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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학술원
 
 
 
카페 게시글
경북북부권문화 스크랩 계서당 이야기
혜명 추천 0 조회 42 12.03.12 10: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명 칭 :  계서당(溪西堂)
소 재 지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원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건 축 주 :  성이성(成以性, 1595~1664)
건축시기 :  1600년대중반
소 유 자 :  성기호(관리자 : 성기호)
문 화 재 :  중요민속자료 제171호, 1984-01-10 지정, 일곽

건축 이야기
성이성의 학덕을 기리는 계서공파의 종가

계서당은 봉화읍 소재지에서 물야 방면 915번 지방도로 약 6km를 가서 가평에 이른 뒤 다시 가평에서 두문·수식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약 500m 지점에 있다.

계서당은 계서 성이성이 살던 곳으로 계서공파의 종가이다. 사랑채의 당호는 성이성의 호를 따서 계서당이라 붙였다. 그래서 종가 전체를 계서당이라고 통칭한다. 사랑채에는 측면 대청에 전백당(傳白堂)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데 아마도 계서의 청백함을 이어 온 집이라는 뜻일 것이다.

건물은 경사진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뒷산엔 큰 소나무들이 제법 빽빽하다. 집이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밖에서 보면 우뚝 솟아 보인다. 정면에서 바라 볼 때 집 오른 쪽에 사당이 있는데, 사당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당 아래 화단에 꽃들도 있고, 그 아래에는 채소도 심었는데, 제법 키 큰 엄나무가 있다.

“엄나무는 귀신을 쫓는 나무인데, 사당 앞에 심었누.”했더니, 동행한 분이 “사당의 신주는 오가는 귀신이 아니라 머무르는 귀신이어서 괜찮다.”고 해서 웃었다.

건축 구성

이 가옥은 사랑채인 계서당을 좌측면에 우뚝 세워 놓고 안채와 날개채를 붙인 독특한 口자 형태를 띠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으로, 측면 3칸은 대청이며 좌우 2칸은 안방과 상방이 대칭으로 놓여졌다. 안방과 상방 뒤에는 마루방을 각각 반 칸씩 설치하여 반침으로 사용한다. 안방 부엌은 마당 쪽으로 길게 뻗어 중문간이 있는 앞채와 직각으로 만나며, 상방 앞의 부엌은 반 칸을 내밀어 사랑채 부분과 1m 정도 틈을 두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으로 후대에 증축·개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면 3칸과 좌측면 2칸에 ㄴ자형 마루를 설치하고 기둥 바깥으로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를 두었다. 마루의 뒤쪽에는 사랑방·책방·사랑윗방을 배치하였으며, 마루의 양쪽 측면은 널판으로 벽을 만들어 각 칸에 문을 달았다. 특이한 것은 사랑채의 툇마루 끝에 주인이 바깥에 나가지 않고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판자로 3면을 막고 바닥을 뚫었는데, 지금 항아리는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바닥 아래에 항아리를 놓아 간이화장실로 썼을 것이다.

사랑채는 이중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누마루식으로 올렸으므로 사랑 마당에서 눈을 높이 들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누마루 기둥 사이를 돌과 흙으로 쌓은 뒤에 다시 기와조각과 흙을 써서 채워, 높은 누마루가 줄 수 있는 위 아래가 텅빈 듯한 느낌을 조금은 줄여주고 있다. 그 느낌은 누마루 한 쪽을 널벽으로 둘러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집으로 납도리 3량가 구조이며, 내부에 운궁(雲宮)과 감실(龕室)이 있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인데, 후면은 홑처마이다. 사당 정면에 있는 사주문은 각기둥의 맞배지붕으로 중방을 기둥 상부에서 연결하여 다락을 꾸몄다.

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지붕이며 납도리 3량가이다. 왼쪽부터 2칸은 우물마루를 깔고 고방, 부엌, 방, 대문간, 마구간, 화장실을 두었다.

