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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옹심이] 주말에 감자옹심이를 먹으러 강릉에 다녀왔다. 강원도지방의 토속음식 으로 감자 생산지 대관령을 중심으로 한 영월과 평창 진부 강릉 지방 사람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칼국수와 비슷한데 밀가루가 아니기 때문에 탁하지 않고 맛도 담백하다. 최근에는 웰빙 식단의 유행을 따라 잘 알려져 있지만 아직은 아는 사람만 찾는 정도로 여겨진다.
고향이 강릉인 아내는 감자옹심이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고 식구들도 모두 좋아한다. 얼마 전 아내는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다녀온 후 강릉 바닷가 '병산'에 옹심이 맛집을 알아놓았으니 가자고 했다. 입맛에 대한 유혹은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한번 뇌에 각인되면 좀처럼 잊히지 않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이 입맛이다. 아내는 지금 집에서 만들어 먹는 감자옹심이보다 지난날 어린 시절의 맞을 회상 하고 꼭 강릉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영동고속도로 ‘둔네’를 지날 무렵 안개비가 진눈깨비로 바뀌고 차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속도를 줄였다. 원주에서 태백산맥의 허리를 치고 오르는 이곳은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가르는 곳으로 언제나 기온이 변화무쌍하다. 오래전 강릉에서 첫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여덟 시간 비포장도로를 다니던 때였다. 겨울철이면 버스운전기사가 늘 이곳에서 조심조심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곳을 지나면 신기하게도 날씨가 포근해지고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들어서면 봄날처럼 확연히 다르다.
주문진항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고 한적한 강릉 외곽 고속도로를 달리며 사천과 연곡을 지날 때 아내는 어머니 묘소를 생각하고, 나는 이런 곳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작은 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문진항 어시장 입구에는 고무 앞치마를 두른 단단한 체구의 아낙이 관광객들을 향해 산 오징어 한 마리에 만원으로 흥정하고 있었다. 구경꾼들을 많았지만 선 듯 사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시장 안에는 때마침 양미리와 도루묵 철이라 가게마다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내는 가자미식해를 담근다며 물가자미를 한 보따리 샀다.
주문진에서 강릉까지 겨울철 해안도로는 조용했다. 몇몇 낚시꾼들이 릴대를 박아놓고 어신을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추억 속에서 강릉은 남대천에서 은어를, 경포호수에서는 팔뚝만한 잉어를 낚시로 잡아 올렸다. 겨울이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지금은 카페거리로 복잡한 '안목'항에는 민가가 몇 체 있었고 고깃배가 들어오는 곳이었다. 백사장에서 낚시를 하다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루묵을 구워먹기도 했다. 도루묵 알은 약간 찐득하지만 불에 구우면 탱글탱글해 지고 반으로 갈라진 몸통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취향이 다르지만 언제 어떻게 경험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싶다. 가자미 식혜나 도루묵, 양미리 모두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다.
오후 한시 넘어서 바닷가 병산에 있는 맛 집 [삼우 옹심이]에서 감자옹심이를 먹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 이층에서 커피를 마셨다. 파란색 파도가 쉴 새 없이 백사장을 향해 밀려오다가 힘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젊은 남녀들이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내달리고, 아이들은 어른들 틈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그곳엔 어떤 기다림도 멈춤의 시간도 없는 것 같았다.
여행은 특별한 목적으로 여러 날 준비하고 떠나기도 하지만, 그런 여행보다는 대부분 즉흥적일 때가 더 많다. 티브이 소개된 짧은 영상에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생기고 때로는 말 한마디에, 또 책을 읽다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갈망은 그곳이 지금 자신이 처한 장소보다 나을 거라는 느낌 때문이다. 누군가 그것은 마치 병실에서 오랜 날 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창가로 자리를 옮겨가고 싶은 심정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리도 얼마 지나면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할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짧은 계절, 동짓달 해가 짧다. 한참을 말없이 카페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길을 생각하고 조바심이 났다. 감자옹심이를 떠올리며 시작된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보낼 수 있다는 게 즐거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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