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 연재: 루터와 동행하는 종교개혁지 순례 4>
출처: <기독교세계> 2016년 7·8월호, p. 54-56
루터의 밧모섬 바르트부르크 성
고재백/ 서양사학자, 서울대학교 강사, 기독인문학연구원
바르트부르크 성 탐방
종교개혁의 상징적 장소 바르트부르크 성은 독일 중부 아이제나흐 시 인근의 산마루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500여 년 전에 루터는 기병들에게 납치되듯이 한밤중에 말을 타고 그 성에 올랐다. 종교개혁 이후에 한동안 이 성은 루터를 기리는 순례지가 되었다. 200여 년 전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열풍이 불던 때,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여 오백여 명의 대학생들이 실러의 시를 노래하고 독일의 자유와 통일을 외치며 그 길을 뒤따랐다. 이때에 루터는 민족의 영웅이요, 이 성은 민족의 성지였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루터의 삶과 개혁사상을 되새기며 같은 길을 오른다.
해발 400미터 높이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까지의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아이제나흐 시에서 십여 분 남짓 구불구불 산길을 자동차로 오르고, 또 한참을 좁은 길과 계단을 걸어서 올랐다. 성문 망루 앞 도개교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고 사방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성을 뒤로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루터가 청소년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간직한 곳, 평생 가장 사랑했던 도시 아이제나흐가 바로 산발치에 있었다. 붉은 색 기와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도시와 이를 둘러싼 들판과 숲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잘 어우러졌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이 성은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 성을 돌아보면서 누구나 제일 먼저 루터의 고독과 고통의 한숨 소리를 듣고, 그의 피와 땀이 밴 업적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루터가 작사한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떠올릴 것이다. 그 외에도 이 성은 중세의 역사와 문화를 잘 간직한 박물관과 같다. 중세 성곽의 건축과정을 재현한 전시물이나, 성내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을 보는 재미가 매우 크다. 한 때 이 성의 여주인이었고, 또 루터가 “복음의 증인”으로 칭송했던 엘리자베스 공작부인의 성인다운 생애를 확인하는 것도 뜻 깊다.


이 탐방의 절정은 좁은 계단과 복도를 따라 가서 닿게 되는 ‘루터의 방’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골방에서 루터가 외로움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싸우면서 창조의 시간을 보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그곳엔 지금도 책상과 의자와 푸른색 난로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리고 기사 ‘융커 외르크’로 변장한 루터의 초상화가 덩그마니 벽에 걸려 있다. 고독한 은둔자 루터는 새들이 많은 이 성을 ‘새들의 영토’라거나, ‘암자’ 혹은 바울이 머물렀던 ‘밧모섬’이라고 불렀다.
루터의 바르트부르크 성 입성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루터는 카를5세 황제의 뜻을 거슬렀고, 결국 황제는 그를 ‘이단자’로 확정하고 법적 보호를 박탈했다. 오랜 조정을 거쳐 최종 발표된 ‘보름스 칙령’은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루터의 책은 모두 불태워져야 한다. 그는 어떤 설교도 해서는 안 되고, 책도 써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그를 추종하거나 보호하거나 후원하는 자는 처벌을 받는다. 오히려 그를 체포하여 넘겨주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제 루터는 더 이상 수도사이자 사제가 아니며, 목숨이 위태롭게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루터 일행이 보름스를 출발하여 비텐베르크로 향했다. 여정 중에 몇 곳에서 설교를 했고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으며, 또 친척을 방문하기도 했다. 소수만 남은 루터 일행이 마차를 타고 알텐슈타인 근처 숲길을 지날 때였다. 네다섯 명의 말 탄 무장 군인들이 갑자기 숲에서 나와 루터의 신원을 확인하더니 끌고 사라져 버렸다. 이 소식은 그와 동행했던 동료의 전언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루터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루터가 납치되어 살해됐다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는 각종 소문이 무성했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오, 하나님, 루터가 죽었다면 이제는 누가 거룩한 복음을 그처럼 분명하게 가르쳐 주겠나이까?”