계서당의 기와는 앞뒤가 다르다. 이것은 우리나라 문화재 보수의 한 단면, 우리나라 행정과 일처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의 문간채의 기와와 사랑채, 안채의 앞면 기와는 번와를 하여 깨끗하다. 그러나 사랑채의 뒷면과 안채의 뒷면 기와는 낡아서 이끼가 잔뜩 끼고 비가 새는 모양새다.

문중 이야기
- 『춘향전』이몽룡의 실제 모델
창녕사람인 성이성이 이곳에 살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부용당 성안의가 처가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부용당은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백암 김륵의 손서가 된다. 성안의는 임진왜란 때 화왕산성에서 곽재우·정인홍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면서 가족을 처가가 있는 영주 이산면으로 피신시켰다. 성안의는 이를 계기로 하여 창녕에서 처의 고향인 이곳으로 자연스레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용당의 3남인 성이성도 자연히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종손 성기호는 성이성이 우복 정경세의 문인이라고 알려주었다. 권두인이 지은 행장을 보면 성이성이 13세 때 남원 부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가다가 상주를 지나며 우복 정경세를 찾아보았다는 기록이 있을 뿐 정경세의 문인이 되었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성안의가 5년 동안 남원 부사를 지냈으므로 성이성이 아버지 임기 내내 함께 남원에 있었다면 그는 13세에서 18세까지 남원에 있었을 것이다.
이를 하나의 근거로 삼아 춘향전의 실제 모델이 성이성이라는 주장이 계속돼왔다. 그 대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이다. 그는 남원 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 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
이러한 주장을 한 대표적 인물이 설성경 교수인데, 그는 성이성 본인의 글을 후손이 편집해낸 『계서선생일고(溪西先生逸稿)』와 성이성의 4대손 성섭(成涉, 1718∼1788)이 지은 『필원산어(筆苑散語)』의 내용을 기초로 하고, 다른 여러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그러한 결론은 내렸다.
다음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두어 가지이다. 첫째는 『계서선생일고』에 실려 있는 「호남암행록」의 한 대목이다.
“십이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 길에 길을 나서서 십 리가 채 안 되어 남원 땅이었다. 성현에서 유숙하고 눈을 부릅뜨고 (원천 부내로) 들어갔다.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광한루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늙은 기녀인 여진(女眞)과 기생을 모두 물리치고 소동과 서리들과 더불어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 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거푸 소년 시절 일을 회상하고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성경은 “‘늙은 기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밤잠을 설쳐가며 소년 시절을 회상했다.’는 성이성의 진술은 비록 성이성이 직접 옛 연인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앞 뒤 정황으로 보아 틀림없이 옛 연인을 그리워한 대목이라고 판단된다.”라고 한다. 또 옛 연인은 기생이었음이 분명하고, 그 중에서도 관기(官妓)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옛 연인이 성이성과 이별한 뒤 연정을 지키려다가 관기 사회의 규제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필원산어』에 실려 있는 성이성의 암행어사 행적이다. 이 행적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그대로 유입되었다. 성이성의 4대손인 성섭은 『필원산어』에서 자신의 고조 성이성이 남원 땅에서 행한 ‘암행어사 출두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 고조가 암행어사로 호남에 갔을 때 암행하여 한 곳에 이르니 호남 12읍의 수령들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한낮에 암행어사가 걸인 모양으로 음식을 청하니, 관리들이 말하기를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하였다. 곧 한 장의 종이를 청하여 시를 써주었다.
‘금동이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소반 위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소리 또한 높더라.’
쓰기를 마치고 내놓으니, 여러 관리들이 돌려가며 보고는 의아해 할 즈음 서리들이 암행어사를 외치며 달려 들어갔다. 여러 관리들은 일시에 모두 흩어졌다. 당일에 파출시킨 자가 여섯이나 되었다.”
이 시를 성이성 자신이 지었는지, 아니면 항간에 전해오던 시를 옮겨 적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성이성과 남원과의 관계가 춘향전의 모태가 된 것만은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부용당이 바로 성이성 아버지 성안의의 호인 것과 함께 말이다.

