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는 충북 제천에서 오후 11시 50분 부산행 기차를 갈아 탔다. 집이 있는 강원도 정선에서 9시에 출발하는 비둘기호를 타고 제천까지 와서 정선에서 미리 끊은 부산행 티켓으로 한시간 정도 시간을 기다리다기차에 탄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출발 시간 까지는 20분 남았는데 기차가 서 있는 밖의 매점에서 가락국수를 팔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잊고 있었던 출출함이 뱃속에서 느껴졌다. 그는 내려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
민수는 부산여행이 이번에 처음이었다. 말로만 듣고 동경했던 부산을 군대가기 전에 큰 마음먹고 내려가는 거였다. 기차안은 손님이 별로 없어 민수 좌석은 앞뒤로 비어 있었다. 그는 좌석을 젖혀 서로 마주보게 만든 다음에 신발을 벗고 거기에 다리를 올려 놓았다. 아침 7시 15분에 부산역에 도착하기 때문에 잠을 기차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아저씨가 끌고 다니며 판매하는 리어커 같은 운반도구에서 캔맥주 2개와 안주로 오징어 전기구이를 샀다. 그는 캔맥주와 안주를 천천히 마시고 먹으며 잠이 오길 기다렸다. 캔맥주 2개를 다 마시자 졸음이 슬슬 오기 시작했다. 그가 한참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기차가 경주역에 도착해 있었다. 시간은 5시 30분이었다. 더 이상 잠 잘 생각이 없는 그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나온 다음에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리고 좌석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보니 해운대 역에 곧 도착한다고 방송이 나왔다. 이 방송을 듣자 민수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부산역까지 표는 끊었지만 왠지 해운대가 더 좋을 것 같았다. 곧 기차는 해운대 역에 도착했다. 그는 베낭을 매고 여유있게 내렸다. 눈 앞으로 해운대 앞바다가 촥 펄쳐지는 광경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때는 10월이고 목요일이라 휴가철같이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꽤 있었다. 민수는 해운대 백사장을 걸으며 가을 바다를 흠씬 느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백사장에 앉아 이것저것 삶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의 앞으로 썬그라스를 낀 몸매가 무척이나 좋은, 꼭 슈퍼모델 같은 외국 여자가 지나갔다. 민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뭔가에 홀린듯 그 뒤를 따라서 걸어갔다. 영어가 안되는 민수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생각은 안나고 그냥 미행하듯이 그녀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녀가 백사장에서 올라와 어느 커피집 앞에 서서 그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커피를 마실까, 말까, 생각중인 것 같았다. 민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익스 큐즈 미." "두 유 라이크 커피?" "예스. 아이 라잌 커피" 여기서 민수는 말이 막혀 버렸다. 그래서 "아이 바이 커피" "리어리? 땡큐." 영어에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민수의 말에도 그녀는 센스있게 이해했다. 민수는 손짓으로 커피집을 가리키며 그녀를 데리고 그 커피집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시키고 민수는 '아 임 어 스튜던트' 라고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아 유어 스튜던트" "노우. 아임 어 비지니스 우먼." "아! 비지니스 우먼. 유 아 저니? "예스." 그러더니 그녀는 작은 베낭을 열더니 지도를 하나 꺼냈다. 세계지도 였다. 그녀가 지도를 짚으며 쉬운 영어로 말을 해서 민수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엔 어제 오고, 오기 전엔 일본에 있었고 다음 여행지는 싱가포르라고 하였다. 민수는 지도를 보면서 미국을 손가락으로 짚어서 '유어 하우스' 라고 문법이 전혀 틀리게 물어 봤다. 그래도 그녀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마이 홈타운 이즈 웰링턴 인 뉴질랜드' 라고 말했다.
그녀가 쓰고 있던 선그라스를 벗었다. 꼭 외국 영화에서 본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키는 170이 넘고 몸매는 글래머 면서 날씬하고 특히 힙과 긴다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자신은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 살고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름은 '리닛 존슨' 이고 나이는 27세라 하였다. 커피숍에 다른 남자 손님들이 민수가 부러운듯 그들쪽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이정도 외국 미녀와 같이 앉아 얘기하니 본인들 여자친구는 비교가 안된다 생각하며 그들 쪽을 힐끗거리고 있는 것같았다. 그들의 눈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모레 서울로 가서 싱가폴 행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하였다. 참 희한하게도 그녀가 지도를 짚어주며 얘기해주니까 영어에 자신이 없는 민수도 이해가 가능했다. 민수는 그녀에게 오늘 부산에 있을 예정이면 같이 부산을 여행하자고 제의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OK' 했다. 민수가 그녀와 커피숍을 나란히 걸으니까 주위 사람들이 눈이 둥그레지며 호기심 가득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 보았다. 민수는 그녀와 함께 부산의 여러곳을 돌아다녔다. 태종대에 가서는 ' 다시한번 생각하십시오' 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 자살을 많이 한다는 유명한 장소에서 그녀에게 ' No suicide' 라고 설명했고 그 다음 배를 타고 오륙도를 한바퀴 돌아왔다. 그 다음은 남포동에 가서 같이 회를 먹었다. 소주도 한 잔 걸치면서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바디랭귀지로 의사 표시가 거의 가능했다. 사진도 같이 찍고 남포동 까페에 가서 생맥주 한잔씩 마시면서 많은 바디랭귀지를 통한 얘기를 재미있게 하였다. 그녀는 민수에게 선물도 하나 주었는데 뉴질랜드산 양가죽으로 만든 지갑이었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여서 민수는 배낭에서 '솔' 을 한 갑꺼내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뉴질랜드 웰링턴 집 주소를 적어 주었다. 한참 후 그녀는 이미 예약한 호텔이 있어 그리로 가겠다고 하였다. 민수는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리닛 존스' 와 작별했다. 오늘 처음 봤는데 더 이상의 진도는 어려웠다. 근데 그녀가 내일 아침 8시에 그 호텔에서 아침을 산다고 하였다. 민수는 뭔가 야릇한 상상을 하면서함박웃음을 지으며 땡큐를 연발했다. 민수는 오후 3시쯤 부산역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10월이지만 부산역은 춥지도 않았고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민수는 졸음이 밀려와 부산역 앞 긴 벤치에 베낭을 놓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잠이 막 들려는데 '여호와의 증인' 이라는 여자 둘이 와서 귀찮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래서 민수는 '나는 교회 전도사'라고 말을 잘라버리고 잠을 잤다. 한참을 긴 벤치에서 잠을 자고 나서 눈을 떠보니 민수가 있는 벤치끝에 어떤 아가씨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귀엽고 예쁜 아가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