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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스케일링과 여의사>의 줄거리: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께 도달한 중풍병자와 그를 도운 친구들의 믿음! 여기에 뜻 밖에도 예수님의 죄사함의 선언이 주어집니다. 즉 빗나감이 없는 정답이라는 선언입니다. 치유의 기적뿐 아니라 죄사함이 선언되는 정답의 믿음이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게 된 이유가 바뀌어서 예수님이 관심의 주 과녁이 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스케일링과 여의사
(눅5:17~26)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스케일링과 여의사>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여러분, 연예인들 중에 의사와 결혼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남자 연예인들이 여자 의사와 결혼하기도 하고,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 의사와 결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연예인들의 결혼 중에서 방송인 박명수 씨와 탤런트 김상경 씨의 결혼이 특별히 비교하기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분 다 여의사와 결혼을 하였고, 두 분 다 아이를 하나씩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의 결혼을 비교해 보면 재밌는 차이가 있습니다.
박명수 씨는 피부과를 개원하고 있는 여의사를 결혼을 전제로 한 소개팅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혼할 여자를 만났는데 그분이 의사였던 것이에요.
그렇게 만나서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하셨어요.
그런데 김상경 씨는 과정이 좀 다릅니다.
스케일링을 하기 위해 동네의 치과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원장을 만나 치료 스케줄을 잡고 명함을 주고받고 나오는데, 그 원장선생님이던 여의사가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명함을 보고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는 거예요.
그때가 김상경 씨가 서른다섯, 이 여의사선생님이 서른 살이었을 때.
이렇게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 여의사도 이분이 나의 운명이라고 첫 번째 만남에서 생각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케일링 때문에 갔다가, 즉 환자가 의사와 결혼을 한 거예요.
박명수 씨는 여의사와 결혼을 하셨지만 환자가 의사를 만나서 결혼한 게 아니죠.
그런데 이 김상경 씨는 환자로 병원을 찾았다가 여자 의사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김상중 씨는 스케일링 따위는 안중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다 알아서 스케줄을 짜서 스케일링을 해줄 겁니다.
자, 이 김상경 씨가 결혼하게 된 과정, 이게 믿음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어서 나타나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입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선언이 주어질 수 있는 그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환자가 스케일링 하러 갔다가 의사와 결혼하게 되는 이 과정이 반복되어서 나타나는 믿음, 요 믿음만이 예수님에게서 죄 사함의 선언을 얻어낼 수 있는 믿음이고, 이렇게 죄 사함을 얻어내게 될 경우에는, 스케일링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의 치석들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될 수 있는 그런 삶이 펼쳐진다는 겁니다.
이게 죄 사함의 신비 아닙니까?
죄 사함의 선언을 받고 나면 인생의 치석이 다 제거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서 예수님이 지금 계신 곳으로 오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간단하게 씁니다.
지붕을 뚫고 줄을 매달아서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낼 때, 꿈에도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해봤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불쑥 예수님께서 죄 사함의 선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중풍병도 낫게 됩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언하셨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중풍병자를 통해서 예수님께 보여 진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게 무슨 내용의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에 갈 수 없는데, 꼭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아야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가지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심지어는 지붕까지도 뜯어내는 그런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으로 옮기는 자세,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에요, 그게 믿음이라서 죄 사함이 선언되었다면 이 자리에서 죄 사함이 선언될 사람이 많습니다.
꼭 지붕을 뚫지 않았더라도 이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해서 일찍이 나와서 지금 집안에 계신 예수님 바로 앞에 당도한 병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에요.
그들에게 다 죄 사함의 선언이 주어진 게 아니고, 복음서에 많은 경우가 우리들에게 이야기 되고 있는데 그 모든 병 고침의 경우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언해주신 게 아닙니다.
불쌍해서, 긍휼히 여기셔서, 또 당신 자신이 바로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라는 걸 보이시고, 천국을 가리키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시고 병자를 고치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의 선언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죄 사함의 선언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자, 그 죄 사함의 믿음이 어떤 것일까요?
