚龍國 : 고기와 용이 노는 곳.
失題 水澤魚龍國。山林鳥獸家。 孤舟明月客(在)。何處是生涯。 연못은 고기와 용이 사는 곳이고, 숲은 집승과 새들이 사는 곳이네. 밝은 달밤 외로운 배에 실린 이몸, 어느 곳이 내가 살 곳인가?
※ 다른 곳에는 세번째 구절이 "孤舟明月在"로 되어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한국고전번역원DB에 있는 것을 옮겨왔다.
최수성(崔壽峸) 1487(성종 18)∼1521(중종 16). 조선 전기의 선비화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북해거사(北海居士)·경포산인(鏡浦山人). 치운(致雲)의 증손자로 생원 세효(世孝)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배출된 신진사림파(新進士林派)학자로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과 교유하였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친구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아예 포기하고 술과 여행, 시서화(詩書畵), 음악으로 일생을 보냈다. 1521년 35세 때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남탄현(南炭峴)에 집을 마련해서원숭이를 길들여 함께 살았으며 원정이라는 아호는 그것에서 연유하였다. 젊어서부터 세속을 멀리하여 명산승경을 유람하며 술과 거문고, 시를 즐겼고 뜻이 맞는 교우들과는 만남에서 화흥(畵興)을 폈다. 문장·시·서화·음률이 모두 뛰어난 절세의 기재(奇才)로 평가되었으나 유작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인종 때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강릉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원문출처=虛庵先生續集卷之一 / 別稿 先生沈江後。題途傍院壁等詩。 以先生所作。多出於諸賢信筆及國乘,箕雅。故別錄于此。 ○詩
失題 出儒林抄集 水澤魚龍國。山林鳥獸家。 孤舟明月客。何處是生涯。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虛庵鄭希良[허암정희량]
정희량(鄭希良, 1469 예종1~?, 자 淳夫, 호 虛庵) 역시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시로써 이름을 남긴 문인이다. 그래서 그도 다른 문도(門徒)들과 마찬가지로 무오사옥(戊午史獄)에 연루되어 의주(義州)와 김해(金海)로 배소(配所)를 옮기면서 유배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 무렵 그는 함께 의주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 조위(曹偉)와 시를 화답하면서 시를 배웠다고 하며 그의 문집에 전하는 대부분의 시작(詩作)이 이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조위는 김종직(金宗直)의 처남이자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므로 정희량과는 동문수학한 처지이지만, 정희량(鄭希良)보다 15년 연장이어서 사실상 그로부터 시를 배운 것이다.
『허암선생속집(虛庵先生續集)』에 있는 「사우록(師友錄)」에는 모두 19명의 교유인물이 수록되어 있으나, 이들은 대부분 점필재의 문하생이거나 정희량(鄭希良)이 용산(龍山) 독서당(讀書堂)에서 공부할 때의 동료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친교가 있었던 사람이 박은(朴誾)ㆍ이행(李荇)ㆍ홍언충(洪彦忠)ㆍ남곤(南袞) 등이며, 이들을 통하여 그는 진황(陳黃)의 강서시파(江西詩派)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은(朴誾)보다 10년, 이행(李荇)보다 9년 위이므로 이들로부터 시를 배우거나 영향을 받은 것이라기보다는 이 때 소단(騷壇)의 풍상(風尙)이 황진(黃陳)에 경도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칠언율시에서 특장(特長)을 보이었거니와, 그의 시세계를 알게 해주는 다음 작품들도 모두 칠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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