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시
김순진
늦게 퇴근해 들어오니
철사가 삐져나와 자꾸만 가슴을 찌른다며
아내가 브래지어를 꿰매고 있다
버리고 또 사면되지 꿰매 입을 것까지야 있느냐
말하려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 입을 다문다
사업해서 번번이 망하고 게다가 시까지 쓰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쏘아붙일까봐
못 본 척 시집을 읽는다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느라
브래지어를 꿰매 입는 아내에게
돈도 못 벌어오면서도 되려 큰소리쳐온 나
식당일 공장일 병원일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내가 시를 쓰도록 묵인해준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이 아내의 가슴을 찔러댔을까
사람들은 내 시가 재미있다고 하지만
아내에게는 뾰족한 비수였으리
오늘은 내 시가 나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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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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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시 / 김순진
김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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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5 09:2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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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학의 길이 어려움을 뻐저리게 느낀 시입니다 교수님
읽을 때마다 브래지어 와이어가 찌르는 듯 합니다.
그거 남한테 말도 못하고 정말 아프거든요.
전 내조를 제대로 하려면 시를 아주 외면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