죄라는 건, 또 말씀드리지만 ‘하마르티아’ 과녁을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오답이다, 정답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러므로 죄 사함이라는 뜻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는 정답이다, 이제는 빗나가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네 태도와 네 마음속에서 빗나감이 중단되었다’ 하는 것이 죄 사함의 선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모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역사의 일반 지평을 내다보며 이걸 쓰고 있는 것이니까, 유대인이라는 한계 안에서 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래서 유대인 안에서 얘기하는 나병환자의 이야기가 인류역사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경우에 어떤 경우든지 간에, 중풍병자 같은 경우든 돈 문제의 경우이든 가족 간의 인간관계 문제든지 어떤 경우에도 정답은 하나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공자에게 나가도 답이 없고 부처에게 나가도 답이 없고, 베스트셀러를 읽어도 답이 없습니다.
어떤 정치인에게 들어도 답이 없습니다.
베스트셀러라는 뜻은 다른 뜻이 아니에요, 매력적인 오답 덩어리라는 뜻이에요.
성현들이 누구입니까?
매력적인 오답을 뱉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나가는 것만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다 예수님께 나왔어요,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병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빗나감이 그쳤다, 네가 정답을 맞혔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죄 사함이 선언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죄가 빗나가는 것을 말하니까.
예수님께 나가는 게 정답이라고 우리가 말해놓고 보니까, 병자들만 온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사들도 온 나라 각처에서 예수님께 나왔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예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가르치는 스승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다는 이 모양 자체가 뭘 말하느냐 하면, 세상에 예수님 말고 가르치는 모든 자에게 정답이 없다는 겁니다.
자, 이들도 어쨌든 예수님께 나왔어요.
그러면 이들이 다 정답을 맞힌 겁니까? 죄 사함이 선언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죄 사함을 선언하는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것만이 모든 경우 모든 문제에 대해서 유일한 정답인데, 그렇게 예수님께 나오는 것만으로도 정답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답이 됩니까?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봅니다.
왔어요, 사람들이 가득 차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간단하게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랬겠어요?
딱 도착하자마자 누가가 쓴 것처럼, ‘사람이 가득 차있으니,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내려 보내자!’ 이랬겠습니까?
그럴 리 없지요, 사람 사는 마을인데 다섯 명 전체가 다 이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상황을 알아봤더니 사람들이 가득 들어 차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몰려들었는데, 가만 알아보니 지금의 타이밍은 병 고치는 타이밍이 아닌 겁니다.
누가가 기록하기를, ‘하루는 가르치실 때…’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 알아보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병을 고치셨다면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할 거예요.
병자들이 고침 받은 대로 밖으로 나왔을 겁니다, 그 뒤에 다른 병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오기 위해서.
혹은 병자들이 움직이지 힘들다면 예수님께서 움직이시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 하시면서 안수하시고 병을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 고치는 것이 문제였다면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누가가 말하는 이 중풍병자라는 단어가 어떤 것이냐 하면, 마태와 마가에서 쓴 단어와는 달라요, 마태와 마가에서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썼는데, 이 누가가 말하는 중풍병자라는 것은 오래 된 지병환자로서의 중풍병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던 사람에게 잠깐 기다리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순번을 기다리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을 알아보니, 병을 고치는 타이밍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계시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을 고치는 거라면 기다리면 되지만, 지금 뭔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이라면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 가르침과 이 말씀은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이들은 결심합니다.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그 찰나에 이들의 마음속에서 주관심사가 완전히 뒤집히고 바뀌어버립니다.
중풍병을 고치겠다고 온 이 마음의 관심이 예수님 자신에게로 옮겨갑니다.
여기에서 과녁에 적중되는 마음의 관심의 화살이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지붕을 뜯어냅니다.
왜?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놓치는 것이니까.
이제 인생의 치석인 중풍병을 제거하는 스케일링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스케일링을 하는 여의사가 마음의 관심이 돼버립니다.