그날 늦은 저녁, 한 무리가 말발굽 소리를 내며 바르트부르크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추적자를 따돌리려 먼 곳을 돌아온 그들 사이에 루터가 끼어 있었다. 사실 이 날의 사건은 루터를 공공연히 두둔할 수 없었기에 납치를 가장하여 보호하고자 했던 현자 작센공 프리드리히의 작품이었다. 성 안에서 루터는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처신해야 했다. 외진 골방에 거처가 마련되었고, 방으로 올라가는 곳에는 이동 가능한 계단이 놓였다. 그는 기사처럼 머리와 수염을 기른 채, 대학생 시절 이후 처음으로 평민복을 입고 생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긴 침묵의 강에 몸을 맡겼다.
고독과 고통의 공간, 그러나 창조의 시간
성에 은둔한 10여 개월 동안 루터의 삶은 고독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설교도, 강의도, 논쟁도 없었고, 더욱이나 가까이에 사람도 없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숲 속의 나무와 새들의 소리뿐이었다. 긴박한 사건과 격렬한 논쟁을 겪은 이후, 잠시 동안의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그에게는 무척 낯선 세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오랜 영적 시련인 의심과 유혹, 자신의 죄에 대한 절망을 다시 경험했다. 멜랑히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의 신세한탄이 잘 담겨 있다. “나는 영적으로 열심을 내야 할 터인데 거꾸로 육체가 열심을 내고 있네. 정욕과 게으름, 안일함과 졸음에 열심이란 말일세 ……. 때때로 나를 찾아오는 육체의 유혹과 다른 근심거리들로 시달리고 있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많은 질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너 자신만이 현명한가?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틀렸고, 또 그렇게 오랫동안 잘못을 범해왔을 수 있을까? 만일 네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오류에 빠트려서 영원히 저주를 받게 만든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갖가지 육체적인 질병도 고통과 고뇌를 가중시켰다.
여느 때처럼 그는 악마와도 끝없이 싸웠다. 오랜 후에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악마를 “잉크로 물리쳤다”고 말했다. 이 말이 오랜 동안 잉크병을 던진 것으로 해석되었고, 그래서 난로 뒤의 벽에 한동안 잉크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는 지워진 자리에 잉크색이 덧칠해졌다고도 한다. 오늘날 그 자국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에서 루터의 심리적 압박감과 고뇌를 느낄 수 있겠다. 소년시절 이후 그의 삶에서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방 바깥에서 들리는 덜커덩 소리나, 호두가 채워진 자루에서 나는 바스락거리거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그는 악마의 출현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고독과 고통은 창조의 원천이기도 하다. 성에서 은둔하는 동안 루터는 오로지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에 집중했고, 골방에서든 뜰에서든 기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나날을 보냈다. 12 권의 소책자를 저술했고, 친구와 동료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며 새로운 개혁사상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의 수도사 서약을 철회했고, 믿음과 자유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러한 모든 작업은 독일 교회 개혁운동의 정신적 신학적 바탕이 되었고, 곧 탄생하게 될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기틀이 되었다.
이 때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서 그는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성직자들만이 읽고 가르칠 수 있는 라틴어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거대한 반역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구시대의 전통과 성직자 중심의 강고한 제도를 파괴하고, 새로운 전통과 제도를 세우는 혁명을 감행했다. 루터는 농민이든 아낙네든, 심지어 거리의 아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하겠다는 자신만의 번역의 원칙을 실행했다. 그가 사용한 단어와 문장과 문체는 이후 수세기 동안 근대 독일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루터의 성서 번역에 대해 지나친 과대평가도 삼가고, 미화와 영웅화도 경계해야겠지만, 역사적 의의와 영향만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던 루터를 떠올리며 고독 속의 영성을 되새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다. 요즘 목회자와 신자의 관계가 수직적이고, 신자의 신앙과 생활이 종속적인 것은 아닌가? 교회 예배나 활동이 무척 번잡하고 소란스럽지는 않는가? 현대문명 속에서 홀로 있기가 부쩍 주목받는 요즈음에 특히 교회가 이런 고독한 창조적 시간을 강조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