관련인물
- 청렴하고 올바른 선비의 전형, 성이성

성이성(成以性 , 1595~1664)은 본관이 창녕으로 아버지는 남원 부사(南原府使)를 지낸 증 이조 판서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이고,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백암 김륵의 손녀이고, 증 호조 참판 김계선의 딸이다.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에 열중하였는데, 백부인 진사공이 늘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을 크게 일으킬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13살 때 남원 부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다가 우복 정경세를 찾아보았는데, 정경세가 기특하게 여겨 “자식이 이와 같으니 이는 그대가 평생토록 걱정이 없다고 할 것이다.”라 하였다. 그는 자라면서 학문에 더욱 증진하여 김굉필(金宏弼)·이연경(李延慶)의 학통을 이은 강복성(康復誠)의 문인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했다. 승문원 부정자를 시작으로 하여, 1635년(인조 13) 정언·부수찬·부교리를 거쳐 이듬해 지평을 지냈다. 1637년(인조 15) 헌납이 되어 윤방·김류·심기원·김자점이 나라를 그릇되게 이끌고 충성스럽지 않다고 그 죄를 논하기도 했다. 특히 사간을 역임하는 동안 직언으로 일관하여 주위의 시기를 받아 승진이 순조롭지 못하기도 하였다.
외직으로는 진주·강계 등 네 고을을 다스렸는데, 진주 부사 때는 어사 민정중이 그가 선정을 베푼다고 보고 하여 표리(表裏 : 옷감)를 받았고, 강계를 다스릴 때에는 삼세(蔘稅)를 모두 면제해주어 백성들이 관서의 살아있는 부처[關西活佛]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그는 4번이나 어사가 되었으며, 근면하고 검소하며,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다. 뒤에 부제학으로 추증 되었다. 저서로는 『계서유고』가 있다.

봉화 > 물야권 > 가평리
- 세 개의 물길, 세 개의 산이 만나는 곳, 가평리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은 봉화읍의 북쪽에 있는 면이다. 이곳은 영주시 부석면과 경계를 같이 한다. 봉화읍에서 915번 국지도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길은 내성천의 본류와 3번 좌·우를 뒤바꾼다. 북지리의 아래쪽 끝 부분에서 도로는 물길을 넘어 서편으로 넘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동편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가평리에 들어서면서 도로는 다시 물길을 넘어 서편으로 나아가고, 그런 위치를 유지하면서 물야면소재지를 향하여 나아간다. 물야면소재지를 넘으면 물길과 도로는 또 자리를 바꾼다.
가평은 너른 들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적어도 3곳의 물길이 합류하는 지점이고, 적어도 3개의 큰 산들이 흘러내려 만나는 지점이다. 문수산은 가평의 동북쪽에 있다. 해발 1200m가 넘는 이 산자락의 한 끝은 가평 쪽으로 흘러내리고, 그 산록이 품어 기른 물길은 가평 앞으로 나와서 내성천의 본류와 합류한다. 만석산은 가평 북쪽에 위치한다. 이 산은 해발 492m 정도이고, 가평과 물야면 소재지 사이에서 내성천 서쪽 영역을 양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응방산은 가평의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585m의 이 산은 두문쯤에서 수식 쪽과 가평 쪽으로 나뉜다.
가평 쪽의 산록은 수식 쪽에 비해 짧다. 그러나 이쪽의 물길은 가평 쪽으로 흘러내려 저수지에 모이고, 가평 들을 적시며, 결국은 내성천으로 합류한다. 가평 들은 만석산의 남쪽 산록과 응방산의 북동쪽 산록 사이에 펼쳐져 있다. 그 사이를 가평 두문 사이의 봉화군 1번 군도가 나누어 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만석산 쪽으로는 계서당이 위치하고, 응방산 쪽으로는 구만서당이 위치한다. 구만서당 쪽이 가평 마을 본동이다. 계서당 쪽에서 보면 앞쪽의 응방산 끝자락은 누에머리처럼 꿈틀거리며 두문 쪽에서 기어 내려와 가평 들을 향하여 머리를 드리우고 있다. 계서당의 시선 방향은 그 누에머리의 끝점쯤을 향하고 있다. 계서당에서 서쪽 영역은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산촌의 모습이고, 동쪽 영역은 너른 들로 이루어진 농촌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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