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캠프 개최하지 않기로
안 회장 “아쉽지만 정부방침에 협조해야”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본회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계캠프 행사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안효준 회장은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정부의 방침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아쉽지만 올해도 하계캠프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백신접종이 원활해지면 10월 말 정기총회는 개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동우 여러분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가을 총회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2021 정기총회 10월 30일 개최 예정
강대신문 창간기념일인 2월 1일을 전후한 주말에 치러 온 정기총회를 지난해부터는 발기총회(11월 2일)에 가까운 주말에 개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올해 정기총회는 10월 30일(토)에 개최될 예정이다.
안효준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창립 41주년 총회에도 많은 동우들의 참여와 성원을 바란다고 전했다.
동우동정
▲송병훈: 춘천 서면 출신 박사 모임인 백운회 회장으로 강원연구원과 백운회가 강원도 발전 방안을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MOU 체결하는 등 왕성한 활동
▲김재성(21기): 아들 결혼 7월10일(토) 12시 서울 청담동성당
▲김진영, 박진오, 안효준(이상 21기): 지난 5월19일 강대신문 지도위원, 주간, 강원대 총장을 역임하신 박용수교수를 모시고 춘천 시내 음식점에서 만찬
▲김상수(25기):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에서 정선지사장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
▲허현무(25기): 신장암 1기 수술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복하여 한화생명보험 강릉지사 대표로 사업 시작
▲김종국(25기): 용인시 수지에서 수제청 전문점 <나는 청> 개업.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온라인 주문 가능
▲김종국, 단인희, 송영신, 송호필, 이정옥, 허현무(이상 25기): 지난 6월19일 양양 솔비치에서 동기모임을 갖고 친목을 돈독히 하고 동우회 발전을 위해 적극 참여를 다짐
▲용정순(27기): 민주시민교육 강사양성 과정 수강 중~~
▲김선기(40): 2018년 4월부터 갈거리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활동.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조합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회서비스와 금융복지 서비스를 제공
▲김인호, 김정원, 정문주, 최명호(이상 47기), 전원식(48기): 지난 5월, 정문주 동우의 개업 축하 방문(포천버섯육개장 대전직영점)
▲전원식(48기): 8월말, 셋째 딸 출산 예정
▲하초희(55기): 6월부터 모교 출입기자(KBS춘천 근무)로 활동 중
▲이종무(55기): 어머니 회갑(6월 27일)을 맞아 남도여행으로 효도
▲박종훈(57기): 한국산업인력공단 강원지사에서 5년간 근무하고 과장으로 승진, 7월부터 서울지역본부에서 근무. 대학입학 후 11년간 생활한 춘천생활 청산에 감회가 새롭다고.
그 시절 칼럼읽기 ⓺권혁필
< 기자코너 >
“신문쟁이의 넋두리”
나보고 글을 쓰란다. 그것도 내가 그동안 써온 일반기사가 아닌 내 생활의 넋두리를 말이다. 벌써 내가 신문쟁이가 된 지 이태가 지나가는데 그동안 그런 것도 한번쯤 쓸 만한 필요가 있겠다고 느껴 왔었어. 왜냐고?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또 속에서 앓고 있던 체증이 너무 많은데 이것을 한번 정도는 토로를 해야 되겠기 때문이었겠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이란 곳에 들어왔어. 내 주변의 모든 생활환경이 너무나 갑작스레 변해갔어.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내가 취하여야 할 것인지를 가르켜 주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말이야.
나는 그 중에서 하나를 움켜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올라탔지. 정신없이 달리더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말이야. 난 도대체 내 자신을 어디에 묶어 두었는지 모르고 내 육체만이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것이었어.
친구들이 나만 보면 그러더군. 무엇이 그렇게 바쁘냐고. 학보사라는 곳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냐고 말이야.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어. 나도 모르겠다고.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이야.
내가 처음 맞은 대학축제라는 것 역시 나에게 진정한 대학축제의 맛을 보여주지 않고 수박겉핥기식오로 지나가고 말았어. 잔치집 선머슴처럼 돌아다니기만 했지. 나에게 뭐가 뭔지를 가르쳐 주지 않고 지나가 버렸으니 말이야. 친구들이 나보고 학교에 신문 만들러 오냐고 물을 때가 있지. 난 어물어물 그 대답을 회피하고 있어. 사실 그건 내가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였기 때문에 또 그 대답을 아직까지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야. 이런 글을 보면 내 친구들은 웃겠지. 그 자식 너저분하게 많이도 지껄인다고 말이야. 꽤 시껄하게 떠들고 있다고.