여의사가 내 운명이다, 스케일링쯤이야 아무데서나 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지금 이 여의사만큼은 내가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김상경 씨의 마음의 변화,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스케일링을 하고 나오면 되는 것이 대부분 환자의 모습인데, 이 김상경 씨는 스케일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의사가 내 운명이라고 마음이 바뀌어버린 이 상태가 곧 죄 사함을 끌어내는 빗나가지 않는 마음의 화살의 정답인 믿음의 상태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죄 사함을 끌어내는 빗나감이 없는 마음의 상태요, 이것이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이 뭡니까?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내 삶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죄를 지은 결과가 뭡니까?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당면하고 있는 인생의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죄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오답입니다, 베드로가 평생의 고기잡이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결론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오답이 되는 것처럼.
지금 내 인생의 상황, 이 경우, 이 문제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그 내용을 듣지 못하고, 캐치하지 못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답을 내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이며 빗나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죄 사함을 얻어내는 믿음이 뭐라고 했습니까?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공생애를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이 믿음의 점철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관계, 사건, 상황, 이 모든 것에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한 안간힘으로 공생애를 관철하십니다.
이것 이외에는 하신 것이 없어요,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놓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태도가 마리아와 마르다의 비교에서 마리아에게서 나타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마르다보다 당신의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턱 받치고 예수님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마리아를 예뻐하신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지금 계속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나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살다가 우리 인생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가 어떤 것이든 간에 예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미 우리는 교인이니까, 믿는 사람들이니까.
좋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교회를 가서 기도를 하던 가정에서 기도를 하던, 짬을 내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던…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많은 병자들과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이들은 여전히 빗나가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에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을 마음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예수님 앞으로 나간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잡으려고 나갔고, 다른 모든 병자들은 여전히 스케일링만 끝나면 예수님을 떠날 마음으로 그 앞에 나가 있는 겁니다.
스케일링이 주관심사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로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떠올리고 돈 문제 때문에 예수님 앞으로 나와 기도를 하지만,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면 돈 문제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져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돈 문제 때문에 급해서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하게 되는 이유가 뭡니까?
돈 문제가 이렇게 된 것이 잘못되었다는 내 생각과 내가 내린 결론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결론을 고집하고 있는 한, 예수님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보면서 자식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예수님께 하나님께 나와서 스케일링만 하고 돌아갈 마음자세로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이렇게 사는 거예요.
치석이 생길 때마다 나와서 고치지마는, 절대 그 여의사 자신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충치가 생겨도 오고, 스케일링 할 때도 오고, 임플란트도 할 때도 오지만, 그 여의사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100년을 믿는다고 예수님께 나와도 죄 사함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다 빗나가고 있는 것이니까.
예수님 자신에 관심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지 않으니까, 하나님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으니까 빗나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적중한 믿음이고 죄 사함을 끌어내는 믿음입니까?
빗나가지 않은 믿음, 정답인 믿음.
지금 여기서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 마음, 이 다급한 심정, 지금 놓치면 지금 이 경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놓쳐버린다는 이 절박함과 다급함을 가지고 주님을 향해 쇄도하는 믿음.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십자가를 통해 들려집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이 세상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죽고 내 답이 죽으니까…
내 답이 내 속에서 들리고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들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 생각이 죽고 내 답이 죽을 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들리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놓치지 말자는 거예요.
십자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 오늘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내려가려는 행동과 똑같은 것이라는 얘기죠.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생각과 내리는 답이 죽을 때, 들리지 않을 때, 관심 밖으로 밀려날 때, 그때 예수님 자신이 나의 관심이 되고, 예수님 자신이 나의 관심이 되면 여의사가 나의 아내가 되었을 때에 스케일링 따위는 그 예수님이 알아서 해주시듯이 예수님이 나의 관심이 되었을 때에 인생의 치석들, 건강문제, 돈 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 모든 문제들을 내 신랑 되신 주님께서 다 알아서 때를 따라서 제거해주실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 믿음, 이게 바로 정답의 믿음이고 여기에 죄 사함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는 단지 치석일 뿐입니다.
거기에 집중하지 마시고 의사이신 예수님 자신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기어코 주님의 입에서 나를 향하여 죄 사함의 선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시는 그런 적중하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