다시 마음을 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벌써 이태가 지났어.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도 모르게. 남의 눈치나 살피고 뭣 좀 꼬집을 게 없냐고 살펴보면서 지낸 세월이 세월이 말이야.
이렇게 넋두리를 하는 것인가 보지. 꽤 시껄하게 떠들다보니 시원해지는군. 다음에 또 한번 하지. <임산 2>
.......
옮겨 적은이의 추임새
대학신문 기자를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존재론적 의문에 빠져들 때가 있다. 학생이면서 기자라는 신분이 주는 사명감과 보람 같은 긍정적인 의미도 때로는 학생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 자신이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사고의 깊이와 활동의 폭을 넓혀 결국은 학생기자로서 올바르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는 걸 깨닫는다.
비단 학생기자 시절뿐이겠는가. 사람 사는 일이 막막한 돌다리를 건너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그저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그걸 조금 미화하고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성찰과 모색의 인생철학 아니겠는가. 【송호필/25기】
동우 칼럼
부동산 임장기 고희진 53기(경향신문 기자)
최근에는 ‘집’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실은 올해 늦은 가을에 가정을 꾸리게 될 것 같습니다. 약 7년 만에 살고 있던 삶의 터전을 옮겨야할 일이 생겼는데, 모르는 것 투성이 입니다.
7년 전 취직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 구해 살고 있는 지금 집은 순전히 운이 좋아 알게 됐어요. 친구가 살던 건물에 빈 방이 나왔고 마침 회사와도 가까워 덜컥 계약을 하고 들어와 살았습니다. 여기서 운이 좋다는 건, 다른 무엇보다 임대인이 꽤 괜찮은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7년을 살면서 한 번도 월세를 올린 적이 없어요! 보일러가 고장 나도 미안하다 하시며 바로 고쳐주셨답니다. 임대인은 소위 말해서 ‘부자’라고 불릴만한 분이었는데, 여유가 묻어 나오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제 집 자랑을 하려던 건 아니고요. 운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집 외에도 대학시절 잠깐 살던 집도 친구가 살던 집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역시 집주인이 나쁘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저의 부동산 계약은 언제나 지인에 의한 소개, 친절한 주인과의 만남으로 나름 아주 만족스럽게 행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운이 다했는지, 문제는 2021년입니다. 최근에는 평일 저녁 혹은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집을 보러 다닙니다. 서울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도 가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놀랐는데요. 가격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입니다. ‘이 집이 정녕 이 가격이란 말인가’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뉴스에서만 보았던, 전세가격 상승을 몸소 체험하고 아둔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몇 번이었습니다. 지금은 사회부서에 있는데 경제부로 옮겨 부동산공부를 해볼까 싶기도 했어요.
이 같은 충격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비 동반자와 마음이 상하게 말을 나눴던 경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과후의 피로가, 전세난의 충격과 함께 겹쳐진 탓인지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돈’이란 무엇인가에 아주 뒤늦게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지난해부터 주식과 코인 등에 많은 투자를 했어요. 친구와 친구의 가족, 직장동료 등 얘기를 나눈 사람 중 이같은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실제 큰 돈을 번 이들도 있었고, 아직 수익이 없는 사람도 그리고 조금이나마 손해를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동산에서 금융투자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면서 어느 날에는 이불을 덮고 누워서 불안한 미래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삶은 꾸려나가려고 하는 때에 불안부터 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 이것이 삶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주변 2030세대는 모두 저와 같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다들 치솟는 전세값, 나만 벼락거지가 된 것 같은 불안감을 상당수가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대학을 다닐 때는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어쩌면 생각도 없어서, 취업에 대한 고민도 잘 못했습니다. 신문사 동기와 미래광장을 뱅뱅 돌면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얘기를 했던 기억은 여전히 좋은 추억이고요. 그땐 동기들 사이에서 ‘걷는 것 좋아하는 희진이’라 불렸는데ㅎㅎ 지금은 잘 못 걷습니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로 이동하니 의외로 생활에서 잘 걸을 일이 없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해야만 걷게 되더라고요. 돌이켜보니 제 삶도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습니다.
p.s ‘그래서.. 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다.’처럼 결말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동우회 소식지에 들어갈 원고를 청탁받고 급하게 적게 됐습니다. 오전 8시, 출근을 앞두고 쓴 글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소식지에는 잘 구성된 칼럼보다는 조금은 이상해도 나름의 제 생활을 전하는 글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흐지부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기회가 될 때 여러분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코로나에도 동우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